2.5D/The New World File : 괴물을 삼킨 남자

The New World File : 괴물을 삼킨 남자 (4)

백은수 2014. 3. 18. 03:01

동명수가 항시 이중구의 곁을 지키던 상훈을 밀어내고 옆자릴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석동출의 입김이 셌다. 이중구나 유상훈, 여타 다른 조직원의 눈에 올바른 처사로 보일리가 없었으나 말 그대로 까라면 까야하는 곳에서 일의 정당함을 논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한번쯤 이중구가 왜냐고 넌지시 동출을 떠 보기도 했으나, 동출은 말을 아꼈다. 실제로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직에 들어오길 원한 것은 동명수였고 석동출, 즉 리학수는 동명수의 행동을 막을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명수의 말로는 좀 더 가까이서 프로젝트의 진척 사항을 보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저 어물전 앞의 생선을 보는 고양이마냥 리학수가 건립한 조직을 잡아먹으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뿐이었다.

 

동명수가 2인자인 이중구의 자리를 꿰차지 않고 그 아래로 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간 것은 다만 어린 나이에 재범파의 주요직을 얻어냈다며 세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지, 이중구를 높게 샀다거나 어떤 감정 때문은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국적하나 없는 신세였기 때문에 눈에 띌수록 동명수의 입장에선 일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성질머리 하는 동명수가 저렇듯 대놓고 저를 무시하는 이중구를 속 좋게 따라다는 것도, 석동출을 몰아내고선 여차하면 이중구를 허수아비로 내세우려는 계획을 바탕에 둔 행동이었다. 물론 석동출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동명수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날 선 맹수를 대하듯 이중구를 천천히 구워삶는 것이 시간이 들더라도 안전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동명수의 예상을 조금도 빗나가지 않은 채로 시간은 무상하게 흘렀다.

애초에 사내들이란 본디 저들 마음속에 꽁하니 담아두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족속들인지라, 저의 자리를 빼앗긴 유상훈은 애써 대범한 척 동명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첫 날에야 버릇없는 놈이라며 명수를 자근자근 씹어대기 바빴던 놈들도 금세 새로운 구조에 순응해 나가는 중에 이중구로서도 마냥 인상이 안 좋다는 이유로 동명수를 멀리할 수는 없는 형편이 된 것이었다. 처음 며칠을 제외하고 동명수의 일처리에 미흡한 점도 없어, 더욱 그러했다.

 

 

“큰형님이 자리를 좀 넓히는 게 어떠냐고 하시는데.”

 

 

재범파에 들어온 지도 한 달 남짓, 이제는 익숙해진 사무실 소파에 몸을 파묻다시피 앉은 명수가 제 귓바퀴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이리저리 자란 반 곱슬머리가 정신 사나웠다.

 

 

“형님이?”

 

 

중구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불퉁하게 반문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근래 들어 석동출이 엄연히 바로 아랫놈인 저를 두고서 새로 들인 동명수를 끼고 돌며 온갖 작당을 하는 낌새를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이런 소식은 제 입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지, 남의 입에서 들어야 할 소식이 아니라는 것도. 중구는 신경질적으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어제 말씀하셨소. 강남이든 강북이든 일단 한쪽을 다 집어삼키자고.”

 

“에이, 씨발. 우리는 안 그러고 싶어서 이러고 있나. 지금 상황 보면 몰라? 치는 쪽이 먼저 뒈지는 거야. 다 같이 눈치싸움 중이라고.”

 

“알면서 치자는 것 아니겠소. 경찰 쪽 눈치가 심상치 않다던데, 이러단 너나없이 죽는 판이라 그러요.”

 

 

말하고선 동명수는 큼, 하고 목을 두어 번 가다듬었다. 입에 익었다곤 생각하지만 혹시나 저도 모르게 이북 말이 튀어나올까 명수는 매 입을 열적마다 조심하는 중이었다. 가끔가다 애매한 억양이 튀어나오기도 했는데, 의심받을 정도는 아니라 다들 어디서 사투리가 잘못 입에 배었겠거니 여기곤 했다.

 

동명수는 이중구가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뜸을 들이는 냥을 가만 관찰했다. 깡패니 조폭이니 해도 대가리들은 나름대로의 ‘사업’이란 것이 있는지라 오색찬란하고 유치하다 못해 촌스러울 지경인 셔츠와 티로 무장한 놈들 사이에서 이중구는 혼자 버젓한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아마 저것이 유명한 브랜드, 혹은 맞춤 정장이면 저 태가 더 살 거라고 생각하며 동명수는 발을 까닥였다.

 

갈기갈기 조각이 났던 판권이 정리가 되기 시작하고 수 개로 추려진 조직들이 한창 세력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아차, 하는 순간 공중분해가 되기 일쑤라 누구하나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판국이기도 했다. 아슬아슬한 균형상태. 석동출은 지금 이 살얼음 같은 균세를 깨트리려 하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정세를 살피기만 하던 동출이 갑작스레 일을 진척시키려 드는 것은 북에서 내려온 지시 탓이었다.

 

 

‘북측에서 성과를 원하고 있디 않겠소? 거 자투리만한 양아치 집단 구하자고 그 많은 자금과! 어이? 인재를 여 들인 것이 아니란 소립네다.’

 

 

조직 사정을 하나 둘 알아가면서 동명수는 마치 갑과 을의 관계처럼 석동출을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동명수는 대단히 중요하고 위급한 사한에 대해 떠드는 냥 석동출을 다그쳤지만 실제로 위에서 하달된 것이라고는 동중호가 제 아들인 명수에게 사적으로 보낸 전갈뿐이었다. 석동출은 동명수의 거짓을 알 재간이 없었다. 동중호가 미리 손을 써 놓은 탓에 석동출과 북이 연락을 하는 데는 반드시 동명수가 개입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동명수가 꾸며낸 당의 명령을 믿고선 석동출은 조직을 움직이게 된 것이었다. 저의 유능함을 당에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난 동명수를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석동출의 온 신경은 저의 아들 소식을 찾는 것에 집중이 된 탓이었다. 그 때문에 실제로 사업의 최종 결정은 동출의 몫이라고 할지라도 그 전에 벌어지는 일렬의 과정들은 모조리 이중구의 소관이 되곤 했다. 동출에게 잃어버린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이중구는 다만 큰형님이 저를 이토록 믿어주는구나 넘겨짚을 따름이었다.

 

 

“지금 강북권은 화룡파가 대충 정리중이라니까 처음부터 대가리끼리 싸움 붙었다 엄한 놈한테 자리 뺐기지 말고 강남먼저 정리하자고, 큰형님이 그랬소.”

 

 

물론 석동출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저 좋을 대로 이야기를 꾸며내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동명수는 잘 알았다. 꾸며낸 이야기임을 알 리 없는 이중구는 동명수의 말을 의심하기 보다는 단시간에 강남권을 틀어쥐고 강북으로 올라가는 것이 가능할는지를 고심할 뿐이었다.

 

 

“……말처럼 쉽겠냐? 제일파도 뻔 하니 버티고 있고, 요즘 지방 놈들이 자꾸 기어들어오는 거 몰라?”

 

 

엄지손톱을 파내면서 동명수는 이중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전략적 동지라는 게 있잖소? 제일파 그놈들도 요즘 사업이란 걸 해보겠다고 일을 벌이는 중이라니까 어디 좋은 자리하나 알선해주고 서로 노터치 하는 걸로 합의 보면 될 거 아뇨.”

 

 

입에 문 담배를 만지작대던 이중구는 대충 무슨 소린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담뱃불을 붙였다. 싸구려 여관 담배. 겨우 겉만 그럴싸하게 사업체로 꾸미고, 사무실을 새 단장했을 뿐이지 아직 그렇고 그런 깡패 무리라는 딱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재범파의 현 상황을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 동명수가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칠을 하고 단장을 해 놓은 사무실도 간신히 구색만 맞춰놓은 것이지, 한쪽 구석에는 여전히 틈날 때면 사용하는 연장이 수두룩했고 사업장으로 등록이 된 이 건물도 당장에 이중구의 사무실 밖으로 나가기만하면 사업은 고사하고 건물 한 채에 온통 나 조폭이요, 얼굴과 문신으로 선전하고 놈들이 우글거렸다.

 

동명수는 그것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르는 놈들이야 북한 놈들 다 같이 굶주리고 멀건 죽으로 끼니 때운다고 하겠지만 실상은 그와 달라서, 동중호나 기타 고위 간부급 쯤 되는 집안은 한평생 배불리 먹고도 제 손자까지 놀고먹을 수 있는 자금줄을 쥐고 살았다. 말하자면 동명수는 북한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엘리트 집안인 것이다.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지내온 저가, 이토록 보잘 것 없는 뜨내기들과 같이 대우 받지 못하는 것이 동명수로서는 모욕적이기까지 한 일이었다.

 

동명수가 이토록 세력 확장을 서두르는 것엔 이런 기분문제가 바탕에 깔려있기도 했다. 저가 저 수준에 맞춰주기 싫으니 어떻게든 주변을 그럴싸해보이도록 끌어올리려는 것이었다.

 

 

“뭐……, 그러면 네가 애들 시켜서 제일파 소식, 굵직한 걸로 좀 물어와라. 건수가 있어야 우리도 씨발, 작업을 들어갈 거 아니냐?”

 

 

이중구가 한 모금 길게 빤 담배를 재떨이에 지졌다.

 

 

 

 

“으따, 느도 짱깨새끼냐? 존내 반갑다야.”

 

 

가래침을 탁, 뱉으며 까까머리 사내가 말했다. 구부정한 자세 탓에 본래보다 작아 보이지만 자성과도 비등한 키다. 실없이 웃는 면은 순박해 보이기까지 할 지경이었으나 주변에 널브러진 사내들과 굴러다니는 사시미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도 했다. 자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초장부터 간이고 쓸개고 내줄 놈처럼 알랑방귀 뀌지 마. 알아듣지? 깡패새끼란 놈들은 저들한테 잘 해주면 아, 이 새끼 꿍꿍이가 있구나하니까.’하고 단단히 주의를 주던 강형철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반듯하게 올렸던 옛적의 머리 대신 곱슬한 앞머리를 자연스레 내린 자성은 최대한 불퉁하고 딱딱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내려 애썼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긴장을 숨기려 잔뜩 굳은 얼굴근육 탓에 충분히 사나워 보였지만 말이다.

 

 

“씨빠, 뭔 놈의 주둥이에 풀칠을 했냐. 말이 없어야. 여하튼 간에 중간에 안 토끼고 같이 싸워서 고맙다잉?”

 

 

정청은 손에 묻은 피를 바지춤에 문질러 닦으며 바닥에 뒹구는 몸뚱이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내가 먼저 벼르던 참이라 그런 거요. 도와주긴 뭘…….”

 

“도와줬으면 준거지잉. 아야, 이름이 뭐냐? 내는 정청이여.”

 

 

자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기회를 보던 것만 수 달 째였다. 신분을 바꾸고, 여수로 내려와 길바닥을 굴러다니며 그럴싸한 사람을 물색하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 것이. 그 사이 들어오고 나가는 조폭들의 이름이야 수십 번은 훑었고 매일 허탕뿐인 보고서를 강형철에게 내는 것이 이제는 미안할 지경이었다. 이미 여수골목 뜨내기들 사이에선 제법 안면식이 있는 자성이었지만 소위 ‘스카우트’라는 것은 고등학교에서 쟁쟁한 어린놈들을 뽑아다 쓰는 경우가 대다수라 고만고만한 양아치가 아닌 조폭무리에 끼는 것이 마뜩찮기도 했다. 거기에 여수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와는 달라서 두 다리만 건너면 양아치, 건달, 조폭 할 거 없이 서로 사정을 빤히 알 정도라 견제가 여간 심한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자연스레 새 조직을 만들겠다는 놈도 도통 보이지가 않는 것이었다. 조폭 놈들을 모두 감방에 넣겠다는 처음의 포부는 어디가고, 일다운 일이라도 해 봤으면 좋겠다는 조바심이 마음에 가득 찰 정도였는데,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더니, 그게 오늘인가 싶기도 했다.

 

 

“나는, 이자성이요.”

 

 

말하면서 자성은 목을 가다듬었다.

 

정청은 누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었다. 양 옆으로 당겨지는 입술은 여기저기 터지고 찢어진 상태였다. 야차 같은 모습이었다. 이자성은 마주 웃는 대신 손등으로 제 입술을 문질렀다.

 

정청. 가장 최근 서류에서 훑어 본 이름이기는 했으나 이렇다 할 사건사고가 없어 이름만 겨우 알던 인사였다.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그런 놈이려니 했는데 자성은 제가 잘못 짚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좁은 땅바닥에서 배 불릴 궁리만 하는 놈들과는 뿌리부터 다른 놈이었다. 강형철에게 말해봤자 ‘그래봤자 다 같은 깡패새끼’라는 말만 들을 테지만, 어쨌건 자성이 느끼기엔 그랬다.

 

자성의 코를 바닷바람이 간질였다. 비린 냄새는 날 것으로 펄떡이는 바다의 것인지, 피 범벅인 이 골목의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좁은 여수바닥은 한 달만 살아도 어딜 가야 사시미 들고 설치는 종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자성은 오늘도 건수를 잡으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골목 통을 누비던 중이었다. 혹시 새로 생기는 조직은 없는지, 아니면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단 얘긴 없는지 귀동냥을 하려던 것도 있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한바탕 시비가 붙은 것을 본 것이었다.

 

너 다섯 쯤 되는 놈들이 사내 하나를 둘러싸고선 낄낄대며 비웃적대는 중이었는데 얼핏 듣기로는 중국, 짱깨 하는 소리였다. 자성과도 일면식이 있던 무리였는데, 항시 자성만 보면 짱깨 놈들이니 오랑캐 새끼니 하며 시비를 걸곤 했던 놈들이었다. 저기에 엮여선 하나 좋을 거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자성이 발길을 틀려 했지만 무리 중 한 놈이 자성을 발견한 것이 먼저였고, 자성은 졸지에 정청과 같이 출신성분에 관한 이런저런 모욕적인 언사를 듣게 됐다. 적당히 했으면야 이 바닥 사내들 입 더럽고 말 험한 거 모를 리 없는 정청이나 자성이나 개가 짖는구나하고 가만 넘어갔을 것을, 부모에 조상까지 들먹이며 말이 도를 넘은 것이 화근이었다.

 

서글서글 웃던 정청이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고선, ‘근데 이 씨뻘놈들이…….’하고 언제 꺼냈는지 모를 사시미로 가까운 놈의 배때기를 냅다 쑤셨고 덩달아 자성도 제 앞의 놈을 발로 차버리면서 싸움판이 시작돼버렸다. 그리고 지금, 정청과 자성을 제외한 모두가 바닥에 엎어져있는 것으로 싸움은 마무리 됐다.

 

 

“내가 짱깨새끼 본 게 오랜만이라 존내 반가워서 그런는디 같이 술이라도 빨자. 씨빠, 생긴 건 존나 비리비리헌 섀끼가 쌈박질은 제법이라 놀랬다야.”

 

 

자성은 잠시 침묵했다. 정청이 입에 고인 핏물을 뱉었다. 정청을 눈치를 살핀 자성은 최대한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뭐, 그러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