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한재호 x 김성한 / Omega-verse
이름, 나이, 성별, 혈액형, 신장, 체중. 칸칸이 채워지는 개인정보들 틈에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형질 란에 D-Alpha가 유독 눈에 띈다. 이야, 역시 정통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봐요. 숙덕거리는 직원들의 대화가 컴퓨터 화면을 향해 뱉어졌다.
“뭔데?”
“여기 보십쇼. D. 크으. 난 처음 봐요.”
“Dominant? 이야, 나는 이번으로 세 번째 본다.”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더니, 정통 조폭에 형질 우수에…….”
“인마, 그래봤자 깡패새끼 아냐.”
“하긴. 그래도 지들 세계에선 와따일 것 아닙니까?”
* * *
형질은 Alpha, Beta, Omega, 총 세 가지로 구분된다. 형질은 그 발현도와 호르몬에 따라 다시금 Dominant, General, Recessive로 나뉜다. 형질이나 형질 내의 구분이나 모두 다이아몬드 형태의 인구 분포를 지니기 때문에, 알파나 오메가는 그 수가 적었고, 우성(Dominant)이나 열성(Recessive)은 특히나 그 수가 더욱 적었다. 물론 General과의 경계에 걸친 우성이나 열성도 있었지만, 대개는 이런 중립적인 경우는 포함하지 않고 분류하는 게 허다했다.
소 내에서는 마사지로 불리는 이른바 뺨 때리기 게임을 제외하고서도 한 가지 게임이 더 있었다. 눈싸움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실상으론 가까이 붙어 마주보는 두 사람이 페로몬을 뿜어내 압도되는 쪽이 지는 게임이었다. 오메가와 알파를 붙이면 열성인 쪽이 종종 발기를 하는 경우가 있어 민망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은연중에 싸움은 같은 형질끼리 싸움을 하는 게 기본적인 룰이었다. 대게 지는 쪽은 헛구역질을 하거나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종종 개중에 강하다 싶은 녀석들끼리 붙으면 관중석에서도 헛구역질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기 제 2교도소는 김성한의 입소에 교도관, 수감자 할 것 없이 웅성거리기 바빴다. 김성한은 그 이름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름 주변으로 붙는 수식들도 만만치 않았다. 호남 출신 전국구 거물. 어지간한 알파들은 기도 못 핀다는 우성. 김성한은 입소 날부터 늘 그렇듯 모두의 주목을 그러모았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신경이 곤두선 것은 한재호의 수하들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알파라지만 한재호의 형질 란은 R-Alpha라고 기재되어있으니.
김성한은 부러 제 향을 풀풀 흘리는 얕은 수작은 벌이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최측근도 김성한의 페로몬 향을 맡은 일이 드물었다. 다만 사람들은, 아직 제 향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는 쟁쟁한 알파들 사이에서도 김성한이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 우성 정도를 유추할 뿐이었다.
김성한이 오기 직전까지 왕좌에서 모두를 지배하던 한재호는 열성 알파였는데, 그가 썩 좋지 못한 형질 순위를 지니고 있음에도 모두의 위에 군림할 수 있던 건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정통도 아닌데다가 형질도 퍽 좋지 못한 놈이 대가리를 차지하겠다고 하니 반발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한재호는 그들을 모두 자근자근 바닥까지 끌어내려 밟아댔다. 더 이상의 군말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모난 눈을 뜨는 모두를 짓밟고 우그러트렸다. 그는 페로몬의 차이에서 나오는 억압을 이겨냈다. 어지간한 정신이 아니고서야 버틸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음에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무리 한재호가 난다 긴다 하지만 김성한은 어렵지 않을까? 저마다의 유추가 나돌았다. 대선 직전의 공기는 서슬 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한재호는 제 방에 틀어박혀 공을 던지고 받기가 수번이었다. 교도소의 공기는 스산했다. 한재호는 찬합처럼 생긴 제 재떨이에 장초를 비벼 끄며 김성한의 행보에 귀를 기울였다. 김성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먼저 움직인 것은 한재호였다. 소리 소문 없이, 남들의 눈이 닿지 않는 때에. 영근이를 대동하고, 그는 잠든 교도소 내를 제 멋대로 활보했다. 지켜보는 직원들의 눈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교도관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탈옥을 하려는 행위가 아니라면, 계장은 대부분의 행위에 대해 눈을 감아주곤 했다. 한재호에게 얻어먹는 게 있으니 저도 편의를 봐 주는 것이었다.
김성한은 한재호의 방 다음으로 큰 방을 홀로 차지하고 있었다. 한재호가 제 방을 호열이와 같이 쓰던 것을 생각해보면, 김성한이 홀로 쓰는 면적이 더 넓은 셈이었다.
방은 깔끔했다. 김성한은 죽은 듯이 누워있었고, 운동장에서 읽던 책은 얌전하니 책상위에 얹어져있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 도스토예프스키. 병갑이 마냥 책이라면 진저리를 치진 않지만, 그렇다고 독서에 취미를 두는 편도 아니었기에 한재호는 영 구미가 당기지 않게 생긴 책을 보며 오른쪽 눈가를 얕게 찌푸렸다.
“방을 착각하셨는가.”
천장을 보고 바르게 누워있던 김성한은, 한재호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그의 옆에 설 때까지 침묵하다 느리게 입을 열었다. 진즉에 깨어있다는 어조였다. 한재호는 어깨를 들썩이며 흣흣흣, 하고 웃음을 흘렸다. 도로 잠긴 철창 밖에는 영근이가 대기하는 중이었다. 주변이 꽤나 적막하여 한재호의 웃음소리는 방 안에서 두어 번 더 맴돌았다.
한재호는 창을 타고 쏟아지는 달빛을 등지고 김성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뜬 김성한의 앞에는 배죽하니 웃는 한재호의 이와, 까맣게 음영 진 얼굴, 그 주변으로 환한 달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역시, 산전수전 다 겪어보신 선배님이라 그런지, 잠결에도 사람 인기척은 아주 귀신같이 알아차리십니다. 흐흐흐…….”
양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한재호가 꼿꼿하게 편 허리를 가볍게 굽히면 구부정하게 굽는 허리를 따라 그림자는 길게 늘어지고 크게 흩어졌다. 김성한의 몸 위로 어둠이 드리웠다.
몸을 일으켜 앉을 때, 김성한은 제 주변의 공기가 뻑뻑해진 것을 느꼈다. 마치 공기 중의 입자들이 저들끼리 엉겨 붙은 것 같았다. 한재호는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김성한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는 것에 비해 웃음소리는 끊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작았다. 한재호의 주변에서부터 꾸덕하게 공기의 밀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김성한은 어렵지 않게 한재호의 페로몬을 읽었다.
형질이 존재하는, 이른 바 알파나 오메가들은 저마다 동(同)형질의 페로몬에 거부감을 느끼는 방식이 달랐다. 김성한이 공기 밀도가 달라졌다고 느낀다든가, 고병철이 텔레비전 화면 조정 음을 느낀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상대의 페로몬이 크면 느끼는 현상역시 그 강도가 심해졌다.
자리에 앉아 잠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던 김성한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후회할 짓 하지말지.”
“제가, 흐흐, 큭, 큭큭, 뭘 말입니까?”
한재호의 태도는 무겁지 않았으나 이글거리는 눈빛에는 화마(火魔)가 당장에라도 밖으로 뛰쳐나올 듯 이글거리는 중이라, 그 사나움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김성한이 흘러내리는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넘겼다. 차분하게 바짝 넘기던 머리칼이 자연스레 풀어서 흘러내리는 모습은 생경했다. 한재호는 웃음을 꾹꾹 눌러 삼키며 더욱 페로몬을 뿌렸다. 밖을 응시하던 김성한의 눈이 한재호에게로 돌아왔다. 눈동자는 차분했다.
“이런 장난질이나 치려고 왔는가.”
그리고, 화악, 검은 불길 같은 열이 치솟았다. 철창 밖의 영근이 주춤, 하고 뒤로 물러섰다. 촉이 어느 정도 살아있는 베타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페로몬이란 얘기였다. 김성한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바지 속에 찔러 넣은 한재호의 손은 마디마다 힘이 들어가 주먹을 꾹 쥐고 있었다. 당겨 웃는 한재호의 입 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지. 오케이. 흐. 흐. 흐흐. 웃음소리는 분절적으로 떨어져나갔다. 불안정해진 와중에도 뭐가 오케이라는 건지, 한재호의 말뜻을 알 수 없어 김성한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떨리는 한재호의 입가를 바라보았다.
한재호의 페로몬은 약하지 않았다. 성한이 곁에 두는 알파들만큼은 아니라도, 어디서 무시 받을 정도의 열성은 아니었다. 손을 가볍게 움직여 저를 옥죄는 공기를 느끼며 김성한은 한재호가 열성이라는 얘기가 사실 와전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성은 못 되어도 알파들 사이에서 기가 죽을 만큼 약한 페로몬은 아니었다. 한재호는 압도적인 김성한의 향에, 눈에 핏발이 바짝 서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가, ……말입니다. 어째서 열성인지, 아십니까?”
“그런 것 까지 내가 궁금해야 하는,”
페로몬에 압도되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재호의 행동은 빨랐다. 한재호는 왼손으로 김성한의 목을 콱 움켜쥐며 그 몸을 밀었다. 휘청하며 넘어지던 김성한이 몸을 틀어 한재호의 명치를 가격했다. 헉, 하는 숨만 들이쉬었을 뿐 한재호는 물러나지 않았다. 맞은 것을 돌려주듯 김성한의 얼굴을 치면, 김성한 역시 제가 맞은 것은 개의치 않고 한재호를 힘으로 밀어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시간은 오래지 않아 종식되었다. 지켜만 보던 영근이 문을 열고 들어온 탓이었다. 열댓 명도 너끈히 상대하던 한재호에게도 김성한은 만만치 않았다. 말로만 올라간 자리가 아니고, 소문으로만 이룩한 왕좌가 아니었다. 김성한은 제 이름만큼의 능력을 지닌 자였다.
한재호의 멱살을 틀어쥐고 주먹을 날리려던 김성한을 붙잡아 영근이 체중을 실어 누르면, 한재호는 씨근덕대는 숨을 몰아쉬다 김성한의 복부를 수차례 가격했다. 일방적인 린치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김성한은 낮게 으르렁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명치를 맞아 숨이 턱턱 막히는지라, 소리 질러 교도관을 부를 여력은 되질 못했다. 불렀다고 해서 올 것 같지도 않았지만.
김성한의 몸을 뒤집어 침대위에 엎드리게 하곤, 양 팔을 뒤로 돌려 잡아당기면 뼈가 부러질 듯 한 고통에 김성한이 기어이 신음을 냈다. 한재호가 찢어진 입가를 매만지며 책상 좌측 벽 수건걸이에 걸린 수건을 가져왔다. 간간히 머리를 쨍, 하게 하는 감각에 영근은 김성한의 몸을 더욱 바짝 눌렀다. 베타인 제가 느낄 수 있는 페로몬이라니. 그 세기가 형질 보유자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물론, 그 와중에 천연덕스러운 한재호는 신기할 정도였다.
“후회할 짓 하지 말라고 했…….”
읍. 으읍. 김성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에 욱여넣은 수건에 뒷말은 왕왕대는 소음으로 흩어졌다. 시작하자는 말도 없이 한재호는 김성한의 팔을 붙잡았다. 관절을 받치고, 손목을 단단히 붙잡은 손이 우악스러웠다. 불안감을 느낀 김성한이 몸을 비틀었지만 두 사내의 힘을 이겨내긴 무리였다. 게다가 방 안이 페로몬으로 만연한 와중이면 더더욱. 김성한의 몸은 물속에 잠긴 듯 무거웠다.
상대가 한재호였고, 페로몬은 예상외로 강했으며, 거구의 영근이 합세하여 힘으로 누르니 천하의 김성한도 별 수 없었다. 입이 막힌 채로 김성한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으르렁 거렸다. 한재호는 그 짐승의 소리를 헛헛한 웃음으로 넘기며 붙잡은 팔을 고쳐 쥐었다.
으드득.
잔인한 소리였다. 울부짖음이 수건에 먹혀들어 울림 없이 먹먹했다. 반대로 꺾인 김성한의 팔을 보며 한재호는 만족스레 웃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김성한이 애써 머리를 털며 정신을 차리려는 꼴이 우스운 듯 말하며, 발목을 붙잡는 손길이 스산했다. 다른 의미로 붙잡았다고는 볼 수가 없었다. 이미 너덜너덜한 왼 팔 만으로도 고통에 울부짖는데 오른 발목까지 붙잡아 비트는 걸 보면 한재호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방을 꽉꽉 채우고도 모자라 밖으로 흘러넘치는 김성한의 페로몬은 서서히 한재호의 것을 잠식하는 중이었다. 한재호가 퍽 강한 향을 지녔다고는 하나 그래도 우성 페로몬에는 힘이 미치지 못한 까닭이었다. 길게 들숨하며, 한재호는 김성한의 발목을 꺾었다. 으드득. 그 소름끼치는 진동이 저에게까지 닿아, 영근은 몸서리를 쳤다. 핏발 선 김성한의 눈에 달빛이 스쳐 안광이 흘렀다.
왼 팔과 오른 발목을 부러트리고서야 영근을 물린 한재호는,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고통에 퍼들퍼들 떠는 김성한의 옆에 걸터앉았다.
“선배님. 제가 열성인 이유는 말입니다. 크, 크크….”
한재호가 입술을 김성한의 귓가에 스칠 만큼 바짝 붙이고 속삭였다. 제가, 알파들 향을 그렇게나 좋아합니다. 바람소리가거진인 목소리를 김성한이 알아들었는지는 미지수였다. 알아들었든 못 알아들었든 한재호는 크게 상관없었지만.
애초에 방출하는 페로몬의 정도를 보면 우성은 아니더라도 평균적인 알파는 되던 한재호가 열성 딱지를 붙인 것은 알파인 동시에 오메가의 형질을 지닌 탓이었다. 동류의 형질에는 반발감만 들어야 정상인데 반해, 한재호는 그와 동시에 인력을 느꼈다. 지금처럼 말이다.
한재호는 엎드린 김성한의 몸 위에 걸터앉았다. 오싹한 정복감에 그는 작게 진저리를 쳤다. 어디한 번 볼까 싶은지 그는 김성한의 입을 틀어막은 수건을 입에서 빼내었다. 고통에 정신이 없으니 멀쩡한 반대 팔로도 김성한은 수건을 뽑아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아, 아…! 고통에 억눌린 소리가 들끓었다. 김성한의 웃옷 아래로 밀어 넣은 한재호의 손은 아직도 작게 떨리고 있었다. 흥분한 탓이다. 기를 펴지 못해 숨이 막혀 버들대는 발작이 아니었다. 몸을 비틀려던 김성한은 왈칵 범람하는 통증에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공기는 진득했고 고통은 상당했으며, 여차하면 다시 한재호를 위해 달려올 놈이 있었다. 수세에 몰린 김성한은 이를 악물었다.
“자아, 시작하겠습니다.”
왼 팔을 하복부로 넣어 감아올리는 동시에 하의를 잡아 내리는 손길이 재빨랐다. 한재호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까지 중에 가장 큰 동요를 보이며 김성한이 몸을 뒤집으려 했지만, 날아드는 건 한재호의 폭력이었다. 그는 부러진 왼팔을 우그러트리듯 붙잡으며 김성한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한계치를 넘어가는 고통에는 비명도 나오지 않는 법이었다. 김성한의 목은 핏대가 섰고, 입은 벌어졌으나 나오는 소리는 끅끅대듯 숨이 넘어가는 소리였다. 그로도 만족하지 못한 듯 한재호는 김성한의 머리를 그대로 내리 눌렀다. 질이 좋지 않아도 쿠션감이 있는 침대인지라 부딪혀 상처가 날 일은 없었지만,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얼굴을 시트에 파묻히자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에 김성한의 몸이 퍼드득 떨렸다.
그렇지. 다시금 한재호가 말했다. 제 식대로 일이 풀리고 있다는 듯. 아까와 똑같은 문장이었지만 김성한에게 그 짤막한 말의 의미는 경중이 다르게 다가왔다. 어느새 제 하의도 벗어 내린 한재호가 김성한의 골반을 잡아들고 제 아랫도리를 밀착시켰다. 반항도 발악도 할 수 없는 탈력감에 허덕이며 끙끙대는 게 김성한이 그 순간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한재호는 오르는 열기에 시야가 벌겋게 변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푸르스름하게 한기가 돌던 방이었다. 지금은 온통 울긋불긋하게 불길이 번진 느낌이라, 한재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씹었다. 우성이니 뭐니 하는 게 허튼소리는 아닌 셈이었다. 숨이 막힐 정도의 페로몬이 방 안에 진동을 했다. 열기가 머리끝까지 타고 올랐다.
동(同) 형질의 페로몬에 대한 한재호의 거부반응은 열기였다. 마치 사우나에 들어간 듯 폐부며 숨통을 콱콱 틀어막는 열기. 이전까지는 아무리 강하다 한 들 사우나다 여기고 넘길 정도는 되었다. 지금은……. 마치 불덩이를 삼켜 몸을 태우는 기분이었다. 반발과 그에 상응하는 흥분은 같이 아우성을 쳤다.
김성한의 문신은 등허리에서 그치지 않고 둔부, 허벅지까지 살 거죽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용과 뱀, 검과 꽃이 똬리를 튼 화폭에선 먹 냄새가 날 것 같은 묵직함이 있었다. 강제로 들어 오른 하체 때문에, 김성한의 웃옷은 미끄러지듯 위로 밀려났다. 단단한 허리가 드러나면 한재호는 눈으로 그림을 좇으며 흥분을 못 이겨 발기한 것을 김성한의 엉덩이 골을 따라 미끄러트렸다. 맞비벼지는 살들은 열기만 홧홧할 따름이지 은근하게 젖은 기색이 전혀 없었다. 하지 말라는 듯 김성한이 입을 버끔거렸으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음성이 나왔다고 한들 그 요구가 들어졌을 리는 없었지만.
좁은 입구를 힘으로 벌리고 욱여넣는다. 준비도 되지 않은 곳을 찢듯이 밀고 들어가며 한재호가 짐승처럼 그르렁 거리면, 김성한은 야차처럼 울부짖었다. 둘의 목소리가 철창과 시멘트벽에 부딪혀 나가면 왕왕거리는 아우성이 되었다. 달을 향해 울부짖는 짐승들의 몸이 뱀처럼 엉겨있었다.
김성한의 몸이 움직임에 따라 칼을 든 사내와 뱀이 힘을 얻어 살아날 듯 일렁였다. 허리를 뒤로 빼고, 도로 밀어 넣을 때 기어이 눈의 실핏줄이 터졌는지 김성한의 흰자가 붉게 물들었다. 한재호가 삼킨 불덩이가 전염이 되는 듯, 푸르게 흉흉하던 김성한이 그렇게 잠식되었다.
그나마 멀쩡한 손을 허우적대고, 허리를 비틀어도 개의치 않은 움직임은 매 순간 격정적인 폭력과 압박감으로 김성한을 몰아붙였다. 헉 소리가 날 정도로 뱃속을 우그러트리는 감각. 뒤를 찢어내고도 멈추지 않는 삽입의 반복. 거슬린다 싶으면 부러진 팔을 잡아 누르는 폭력과 어지러운 와중에도 강렬하게 각인될 것 같은 웃음소리. 김성한은 헛구역질을 하며 몇 번이고 통성을 내질렀다.
콱콱 쑤셔 박을 때마다 한재호는 성기를 압박하는 마른 내벽에 인상을 찌푸렸다. 찡그린 표정으로 웃는 입은 꽤나 기괴했다. 우열을 점했음을 확신하면서, 폐를 태워나가듯 숨을 옥죄는 열기와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한 인력을 느끼며 한재호는 허리를 움직였다. 열기에 녹아내리는 가면들이 뚝뚝 떨어지면 그 뒤에 숨었던 아귀가 즐거워 날뛰었다. 결국에는 두 괴물이었다. 인간도 짐승도 아닌 야차들은 서로의 숨통을 죄고 몸을 찢으며 우짖었다.
한재호는 몇 번이고 김성한의 안에 사정했다. 쥐어짜듯이 그렇게 토정했다. 손바닥으로 그 아랫배를 꾹꾹 누르다 발기도 하지 않은 김성한의 것을 아플 정도로 콱 움켜쥐며 그 몸을 제 것인 양 농락했다. 큭큭큭…….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이글대는 김성한의 눈을 본 한재호가 웃음을 삼켰다. 마침내 천천히 성기를 뽑아내면, 피와 정액이 엉겨 붙어 길게 틀어지다 툭, 떨어졌다. 붙잡는 손이 떨어지자 김성한의 몸이 무너졌다.
“녹화, 다 됐습니다. 형님.”
영근이 말했다. 손에는 한재호의 까만 폴더 폰을 쥐고 있는 채였다. 한재호는 고개를 가볍게 주억이며 하의를 추슬렀다. 선배님. 허튼 수작 하시면 오늘 일이 어디로 새어 나갈지 저는 모릅니다? 흣흣, 흐흐흐…….
밖으로 나가던 한재호는 영근에게 마무리를 지시했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창을 타고 들어오는 달빛은 희미했고 어둠이 잔잔하게 깔리고 있었다. 달은 지고 해는 뜨기 전, 그 칠흑 같은 시간이 김성한이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었다. 그는 어둠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지옥에 살던 야차를, 그 나락의 나락으로 끌어당긴 아귀는 길게 웃음을 끌며 복도를 빠져나갔다. 단단한 벽을 울리는 것은 그 웃음의 꼬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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