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ISSION
"매 끝에 정든다는데, 또 아오? 대군과 정분이라도 날 지."
"네 놈은 어찌 오늘만 사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저 놈의 머리가 그새 자랐는가. 방원은 꼭 급류마냥 급하게 굽이쳐 흐르는 휘의 머리칼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목덜미나 간신히 덮던 것이 이제는 어깻죽지도 능히 덮겠구나. 흐트러진 시야를 따라 휘의 머리칼은 방원을 놀리듯 부드럽게 흘렀다. 대군. 휘가 속살대듯 방원을 불렀으나 방원은 흘려들은 듯 대답하지 않았다. 시야는 흐렸고 귀는 먹먹했다. 약주가 과한 탓이다.
며칠 전 막동莫同이의 백 일이라, 삼신상三神床으로 치성을 드리고 일가친척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었다. 충신을 벤 악귀이자 기방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망종이라도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대군, 술이 과하십니다, 하고 태령이 기어코 말릴 정도였으니 방원의 취기가 평소와 달리 인위적이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은 참으로 무리해서 자셨소. 휘가 방원의 귓가에 한 번 더 속삭이면 방원은 으응, 하고 느리게 끌리는 음성을 냈다. 신음인지, 대답인지, 잠꼬대인지 얼핏 들어서는 분간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내, 기분이 과히 좋아서……. 대답은 뒷말이 흐리고 멕아리가 없었다. 얼핏 휘가 웃음을 삼킨 것도 같았으나 방원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휘의 굽이치는 머리카락만 방원의 시야에 하냥 들어올 뿐이었다. 머리가, 많이 길었다. 같은 생각이 다시 맴돌았다.
남전을 죽이고자 그 마당에 뛰어 들어간 서휘를 구해내 품은지가 햇수로 오년이었다. 아니, 남전의 칼에 누이를 따라 죽고자 한 놈을 억지로 살려둔 게 다섯 해 전이라는 말이 옳을 수도 있었다. 방원은 중천에 뜬 태양과, 서휘의 칼끝에 스러진 남전의 검들이 널브러진 마당을 기억했다. 종 2품 판중추원사 앞에서, 세자는커녕 개국공신도 아닌 한낱 군君인 자신이 뽑던 검에 담았던 진심도 여직 잊지 않았다.
현비顯妃 소생의 의안대군이 세자가 된 게 백로白露였다. 허니 보다 시일이 지난 당시는 날이 맑고 선선했어야 옳을진대 기묘하게도 하늘부터 대지까지 끓지 않는 곳이 없었다. 방원의 마음도 그러했다. 칠점사의 독이 휘에게서 넘어와 엉겨 붙기라도 한 것처럼 방원의 속은 태양을 삼킨 듯 그리 지글지글 끓었다. 끄트머리가 어깨나 겨우 스치던 휘의 머리칼이 지독하게 새카만 강물 같아 그랬고 지키러 온 자신의 걸음이 늦었을까 무섬증이 일어 그랬다. 누이의 죽음 앞에서 서휘가 그러했듯 휘의 죽음 앞에서 방원은 다급했다.
“……대군.”
다시금 부르는 음성에 방원이 힘없이 늘어뜨렸던 고개를 간신히 들었다. 눈앞은 아직도 어지럽고 번잡하여 통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무르녹은 어둠 속에서 휘는 그림자를 갑옷인 양 두르고 있었다. 일면 위태하였으나, 까만 눈동자에 박혀 반짝이는 생기는 온전했다. 임신년壬申年에 휘에게서 물러난 죽음은 한 발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는 중이었다. 내 반드시 너의 죽음보다 남전의 죽음이 이르게 하겠다. 방원은 호언장담했던 수 해 전의 자신을 되짚었다. 기억은 물속에 넣고 흔드는 양 일렁이고 있었다. 술이 과하단 태령과 휘의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뒤늦게 저를 부른 소리에 호응하듯 방원이 휘야, 하고 그 이름 한 자를 조심스럽게 읊었다. 방원의 목소리가 젖은 듯하여, 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등허리가 간질거리는 기분은 야릇했다. 입술을 달싹인 방원의 눈가가 붉었다. 붉은 기가 밴 방원의 눈이 매섭지 않은 것은 드문 일이었다.
“이리 경계가 허술하시니 봉변을, 당하는 게 아니오.”
“…봉변이라.”
서휘가 골라낸 봉변이란 말이 낯설어, 방원은 몇 번이고 혀 위로 단어를 굴렸다. 혀는 무뎌서 고작해야 두음절인 단어를 버겁게 훑어냈다.
송도의 추동楸洞, 용수산 아래 자리한 아흔 아홉 칸짜리 방원의 사저는 스물도 넘는 을조가 곳곳에서 번을 서고 있었다. 그 뿐이랴. 가장 중요한 사랑채는 갑조인 천가와 태령이 길목을 막아선 참이다. 사병을 혁파한다는 어명이 있었으니 겉모습은 노비로 꾸몄으나 단단한 손아귀에 칼 한 자루씩 찬 모양새가 노비와는 거리가 한참이었다. 초경初更이 훌쩍 지난 야금夜禁 시각, 이리도 흉흉한 정안군의 사저에 감히 누가 들이닥쳐 봉변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내 말이 틀렸소?”
허나 서휘의 의견은 영 다른 듯싶었다. 작게 속살거림에도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말투는 활기를 품고 펄떡였다. 지척에서 가볍게 웃음을 삼키는 휘의 음성이 방원의 귓바퀴를 타고 흘렀다. 술에 취해 기력 없이 고꾸라지려는 목에 간신히 힘을 주고 눈을 가늘게 뜨면 노력이 가상하다는 듯 서휘의 얼굴이 바짝 붙어왔다. 코끝이 닿을 듯 아슬아슬한 거리다. 길게 뱉는 숨은 뱀 마냥 서로 얽힐 터였다. 달과 같이 휜 서휘의 눈이 방원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게 제법 집요했다. 웃는 서휘와 야심한 밤, 취한 자신과 허술한 경계. 드문드문 튀어 오른 맥락들은 한 줄로 꿰이기도 전에 손아귀에서 미끄러져 그림자로 스몄다.
“네 말하는 봉변이 무엇,”
느른하게 흐르던 방원의 음성은 흡, 하는 숨과 함께 급하게 삼켜졌다. 턱 끝이 추켜올려지면서 방원의 고개가 위로 향하면 휘의 입술 끝이 말간 호선을 그렸다. 기실 무해하다고 봐도 좋을 순한 얼굴이라, 방원은 잠시간 제게 일어난 일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눈앞이 번쩍하고 요란한 감각이 스쳐지나간 게 전부였으니.
“거, 무엇이겠소?”
서휘의 더운 숨이 방원의 귓가를 간질이면, 곧은 정안군의 어깨가 일순 움츠러든다. 미모사가 이러할까. 엄한 소리, 매서운 눈매 한 번 내비치지 않고 무르게 입술만 달싹이는 방원이 새삼스러워 서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취중에 제 몸이 묶인 줄도 모르고 흐드러진 자리옷 목깃 사이로 날 가슴 내보이며 더운 숨 내뱉는 방원은 망종이란 별호와는 영 거리가 멀어보였다. 하긴, 방원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망종이니 광종이니 하는 소리도 순 개나발이긴 했다.
휘의 입술이 술기운에 열이 올라 붉어진 정안군의 목덜미로 옮겨가면 입술이 가벼이 스칠 때마다 방원이 으응, 하고 얕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뉘 보아도 이는 서휘가 대군을 희롱하는 행태라. 보는 눈이 없기 망정이었다.
“네 말하는 봉변이, …너구나.”
방원이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더운 숨을 느리게 뱉으며 대답하면 서휘는 대답대신 손을 내려 방원의 허리께를 훑었다. 등 뒤로 모아진 방원의 손이 움찔하였으나 붉은 다회多繪로 단단히 고정한 것이 어디 쉽게 풀리겠는가. 팔을 움직여 방원이 얻어낸 거라곤 제 양팔이 자유롭지 못하단 사실 뿐이었다. 취중에 습관처럼 글 한자 읽고자 보료에 앉았던 기억이 마지막이니, 깜빡 잠든 사이 들어온 이놈이 몰래 기어들어와 대범한 짓거리를 한 게 틀림없었다. 지금 보니 잠들기 전까지 마주보고 있던 서안이 이제는 등에 닿아있다. 마땅히 묶을 자리가 없으니 몸을 돌려놓은 게지. 발칙한 놈이로고.
방원이 몸을 뒤채면 목재 서안이 아귀가 뒤틀릴 듯 작게 우는 소리를 냈다. 고운 야장사로 짠 백색 자리옷은 저 내킬 대로 벗겨낸 참인지 방원의 몸에는 옷고름이 풀릴 듯 말듯 흐드러진 저고리만 간신히 꿰어져 있었다. 저고리가 길어 아랫도리 훤히 드러내는 면괴한 상황은 모면하였으나, 휘가 단단한 손길로 방원의 몸태를 어루만질 적마다 옷이 흐트러지니 나신이 되는 것도 곧이지 싶었다.
“지난날에 대군이 말하지 않았소.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이천우는 아직 발아래니 중히 쓰기 어렵다. 형 양우와 더불어 충성을 맹세하나 담이 작고 기질이 탐욕스러우니 훗날 쓰기 맞춤이도록 무릎까지만 닿게 하여라.’라고.”
“……기억한다.”
방원의 대답은 한 박자 늦었다. 휘의 손이 이제는 방원의 맨 허벅지를 역으로 쓸어 올려 은밀한 곳까지 파고들려는 참이기에 그랬다. 휘야. 만류하듯 서휘를 부르는 방원의 목소리가 제법 유약했다. 지금 제 음문을 무엇이 채우고 있는지 알면 더욱 우는 소리를 할지도 몰랐다. 기대감에, 서휘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게 누가 그리 곤히 주무시랬소? 속으로만 애꿎은 방원 탓을 하면서.
“숙적을 제거하고 걸림돌을 치웠소. 강원도 조전 절제사助戰節制使 자리를 꿰찼으니 남은 자리는 병조 전서 아니겠소? 큰일은 하지 못해도 병조의 봉수군과 역제를 관할하는 자리 정도는 겁박과 회유면 충분히 받아내고도 남소.”
이번에는 대답대신 긴 날숨과, 으응, 하는 낮은 비음이 흘렀다. 휘의 손길이 벌어진 방원의 다리 깊숙이, 야장사 아래 설핏 가려진 음문에 기어이 닿은 참이다. 흉부가 앞으로 솟고 엉덩이가 뒤로 빠지려는 방원의 몸을 잡아채듯, 휘의 왼팔이 방원의 허리를 감았다. 올가미에 걸린 짐승마냥 방원은 간신히 헐떡대고 몸을 비틀 뿐 맥을 추지 못했다.
“약조하지 않았소. 내 무리 없이 이천우를 대군의 무릎에 두면, 바라는 것을 들어주겠다 말이오.”
거짓은 아니되 허를 찌르고 들어온 약조였다. 휘가 이런 진진한 밤놀이를 원할지 방원이 어찌 알았겠는가 말이다. 몰론, 두 사람 얼결에 배꼽 맞추고 달포에 한두 번 운우지락 나눈 지가 햇수로 삼 년이다. 서휘가 아무것도 모르는 말간 얼굴 하고선 천하의 이방원을 뒤집었다 엎었다 앉혔다 뉘였다 밤새 희롱하던 것이 어제오늘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적나라하게 얄궂은 짓을 청한 적도 없었다. 허니 방원이 당황할밖에.
“그 약조는……. 읏!”
휘의 손가락은 아직 입구만 가볍게 지분대는데, 아랫배보다 더 아래, 꼬리뼈 안쪽에서 자르르한 전율이 올라 방원이 잇새로 신음을 뱉었다. 이제야 선연하게 느껴지는 아랫도리의 묘한 감촉에 절로 소름이 일었다. 그저 묶어만 둔 게 아니라, 잠든 사이에…….
“흡!”
느리게라도 굴러가려던 생각을 저지하려는 듯 휘가 벌린 방원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천천히 손을 놀렸다. 단단한 나무를 매끈하게 깎아 달걀마냥 모양을 내어놓은 물건 하나는 이미 방원의 음문 안에 밀어 넣어진 채였다. 동백기름을 흥건할 정도로 둘러 바르고 좁게 아물린 입구를 서서히 눌러 벌리면 방원의 다리가 오금을 구부렸다. 스읏, 하는 젖은 마찰음이 방원이 끊어 뱉는 호흡에 섞여들었다.
“…의사병 박문복, 기억하오? 그 형이 가끔가다 요사한 걸 만들기도 한단 말이오. 이를테면, 이런 거.”
말이 맺어짐과 동시에 휘가 두 번째 목각 달걀의 끝을 꾸욱 눌러 방원의 안에 밀어 넣었다. 느릿하게 삽입되던 것이 굴곡을 지나 급하게 안으로 파고들면 방원의 입에선 헛숨이 튀어나왔다. 꼬리뼈를 지나, 더 깊숙하게 밀고 올라오는 자르르한 압박감에 방원의 둔부가 절로 들썩였다. 뒤로 젖혀진 방원의 상체를 좇듯이 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휘의 입술이 다시금 열띤 방원의 목덜미를 훑었다. 맥이 펄떡펄떡 뛰는 자리가 마음에 드는 양.
“내 심히 당황스럽, 흐으…! 아읏!”
세 번째를 넣을 때는 넣어둔 알끼리 부딪히는지 달각달각 소리가 울렸고, 방원의 발가락 끝이 바짝 곱아들었다. 취한 방원의 반응은 솔직했고, 긴장이 풀어진 몸은 휘가 밀어 넣는 것을 착실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양 손이 묶인 채 붉게 열이 오른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할딱대는 정안군의 모습은 춘화집에 나올 듯 야릇한 면이 있었다. 거기에 제법 애처롭게 휘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까지 더하면 부처라도 그 육신을 탐하지 않고는 못 배길 터였다. 하여 목덜미를 지분대기만 하던 휘의 입술이 급하게 방원의 것과 맞물렸다. 방원의 입은 순순히 벌어져 휘를 받았다. 온 몸에 열이 오른 듯 얽혀오는 혀까지도 뜨거워서, 휘는 마치 방원에게 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물린 입에서 방원의 신음이 뭉개졌다. 잇새로 짓눌리고 혓바닥에 눌러 어그러진 신음들을 받아 삼키며 휘는 마지막 알을 벌어져 움찔대는 방원의 음문에 대고 힘주어 밀었다.
“……!”
방원의 허리가 크게 펄떡이고 오금접어 구부린 다리가 바짝 긴장하며 근육이 도드라졌다. 흐트러진 야장의는 더 이상 옷의 기능은 하지 못함이라, 방원의 육신은 휘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참이었다. 젖은 비부를 매만지는 손길은 급했고, 뱃속을 채운 것이 버거워 방원은 신음했다.
“천천히, 밀어내보시오.”
그 한 문장 뱉는 시간이 그리도 아까운지 서휘는 문장이 끝나기 무섭게 방원의 입술, 귓불, 뺨이며 목덜미 할 것 없이 도톰한 입술로 열 오른 살결을 지분대기 시작했다. 뱃속에 가득 찬 생경한 물건에 방원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흘렸다. 자꾸만 음문의 깊숙한 곳, 여린 살들이 눌리는 바람에 저릿저릿한 쾌감이 올랐다. 절로 소름이 돋고 발가락이 바짝 곱아드는 감각에 방원의 입에선 끊어 뱉는 더운 숨이 한창이었다.
“내 버거워서……. 휘야, 아, 으응…!”
“힘 줘서, 응? 대군…. 천천히.”
방원의 아랫배를 휘의 단단한 손이 꾹 눌러 압박을 가하면 아아…! 하고 삼키지 못한 교성이 방원의 입에서 급하게 튀어나왔다. 잠든 사이에 이리저리 더듬어도 영 반응이 미미하기에 취중에 감각이 무뎌졌나 했더니, 지금 모습을 보면 아닌 듯싶었다. 앞을 정성들여 만져준 적 없어도 방원의 양물은 그 대를 바짝 세우고 흥분에 겨워 꺼덕댈 지경이었다. 휘라고 다르지 않았다. 눈앞에서 열락에 무너지는 정안군이 흐느끼는데 어찌 흥분에 아니 겨울까.
좌등은 꺼둔 채 구석의 등잔걸이에만 불을 하나 붙였으니 사랑방 안은 흔들리는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였다. 어둠에 길게 뻗은 그림자는 너울대며 하나가 둘인 듯, 둘이 하나인 듯 엉겨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사랑방의 장지문과 그 밖의 사랑채 분합문까지 단단하게 걸어 잠갔으니 방원의 소리가 새어나갈 일은 없을 터였다. 하긴, 애끓는 음성 밖으로 샌다 한들 태령만 보면 으르렁대는 천가 소리에 묻힐 것이 자명했다.
“…아읏, 응! 흐, 아…….”
이경二更에 다다른 야심한 시각, 양 손 묶이고 양 다리 오금접어 벌린 채로 야릇한 신음 뱉는 방원의 목소리가 방 안 가득이었다. 그 더운 숨결에 애가 타는지 바람도 불지 않는 실내에서 촛불이 자꾸만 몸을 배배 꼬아대고, 그림자는 뱀인 양 쾌락귀인 양 아가리를 쩍하니 벌리고 자꾸만 정안군을 삼키려 들었다. 어둠 속에서 휘의 눈에 까만 욕정이 끓었다.
오로지 제 위에 계신 것은 주상 한 분이나, 그 주상마저 끌어내리기 위해 옥좌에 올린 이가 방원이라 하였다. 앞을 막는 자 반드시 꿇리고 베어서 제 아래, 혹은 그 아래보다 더 밑, 여섯 척 흙속에 묻어주는 이가 이방원이다. 방원의 품에서 머리올린 기생이 십 수 명은 넘고, 취한 방원이 던져 깨트린 술잔만 수십이다. 지엄하신 임금조차 다섯째를 내심 두려워하여 멀리하니, 천지신명도 방원만은 어찌하지 못하리라, 다들 그리 알았다. 허니 어느 누가, 한낱 천출이, 군량미를 착복한 팽형인의 자식이 방원을 이토록 쥐락펴락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거, 절경이네.”
벌린 다리 사이, 작게 아물렸던 옥문이 벌어지면서 젖은 알 하나가 기어이 굴러 나오면 휘가 마른침을 삼켰다. 오늘은 방원이 자신에게 온전히 져 주기로 작정한 듯싶으니 천천히 지금의 상황을 즐기자 싶다가도, 발씬대는 아랫도리 사정이 급하여 몸을 가만 둘 수가 없었다. 본디 백색이던 방원의 저고리는 열기와 질척한 공기를 머금고 젖어가는 참이었다. 방원의 팔과 상체에 엉망으로 감긴 자리옷에 열 오른 붉은 살결이 희미하게 비쳤다. 하여 절경이었다. 발칙한 소리임을 알면서도, 휘는 그 외의 다른 말로는 지금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방원은 휘의 어휘를 나무라는 대신 고개를 모로 돌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드러난 귀가 붉었다.
젖은 음문이 작게 빠끔대다 기어이 두 번째 알을 밀어내면, 방원의 발꿈치가 밖으로 밀리며 보료를 구겼다. 위로 치켜든 턱에 곧은 목이 훤히 드러나자 기다렸다는 듯 서휘의 이가 방원의 숨통을 물었다. 늑대에 용이 물린 형상이라. 방원은 여린 목을 강하게 옥죄듯 살덩이를 이로 뭉개는 휘의 행동에 탄성과도 같은 신음을 뱉었다. 물린 곳에서 흥분이 전염되기라도 한 것처럼.
휘의 왼손이 방원의 복부를 누르고 반대 손이 젖은 비부를 문지르고 비볐다. 뱃속의 이물감이 선연하게 느껴지면 방원의 음성이 아, 아…! 하고 밖으로 튀었고, 단단한 손이 뭉근하게 젖은 입구를 벌리며 희롱질을 하면 목소리는 꼬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흘렀다. 옳지. 달래는 휘의 목소리와 함께 세 번째를 밀어내면서 방원은 기진하여 휘의 품에서 몸을 늘어뜨렸다. 사흘 꼬박 산을 타고, 두시진 내내 임금을 배알하고자 기다려도 안색하나 변치 않던 것과는 상이한 모습이었다. 휘의 앞에서 방원은 무르고 약했다.
“내, 힘들어서…. 휘야, 내, 더는…….”
“하나 남았소. 하나 더, 무사히 낳으시면 내 대군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소.”
강인한 꺼풀이 하나 벗겨진 방원의 입에서 기어이 애원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으나 어디 휘가 만만한 인사던가. 제 아랫도리 고정하여 맨 허리띠를 풀고 단단하게 고개 치켜든 양물을 반쯤 드러내고서도 휘의 목소리는 흥분을 잘 잡아 누른 채였다. 그저 방원의 상체를 훑는 입술만이 그 주인의 감정을 흘려내듯 급하고 진득했다. 취기가 올라 붉었던 방원의 피부 군데군데 휘가 남긴 자욱이 선연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가 방원의 사람이 아니라 방원이 저의 사람 같아서, 휘의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서휘의 그림자가 방원을 덮었다. 길쭉하게 뻗은 검지와 중지가 방원의 음부를 벌리면 애액에 젖은 마지막 목각 달걀하나가 끄트머리를 빠끔히 내밀었다. 보료 위 세 개의 알 역시 동백기름인지 방원의 액인지 모를 것으로 젖어 뒹굴고 있었다. 진득한 자극에 방원의 양물은 당장에라도 파정할 듯 위태했다.
“흐, 아으, 읏! 응……! 휘야, 아…. 내 이것 말고…….”
“말고?”
휘의 손끝이 느리게 알을 밖으로 긁어내자 붉게 열 오른 방원의 눈가가 기어이 젖었다. 자극이 과하여 견디기 버거운 탓이다. 달싹대는 방원의 입술에 제 입을 가볍게 마주 댄 휘가 이어질 방원의 말을 보챘다. 시선은 집요할 만큼 이방원의 젖은 눈매에 고정된 채였다. 잡아먹을 듯 이글대는 까만 휘의 눈동자는 사랑채에 내려앉은 어둠과 닮아있었다. 끓어 넘치는 검은 욕망을 방원이 마주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닿을 듯 말듯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방원이 마지막 숨을 토해내듯 가쁘게 문장을 맺었다.
“내…. 너를, 원한다…….”
토해내는 솔직한 욕망의 말미에 제발이란 말이 얼핏 섞인 듯도 싶었으나, 곧 이어 맞물린 입에 모든 언어가 뭉그러졌으니 아무렴 어떠랴 싶다. 연유는 몰라도 가슴은 벅차서, 휘는 짐승마냥 거칠게 목울대를 울렸다. 대군이라는 두 음절이 혀에 통 올라오지 않아서 그저 진득하게 입을 맞추는 게 휘로서는 최선이었다.
“읍! 흐읏, 응! 아……! 휘야, 아…!”
젖은 옥문을 거칠게 벌리고 들어간 것은 휘의 양물이었다. 거리낄 것 없다는 듯 굵은 기둥이 붉게 열 오른 속살을 헤집고 들어가면 방원의 허리가 바짝 곤두서고 양 다리가 휘에게 감겼다. 두 몸이 하나로 겹쳐져 급하게 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방원의 팔이 묶인 서안이 체중에 끌려 삐걱 여도 신경조차 쓰지 못할 만큼 둘은 급하고 애달팠다. 한참을 희롱하여 부드럽게 열린 방원의 안을 휘가 거칠게 밀어붙이면 강제로 숨이 몰린 방원이 우는 소리를 냈다. 파도마냥 들이닥치는 쾌감에 체면이니 점잔이니 하는 것을 차리기는 버거웠다. 휘의 이름을 부르고, 신음을 토해내고, 흐느끼다 다시금 휘의 이름을 부르면 호응이라도 하듯 휘는 방원의 목덜미를, 귓가를, 그 입술마저도 이질을 하여 자국을 남겼다.
휘의 허벅지와 방원의 둔부가 부딪히는 소리는 음탕하고 난잡하여 그림자들조차 부끄러운 듯 몸통을 깊게 수그릴 정도였다. 겹겹이 닫힌 사랑채의 문이 떠도는 열기를 잡아 가두니 벗어나지 못한 체온들이 다시금 휘와 방원에게 덕지덕지 붙었다. 얽힌 몸을 따라 호흡이 겹치고 시선이 맞부딪혀 그윽하게 서로를 잡아 가두는 형국이었다. 남전도 반정反正도, 임금도 옥좌도 모조리 머릿속에서 밀려나고, 오로지 빈자리에 서로만 가득한 순간이었다. 타오르는 한 때는 불꽃마냥 뜨겁고 급했다.
대군…….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듯 휘가 방원을 불렀다. 닿지 못할 자리를 향해 뻗고자 하는 손처럼 음성이 애달팠다. 진진한 애욕에 맥을 추지 못한 방원은 대답이 없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방원은 그저 아…! 하고 탄성을 내지를 뿐이었다.
방원의 깊숙이 휘가 토정하였고, 동시에 방원이 몸을 버르르 떨며 절정을 맞았다. 감내하기 어려운 쾌락에 기어이 방원의 몸이 늘어지면 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제 품 안의 정안군을 홀린 듯 응시했다. 자신의 품에서 온전히 무방비한 정안군의 모습이었다. 방원의 손목에 기어이 벌건 흉을 남긴 붉은 다회多繪를 풀어낸 휘가 흐드러진 방원의 머리칼 위에 나붓하게 입을 맞췄다. 밤이 늦었소. 곤히 주무시오. 휘의 마지막 입맞춤에 담긴 진심은 방원도 휘도 알지 못할 터였다.
여전히 밖은 잠잠했으며 조선 천지를 뒤엎은 어둠은 긴긴밤의 애욕 정도는 감춰주려는 듯 묵직했다.
막동莫同: 세종대왕의 아명
백로白露: 24절기 가운데 열다섯 번째 절기
초경初更: 19~21시
야금夜禁: 야간 통행금지
다회多繪: 여러 겹으로 합사한 명주실로 짠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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