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내추럴] 카스티엘 X 베니 라피테
샘의 설명은 장황하거나 번거롭지 않았다. 그는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법을 알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남을 이해시키는 법을 알았다. 하지만 종종 그것이 통하지 않는 상대가 등장하곤 했는데 지금은, 이를테면, 카스티엘이 그랬다. 딘과 샘이 종말을 막아냈으니 없어졌어야 마땅할 존재인 그는, 샘의 말을 대부분 흘려들었고 딘의 말의 대부분은 빈정거렸다. 카스티엘은 항상 왼 손에 맥주병을 쥐고 어깨를 늘어트린 채 걷곤 했다. 그들이 아는 트렌치코트를 입은 천사라기 보단 술주정뱅이에 가까웠다.
샘은 몇 번이고 자신들의 상황과 계획을 카스티엘에 전달하려는 시도를 했다. 목을 가다듬고 ‘그러니까, 카스티엘…….’하고 말을 시작하면서.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예닐곱 번의 시도 끝에 샘은 깨달았다. 카스티엘은 들을 준비도 되지 않았고 귀 기울일 의지조차 없었다.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은 그는,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종말 없는 세계에서도 흐트러트린 자신을 주워 담지 못했다.
딘은 그를 비난하지 못했다. 잠시나마 종말을 겪었던 그는, 카스티엘의 붕괴를 이해했다. 무너질 수밖에 없었으니 무너진 것일 뿐이다. 카스티엘에게 잘못은 없었다. 반쯤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으니 이렇게 된 것일 뿐이었다. 카스티엘은 종종 빈 맥주병을 테이블 위로 드르륵 굴리며 고서적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고군분투하는 형제를 응시했다. 눈빛에는 가끔 번뜩이는 광채가 보였다. 베니는 그런 카스티엘을 측면에서 응시하다 제 혈액 팩을 꺼내 마실 따름이었다.
카스티엘은 둘을 원망하고 있었다. 은총이 떨어진 그의 감정은 보통의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 감정이 급변하는 폭은 일반사람보다 격렬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는 울분과 원망에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세계 중에서 어째서 자신은 ‘종말이 있는 곳의 카스티엘’인지, 왜 자신이 있던 곳의 딘은 종말을 막지 못했는지. 샘은 어째서 YES를 외쳤는지, 또 어째서 자신만이 은총을 잃고 사람이 되는 비극을 겪어야 하는지. 이제 겨우 멀쩡한 세상으로 불러내졌다 싶었더니,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죽은 나 자신을 살려라.’ 인건지.
“이봐, 너희들 말이야.”
맥주병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며 카스티엘이 주의를 끌었다. 여섯 개의 눈이 동시에 그를 응시했다. 경계하는 동생,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나 싶어 불안해하는 형. 도통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흡혈귀. 그 모두의 눈길을 받으며 카스티엘이 목을 가다듬었다. 오른손으로 목을 매만지자 거칠게 자라난 수염이 그의 목을 간질였다. 딘과 샘이 면도기를 챙겨줬으나 그는 수염을 밀지 않았다. 마치 죽어버렸다는 이곳의 카스티엘 대체품처럼 보일 것 같아서.
“그러니까……. 나는 ‘진짜’ 카스티엘을 불러내기 위한 소모품이라는 거잖아?”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뾰족 거렸으나 이내 카스티엘은 가시를 눕혔다. 술, 여자, 약.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한 자신에게 여자와 약이 떨어져 신경질이 일어나나보다고 대충 넘기며.
딘과 샘의 표정이 아리송하게 변했다. 조금은 곤란한 질문을 받은 사람들처럼. 빈말이라도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랬는데. 카스티엘은 혀끝을 씹으며 히죽 웃었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될 때면 그 쓴 맛이 강하기 마련이었다. 카스티엘은 테이블 위에 떡하니 걸쳐놓았던 제 다리를 아래로 내렸다. 카스티엘이 다리를 치운 자리에는 흙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흐트러져있었다.
“니들 정말 악질이라고. 딘, 그리고 샘.”
말에 가시가 있었다.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냥 형제는 그저 잔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을 뿐 그럴싸한 변명이나 위로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카스티엘은 여전히 얼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조금 괴기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둘을 보며 ‘악, 질.’ 하고 입을 뻐끔거려 보인 후에 자리에서 벗어났다. 심술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행동이었다.
새집처럼 엉망으로 뻗친 카스티엘의 뒤통수가 복도 너머로 사라질 때 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딘의 신경은 곧장 샘에게로 쏟아졌다.
“걱정 마, 새미. 이번 일만 제대로 풀리면 멀쩡한 카스티엘로 돌아올 테니까.”
“비난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종말이 있는 곳의 캐스는 너무, 글쎄. 감당하기가 어려워.”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딘을 흘깃한 베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할 말이 입 안에서 굴러다녔지만 베니는 입을 열지 않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좋을 말들이란 건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카스티엘에 관해 자신이 할 말이 둘의 감정에 어떻게 작용될지 생각해보면 입을 다무는 편이 나았다.
“내가 가서 살펴보고 올게. 딘.”
튜브를 통해 반쯤 빨아먹던 팩을 도로 상자 속에 쑤셔 넣으며 베니는 엄지로 제 입가를 쓸듯이 닦았다. 새하얀 백열등이 부셔지는 베니의 눈동자는 옅게 색감을 입혀놓은 구슬 같아 보이기도 했다. 부탁해. 딘이 말했고, 뒤이어 고마워, 하고 샘이 중얼거렸다. 여전히 샘은 베니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전처럼 적대감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목숨을 걸고 연옥으로 내려가 그와 바비를 구해낸 것은 베니였으니까. 샘은 딘이 베니를 믿는 것을 납득했다. 비록 딘처럼 그를 온전히 믿지는 못해도.
카스티엘이 들어간 복도를 뒤따라가며 베니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성난 인간을 달래는 뱀파이어라니. 꼴이 점점 이상해지는데.
베니는 두근대는 심장소리를 따라 걸었다. 연옥에 있는 내내 들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물론 천사였던 카스티엘의 심장역시 박동을 하기는 했다. 다만, 단조로울 정도로 변화가 없었다. 그가 달리거나 힘든 둔덕을 오를 때도, 리바이어던에게 물어 뜯겨 죽기 직전에도 카스티엘의 심장소리는 단 한 번도 빨라지거나 느려지지 않았다. 마치 정확한 기계처럼 그 몸은 최적의 상태로 굴러가고 있었다. 비록 그 외양이 더렵혀지고 엉망이 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지금 들리는 소리는 꽤나 가빴다. 평안한 표정에 가려진 감정의 달음박질이 격정적인 탓이었다. 베니는 소모품이라는 단어를 씹어뱉던 그 음성을 떠올리며 닫힌 방문을 두드렸다. 조심스럽고 정중한 노크였다. 약이 떨어지고 유흥거리가 줄어든 카스티엘은 제가 알던 것보다 더 신경질적이라고 딘이 중얼대던 것을 기억하며. 베니는 골이 난 사내를 굳이 더 도발하고 싶지는 않았다.
“샘이면 가고, 딘이면……. 가.”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먹먹했다. 두터운 철문에 가로막힌 목소리의 반은 그렇게 둔탁하게 새어나왔다. 저들끼리 뭉치고 엉겨 붙어 간신히 새어나온 소리는 본래의 음성과는 조금 다르게 변질되어있었다. 베니는 얕게 심호흡을 했다.
“글쎄, 뱀파이어면 어떻게 할까?”
“…….”
오랜 세월 관리가 되지 않았던 곳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멀끔한 철문을 응시하며 베니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단 하나의 흠집이나, 칠이 벗겨진 자국조차 없는 견고한 문을 상대의 의견에 반하면서까지 부수고 들어갈 마음은 없었으므로. 베니는 형제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카스티엘은 그 자신으로서 존재하길 바랐다.
또 다른 카스티엘을 불러내기 위한 매개체나, 대용품 따위가 아니라.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라, 샘과 딘은 아마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할 게 분명했다. 형제에게 카스티엘이란 단 하나의 존재였다. 전혀 다른 평행 우주에서 넘어왔다 치더라도 그것은 그들에게 ‘카스티엘’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카스티엘에게는 그런 대우가 불만의 이유가 되진 않았을 터였다. 형제가 카스티엘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주님의 천사, 목요일의 천사, 혹은 딘 윈체스터의 조력자’ 카스티엘이었으니까. 어느 곳의 카스티엘이든 그건 대부분 맞는 이야기였다. 다만, 이 녀석을 제외하고 말이다.
종말에서 건너온 녀석은 천사가 아니었다. 딘 윈체스터의 조력자라기엔 무능했다. 주님의 가호조차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어느 것도 형제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했다. 딘과 샘은 실망을 숨겼어야했다. 새로 나타난 녀석의 면전에서 ‘카스티엘을 되살려낸다.’는 말을 하면 안됐다. 그것은 당사자를 앞에 두고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낱 인간인 녀석이 상처받지 않고 그 말을 넘겨들을 경우의 수가 얼마나 되겠는가. 베니는 모자를 고쳐 쓰며 보지 못할 형제를 향해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보였다.
육중한 문은 잠시간의 침묵이 더 있은 후에야 서서히 틈을 벌렸다.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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