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잴 거 없이 모레 작업 들어간다.”

 

 

한솥밥 먹은 지 좀 된 놈들을 모아놓고 중구는 앞뒤 없이 말했다. 개중에 중구의 말을 이해한 것은 명수뿐이었다. 기껏해야 상훈 정도일까, 눈치도 고만고만한 놈들은 고 험악한 얼굴로 벙한 표정을 지어내며 중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 나, 이 눈치라곤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놈들. 중구가 툭, 던지듯 말하며 담배를 입에 물자 상훈이 냉큼 불을 붙였다.

 

중앙에 일인용 가죽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중구의 발끝이 테이블에 닿을락 말락했다. 양 옆으로 서넛은 족히 앉을 소파 둘이 마주보고 앉았는데, 왼쪽 첫자리에는 상훈이, 오른쪽 첫 자리에는 명수가 앉아있는 상태였다. 이들에게 사업 문제로 출장을 간 동출의 빈자리는 익숙하다 못해 일상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동명수는 사업을 핑계로 제 아들을 찾아다니는 동출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지만 부러 모른 척 하는 중이었다. 석동출이 조직에서 멀어질수록 동명수에게는 제 잇속을 챙길 기회가 많아지는 셈이었다.

 

 

“그, 형님. 뭐가 모레란 건지…….”

 

“강남 정리 시작한다.”

 

 

점심메뉴를 정하듯 중구는 가볍게 말했고, 몇 놈이 예에? 하고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뭘 그렇게들 놀라?”

 

“하지만 제일파 놈들도 뻔 하게 버티고 있잖습니까.”

 

 

중구가 명수에게 했던 질문이, 이번에는 중구에게로 날아왔다. 중구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아아, 제일파?’하고 느긋하게 되물었다. 깊게 빨아들였다 뱉어내는 담배연기를 곧바로 코로 들이마시며 중구는 제 주변을 한번 휘, 훑었다.

 

 

“그 새끼들하고는 내가 알아서 얘기해볼 테니까 니들은 준비나 하고 있어.”

 

 

차지한 곳의 일정구역을 나눠준다던지, 어디어디 파는 건들지 않는다, 따위의 거래일거라고 명수는 짐작했다. 제일파 수장, 장수기라는 놈도 약아빠진 구석이 많아서 아마 그 제안을 거부하진 않을 것이었다. 끓는 피 제대로 식지도 않은 30대, 혹은 갓 40에 올라선 대가리들은 종종 전후 사정이나 판이 돌아가는 형세도 보지 못하고 눈앞의 먹이만 덥석 무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기 한번 펴볼 사이도 없이 생을 달리하기도 했다. 제일파가 여지껏 살아남았던 것은 만사에 조급함이 없어서일지도 몰랐다. 가끔은 수읽기를 하느라 정도이상으로 느리게 움직이긴 했지만.

 

중구 네들이 강남을 정리하는 사이에 제일파가 달려든다면 강남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될 것이었고, 강북을 집어삼킨 화룡파가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최악의 상황엔 제일파, 재범파 할 거 없이 공멸할 터였다. 하지만 장수기는 수가 제법 밝고 신중한 사람이었고, 아마 이것까지 염두에 둘 것이었다. 서로 건들지 않겠다는 불가침조약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장수기가 화룡파의 눈치를 보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사이 운만 좋다면 재범파는 강남의 반 정도는 먹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일단 오늘 제일파 새끼들 만난다음에 다시 자세한 얘기 해줄 테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어라. 알겠냐?”

 

 

중구의 말에 예에, 하고 낮은 목소리들이 합창했다. 동명수는 대답하지 않고 건드렁건드렁 발을 까닥였다. 꿍꿍이속이 있는 눈치였다. 상훈이 못마땅한 눈초리로 동명수를 흘겨보았다. 말이 흘겨 본 것이지 표정만 봐서야 살인이라도 할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기곤 있다지만 상훈에게 명수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라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나가서 일들 봐.”

 

 

손을 휘적휘적 내저은 중구가 엄지와 검지로 담배를 매만지더니 한 모금 깊게 빨았다. 명수가 느긋하게 중구가 하는 냥을 눈으로 훑었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서면 가죽소파에선 삐걱삐걱 결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상훈은 마지막까지 남아 명수가 일어서길 기다리는 눈치였는데 명수는 짐짓 그것을 모른 체했다. 중구는 별 말이 없었고 명수와 상훈은 계속 말없이 버팅겼는데, 끝내는 적막이 어색한 듯 상훈이 먼저 일어나 나갔다.

 

나가며 문을 닫는 상훈에게 곁눈질을 하며 명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다리를 벌리고선 상체를 앞으로 숙였는데, 음험한 작당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가는데 나 데려가쇼.”

 

“뭐?”

 

“성님이 제일파 놈 혼자 만나러 갈건 아니잖소?”

 

 

동명수의 제안에 이중구는 뭐라 말을 하려 입을 열었다 다시 가만 다물었다. 타들어가는 담배 끝이 필터를 향해 조금씩 전진하는 중이었다. 아슬아슬 담배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회색 재 속에 불씨가 붉게 탔다.

 

 

“혼자 갈지 둘이 갈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안다고 그러냐? 내 머릿속이라도 뒤졌수? 으응?”

 

 

동명수가 픽, 웃었다.

 

 

“그걸 모르는 놈이 등신천치지. 나하고 간보기 그만하고 그냥 알았다, 하쇼.”

 

“네가 거길 왜 가는데?”

 

“그럼 성님 가는데 누가 간단 말이오?”

 

 

중구가 혀를 쯧, 하고 찼다. 하여간에 필요 이상으로 당당하고 싸가지 없는 새끼…….

 

 

“여하튼 그리 알고 데려가기나 하요.”

 

 

중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담배를 재떨이에 지졌다. 타들어가는 담배소리에 동명수는 광대를 움찔거렸다. 가끔 반동분자니 뭐니 하면서 애비에게 끌려 들어온 연놈들의 살을 지질 적에 저런 소리가 났었다. 명수에게 그것은 딱히 악몽처럼 끔찍하다거나 괴롭다거나 할 종류의 일들이 아닌 과거의 한낱 일상이라서, 회상은 그저 회상으로써 그쳤다. 옳고 그름의 잣대가 서기도 전부터 온갖 행태를 보며 자란 동명수에겐 연민이나 측은지심은 존재하지 않았다.

 

동명수는 테이블에 일어난 거스러미를 뭉툭한 엄지손톱으로 몇 번 긁어대다 기어코 잡아 뜯었다. 원목가구마냥 칠해졌던 테이블의 한 귀퉁이가 허연 속살을 내비쳤다. 이중구가 몇 마디 툴툴댔지만 동명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난 주변에서 일 좀 보려니까, 출발 전에 연락하쇼.”

 

 

사무실 바닥에 신발 밑창을 두어 번 문질러 닦은 동명수가 느직하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구는 나가기나 하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을 뿐이었지만 명수는 그것이 알았으니 가보라는 의미임을 알고 토를 달지 않았다.

 

 

***

 

 

“유치원은 보내야 하잖…….”

 

“시끄러워. 내 말 안 들려? 그냥 여기서 키워.”

 

 

눈이 잔뜩 핏발선 여자는 남자의 말에 주춤, 하고 몸을 물렸다. 습관화 된 방어적 행동 중 하나였다. 남자는 그 사실을 알았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길들여지지 못한 바에야 겁먹어 순종적이기라도 한 것이 낫다는 것이 남자의 생각이었으므로.

 

서울역에 내다놔도 하등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덥수룩하고 정돈되지 못한 머리, 깨끗하게 빨았음은 분명한데도 몇 년은 입은 듯 때가 탄 옷. 그리고 그런 남자의 차림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여자는 헐겁게 묶은 머리에서 잔머리가 비져나와 한층 더 엉망으로 보였다.

 

키득키득, 머리 숱 적은 사내 하나가 거실 소파에 느긋하니 기대 앉아 둘을 관찰했는데, 손에는 잘 벼려진 나이프가 허공으로, 손가락 사이로 너울너울 춤을 추는 중이었다.

 

 

“이야, 형수님 담이 많이 컸어? 그렇게 자기 의견도 내세우는걸 보면? 안 그래? 크크…….”

 

“혀, 형. 그래도 애, 애, 교육은…….”

 

 

칼을 손에 쥐고 장난질 치던 사내가 흘깃 눈길을 준 곳엔 또 다른 남자 하나가 안절부절 못하는 중이었다. 두어 걸음 뒤편엔 좀 더 젊은, 호남형의 남자가 뭐가 그리 불만인지 부루퉁한 표정이었는데 금방이라도 잔뜩 성을 낼 것 같기도 했다.

 

 

“진성이는.”

 

 

남자가 말했다. 성을 내는 여자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소, 소, 손님, 왔다고 그래서…….”

 

“그래?”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 되물음이었다. 말더듬이 남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바지춤에 땀이 흥건한 손바닥을 문질러 닦았다. 남자는 이런 팽팽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나 저가 오랜 세월 보고 자란 윤석태가 중심이 되는 긴장감은.

 

까만 가죽소파들과 실제로 불을 붙일 수 있는 벽난로, 마당과 전면을 볼 수 있게끔 만들어진 전면 유리창까지. 꽤나 고급스러운 단독주택이었으나 그 내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철제 창살이나 어둑한 지하실 통로 따위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겨, 집은 마치 폐가와 가정집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베이지에 가까운 연한 황토빛 외벽으로 지어진 집 옆에는 대형 비닐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었고, 마당보단 공터란 말이 어울리는 휑한 집 앞에는 수십 개의 비료푸대와 함께 ‘분재 석화원’이라는 간판이 먼지한번 닦인 적 없어 뿌옇게 손님을 맞고 있었다. 석화원이란 이름은 집의 소유주이자 화원을 운영하는 실 사업자인 윤석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는데, 정작 묘목을 사러간 사람들은 주인이란 사람보단 그의 동생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진성을 더 자주 만나곤 했다.

 

윤석태는 장사보단 묘목 가꾸기에 더욱 치중하는 편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심히 몰두하는 정도도 아니었다. 사실 집에 사는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분재를 가꾸고 장사하는 일에 큰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뱃속을 불려주는 수입원이 따로 있었고, 지금 하는 사업은 그저 표면상으로 멀쩡함을 위장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다섯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어린 애까지. 도합 일곱이 살고 있는 그 집은 대한민국의 강력계 형사들의 골머리를 꽤나 썩이고도 잡히는 일이 한번 없던 일명, ‘낮도깨비’의 아지트였던 것이었다.

 

구성원 중 유일한 여자인 영주는 석태와 같은 인천 성지 보육원 출신이었는데, 거의 반 감금상태로 이들과 지낸 것이 몇 년이었다. 처음에는 몇 번이고 도망만 가려한 영주가 괘씸했는지 석태는 영주의 엄지발가락을 자르는 잔혹성까지 보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낮도깨비 소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던 영주는 석태가 납치해 온 아이를 떠맡게 되면서부터 얌전히 집에 붙어있게 되었다. 영주가 떠맡은 아이는 표면적으론 다섯 명의 범죄자 아비를 둔 상태였고, 그 껍질을 까발리면 임형택의 자식이었는데, 당시 납치에 가담했던 낮도깨비 중 어느 누구도 임형택의 아들이라는 껍질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비밀, 즉, 실상 아이가 리학수의 아들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유치원 보내면 초등학교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어떻게 생겨난 앤지 숨기고 보내기엔 너무 위험해. 금방 들통날거야. 내가 말했지, 스타일에 안 맞는다고. 골머리 썩기 전에 죽였으면 좋잖아?”

 

 

구성원 중 가장 어린 사내, 범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귀찮은 애완동물 하나 들였다는 투였다.

 

 

“화, 화, 화이. 주, 죽이면 안 돼.”

 

 

우물쭈물 눈치를 보던 말더듬이 남자, 기태가 범수를 우려스럽게 바라봤다. 기태의 말에 범수는 아무려면 어떠냐는 듯 흥, 하고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납치한 아이를 키우려고 결정한 후 가장 첫 번째 문제는 아이의 이름이었는데, 그의 친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그대로 불러 위험을 자초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뉘 집 개 이름 붙여주듯이 메리, 해피를 운운하며 낄낄대며 아이를 부르거나 이거, 혹은 저거로 칭하던 와중에 석태는 누구와의 상의도 없이 아이의 이름을 정했는데, 석화원에서 기르고 있던 향나무의 종류 중 하나인 화이 목에서 따 온 것이었다.

 

화이. 석태에 결정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영주도. 그렇게 화이는 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물론, 아직까지 완전한 융합은 아니었지만.

 

 

“누가 화이를 죽인다고 그래? 응? 걱정하지 마. 우리 아들인데. 안 그래?”

 

 

한창 칼장난을 치던 남자가 툭툭 던지듯 말했는데, 얼핏 보면 외양은 머리 벗겨진 중년의 대리 같은 느낌이었으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어느 누구보다 장난기가 그득 담겨있어, 남자에게선 삐에로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사내의 이름은 동범이었는데, 손에서 칼을 떼어놓지 않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칼을 다루길 좋아하는 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칼 예찬론자였는데, 항시 작업에 들어갈 적이면 총을 챙기는 범수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기도 했다. 동범은 소파에 앉은 채로 고개를 뒤로 꺾다시피 젖혀 범수를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범수는 동범을 흘깃 볼 뿐 대답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집어넣는 추임새에 신경이 사나울 법도 하건만 석태는 영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윤주는 그 눈초리를 잘 알고 있었다. 감히 네가? 하는 식의 표정. 석태는 윤주가 저의 말에 토 다는 것이 아니꼬운 것이었다. 윤주도 그것을 잘 알았고, 조금만 더 하다가는 또다시 개 패듯 맞을 것임을 알았지만 쉽게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어디서 납치 해다 온 남의 새끼라곤 하지만 기르다 보면 생기는 모정도 모정이라. 이런 놈들 틈바구니에 걸려 들어온 아이가 안타깝고 불쌍했고, 저의 처지를 실감시켜주기도 해서 영주는 저가 누리지 못했던 평범한 자유를 아이에게라도 누리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그것이 석태에게 통할리가 없었지만.

 

 

“가서 밥이나 차려.”

 

 

석태가 말했다.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영주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밥 차리라는 말에 긴 치마 속에 가려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잠깐의 정적 후에 결국 영주는 발가락이 잘려나가 성치 못한 걸음걸이로 주방으로 향했다.

 

형수님, 난 고기반찬! 크크크크! 분위기를 모른다는 듯 동범이 낄낄대며 영주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Posted by 백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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