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로 재범파는 무척이나 지루할 정도로 이렇다 할 고난 없이 승승장구했다. 제일파를 누르고 강남권을 집어 삼켰고, 화룡파와의 싸움은 싱겁기까지 할 정도였다. 물론 그 밑바탕엔 동명수의 공작이 깔려있었지만, 리학수를 제외한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재범파의 입지는 올라갔고, 무리는 불어났으며, 싸움 없이 복속되는 자들이 늘었다. 패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명수는 이중구와 리학수를 앞세우고 모든 일을 불도저마냥 밀어붙였다.

 

서울을 장악하는 데는 예상보다도 적은 시간이 들었다. 이중구가 내심 동명수를 인정해주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겸상도 꺼려하던 처음과는 달리 이중구는 어딜 가든 동명수를 대동하고 다녔다. 동명수에게는 잘 된 일이었다. 흘러들어오는 정보는 리학수보다 이중구를 거치는 것이 많았고, 정보가 흘러드는 속도 또한 빨랐다. 동명수는 이중구를 이용해 저의 공을 세웠고, 북에서의 명예와 입지를 드높였다. 여전히 북으로 올라가는 보고는 모두 동명수의 손을 거쳐야만 했다.

 

리학수는 여전히 저의 핏줄을 찾는데 연연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리학수가 제 할일을 마냥 방치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동명수는 리학수의 모든 업무에 제가 손을 대고 조종하길 바랐고, 또한 그렇게 되도록 수를 쓰는 중이었지만 제 자식 찾기에 정신이 팔려있던 차에도 리학수는 저의 자리를 지킬 줄 알았다. 리학수가 그저 동명수의 말에 고분고분히 따라준 것은, 혹시나 그의 아비에게로 나쁜 말이 올라가 제가 조기 귀국을 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탓이었다. 리학수는 조직의 일에 발 벗고 나서지 않았지만, 뒷짐 지고 방관하지도 않았다. 리학수는 그저, 동명수가 자신이 조직의 모든 경영권을 쥐고 있다는 오만을 지적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편이 리학수에게는 편했다. 피가 덜 마른 머리는 쉽게 결단했고, 신중함이 적었다. 둘의 관계는 물고 물리는 중이었지만 동명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동명수에게 리학수는 그저 저의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오만이었고, 자만이었다.

 

아마 표종성이었더라면 제가 부러 이러고 있음을 진작 눈치를 챘을 것이라고 리학수는 어림짐작했다. 표종성은 그의 아래에서 많은 것을 배운 제자였다. 많은 것을 배웠고, 응용했으며 스스로 깨쳤다. 또래에 비해 아는 것이 많았지만 자만하지 않는 놈이기도 했다.

 

동명수와 표종성 모두 리학수의 문도였다. 비록 둘이 같은 수업을 들은 적은 없었지만. 둘은 행색부터 말투까지 정 반대였는데, 표종성은 앳되었을 적부터 군인의 모습이 보였다면 동명수는 어릴 적부터 여태까지 동네 양아치의 행색이 엄연했다. 행동만큼이나 둘의 성격은 대조적이어서, 리학수는 가끔 저 둘이 반목하게 될 것을 염려했다. 특히나 언제부턴가 의도적으로 표종성에게 껄떡거리는 동명수를 볼 적이면 더욱 그랬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사무실 문이 조용하게 열렸다. 칠이 덜 된 쇠문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거슬리게 들렸다. 리학수는 이제 저 소음을 들을 날도 머지않았다는 것을 곱씹으며 중구를 가만 바라봤다. 왼편의 소파에는 이미 동명수가 자리 잡고 있는 상태였다. 동명수는 들어온 이중구에게 눈짓으로 아는 체를 했다.

 

 

“앉아라.”

 

 

그 말에 이중구는 동명수의 맞은편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이중구는 길다 못해 늘씬하게 뻗은 제 양 다리를 모으고 반듯이 앉는 것이 영 불편해보였다. 동명수는 이중구의 어깨너머로 칠이 벗겨진 사무실 벽을 보다 이중구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어보였다. 처음에는 입을 길게 찢고 웃는 뱀 같은 느낌에 어딘가 음습하게 느껴졌던 그 웃음도 이제는 익숙해진지가 오래라 이중구는 동명수를 가만 보다 리학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름이 아니라……, 너도 이제 이사님 소리 듣고 살아야하지 않겠니?”

 

 

리학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중구는 어떤 대답이 적절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그저 침묵했다.

 

 

“이제 재범파란 이름도 그만 쓸 때가 되었지 싶구나.”

 

“……예?”

 

 

되묻는 이중구의 말에 석동출은 조곤조곤하게 대답했다. 회사를 만들자, 라고.

 

조금은 어벙벙한 기분에 중구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아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재범파의 몸집이 불어나자 리학수는 경찰과 연루될 만한 연장질을 금하는 한편으로 리조트 건립을 추진시키는 등 조직의 깡패 탈을 번듯한 것으로 갈아 끼우는데 갖은 노력을 들였으니 말이다.

 

다만…….

 

 

“왜 말이 없니?”

 

“아, 그, 아닙니다. 그냥……. 좀 갑작스러워서.”

 

 

그래, 갑작스러웠다. 중구는 저희들이 번듯한 사업체로 탈바꿈하는 것은 적어도 설악지구 리조트가 완공된 후로 예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일 년도 더 남지 않았던가. 리학수는 마땅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리학수가 아닌 석동출로서 이중구에게 해 줄 대답이 없던 탓이었다. 리학수는 잠시간 동명수를 응시했다. 동명수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들의 대화를 가만 듣고만 있었다.

 

애초에 일을 이토록 급격히 전개시킨 것은 동명수였다.

 

 

“뭐…….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소, 형님. 빠를수록 좋지, 뭘.”

 

 

동명수가 가볍게 말했다. 새끼야, 나도 그건 알아. 하고 대답하려던 것을 이중구는 속으로 밀어 넣었다. 리학수가 있는 자리에서 이중구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 편이었다.

 

 

“지방에서 받아달라고 오는 세력들까지 뭉치면 어디 가서도 밀리진 않을 정도로 몸집을 불릴 수 있을 거다. 경찰들이 우리에게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가지 밖에 없는 건 너도 알잖니. 웬만해선 건들 수도 없게 세력을 불리는 거뿐이지.”

 

“번듯한 기업으로 조직 세탁도 좀 하고.”

 

 

동명수가 리학수의 뒷말을 이었다. 가로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몰랐다.

 

 

“그래. 명수 말이 맞다. 중구 네가 애들하고 같이 하나씩 정리해라. 명수가 도와줄 거다.”

 

“예.”

 

 

중구가 짧게 대답했지만 명수는 대답대신 고개만 대충 주억거릴 뿐이었다. 저놈의 버르장머리. 중구는 이번에도 제 생각을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대신 명수를 흘겨봤는데, 동명수는 중구의 시선에 히죽 웃어 보일 뿐이었다.

 

명수가 셋이서 저녁이나 같이하잔 말을 꺼냈지만 리학수는 다른 일이 있다며 제안을 물렸다. 보나마다 아들 일이겠지. 동명수는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했다.

 

 

“아,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중구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리학수를 돌아봤다.

 

 

“여수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우릴 좀 보자는구나. 중구 네가 가보렴.”

 

“여수요?”

 

“그래. 병합을 제안하러 온 모양이야.”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재범파가 서울 패권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날리자, 지방에서 저희를 받아 주십사 하고 올라오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니.

 

 

“거기 우두머리라는 작자들이 다 중국산이랍디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접대는 중국집에서 하는 게 어떻겠소?”

 

 

동명수가 사무실 바닥에 신발 밑창을 긁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중국산?”

 

“화교 말이요.”

 

“그래?”

 

 

중구가 시큰둥하게 반문했다.

 

 

“잘 해줘라. 한국에서는 별 볼일 없어보여도 중국 쪽으론 발이 넓어서 벌써 삼합회와도 통하고 있는 모양이야. 잘 구슬려야 모두에게 좋을 거다.”

 

 

리학수의 말에 중구는 짤막하게 예, 하고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가죽 소파에서 끼긱대는 소리가 났다. 이중구를 따라 일어선 동명수가 중구보다 먼저 움직여 사무실 문을 열었다. 동명수는 문고리를 붙잡은 채로 리학수를 잠시간 흘깃거렸는데 마치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어이, 형님.”

 

 

문을 닫자마자 동명수는 저를 뒤로하고 휘적휘적 가버리는 이중구 뒤를 잽싸게 쫓았다.

 

 

“뭐냐, 또.”

 

“내 들은 말이 있어서 그러는데 말이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동명수는 목소리를 낮췄다. 마치 엄청난 기밀 사항을 누설하고 있기라도 한 냥. 평소에 언행이 가볍기는 하나 별 볼일 없는 일에 호들갑 떨지는 않는 동명수의 성격을 알기에 이중구는 휘적휘적 가 버리는 것 대신 그 자리에 멈춰서는 것을 택했다.

 

 

“뭘 들어?”

 

 

이중구의 물음에 동명수는 중구의 곁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게……, 이번에서 올라온다는 여수 놈들 말이오. 큰형님 눈에 들었나보던데.”

 

“그래서.”

 

“조심하란 말이지. 혹시나 나중에 형님자리 꿰차겠다고 분수도 모르고 숟가락 내밀지도 모를 일 아니요? 큰형님은 삼합회랑 친분 맺어서 나쁠 건 없으니 한자리 턱, 내줄 수도 있고.”

 

“난 또 뭐라고…….”

 

 

이중구는 동명수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웃었다. 너는 깡패라는 놈이 그렇게 걱정이 많아서 어디 일은 제대로 하겠냐, 하고 덧붙이면서. 중구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기며 양복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동명수는 자연스럽게 제 호주머니를 뒤져 이중구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이며 이중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인상을 얕게 찌푸렸다. 우아한 깡패. 동명수는 이중구를 그렇게 평가했다. 어찌 보면 칭찬이기도 했지만 돌려 말하자면 어떻게 해도 이중구는 깡패 탈을 벗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애초에 가장 귀족에 가까운 것은 동명수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 국가의 권력자 아들로 태어나 최상의 것들만 보고, 먹고, 입으며 자란 동명수에게 이중구의 겉치레적인 우아함은 성에 찰리가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만 간신히 덮어씌워놓은 우아함이라고 해도 그것은 이중구에게 꽤나 그럴싸하게 어울렸다. 180은 훌쩍 넘는 키와 다부진 골격 탓일 수도 있었고,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고압감 탓일 수도 있었다. 이중구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중구는 유독 껄렁한 차림새, 가벼운 말투, 진중함이 없는 태도 따위를 질색했다.

 

그 때문에 정청은 첫 만남부터 이중구에게 그다지 좋지 못한 인상을 심어줄 수밖에 없었다.

 

리학수가 언급했던 여수의 조직은 정청과 이자성의 무리였는데, 북대문파라는 조직의 이름은 정청이 자주 가던 중국집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자성은 명실 공히 북대문파의 2인자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정청을 향한 이자성의 판단력은 옳았다. 여기저기서 흔히 보던 양아치와 정청은 달랐다. 평소에는 여타의 건달들보다 더욱 가볍고 껄렁댔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야차로 돌변했고 머리 또한 꽤나 좋은 편이었다. 때문에 이자성은 더욱 긴장해야만했다. 서글서글하게 웃고 지내던 사이에도 필요하다 싶으면 뱃가죽에 칼을 쑤셔 넣는 인물에게 제가 경찰임을 들켜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자성은 주기적으로 강형철과 연락 중이었다. 강형철은 이자성 이후로도 여러 프락치를 양산하고 중간 대화 책을 마련했으며 나름의 네트워크를 생성했다. 북대문파가 몸집을 불릴수록 강형철 소속 프락치들 역시 머릿수를 늘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강형철은 이자성 외에도 북대문파에 몇몇 경찰을 심어두었으나 그 사실을 이자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것은 혹시나 있을 이자성의 배반을 대비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자성이 마지막으로 강형철과 면대 면을 한 것은 반년 전이었는데, 자성을 보자마자 형철은 ‘이제 제법 깡패 냄새가 나는구나.’하고 말했다. 이자성은 그 말에 항의하듯 인상을 구겼지만, 그 행실마저도 동네 양아치와 비슷했다. 엉성한 프락치보다야 진짜 깡패 같은 놈이 더욱 쓸 만한 것은 사실이나 강형철은 자성이 뼛속까지 깡패가 되어버릴 것은 염려했다.

 

강형철은 이자성의 예상보다도 더욱 가깝고 은밀한 곳 까지 저의 눈을 심어두었다. 그 때문에 이자성이 강형철에게 ‘정청이 서울로 올라갈 계획이오.’ 라고 했을 때도 강형철은 콧방귀인지 모를 잔기침을 뱉어냈을 뿐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

 

 

셋의 만남에서, 이중구는 불편한 심기를 억지로 삼켰다. 다름이 아닌 정청 때문이었다. 불량한 자세, 껄렁한 말투, 아무렇게나 주워 입은 것 같은 옷까지. 차라리 정청 옆에 지키고 선 이자성이란 놈이 이중구의 성향과 맞았다. ‘반갑소, 나넌 정청이요.’하면서 악수를 하려 드미는 손에 병균이 득실대기라도 한 냥, 이중구는 잠시간 그 손을 내려다보곤 닿은 듯 만 듯 손을 살짝 맞잡으며 ‘이중구요.’하고 짤막하게 대꾸했다.

 

 

“이 짝은 세상에 둘 도 없는 우리 부라더, 이자성이요.”

 

 

정청은 자성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자성은 작게 목례했다. 동명수는 자리에 없었다. 평소엔 이리저리 잘도 나돌아 다니면서 이렇듯 서로를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고, 중요한 회담이 오갈 적이면 동명수는 자리에 나타나질 않았다. 이중구는 그저 동명수가 큰일에는 아직 부담을 느끼는 것이겠거니, 지레짐작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동명수는 저의 얼굴이 팔리기를 원치 않은 것이다.

 

리학수야 남한에 내려오며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지만 동명수는 고스트로서 리학수와 동행한 것이라 남한의 서류상으론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의 눈에 띄면 좋을 것이 없단 소리였다. 비록 지금은 서울의 패권 장악과 재범파의 권력 차지가 시급해 나서서 행동을 하는 수밖에 없다지만 후에 재범파가 저의 계획대로 거대한 공룡이 된다면 동명수는 음지로 숨어들 요량이었다. 동명수는 이런 일에는 보통, 자리에 동참하는 대신 제 수하를 딸려 보내곤 했다. 이번에도 장지문 밖에 동명수의 수족이 지키고 서있는 중이었다. 호위라기보다는 엿듣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정청이 젓가락을 들어 식탁위에 탁탁 쳐 높이를 맞추고선 눈앞의 초밥을 집어 들어 입에 밀어 넣었다. 동작들은 요란스러웠다. 우아하지 못하긴. 이중구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런 놈을 대장으로 둔 패거리 수준이야 안 봐도 뻔할 뻔자지. 이중구의 속내를 미묘한 표정 변화에서 읽어 내린 것인지 이자성은 식탁 밑으로 정청의 허벅지를 툭, 쳤다. 으적으적 초밥을 씹어대던 정청이 이자성을 한번 보고선 그 시선을 이중구에게로 돌렸다.

 

 

“나가 시장 혀서 먼저 묵어버렸네잉. 거, 그 짝도 드셔요잉?”

 

 

말이야 좋은 말이지 이자성은 정청의 말밑에 도사린 의미를 알았다. 재범파 대가리도 아닌 네 놈이 자신이 이러는데 어쩔 거냐는 소리였다. 다행스럽게도 정청의 표정은 한없이 들떠보여서, 이중구는 수면 밑에 깔린 의도를 읽어내지 못했다.

 

이중구와 이자성은 젓가락 한번 들지 않았다. 정청은 혼자 초밥을 서너 개 더 집어먹고는 물로 입가심을 했다.

 

 

“자아, 인자 일 얘기를 쪼까 해야쓰겄네잉.”

 

 

정청이 이에 낀 음식을 꺼내듯 쯧쯧 소리를 냈다. 이자성이 남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Posted by 백은수

북에서 내려온 손길은 여기저기 뻗혀있었다. 그것은 마치 큰 줄기 없이 시작된 잔가지들과 같아서, 시작도 끝도 없이 모두의 속에 뒤섞여있었다. 그 모두의 향방을 아는 것은 기껏해야 북에서 관전하는 윗대가리들뿐이었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빌딩이 들어서는 도심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자잘한 조직들 틈에서 잔가지는 자라났다. 아마도, 이 좁은 판에서 살아남는 조직에 기생하던 놈만이 잔가지의 기둥이 될 것이라고, 동명수는 생각했다.

 

이중구는 흉흉한 기색을 내뿜으며 큰 덩치에서 위압감을 내뿜고 있던 차였다. 누가 보면 협상이 아닌 전쟁통보라도 하러 온 줄 알 정도였으니. 동명수는 그런 중구의 옆에서 한가하게 손톱이나 파는 중이었다. 실로 상반된 분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장수기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하고선 이중구를 맞이했다. 능구렁이, 여시. 재범파에서 종종 회자되던 장수기의 별명이 제법 어울리는 미소이기도 했다. 순박하게 웃는 얼굴 뒤에서 칼을 품고 있을 것 같은 인상. 좀 더 나이를 먹어 주름이 얼굴에 패인다면 인자한 아버지나 양반 같은 얼굴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동명수는 장수기에게서 금방 관심을 돌렸다. 이중구가 지금 벌이는 일이 동명수의 앞날에 도움이 되는 일이 맞긴 했지만, 그 때문에 이중구와 굳이 동행을 한 것은 아니었다. 동명수는 제일파 무리 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저의 동지를 찾고 있었다. 북측의 잔가지를.

 

본디 으르렁거리기 바쁜 두개의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협정과 회유, 계약 등이 발생할 때는 뒷공작이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었다. 특히나 그것이 법의 보호아래에 놓일 수 없는 집단이라면 더더욱. 동명수는 제 아버지의 힘을 빌려 제일파의 발을 묶어두고, 재범파가 강남을 틀어먹도록 도울 심산이었다. 그것이 저의 미래에도 좋았다.

 

북에서 내려올 때 개인마다 할당받은 지령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쯤이야 동명수 선에서 해결가능 할 것이었다. 또한 동중호의 아들에게 잘 보여 나쁠 것 없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을 테니. 비록 아비와 자식, 혈연으로 묶인 사이라고는 하나 동명수와 동중호는 서로를 본인에게 득이 되는 카드로 보는 면이 있었다. 동중호는 명수를 저의 후계를 내세워 가문을 견고히 다졌고, 이제는 동명수가 남한에서 세울 실적으로 저의 위신을 높일 궁리를 하는 중이였으니 말이다. 동명수 역시 동중호라는 이름 석 자가 지닌 권력의 힘을 알았고, 그것을 저의 지위상승의 발판으로 삼았다.

 

 

“……그래서 화룡파를 먼저 공공의 적으로 삼고…….”

 

“……돌아오는 이득이…….”

 

 

테이블을 끼고 마주앉은 이중구와 장수기는 이야기가 한창이었는데 이야기는 제일파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뼛속까지 조폭에 가까운 이중구는 입담에 능하지가 못했다. 중구는 제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열이 나는지 신경질 적으로 테이블을 손톱으로 딱딱, 두드렸다. 어딜 봐도 성이난 기색이 역력했지만 장수기는 주눅 들지 않았다. 여유로운 것은 장수기 쪽이었다.

 

이중구의 옆에 앉아 한마디 말도 없던 명수는 장수기의 뒤에 버티고 선 놈들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딱 봐도 열 두엇은 넘어 보이는 무리 사이에서 몇몇이 눈인사로 아는 체를 했다.

 

동명수는 지금의 이 작당은 별 쓸모가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강남을 정리 할 테니까 니들은 보고만 있어라.’라는 재범파의 통보에 ‘우리도 좌시하지만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으니. 다만 둘은 서로의 다음 수를 읽으려는 것뿐이었다. 아마도 저희가 돌아가고 난 뒤면 앞으로의 행방에 대해 다 같이 모여 머리를 굴리겠지. 동명수는 저에게 매수된 자들이 재범파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길 바라기만 하면 됐다. 혹은, 제일파의 다음 수를 미리 귀띔을 해주는 것도 좋았다.

 

반쯤 열린 제일파의 사무실 창문에서 산들바람이 불었고, 그보다 앞서 햇빛이 바닥을 비췄다. 봄은 여름과 닮아있어서, 한낮의 봄은 여름의 초입처럼 달구어져있었다. 노란 나비가 한 마리 날아다니는 게 퍽 어울릴 것 같은 날씨이기도 했다. 흉흉한 사무실과의 정반대의 기온이 창을 통해 스며드는 와중에 이중구는 선심 쓰듯 몇 개의 구역을 나눠주겠다는 제안을 내보였는데, 장수기는 영 탐탁치가 않은 듯 마땅한 결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이중구의 속셈을 읽을 참일지도 몰랐다. 속셈이라 봤자 제일파와의 약속을 깡그리 무시하고 강남을 먹어치우는 것 밖에 더 있겠냐마는, 장수기는 아마도 그보다는 더 자세하게 재범파의 다음 행방을 알고 싶은 듯 했다.

 

소득 없는 공방을 하는 둘의 틈에서 혼자만의 계획을 한창 세우던 동명수는 저에게 눈짓하는 놈들을 보며 문득, 표종성이란 사내를 떠올렸다. 거꾸로 자라나는 나무처럼, 모두와는 정반대로 행동하던 남자였다. 눈에 띄지 않게 단정하게 친 머리와 고집스러운 눈매, 그리고 단단해 보이는 몸과 그에 걸 맞는 키. 무심하고 건조해 보이는 전체적 인상과 부합하듯 말수도 적은 그를 동명수가 처음 본 것은 군사학교에서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표종성의 몸은 싸움에 최적화된 골격이라 봐도 좋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났다는 표종성은 뒤봐주는 사람 하나 없는 몸으로 군사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표종성이 특이한 경우는 아니었다. 오히려 동명수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있는 경우가 희귀한 경우였다. 학교에서 아등바등 살아남으려는 놈들이 다 그렇듯이 표종성도 사교성이 떨어지는 편에 속했는데, 그럼에도 그가 주변에 관심을 알게 모르게 받았던 것은 범상치 않던 격투 실력 덕분이었다. 그것은 동명수와는 조금 다른 질의 것이었다. 두 사람이 각각 상대를 제압할 때, 표종성은 빠르고 정확했으며 군더더기가 없는 그 행동 자체가 이목을 끌었지만 동명수는 상대에게 실현해내는 내면의 폭력성과 잔호성이 더욱 도드라지곤 했다.

 

‘동명수도 확실히 좋은 재목이기는 하지만 아직 표종성에 비하면야…….’라는 선생끼리의 사담을 엿들은 동명수는 저가 누군가와 비교되고 있다는 사실과 저의 평판이 더 낮다는 것에 이를 갈았다. 아비의 가호 안에서 동명수는 남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제가 가장 잘 나고 최고인 자였던 것이다. 표종성은 동명수에게 처음생긴 벽이었고, 또한 열등감을 처음 느끼게 해준 존재이기도 했다. 비록 종성 스스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중구가 커피 잔을 마저 비우고선 일어섰다. 그를 따라 장수기 역시 일어섰는데, 아마도 시답잖은 간보기는 여기까지인 듯싶었다. 느긋하게 소파에서 일어선 명수는 여즉 저를 주시하고 있던 무리속의 시선을 흘깃 보고선 문 쪽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듯 턱짓했다. 몰래 밖으로 나오라는 신호였다. 깜빡깜빡, 눈동자들이 답했다.

 

 

“아, 그리고. 그 쪽 형님한테도 안부 전해주지.”

 

 

별 미련 없이 자리를 뜨려던 이중구의 뒤에 대고 장수기가 말했다. 겉치레뿐인 안부 인사였다. 이중구가 그 안부를 석동출에게 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이중구와 동명수가 사무실을 걸어 나갈 때, 신발에선 고무가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장수기는 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무실 문은 살짝 잡아당기기만 했음에도 바람에 밀려 쿵,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이중구가 쯧, 하고 혀를 찼다.

 

 

“먼저 들어가쇼, 성님. 나는 볼 일이 좀 있으니까는.”

 

“뭐? 무슨 볼일.”

 

 

한창 말씨름을 한 탓에 날카로워진 중구의 말투는 모나있었지만, 동명수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내려가는 계단, 미끄럼방지용으로 우둘투둘한 부분에 신발 밑창을 긁어 흙을 떨어내며 걷던 동명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조폭보다는 양아치에 가까운 행색이었다. 간첩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양새기도 했다.

 

 

“여기에 아는 놈들이 좀 있는데, 상황 좀 물어보는 것이 좋지 않겠소? 지금 저들끼리 한창 어떻게 할지 쑥덕거릴 텐데.”

 

 

중구가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떼기 전에 동명수가 덧붙였다.

 

 

“형님은 얼굴이 많이 팔려서 저놈들도 형님하고 같이 있는 걸 장수기, 그 양반에게 들키면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니까 들어가라는 거요.”

 

 

명수의 말에 중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동명수는 이중구를 향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마 이중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동명수의 미소가 장수기의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러질 못했지만.

 

건물 밖으로 나서자마자 동명수는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꺼내 물었다. 표종성이 떠오른 탓인지 기분이 영 좋질 못했다. 볼우물이 깊게 패일 정도로 담배를 길게 빨아들이는 명수를 잠깐 본 중구는 연락하라는 불퉁한 말 한마디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고개를 끄덕이는 둥 마는 둥 하며 명수는 계단에서 그러했듯, 신발 바닥을 바닥에 지익지익, 그어댔다.

 

기분이 행동으로 모두 나타나는 거이 이로울 거 없는 버릇이다. 고치라.

 

실제로 들린 목소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명수는 신경질적으로 움직이던 발을 멈췄다. 신발 코에, 건물그림자와 햇빛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햇빛을 먹은 밤색 구두는 금세 후끈후끈한 열기를 뿜어냈다. 평일 오전, 저마다의 직장에 사람들이 틀어박혀있는 탓인지, 봄답지 않은 후덥지근한 날씨 탓인지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주변에 철거구역이 있는지 우르릉 우르릉 소리가 얼핏 메아리쳐 들려왔다.

 

선생들의 수덕거림을 엿들은 후에, 동명수는 의도적으로 표종성에게 접근했다. 거 얼마나 잘난 인사인디 내 얼굴이라도 비춰줘야디 않갔서? 저를 따라다니는 패거리에게 농지거리를 던지며 우쭐댔던 것은, 제 아비를 믿고 있던 탓이기도 했다. 그것은 동명수에게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패였다.

 

내, 동명수요. 여기 중에 아조 싸움에 일가견이 있다 소문이 자자해서 내, 함 보러 들렀지!

 

으시대며 동명수가 말했을 때, 표종성은 흙먼지 탄 신발코를 툭툭, 털고 있었다. 표종성은 눈만 흘깃 들어 올려 동명수를 보았고 그것이 전부였다. 흠, 도 아니고 콧방귀도 아닌 애매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표종성은 대답을 대신했다. 되레 당황한 것은 동명수였다. 처음 닥쳐온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본디 저의 이름이 또래에서도, 선생들 사이에서도 자자하던 터라 그저 이름 석 자만 대면 ‘아이고, 나으리.’하고 천것이 양반을 맞듯이 납작 엎드리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표종성처럼 어미도 아비도 잘날 것 없고, 돈도, 믿을 구석도 없는 놈들은 더 심했다. 미리부터 잘 보여 줄을 잘 잡으려는 것이었다. 동명수는 그것을 노리고 표종성을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실력으로 금이 간 저의 자존심을, 표종성의 비굴함을 파헤치는 것으로 대신하려는 속셈.

 

하지만 표종성은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일렬의 권력과 어릴 적부터 시작돼온 밥그릇 싸움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교과서적인 남자라고 보는 것이 좋을까. 기저귀 갈 적부터 하루에도 수번씩 듣던 인민과 당에 대한 충성. 표종성은 오로지 그것만을 제 업으로 알고 살았다. 그 어린 나이에서 부터 말이다. 고지식한건지, 우직한 건지.

 

그 후로도 동명수는 표종성의 주변에 얼쩡거리곤 했다. 상해버린 자존심을 어떤 방법을 써서든지 회복하고 싶었던 탓이다. 하지만 모든 방법은 매번 요원했고, 도리어 표종성에게 늘 몇 마디씩 충고를 듣곤 했다. 아마도 종성은 명수에게 조언 내지는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이었겠지만, 동명수가 그것을 순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리는 없었다. 실제로 그 배움이 얼마나 쓸모가 있었든지 간에.

 

동명수가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툭, 던졌을 때 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는 구두소리가 들렸다. 동명수는 건물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밝은 만큼 그림자는 더욱 짙어서, 건물 뒤의 어둑한 그늘은 날씨와 달리 서늘하기까지 했다. 건물을 빠져나온 구두 굽 소리는 잠시간 숨을 죽이기라도 하는 듯 조용해졌다. 걸음을 멈췄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저를 찾는 동지인지, 아니면 그저 저 갈 길하나 못 찾고 고민하는 얼간이들인지는 좀 더 기다려야 판가름이 날 터였다. 잦아들었던 소리는 좀 더 은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살금살금 이라는 의성어와 딱 맞아떨어질 만큼.

 

 

“여기다.”

 

 

주위를 살피는 자들을 먼저 본 것은 동명수였다. 명수는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고선 주의를 끌었다. 서너 명이 고개를 꾸벅하고선 건물 뒤로 들어왔다. 어릴 적부터 보고 지낸 얼굴도 섞여있었다.

 

 

“잘 들 들으라. 내래 당에서 명령을 받았, 이야……, 먹고살기 좋은가 보다.”

 

 

말을 하다 끊은 동명수는 오른편에 서 있던 사내의 금시계를 손으로 툭툭 치고선 씩, 웃었다. 호선을 그리는 입매와는 정 반대로 미동하나 없는 눈은 이질적이었다. 칭찬이 아님은 너무나도 확실한지라,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동명수는 근드렁대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다시금 우르릉, 하는 소리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나 울렸다.

 

 

“이케 지 배에 기름칠 할 생각이나 하니까네 일에 진척이, 어이! 하나도 없는 거 아니갔서?”

 

 

호선을 그렸던 입술이 무색하게 다음으로 이어진 말은 강하고 뾰족했다. 남조선에 내려오더니 사람 다 쓸모없어졌다는 말을 동명수는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물론, 들으라고 하는 소리임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사내들은 움츠렸다. 저보다 나이도 적고 경험도 적은 어린놈이지만 실질상 우두머리는 동명수나 다름없었다. 동명수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내려오지도 않은 명령을 운운하며 이들을 다루려 드는 것이었다.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가벼운 징계로 끝나지만은 않을 테지만,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동명수는 재범파를 가장 세력이 견고한 집단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야 저의 위신과 아비의 위신이 살고, 그것은 저의 권력 문제로 이어질 테니까.

 

제 아들 찾기에 여념이 없는 리학수만 믿고 있다가는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 마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동명수의 판단이었다. 일을 제대로 하긴 하지만, 리학수에게는 간절함이나 절박함이 부족했다. 그의 그런 벼랑 끝의 감정들은 모조리 잃어버린 아들에게 향해있었으므로. 동명수는 리학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동명수가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리학수를 제외하고서도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북의 인물이 몇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리학수와 동명수는 당의 가장 중요한 카드라든지, 버릴 수 없는 패 따위는 아니란 의미였다. 때문에 동명수는 더욱 안달이 난 상태였다. 언제든지 내쳐질 입장에 서는 것은 스스로도 용납할 수가 없었고, 누군가 저보다 앞서 나가는 것 또한 방관하기 싫었다. 저가 잡을 수도 없게, 휘적휘적 나아가 버리는 것은 표종성, 그 하나로도 차고 넘쳤다.

 

 

“조만간 움직일 느이 패거리 동향을 하나도 빠딤없이 내게 전달하라. 알갔서? 이번 일 잘 마무리 되며는, 내래 아바지에게 잘 말해 줄 테니까.”

 

 

은밀한 숙덕거림에 사내들은 싫단 말 하나 없이 복종했다. 김정일의 최측근에서 권력을 쥐고 흔드는 동중호의 눈에 보여 나쁠 것은 하나 없었다. 잘만하면 북에서의 계급장이 몇 단계는 껑충 뛸 지도 몰랐다. 명수의 말이 끝나고, 무리지어 숙덕거리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야욕을 마음 한편에 그러안고 흩어졌다. 동명수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일만 제대로 풀려준다면, 표종성 따위야 아무렇지 않게 짓밟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보다 먼저 높은 계급장을 달고, 그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비록 표종성이 동명수의 최후의 목표는 아니었으나, 그런 상상은 동명수의 기분을 추켜올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했다.

 

동명수는 입을 길게 찢으며 웃었다.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리학수와 그만을 맹목적으로 좇는 이중구, 그리고 그 아랫것들까지 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으니, 이제 강남권, 그리고 후에 화룡파와 싸워 강북까지 틀어먹으면 실질적은 우두머리는 제가 될 것이었다. 그것은 퍽이나 그럴싸하고 기분 좋은 계획이었다.

Posted by 백은수

“잴 거 없이 모레 작업 들어간다.”

 

 

한솥밥 먹은 지 좀 된 놈들을 모아놓고 중구는 앞뒤 없이 말했다. 개중에 중구의 말을 이해한 것은 명수뿐이었다. 기껏해야 상훈 정도일까, 눈치도 고만고만한 놈들은 고 험악한 얼굴로 벙한 표정을 지어내며 중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 나, 이 눈치라곤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놈들. 중구가 툭, 던지듯 말하며 담배를 입에 물자 상훈이 냉큼 불을 붙였다.

 

중앙에 일인용 가죽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중구의 발끝이 테이블에 닿을락 말락했다. 양 옆으로 서넛은 족히 앉을 소파 둘이 마주보고 앉았는데, 왼쪽 첫자리에는 상훈이, 오른쪽 첫 자리에는 명수가 앉아있는 상태였다. 이들에게 사업 문제로 출장을 간 동출의 빈자리는 익숙하다 못해 일상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동명수는 사업을 핑계로 제 아들을 찾아다니는 동출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지만 부러 모른 척 하는 중이었다. 석동출이 조직에서 멀어질수록 동명수에게는 제 잇속을 챙길 기회가 많아지는 셈이었다.

 

 

“그, 형님. 뭐가 모레란 건지…….”

 

“강남 정리 시작한다.”

 

 

점심메뉴를 정하듯 중구는 가볍게 말했고, 몇 놈이 예에? 하고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뭘 그렇게들 놀라?”

 

“하지만 제일파 놈들도 뻔 하게 버티고 있잖습니까.”

 

 

중구가 명수에게 했던 질문이, 이번에는 중구에게로 날아왔다. 중구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아아, 제일파?’하고 느긋하게 되물었다. 깊게 빨아들였다 뱉어내는 담배연기를 곧바로 코로 들이마시며 중구는 제 주변을 한번 휘, 훑었다.

 

 

“그 새끼들하고는 내가 알아서 얘기해볼 테니까 니들은 준비나 하고 있어.”

 

 

차지한 곳의 일정구역을 나눠준다던지, 어디어디 파는 건들지 않는다, 따위의 거래일거라고 명수는 짐작했다. 제일파 수장, 장수기라는 놈도 약아빠진 구석이 많아서 아마 그 제안을 거부하진 않을 것이었다. 끓는 피 제대로 식지도 않은 30대, 혹은 갓 40에 올라선 대가리들은 종종 전후 사정이나 판이 돌아가는 형세도 보지 못하고 눈앞의 먹이만 덥석 무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기 한번 펴볼 사이도 없이 생을 달리하기도 했다. 제일파가 여지껏 살아남았던 것은 만사에 조급함이 없어서일지도 몰랐다. 가끔은 수읽기를 하느라 정도이상으로 느리게 움직이긴 했지만.

 

중구 네들이 강남을 정리하는 사이에 제일파가 달려든다면 강남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될 것이었고, 강북을 집어삼킨 화룡파가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최악의 상황엔 제일파, 재범파 할 거 없이 공멸할 터였다. 하지만 장수기는 수가 제법 밝고 신중한 사람이었고, 아마 이것까지 염두에 둘 것이었다. 서로 건들지 않겠다는 불가침조약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장수기가 화룡파의 눈치를 보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사이 운만 좋다면 재범파는 강남의 반 정도는 먹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일단 오늘 제일파 새끼들 만난다음에 다시 자세한 얘기 해줄 테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어라. 알겠냐?”

 

 

중구의 말에 예에, 하고 낮은 목소리들이 합창했다. 동명수는 대답하지 않고 건드렁건드렁 발을 까닥였다. 꿍꿍이속이 있는 눈치였다. 상훈이 못마땅한 눈초리로 동명수를 흘겨보았다. 말이 흘겨 본 것이지 표정만 봐서야 살인이라도 할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기곤 있다지만 상훈에게 명수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라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나가서 일들 봐.”

 

 

손을 휘적휘적 내저은 중구가 엄지와 검지로 담배를 매만지더니 한 모금 깊게 빨았다. 명수가 느긋하게 중구가 하는 냥을 눈으로 훑었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서면 가죽소파에선 삐걱삐걱 결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상훈은 마지막까지 남아 명수가 일어서길 기다리는 눈치였는데 명수는 짐짓 그것을 모른 체했다. 중구는 별 말이 없었고 명수와 상훈은 계속 말없이 버팅겼는데, 끝내는 적막이 어색한 듯 상훈이 먼저 일어나 나갔다.

 

나가며 문을 닫는 상훈에게 곁눈질을 하며 명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다리를 벌리고선 상체를 앞으로 숙였는데, 음험한 작당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가는데 나 데려가쇼.”

 

“뭐?”

 

“성님이 제일파 놈 혼자 만나러 갈건 아니잖소?”

 

 

동명수의 제안에 이중구는 뭐라 말을 하려 입을 열었다 다시 가만 다물었다. 타들어가는 담배 끝이 필터를 향해 조금씩 전진하는 중이었다. 아슬아슬 담배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회색 재 속에 불씨가 붉게 탔다.

 

 

“혼자 갈지 둘이 갈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안다고 그러냐? 내 머릿속이라도 뒤졌수? 으응?”

 

 

동명수가 픽, 웃었다.

 

 

“그걸 모르는 놈이 등신천치지. 나하고 간보기 그만하고 그냥 알았다, 하쇼.”

 

“네가 거길 왜 가는데?”

 

“그럼 성님 가는데 누가 간단 말이오?”

 

 

중구가 혀를 쯧, 하고 찼다. 하여간에 필요 이상으로 당당하고 싸가지 없는 새끼…….

 

 

“여하튼 그리 알고 데려가기나 하요.”

 

 

중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담배를 재떨이에 지졌다. 타들어가는 담배소리에 동명수는 광대를 움찔거렸다. 가끔 반동분자니 뭐니 하면서 애비에게 끌려 들어온 연놈들의 살을 지질 적에 저런 소리가 났었다. 명수에게 그것은 딱히 악몽처럼 끔찍하다거나 괴롭다거나 할 종류의 일들이 아닌 과거의 한낱 일상이라서, 회상은 그저 회상으로써 그쳤다. 옳고 그름의 잣대가 서기도 전부터 온갖 행태를 보며 자란 동명수에겐 연민이나 측은지심은 존재하지 않았다.

 

동명수는 테이블에 일어난 거스러미를 뭉툭한 엄지손톱으로 몇 번 긁어대다 기어코 잡아 뜯었다. 원목가구마냥 칠해졌던 테이블의 한 귀퉁이가 허연 속살을 내비쳤다. 이중구가 몇 마디 툴툴댔지만 동명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난 주변에서 일 좀 보려니까, 출발 전에 연락하쇼.”

 

 

사무실 바닥에 신발 밑창을 두어 번 문질러 닦은 동명수가 느직하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구는 나가기나 하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을 뿐이었지만 명수는 그것이 알았으니 가보라는 의미임을 알고 토를 달지 않았다.

 

 

***

 

 

“유치원은 보내야 하잖…….”

 

“시끄러워. 내 말 안 들려? 그냥 여기서 키워.”

 

 

눈이 잔뜩 핏발선 여자는 남자의 말에 주춤, 하고 몸을 물렸다. 습관화 된 방어적 행동 중 하나였다. 남자는 그 사실을 알았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길들여지지 못한 바에야 겁먹어 순종적이기라도 한 것이 낫다는 것이 남자의 생각이었으므로.

 

서울역에 내다놔도 하등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덥수룩하고 정돈되지 못한 머리, 깨끗하게 빨았음은 분명한데도 몇 년은 입은 듯 때가 탄 옷. 그리고 그런 남자의 차림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여자는 헐겁게 묶은 머리에서 잔머리가 비져나와 한층 더 엉망으로 보였다.

 

키득키득, 머리 숱 적은 사내 하나가 거실 소파에 느긋하니 기대 앉아 둘을 관찰했는데, 손에는 잘 벼려진 나이프가 허공으로, 손가락 사이로 너울너울 춤을 추는 중이었다.

 

 

“이야, 형수님 담이 많이 컸어? 그렇게 자기 의견도 내세우는걸 보면? 안 그래? 크크…….”

 

“혀, 형. 그래도 애, 애, 교육은…….”

 

 

칼을 손에 쥐고 장난질 치던 사내가 흘깃 눈길을 준 곳엔 또 다른 남자 하나가 안절부절 못하는 중이었다. 두어 걸음 뒤편엔 좀 더 젊은, 호남형의 남자가 뭐가 그리 불만인지 부루퉁한 표정이었는데 금방이라도 잔뜩 성을 낼 것 같기도 했다.

 

 

“진성이는.”

 

 

남자가 말했다. 성을 내는 여자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소, 소, 손님, 왔다고 그래서…….”

 

“그래?”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 되물음이었다. 말더듬이 남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바지춤에 땀이 흥건한 손바닥을 문질러 닦았다. 남자는 이런 팽팽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나 저가 오랜 세월 보고 자란 윤석태가 중심이 되는 긴장감은.

 

까만 가죽소파들과 실제로 불을 붙일 수 있는 벽난로, 마당과 전면을 볼 수 있게끔 만들어진 전면 유리창까지. 꽤나 고급스러운 단독주택이었으나 그 내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철제 창살이나 어둑한 지하실 통로 따위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겨, 집은 마치 폐가와 가정집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베이지에 가까운 연한 황토빛 외벽으로 지어진 집 옆에는 대형 비닐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었고, 마당보단 공터란 말이 어울리는 휑한 집 앞에는 수십 개의 비료푸대와 함께 ‘분재 석화원’이라는 간판이 먼지한번 닦인 적 없어 뿌옇게 손님을 맞고 있었다. 석화원이란 이름은 집의 소유주이자 화원을 운영하는 실 사업자인 윤석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는데, 정작 묘목을 사러간 사람들은 주인이란 사람보단 그의 동생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진성을 더 자주 만나곤 했다.

 

윤석태는 장사보단 묘목 가꾸기에 더욱 치중하는 편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심히 몰두하는 정도도 아니었다. 사실 집에 사는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분재를 가꾸고 장사하는 일에 큰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뱃속을 불려주는 수입원이 따로 있었고, 지금 하는 사업은 그저 표면상으로 멀쩡함을 위장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다섯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어린 애까지. 도합 일곱이 살고 있는 그 집은 대한민국의 강력계 형사들의 골머리를 꽤나 썩이고도 잡히는 일이 한번 없던 일명, ‘낮도깨비’의 아지트였던 것이었다.

 

구성원 중 유일한 여자인 영주는 석태와 같은 인천 성지 보육원 출신이었는데, 거의 반 감금상태로 이들과 지낸 것이 몇 년이었다. 처음에는 몇 번이고 도망만 가려한 영주가 괘씸했는지 석태는 영주의 엄지발가락을 자르는 잔혹성까지 보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낮도깨비 소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던 영주는 석태가 납치해 온 아이를 떠맡게 되면서부터 얌전히 집에 붙어있게 되었다. 영주가 떠맡은 아이는 표면적으론 다섯 명의 범죄자 아비를 둔 상태였고, 그 껍질을 까발리면 임형택의 자식이었는데, 당시 납치에 가담했던 낮도깨비 중 어느 누구도 임형택의 아들이라는 껍질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비밀, 즉, 실상 아이가 리학수의 아들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유치원 보내면 초등학교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어떻게 생겨난 앤지 숨기고 보내기엔 너무 위험해. 금방 들통날거야. 내가 말했지, 스타일에 안 맞는다고. 골머리 썩기 전에 죽였으면 좋잖아?”

 

 

구성원 중 가장 어린 사내, 범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귀찮은 애완동물 하나 들였다는 투였다.

 

 

“화, 화, 화이. 주, 죽이면 안 돼.”

 

 

우물쭈물 눈치를 보던 말더듬이 남자, 기태가 범수를 우려스럽게 바라봤다. 기태의 말에 범수는 아무려면 어떠냐는 듯 흥, 하고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납치한 아이를 키우려고 결정한 후 가장 첫 번째 문제는 아이의 이름이었는데, 그의 친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그대로 불러 위험을 자초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뉘 집 개 이름 붙여주듯이 메리, 해피를 운운하며 낄낄대며 아이를 부르거나 이거, 혹은 저거로 칭하던 와중에 석태는 누구와의 상의도 없이 아이의 이름을 정했는데, 석화원에서 기르고 있던 향나무의 종류 중 하나인 화이 목에서 따 온 것이었다.

 

화이. 석태에 결정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영주도. 그렇게 화이는 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물론, 아직까지 완전한 융합은 아니었지만.

 

 

“누가 화이를 죽인다고 그래? 응? 걱정하지 마. 우리 아들인데. 안 그래?”

 

 

한창 칼장난을 치던 남자가 툭툭 던지듯 말했는데, 얼핏 보면 외양은 머리 벗겨진 중년의 대리 같은 느낌이었으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어느 누구보다 장난기가 그득 담겨있어, 남자에게선 삐에로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사내의 이름은 동범이었는데, 손에서 칼을 떼어놓지 않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칼을 다루길 좋아하는 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칼 예찬론자였는데, 항시 작업에 들어갈 적이면 총을 챙기는 범수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기도 했다. 동범은 소파에 앉은 채로 고개를 뒤로 꺾다시피 젖혀 범수를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범수는 동범을 흘깃 볼 뿐 대답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집어넣는 추임새에 신경이 사나울 법도 하건만 석태는 영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윤주는 그 눈초리를 잘 알고 있었다. 감히 네가? 하는 식의 표정. 석태는 윤주가 저의 말에 토 다는 것이 아니꼬운 것이었다. 윤주도 그것을 잘 알았고, 조금만 더 하다가는 또다시 개 패듯 맞을 것임을 알았지만 쉽게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어디서 납치 해다 온 남의 새끼라곤 하지만 기르다 보면 생기는 모정도 모정이라. 이런 놈들 틈바구니에 걸려 들어온 아이가 안타깝고 불쌍했고, 저의 처지를 실감시켜주기도 해서 영주는 저가 누리지 못했던 평범한 자유를 아이에게라도 누리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그것이 석태에게 통할리가 없었지만.

 

 

“가서 밥이나 차려.”

 

 

석태가 말했다.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영주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밥 차리라는 말에 긴 치마 속에 가려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잠깐의 정적 후에 결국 영주는 발가락이 잘려나가 성치 못한 걸음걸이로 주방으로 향했다.

 

형수님, 난 고기반찬! 크크크크! 분위기를 모른다는 듯 동범이 낄낄대며 영주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Posted by 백은수

동명수가 항시 이중구의 곁을 지키던 상훈을 밀어내고 옆자릴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석동출의 입김이 셌다. 이중구나 유상훈, 여타 다른 조직원의 눈에 올바른 처사로 보일리가 없었으나 말 그대로 까라면 까야하는 곳에서 일의 정당함을 논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한번쯤 이중구가 왜냐고 넌지시 동출을 떠 보기도 했으나, 동출은 말을 아꼈다. 실제로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직에 들어오길 원한 것은 동명수였고 석동출, 즉 리학수는 동명수의 행동을 막을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명수의 말로는 좀 더 가까이서 프로젝트의 진척 사항을 보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저 어물전 앞의 생선을 보는 고양이마냥 리학수가 건립한 조직을 잡아먹으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뿐이었다.

 

동명수가 2인자인 이중구의 자리를 꿰차지 않고 그 아래로 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간 것은 다만 어린 나이에 재범파의 주요직을 얻어냈다며 세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지, 이중구를 높게 샀다거나 어떤 감정 때문은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국적하나 없는 신세였기 때문에 눈에 띌수록 동명수의 입장에선 일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성질머리 하는 동명수가 저렇듯 대놓고 저를 무시하는 이중구를 속 좋게 따라다는 것도, 석동출을 몰아내고선 여차하면 이중구를 허수아비로 내세우려는 계획을 바탕에 둔 행동이었다. 물론 석동출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동명수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날 선 맹수를 대하듯 이중구를 천천히 구워삶는 것이 시간이 들더라도 안전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동명수의 예상을 조금도 빗나가지 않은 채로 시간은 무상하게 흘렀다.

애초에 사내들이란 본디 저들 마음속에 꽁하니 담아두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족속들인지라, 저의 자리를 빼앗긴 유상훈은 애써 대범한 척 동명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첫 날에야 버릇없는 놈이라며 명수를 자근자근 씹어대기 바빴던 놈들도 금세 새로운 구조에 순응해 나가는 중에 이중구로서도 마냥 인상이 안 좋다는 이유로 동명수를 멀리할 수는 없는 형편이 된 것이었다. 처음 며칠을 제외하고 동명수의 일처리에 미흡한 점도 없어, 더욱 그러했다.

 

 

“큰형님이 자리를 좀 넓히는 게 어떠냐고 하시는데.”

 

 

재범파에 들어온 지도 한 달 남짓, 이제는 익숙해진 사무실 소파에 몸을 파묻다시피 앉은 명수가 제 귓바퀴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이리저리 자란 반 곱슬머리가 정신 사나웠다.

 

 

“형님이?”

 

 

중구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불퉁하게 반문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근래 들어 석동출이 엄연히 바로 아랫놈인 저를 두고서 새로 들인 동명수를 끼고 돌며 온갖 작당을 하는 낌새를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이런 소식은 제 입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지, 남의 입에서 들어야 할 소식이 아니라는 것도. 중구는 신경질적으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어제 말씀하셨소. 강남이든 강북이든 일단 한쪽을 다 집어삼키자고.”

 

“에이, 씨발. 우리는 안 그러고 싶어서 이러고 있나. 지금 상황 보면 몰라? 치는 쪽이 먼저 뒈지는 거야. 다 같이 눈치싸움 중이라고.”

 

“알면서 치자는 것 아니겠소. 경찰 쪽 눈치가 심상치 않다던데, 이러단 너나없이 죽는 판이라 그러요.”

 

 

말하고선 동명수는 큼, 하고 목을 두어 번 가다듬었다. 입에 익었다곤 생각하지만 혹시나 저도 모르게 이북 말이 튀어나올까 명수는 매 입을 열적마다 조심하는 중이었다. 가끔가다 애매한 억양이 튀어나오기도 했는데, 의심받을 정도는 아니라 다들 어디서 사투리가 잘못 입에 배었겠거니 여기곤 했다.

 

동명수는 이중구가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뜸을 들이는 냥을 가만 관찰했다. 깡패니 조폭이니 해도 대가리들은 나름대로의 ‘사업’이란 것이 있는지라 오색찬란하고 유치하다 못해 촌스러울 지경인 셔츠와 티로 무장한 놈들 사이에서 이중구는 혼자 버젓한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아마 저것이 유명한 브랜드, 혹은 맞춤 정장이면 저 태가 더 살 거라고 생각하며 동명수는 발을 까닥였다.

 

갈기갈기 조각이 났던 판권이 정리가 되기 시작하고 수 개로 추려진 조직들이 한창 세력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아차, 하는 순간 공중분해가 되기 일쑤라 누구하나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판국이기도 했다. 아슬아슬한 균형상태. 석동출은 지금 이 살얼음 같은 균세를 깨트리려 하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정세를 살피기만 하던 동출이 갑작스레 일을 진척시키려 드는 것은 북에서 내려온 지시 탓이었다.

 

 

‘북측에서 성과를 원하고 있디 않겠소? 거 자투리만한 양아치 집단 구하자고 그 많은 자금과! 어이? 인재를 여 들인 것이 아니란 소립네다.’

 

 

조직 사정을 하나 둘 알아가면서 동명수는 마치 갑과 을의 관계처럼 석동출을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동명수는 대단히 중요하고 위급한 사한에 대해 떠드는 냥 석동출을 다그쳤지만 실제로 위에서 하달된 것이라고는 동중호가 제 아들인 명수에게 사적으로 보낸 전갈뿐이었다. 석동출은 동명수의 거짓을 알 재간이 없었다. 동중호가 미리 손을 써 놓은 탓에 석동출과 북이 연락을 하는 데는 반드시 동명수가 개입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동명수가 꾸며낸 당의 명령을 믿고선 석동출은 조직을 움직이게 된 것이었다. 저의 유능함을 당에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난 동명수를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석동출의 온 신경은 저의 아들 소식을 찾는 것에 집중이 된 탓이었다. 그 때문에 실제로 사업의 최종 결정은 동출의 몫이라고 할지라도 그 전에 벌어지는 일렬의 과정들은 모조리 이중구의 소관이 되곤 했다. 동출에게 잃어버린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이중구는 다만 큰형님이 저를 이토록 믿어주는구나 넘겨짚을 따름이었다.

 

 

“지금 강북권은 화룡파가 대충 정리중이라니까 처음부터 대가리끼리 싸움 붙었다 엄한 놈한테 자리 뺐기지 말고 강남먼저 정리하자고, 큰형님이 그랬소.”

 

 

물론 석동출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저 좋을 대로 이야기를 꾸며내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동명수는 잘 알았다. 꾸며낸 이야기임을 알 리 없는 이중구는 동명수의 말을 의심하기 보다는 단시간에 강남권을 틀어쥐고 강북으로 올라가는 것이 가능할는지를 고심할 뿐이었다.

 

 

“……말처럼 쉽겠냐? 제일파도 뻔 하니 버티고 있고, 요즘 지방 놈들이 자꾸 기어들어오는 거 몰라?”

 

 

엄지손톱을 파내면서 동명수는 이중구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전략적 동지라는 게 있잖소? 제일파 그놈들도 요즘 사업이란 걸 해보겠다고 일을 벌이는 중이라니까 어디 좋은 자리하나 알선해주고 서로 노터치 하는 걸로 합의 보면 될 거 아뇨.”

 

 

입에 문 담배를 만지작대던 이중구는 대충 무슨 소린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담뱃불을 붙였다. 싸구려 여관 담배. 겨우 겉만 그럴싸하게 사업체로 꾸미고, 사무실을 새 단장했을 뿐이지 아직 그렇고 그런 깡패 무리라는 딱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재범파의 현 상황을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 동명수가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칠을 하고 단장을 해 놓은 사무실도 간신히 구색만 맞춰놓은 것이지, 한쪽 구석에는 여전히 틈날 때면 사용하는 연장이 수두룩했고 사업장으로 등록이 된 이 건물도 당장에 이중구의 사무실 밖으로 나가기만하면 사업은 고사하고 건물 한 채에 온통 나 조폭이요, 얼굴과 문신으로 선전하고 놈들이 우글거렸다.

 

동명수는 그것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르는 놈들이야 북한 놈들 다 같이 굶주리고 멀건 죽으로 끼니 때운다고 하겠지만 실상은 그와 달라서, 동중호나 기타 고위 간부급 쯤 되는 집안은 한평생 배불리 먹고도 제 손자까지 놀고먹을 수 있는 자금줄을 쥐고 살았다. 말하자면 동명수는 북한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엘리트 집안인 것이다.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지내온 저가, 이토록 보잘 것 없는 뜨내기들과 같이 대우 받지 못하는 것이 동명수로서는 모욕적이기까지 한 일이었다.

 

동명수가 이토록 세력 확장을 서두르는 것엔 이런 기분문제가 바탕에 깔려있기도 했다. 저가 저 수준에 맞춰주기 싫으니 어떻게든 주변을 그럴싸해보이도록 끌어올리려는 것이었다.

 

 

“뭐……, 그러면 네가 애들 시켜서 제일파 소식, 굵직한 걸로 좀 물어와라. 건수가 있어야 우리도 씨발, 작업을 들어갈 거 아니냐?”

 

 

이중구가 한 모금 길게 빤 담배를 재떨이에 지졌다.

 

 

 

 

“으따, 느도 짱깨새끼냐? 존내 반갑다야.”

 

 

가래침을 탁, 뱉으며 까까머리 사내가 말했다. 구부정한 자세 탓에 본래보다 작아 보이지만 자성과도 비등한 키다. 실없이 웃는 면은 순박해 보이기까지 할 지경이었으나 주변에 널브러진 사내들과 굴러다니는 사시미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도 했다. 자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초장부터 간이고 쓸개고 내줄 놈처럼 알랑방귀 뀌지 마. 알아듣지? 깡패새끼란 놈들은 저들한테 잘 해주면 아, 이 새끼 꿍꿍이가 있구나하니까.’하고 단단히 주의를 주던 강형철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반듯하게 올렸던 옛적의 머리 대신 곱슬한 앞머리를 자연스레 내린 자성은 최대한 불퉁하고 딱딱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내려 애썼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긴장을 숨기려 잔뜩 굳은 얼굴근육 탓에 충분히 사나워 보였지만 말이다.

 

 

“씨빠, 뭔 놈의 주둥이에 풀칠을 했냐. 말이 없어야. 여하튼 간에 중간에 안 토끼고 같이 싸워서 고맙다잉?”

 

 

정청은 손에 묻은 피를 바지춤에 문질러 닦으며 바닥에 뒹구는 몸뚱이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내가 먼저 벼르던 참이라 그런 거요. 도와주긴 뭘…….”

 

“도와줬으면 준거지잉. 아야, 이름이 뭐냐? 내는 정청이여.”

 

 

자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기회를 보던 것만 수 달 째였다. 신분을 바꾸고, 여수로 내려와 길바닥을 굴러다니며 그럴싸한 사람을 물색하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 것이. 그 사이 들어오고 나가는 조폭들의 이름이야 수십 번은 훑었고 매일 허탕뿐인 보고서를 강형철에게 내는 것이 이제는 미안할 지경이었다. 이미 여수골목 뜨내기들 사이에선 제법 안면식이 있는 자성이었지만 소위 ‘스카우트’라는 것은 고등학교에서 쟁쟁한 어린놈들을 뽑아다 쓰는 경우가 대다수라 고만고만한 양아치가 아닌 조폭무리에 끼는 것이 마뜩찮기도 했다. 거기에 여수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와는 달라서 두 다리만 건너면 양아치, 건달, 조폭 할 거 없이 서로 사정을 빤히 알 정도라 견제가 여간 심한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자연스레 새 조직을 만들겠다는 놈도 도통 보이지가 않는 것이었다. 조폭 놈들을 모두 감방에 넣겠다는 처음의 포부는 어디가고, 일다운 일이라도 해 봤으면 좋겠다는 조바심이 마음에 가득 찰 정도였는데,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더니, 그게 오늘인가 싶기도 했다.

 

 

“나는, 이자성이요.”

 

 

말하면서 자성은 목을 가다듬었다.

 

정청은 누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었다. 양 옆으로 당겨지는 입술은 여기저기 터지고 찢어진 상태였다. 야차 같은 모습이었다. 이자성은 마주 웃는 대신 손등으로 제 입술을 문질렀다.

 

정청. 가장 최근 서류에서 훑어 본 이름이기는 했으나 이렇다 할 사건사고가 없어 이름만 겨우 알던 인사였다.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그런 놈이려니 했는데 자성은 제가 잘못 짚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좁은 땅바닥에서 배 불릴 궁리만 하는 놈들과는 뿌리부터 다른 놈이었다. 강형철에게 말해봤자 ‘그래봤자 다 같은 깡패새끼’라는 말만 들을 테지만, 어쨌건 자성이 느끼기엔 그랬다.

 

자성의 코를 바닷바람이 간질였다. 비린 냄새는 날 것으로 펄떡이는 바다의 것인지, 피 범벅인 이 골목의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좁은 여수바닥은 한 달만 살아도 어딜 가야 사시미 들고 설치는 종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자성은 오늘도 건수를 잡으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골목 통을 누비던 중이었다. 혹시 새로 생기는 조직은 없는지, 아니면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단 얘긴 없는지 귀동냥을 하려던 것도 있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한바탕 시비가 붙은 것을 본 것이었다.

 

너 다섯 쯤 되는 놈들이 사내 하나를 둘러싸고선 낄낄대며 비웃적대는 중이었는데 얼핏 듣기로는 중국, 짱깨 하는 소리였다. 자성과도 일면식이 있던 무리였는데, 항시 자성만 보면 짱깨 놈들이니 오랑캐 새끼니 하며 시비를 걸곤 했던 놈들이었다. 저기에 엮여선 하나 좋을 거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자성이 발길을 틀려 했지만 무리 중 한 놈이 자성을 발견한 것이 먼저였고, 자성은 졸지에 정청과 같이 출신성분에 관한 이런저런 모욕적인 언사를 듣게 됐다. 적당히 했으면야 이 바닥 사내들 입 더럽고 말 험한 거 모를 리 없는 정청이나 자성이나 개가 짖는구나하고 가만 넘어갔을 것을, 부모에 조상까지 들먹이며 말이 도를 넘은 것이 화근이었다.

 

서글서글 웃던 정청이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고선, ‘근데 이 씨뻘놈들이…….’하고 언제 꺼냈는지 모를 사시미로 가까운 놈의 배때기를 냅다 쑤셨고 덩달아 자성도 제 앞의 놈을 발로 차버리면서 싸움판이 시작돼버렸다. 그리고 지금, 정청과 자성을 제외한 모두가 바닥에 엎어져있는 것으로 싸움은 마무리 됐다.

 

 

“내가 짱깨새끼 본 게 오랜만이라 존내 반가워서 그런는디 같이 술이라도 빨자. 씨빠, 생긴 건 존나 비리비리헌 섀끼가 쌈박질은 제법이라 놀랬다야.”

 

 

자성은 잠시 침묵했다. 정청이 입에 고인 핏물을 뱉었다. 정청을 눈치를 살핀 자성은 최대한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뭐, 그러든가.”

Posted by 백은수

“거, 아새끼야 다시 낳으면 되는 거이 아니오?”

 

 

스물도 채 되지 않은 놈의 입에서 나올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잔혹하고 무자비한 언사였다. 마음 같아서야 저놈의 주둥이를 틀어막고 모가지를 분질러버리고 싶었으나, 상대는 동중호의 아들이었다. 동명수. 어린 나이에 촉망받고 있는 인재기도 하거니와 당의 자금을 틀어쥐고 있는 동중호의 유일한 혈연이기도 했다. 그만큼 동중호가 제 아들을 애지중지하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근영을 얼굴도 모르는 놈들에게 빼앗기고 난 것이 작년의 일이었다. 아직도 아내는 밤중이면 아가, 아가 하면 제 자식을 찾았고 학수역시 애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곤 할 지경이었는데, 놈은 그토록 쉽게 말을 뱉었다. 마치 소모품을 거론하기라도 하듯이.

 

동명수의 이름은 수련생 시절부터 자자했다. 북한을 위해 목숨 바칠 특수부대는 어릴 적부터 그 기량과 자질이 뛰어난 학도들만을 엄선해 훈련을 시키는데, 동명수는 그 또래 중에서도 이름을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뛰어난 습득력과 신체능력 뿐만이 아니라 감정이 없다고 봐도 좋을 지경의 잔인함 때문이기도 했다. 열네 살이 되던 해 맨손 박투에서 동명수는 상대의 다리를 꺾어 불구로 만들었고, 이듬해에도 동급생 하나를 반 불구로 만든 전적이 있었다. 위아래도 가리지 않는 무대뽀였는데, 그 성미가 꼬투리를 잡히지 않은 것은 순전히 제 아비의 막강한 권력 탓이었다.

 

IMF 탓에 재기할 발판마저 잃은 성지 시멘트를 당에선 버릴 패로 선정했고, 아들을 찾을 기회도 없이 리학수와 아내는 그대로 본국으로 소환됐다. 리학수가 당에 선처를 구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당에 대한 충성심이 고작 그 정도냐.’는 비난만 몰아칠 뿐이었다. 아이의 생사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리학수에겐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차선책으로 리학수가 선택한 것은 다시금 남파 공작원 부대에 발령이 나는 것뿐이었다. 가능성이야 희박했지만 그나마 생이별한 아들을 찾게 남으로 보내달라는 요청보다야 먹힐 법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당에서 귀국한지 고작 일 여년뿐이 되지 않은 리학수를 다시금 내려 보낸 데에는 동중호의 입김이 셌다. IMF만 아니었더라면 리학수를 통해 프로젝트를 성공할 가능성이 보였다는 주장과 더불어 대신에 혹시나 아들을 찾겠다고 눈을 돌리지 못하게 믿을만한 감시자를 붙이자는 것이 동중호의 의견이었는데 물론 동중호가 추천한 감시인은 저의 아들, 동명수였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행동이었는데도 권력이 권력인지라 아무도 고 속내를 콕 집어 비판하지 못했다.

 

동중호는 리학수의 감시를 빌미로 내려 보낸 아들을 통해 남한까지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것이 분명했다. 리학수 역시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아들 소식을 건질 수 있을까 싶어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선 남한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비행기에서 동명수는 내내 리학수가 저의 핏줄에 연연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황된 것인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해댔는데, 제 아비를 등에 업고서 여기까지 올라온 놈이 하는 짓거리를 봐주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내는 리학수를 보내던 날 밤, 그저 생사만이라도 알아와 달라며 울음을 터뜨렸는데 리학수는 그마저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99년도, 다시금 남으로 내려온 리학수는 임형택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 매번 받을 때마다 어색한 새 이름은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고 나서야 입에 겨우 붙는 수준이었는데, 저의 새 이름과 학력, 가족관계 등을 모조리 외워야 했던 리학수에 반해 동명수는 저의 본 이름을 그대로 지니고 국경을 넘어 특별히 암기할 것 하나 없이 남조선에 발을 디뎠다. 둘의 차이는 허상과 실체에 있었다. 그것이 조작된 것이든 아니든 리학수가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상태라면 동명수는 서류상으론 그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인물, 이른바 ‘고스트’의 상태였던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리학수는 실패했던 프로젝트를 다시 한 번 시도해야하는, 즉, 온전히 남조선 국민의 일부가 되어 그 속을 좀먹게 해야 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동명수는 오로지 리학수의 감시만이 주 임무였으니.

 

 

“거, 요번에는 애초부터 격투 하는 놈들을 모아다가 기업을 차린다 했디요?”

 

“기래. 당에선 일의 진전이 빠르길 바라는 모양이야. 내래 해 보겠다 했고.”

 

“준비는 많이 하셨습네까? 오기 전에 신체검사를 받은 기록을 좀 봤는데, 몸이 옛날 같지 않으신 거 같아 하는 말입네다.”

 

 

명백한 조롱의 어투였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리학수는 말을 아꼈다.

 

 

“기러고 요번에 받은 이름이…….”

 

“석동출이다. 이름 정도는 외우라.”

 

“알고 있습네다. 기저 확인 차 물어본 거이디.”

 

 

능글 하니 웃으면서 동명수가 받아쳤다. 공작 자금으로 받은 것이 있으니까네, 사람 모으는 거는 별루 어렵디 않을거이야. 리학수의 혼잣말에 동명수가 뒤를 이었다. 당에서도 사람 몇 더 내려 보낸다 했디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저만 아는 기밀인 냥 젠체하는 모습이 볼썽사나울 지경이었으나 지적한다고 될 일도 아니거니와 동명수의 눈 밖에 나면 아들의 소식의 끄트머리라도 잡는 것이 요원해질 수 있어, 학수는 그저 고개만 가만히 끄덕였다. 여전히 갓난쟁이였던 근영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옹알옹알 엄마, 아빠, 하던 목소리도.

 

 

“아, 혹시나 해서 덧붙이디만 딴 맘 품고 엄한 행동하다 걸리시면 내래 그대로 당에 고발할 겁네다.”

 

 

리학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동명수가 제법 단호하게 말을 뱉었다. 알고 있다, 짤막하니 대답하면서도 리학수는 가슴 한가운데 돌덩이라도 얹힌 냥 심부가 무거웠다. 사실 동명수도 리학수가 어째서 이리 오겠다 자원했는지 알음알음 들어 알고 있을 터였다.

 

 

“너무 고깝게 듣지 마셨으면 합네다. 이거이 다 아바이 수령 동지를 위한 일이 아니 갔소?”

 

“알고 있다 하잖네. 내 공사구분 못 할 정도로 등신은 아이니까는 걱정하지 말라.”

 

 

동명수가 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냥이었다. 하긴, 동명수의 입장에서 보면 리학수가 제 아들을 찾든 말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저 저들의 일에 골칫거리만 되지 않으면 그만일 것이었다. 뒷짐을 턱 하니 지고 입매를 슬그머니 올린 동명수는 숨겨둔 보물지도라도 있는 사람마냥 비식비식 웃음을 흘렸는데, 그것이 마치 동씨 일가의 야욕을 드러내는 단면 같아 리학수는 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나라를 위한다 해놓고는 결국 저들 뱃속을 불리는 썩어빠진 종자들. 동중호가 들었더라면 불경죄로 온 가족이 멸문지화를 당할법할 내용을 속으로 곱씹으며 리학수는 동명수를 가만 응시했다.

 

리학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명수는 벌써부터 두 발을 디딘 그곳이 저의 땅이라도 된 냥 으스대기 바빴다. 후로도 명수는 자만심에 가까운 말을 몇 번이고 던졌지만 이미 머릿속은 사라진 근영의 자취를 쫓는 중이라, 리학수는 명수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택시를 잡아타고 나서야 동명수는 겨우 입을 다물었는데, 택시기사를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직 실전에 투입한번 제대로 되지 못한 어린놈인 태가 났다. 의심스러울 만치 운전수를 쏘아보는 동명수에게 한마디 할까 하다 리학수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른 저녁, 혹은 늦은 오후,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모래를 껴안은 황사비가 한차례 퍼부으려는지 먹색 구름이 겹겹이 몸을 겹치고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를 따라 택시 라디오에선 뉴스 속보가 한창이었다.

 

 

‘백주대낮 서울 은행에 복면강도가 들었습니다. 경찰이 용의자를 찾고 있는데 얼굴을 가린데다 CCTV 사각지대로 이동해 수사에…….’

 

 

운전수가 라디오 채널을 돌렸다.

 

 

‘일명 낮도깨비. 벌건 대낮에 활개를 치고 범행을 벌인다 해서 붙은 별명인데요, 오늘 오전 서울 은행에서 발생한…….’

 

 

다시 한 번.

 

 

‘낮도깨비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무기, 전문가보다 뛰어난 기술로…….’

 

“에이, 뉴스가 온통 이런 얘기니 원. 운전할 맛도 안 나네.”

 

 

툴툴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라디오 소음이 일순 잦아들었다. 동명수는 제 바지 허리춤을 만지작거렸다. 권총이 걸려있는 자리다. 리학수는 행여나 동명수가 돌발행동을 벌이는 게 아닐지 염려했지만 다행히도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택시 운전은 거칠었고, 공항 주변은 붐볐다. 정체된 도로에서 리학수는 라디오 뉴스에서 흘러나왔던 도깨비란 말이 어쩐지 귀에 익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깨비.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도깨비 같은 놈들이에요. 저희가 꼭 찾아 드릴 테니…….’

 

 

어린 아들 근영이 납치되던 날, 보여준 거 하나 없던 경찰들이 몇 번이고 되뇌었던 말이었다. 도깨비 같은 놈들, 귀신같은 놈들. 아들을 빌미로 거액의 돈을 요구해 온 놈들의 조건에 리학수는 그대로 따랐지만, 서너 차례나 경찰의 무능의 증명하며 납치, 살해, 강도짓을 벌여왔던 놈들을 잡는데 혈안이 된 경찰 상부가 개입해 판을 벌이면서 자칫 순조롭게 마무리 될 수 있었던 사건은 한명의 사망자, 한명의 부상자, 그리고 한명의 실종자를 낸 채 미제사건이 되고야 말았다. 실종된 아들 근영과 총에 맞아 죽은 경찰 하나, 복부와 얼굴에 자상을 입은 경찰 하나.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법한 일이었지만 위아래 할 것 없이 쉬쉬해대는 통에 성지 시멘트 사장의 아들이 납치되었단 사실은 신문 한 구석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근영을 찾는 것이 요원해진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리학수는 마음을 다잡았다. 제가 정신 차려야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을 구멍이 보일 것이었다. 동명수가 신경질 적으로 허리춤을 매만졌다. 택시는 정체구간을 지나 서울의 중심부로 바퀴를 트는 중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이미 빗줄기가 거세어진 경기도에선 또 다른 작당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리는 빗줄기가 아스팔트 바닥을 요란스레 두드리고, 푸른 산등성이 하나를 마주한 채 짧은 터널아래서 비를 피하는 초라한 순찰차 한대가 외롭다. 제복을 빳빳하게 다려 입은 신입 순경이 운전석에서 어색한 공기를 견디지 못하는 듯 백미러로 흘금흘금 뒷좌석의 눈치를 살폈지만, 뒷좌석에서 껄렁하니 껌을 씹어대는 중년의 남자는 고개한번 들지 않고 서류를 건성건성 넘기는 중이었다.

 

기름 발라 뒤로 깔끔하니 넘긴 머리와는 다르게 넥타이는커녕 와이셔츠 단추도 제대로 잠그지 않은 행색은 경찰보다는 깡패라는 이름표가 잘 어울릴 지경이었다. 짝짝 씹어대는 껌 소리역시 남자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한 몫 하고 있었다. 침 묻혀 서류를 넘기던 남자는 인사기록에 뻔히 박혀있는 이름 석 자를 무시한 채 순경에게 물었다.

 

 

“너 이름 뭐라고 그랬지?”

 

 

순경이 마른침을 삼켰다. 백미러를 통해 둘의 눈이 마주쳤다.

 

 

“이자성입니다.”

 

“여수 출신…….”

 

 

인사기록 카드를 소리 내어 읽자, 순경은, 이자성은 현 상황이 답답한 듯 목덜미를 긁적였다.

 

 

“너 화교 맞지. 그렇지?”

 

 

어찌 보면 숨기고 싶어 할 출신 성분을 망설임 없이 질러 묻자, 이자성은 고개를 끄덕이듯 앉은 채로 몸을 앞뒤로 옴질거리고선 예, 하고 대답했다. 그리곤 몇 초간의 침묵 후에 종이가 뜯겨나는 소리에 자성은 결국 상체를 돌려 뒷좌석을 응시했다. 찢겨나간 자성의 인사기록은 어느 틈엔가 사내의 손에서 쓰레기마냥 구겨져 창밖으로 굴러 떨어진 후였다. 돌발적인 행동에 이자성이 의문을 제기하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선수를 쳤다.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하자. 너한테 딱 맞춤인 일이 하나있다.”

 

 

제안이 아닌 통보였다.

 

멀건이처럼 이자성이 뒤늦게 예? 하고 되물었지만 남자는 이미 제 멋대로 하기로 결정한 듯 보였다. 바람에 흩날려 들어온 빗줄기 몇이 구겨진 인사기록 지를 투둑, 툭, 적셨다. 경기도를 뒤덮은 먹구름은 한창 서울까지 덮쳐가던 와중이었다.

 

온갖 것들이 모여들고 일을 벌이고 올라서고 무너지는 대한민국의 봄이었다.

 

후로 늦여름 장마가 몰려오기 직전 리학수, 아니, 석동출은 점조직적 형태로 한국에 분포하고 있던 공작원들의 도움과 북측의 재정 지원으로 그럴싸한 조직을 틀어쥐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한낱 깡패조직에 재범파란 명패를 달아준 새 우두머리가 들어차던 계절이었고 금오지구대 순경 이자성의 인생이 동네 깡패로 뒤바뀐 순간이기도 했다.

 

이자성에게 이른 바 ‘일’을 제안한 것은 강형철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1990년대,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의 경위로 입관해 3년 만에 서대문 지역의 조직폭력배를 전원 검거하고 이후 부산지방 경찰청 형사과 강력계에 발령을 받아 부산 조직폭력배 검거 작전인 ‘해운대 프로젝트’의 팀장으로 복무하다 직위해제를 당한 인물이었다.

 

강형철이 이자성에게 일을 제안한 것은 직위해제를 당한지 3년이 되던 해였다.

 

당시 강형철의 주도아래 이루어졌던 해운대 프로젝트는 부산 조직폭력배의 근절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비밀리에 벌어졌어야 할 체포 작전 정보가 매스컴으로 새어나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요한 머리는 경찰의 올가미를 벗어나고 그저 몸통과 꼬리만을 간신히 잡아들인 것에 대한 상부의 실망은 컸던 것이 형철의 직위해제 이유였다. 그때 부산조직폭력배의 대부로 이름을 날리던 최익현은 우스우리만치 쉽게 풀려나 그대로 해외로 도주했고, 그나마 잡아들인 인물은 이미 세력이 한풀 꺾인 조직의 수괴인 최형배와 김판호 정도였다.

 

웃긴 점은, 비밀리에 진행되던 프로젝트의 정보를 흘린 사람이 창호라는 점이었다. 그 때부터 내부 정보를 빼돌리는데 일가견이 있던 창호는 훗날 낮도깨비와 사업적 파트너로 자리를 잡아 진성이 하던 의뢰 수납 등을 도맡아하는 한편 경찰의 수사진척 상황을 모두 윤석태에게 흘리며 낮도깨비들의 도주를 돕는데 일조해, 실로 낮도깨비의 숨겨진 6번째 일원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성장하게 된다.

 

창호 덕분에 드러난 부산 조직폭력배 검거 프로젝트는 타 지역에서 벌어지던 각종 나라안정 도모를 위한 비밀 작업들이 뭍으로 끌어올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에 위기 심을 느낀 조직들은 이후 연합체를 형성하며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석동출로 신분을 탈바꿈한 리학수가 강남구를 중심으로 성동구, 중구, 서초구 일대를 통합하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조직들이 연합을 통해 세력을 불리고 입지를 다시 다시기 시작하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경찰은 90년대처럼 무작위로 건달무리들을 잡아들이는 것은 큰 효율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선 새로운 방향으로 수사를 재개하기 시작했다. 본디 조직원을 회유해 정보를 빼 내는 것보다 더욱 교묘하고 치밀해진 수법, 이른바 조직에 위장경찰을 투입하는 프락치의 양산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 복직을 앞두고 있던 강형철은 아직 조폭들에게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신입 순경이나 경찰학교 당시 저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리기 시작했고 이 때 스카우트 된 것이 금오지구대에 발령받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던 순경, 이자성이었다. 경기 의정부시에 위치한 금오지구대에서 열흘 남짓 근무했던 이자성의 기록은 말소되고 그가 경찰이었다는 사실은 오로지 본청의 데이터베이스 비밀문서와 극소수의 인물만이 아는 기밀로 바뀌면서 이자성의 인생은 순식간에 화교출신 건달로 거듭날 수 있었다.

 

1999년 봄, 이자성을 스카우트한 강형철은 이후 1년 동안 이자성을 제외하고도 수명의 경찰들의 신분세탁을 주도하고 프락치의 점조직 형성한 후 이듬해인 2000년도, 마침내 전남 여수경찰서로 복직이 되자 이자성과 그 외의 경찰들을 본격적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2000년 여름은 석동출의 주도하에 입지를 다지던 재범파 내에 작은 소란이 벌어졌던 날이 속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 작은 소란은 당시 석동출 다음으로 재범파를 통솔하는 이중구의 심기를 거스르는 새 조직원의 입단이 원인이었다.

 

이중구. 깡패무리 사이에선 어느 정도 입지가 다져진 인물이었는데, 리학수가 석동출로 신분을 바꾸고 조직폭력배를 규합해 재범파를 만들 때 흐름을 타고 들어온 경우였다. 180을 훌쩍 넘는 키와 위협적인 인상, 그리고 인상만큼이나 실로 날카로운 성격은 어디 내놔도 부족할 것 없는 진퉁 조폭의 모습이었고 병풍으로만 세워둬도 위압감이 드는 비주얼 덕분에 석동출의 눈에 띄어 나름대로 고속 승진을 한 케이스기도 했다. 1999년, 재범파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 27살의 나이로 재범파 2인자 자리를 꿰찼으니 말이다.

 

물론 순전히 운과 덩치만으로 오른 자리는 아니었다. 제법 강단도 있었고 리더십도 있었으며 적당히 내칠 줄도, 팔을 안으로 굽힐 줄도 알았고 타 조직과의 싸움에선 한 치도 밀리지 않으면서 제 윗대가리의 명령은 아니꼬워도 받들 줄 아는 성미이기도 했다. 한번 제 앞에 들어온 밥상은 빼앗기지 않는 기질이 이중구를 끌어올린 결정적 요인이기도 했다. 재범파 내에 이중구보다 나이 너덧 살은 더 먹은 놈들이 몇 있었으나, 그들 역시 뒤로 궁시렁 댈지라도 앞에선 서열에 대한 반기를 들지 않는 것도 이 탓이었다.

 

 

“얘 뭐냐? 어디서 피도 덜 마른 애를 들여왔어? 누구 소속이냐, 이거?”

 

 

어디 다방여자 가슴이 어떻다더라, 기술이 끝내준다더라, 맛이 어떻다더라, 어디어디 파의 대가리가 저를 보고 겁을 먹고 도망갔다더라는 식의 영양가 없는 농지거리나 낄낄거리던 사무실이 이중구의 말 한마디에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이중구는 소파에 건드렁 하니 앉아있는 놈을 까 내려 보고 있었는데 언짢은 시선을 느끼고서도 남자는 비죽하니 웃고선 침묵할 뿐이었다. 네놈이 어쩌나 보자는 식의 미소. 이중구는 석연치 않은 기분을 느꼈다.

 

 

“큰 형님께서 들이셨답니다. 형님께서 곁에 두고 잘 이끌어주라고 하셨다고…….”

 

 

상훈의 짤막한 설명에 사내는 앉았던 소파에서 일어섰는데, 180이 조금 안 되는 키는 마냥 작은 편은 아니었으나 원체 체구가 있는 이중구를 마주 보고 서자니 왜소한 꼬마 하나를 데려다 놓은 것처럼 비춰졌다. 남자는 상품을 검토하기라도 하듯 이중구를 위 아래로 훑고선 말했다.

 

 

“동명수요. 형님.”

 

 

인사하며 동명수가 배죽하니 웃었다. 이중구의 눈썹이 불쾌함을 드러내듯 꿈틀댔다. 초면에 저를 하나 겁내지 않고 형님이라고 부르는 행태도, 이를 드러내고 웃는 얼굴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본능적인 거부감이라도 봐도 좋았다. 이중구는 동명수의 말에 대답도 없이 그저 동명수를 지긋하니 노려보았는데, 태도는 마치 불청객을 대하는 듯 했다. 그것을 모를 리 없으면서도 동명수는 짐짓 그 분위기를 읽지 못한 척 악수를 청하는 손을 내밀었다. 이중구가 손을 맞잡는 일 따위는 없었다. 이중구는 손을 오히려 제 주머니에 찔러 넣었고, 주변에서 상황을 보던 놈들 두엇은 ‘저, 씨발……. 어디 버릇없게.’하고 추임새를 넣을 따름이었다.

 

다분히 적대적인 분위기에도 동명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동명수의 입장에서 보자면 여우 몇 마리가 호랑이에게 캥캥거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

 

리학수의 감시를 명분으로 삼아 동명수는 재범파에 잠입했다. 앞으로 세력을 확장해 거대기업으로 몸집을 불릴 재범파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동명수의 야욕의 첫 발이었다.

Posted by 백은수

1994년, 권력을 승계 받은 김정일은 평화·자주를 표방하는 한 편으로는 기밀부대를 남조선으로 파견하는 데 여념이 없었는데, 리학수 역시 그 때의 흐름을 타 남조선으로 보내진 무리 중 하나였다. 마흔 초반의 나이에 애 가진 아내를 동반한 작업이 쉬울 리 없었으나 불평은 곧 명령 불복종이자 반란의 불씨였고, 즉각 총살로 처분되어도 이상 없을 일이라 리학수에게는 어떠한 의사 표명의 기회도 존재하지 않았다. 리학수는 김정일이 정권을 잡고 2년이 지난 96년, 아직 칼바람이 뼈 속을 스미는 1월에 아내와 남한에 내려왔다.

 

태중에 아이를 품은지도 다섯 달이 되어갈 무렵이었지만 아내의 배는 도통 부를 생각이 없어보였다. 본디 몸집이 작고 살집이 없는데다가 입덧은 당기는 음식보다 가리는 음식만 내놓은 참이라 더욱 그랬다. 아내는 도리어 임신 후에 팔 다리 뼈가 앙상했다.

 

남에 내려온 아내는 7년 정 붙인 남편을 내외했는데, 아마도 손바닥 뒤집듯 바뀐 남편의 말투와 인적사항 탓인 듯 했다. 리학수가 본래의 이름대신 김선자란 명으로 저를 부를 적이면 아내는 작은 어깨를 움츠리곤 했고 반대로 리학수 대신 임형택이라 저의 남편을 부를라 치면 몇 번이고 마른침을 삼키는 것이었다.

 

임형택. 이는 리학수가 남으로 건너와 새로 입은 옷과도 같았다. 남에 내려온 북측 첩자의 8할이 새 신분을 쓰는데 반해 학수는 본디 살아있던 남자의 인적사항을 그대로 뒤집어썼는데 이는 놀랍도록 유사한 둘의 얼굴뿐만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사람이 뒤바뀌어도 알아볼 사람하나 제대로 없는 ‘진짜’ 임형택의 협소한 인간관계 덕택이기도 했다.

 

임형택의 신분에도 허점이 있다는 것, 그것이 리학수의 인생을 무너뜨릴 만큼의 구멍이라는 것은 후에, 수년이 흐르고 나서야 드러난 사실이었다. 만약에, 북조선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사이의 감정의 교류와 흐름을 파악할 능력까지 되었더라면 리학수가 임형택의 탈을 쓰는 일은 없었을지도 몰랐다. 임형택이 다리를 저는 이유가 단순히 사고사가 아니었음을, 리학수는 죽음의 들이닥치는 순간에도 전혀 알지를 못했다. 남으로 내려온 그 당시에는 더더욱.

 

남에 내려온 첫 해, 형택은 위의 지시를 따라 성지 시멘트의 몸집을 부풀리는데 주력했다. 단순한 회사에서 회사의 탈을 쓴 조직, 이른바 조직폭력배들의 소굴로 바꾸려면 우선은 재정적 안정이 최우선이었다. 당의 목적은 확고했다. 조직을 부풀려 거대 기업을 형성하고 그에 따른 수익은 북측으로 조달할 것. 또한 남조선의 정재계에 혼란을 주고 사상의 재수립으로 종래에는 흡수통일을 이루는 것.

 

리학수를 제외하고도 수명의 공작원들이 일, 이주의 시간을 두고 남으로 내려왔다. 대부분이 작은 사업체, 혹은 조직의 한 자리를 꿰차고 들어앉았지만 거진 반 이상이 자리를 잡는 데 실패하고 북으로 올라가기 일쑤였다. 두어 차례의 물갈이가 있었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도, 견고히 자리를 잡은 사람도 없던 와중이었다.

 

아내는 정확히 열 달을 채우고서야 아들을 낳았다. 체구가 작았지만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고,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한 출산이었다. 아이의 태몽은 고래였는데, 북에 있는 리학수의 노모가 닳은 연골이 쑤셔 쪽잠을 자다 꾼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고등어만 하던 것이 펄떡펄떡 유영을 하면 할수록 고 몸집이 참치만 해졌다, 돌고래만큼 불어나다 다시금 상어보다 커져서 결국에는 집채만 해졌는데, 한 눈에 담기도 어려울 만큼 거대해서 그 고래란 놈이 하늘, 바다 할 것 없이 몽땅 집어삼켰다는 것이 노모의 말이었다. 모친의 태몽 소식에 리학수는 ‘어마니, 기런 소리 마시라요. 아를 밸 거이였으면 진작 배디 않았겠습네까.’라며 택도 없다 일축했는데, 이는 신혼 때부터 몇 번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좀처럼 애가 들어서지 않던 경험을 기반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면박을 준 것이 무색하게 얼마 안 가 아내의 임신소식을 접한 리학수에게 안부모는 옳다구나 무릎을 탁 치면서 ‘거 보라. 내 뭐라 기랬니?’하고 기고만장 했더랬다.

 

아내는 병원이나 산후조리원 대신 집에서 요양을 했는데 당시 리학수는 아들 면 볼 생각에 퇴근시간을 앞당기곤 하였다. 집에 한달음에 달려가 아들 한번 안아볼라치면 아내는 균 옮는다 항시 리학수를 타박했고 리학수는 아이의 면역력을 길러줘야 한다느니 강하게 키운다느니 엄한 소리를 하면서도 곧장 화장실로 가 손발을 비누로 몇 번이고 닦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이의 침대 위에는 고래인형이 정 가운데 달린 모빌이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북에서 내려올 적에 진즉 받아온 것이었다. 낳기 전에는 모를 성별이라 태어날 아이가 여자든 남자든 어울릴법한 이름으로 지었던 것이 ‘근영’이었다. 호적에야 임근영으로 오를 터였지만 조국의 제 아비의 성을 따 붙이자면 이근영이 맞았다. 눈을 똘망하니 총기를 띄었고 제 어미를 닮아서 조용하고 울음이 적어 새벽에 괴롭히는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아버질 많이 닮았어요. 그사이 수월해진 남조선 말로 아내는 종종 그리 말했다. 리학수는 그럴 때 마다 당신을 많이 닮았지, 하고 받아치곤 하였다.

 

근영이 자라남에 따라 성지 시멘트의 사업규모도 점차 발전하고 있었으나, 제동이 걸린 것은 한 순간이었다. 근영이 두 살이 되던 1997년 겨울, 대한민국에 IMF 시기가 닥쳐온 것이었다. 수차례의 자잘한 사업 위기를 무사히 넘겼던 리학수였지만 그로써도 국제적 경제 위기에는 맞설 도리가 없었다. 특히나 이제야 막 몸집을 불리던 참인 중소기업은 더더욱. 흑자가 적자로 돌아서고 공장의 기계가 하나둘 멈춰가는 것을 보면서 리학수는 시원섭섭한 마음을 느꼈으리라.

 

리학수에게 회사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저의 이익을 위해 설립한 회사도 아니거니와, 남조선에 경제적 위기가 닥쳐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이 염원하던 흡수통일이 한발 다가온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으니. 남측으로 파견된 공작원들은 하나 둘 씩 송환 명령을 받고 올라가기 시작했고, 리학수와 그의 아내, 그리고 멋모르는 어린 아들 근영 역시도 순서를 따라 자연스럽게 귀국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리학수의 생각이었다. 보기 좋게 빗나간 생각.

 

리학수의 귀국 예정일은 4월 달 초순이었다. 그리고…….

 

 

“기러고, 니가 잡혀간 거이 3월이었다.”

 

 

표종성은 말에 뜸을 들였다. 깔끔하게 숱을 치고 위로 세운 앞머리. 180을 넘는 단단한 체구와 묵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중좌 표종성, 혹은 탈북자 표종성. 한 때는 베를린 주재 북한대사인 리학수를 감시 통제하는 요직의 자리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북측의 반란거괴로 낙인이 찍혀 여러모로 쫓기는 중이기도 했는데, 이토록 한 순간에 뒤바뀐 그의 운명은 저의 입으로 마악 시작한 이야기의 끄트머리에서나 나올법한 사정이 얽힌 듯 했다.

 

그리고 4인용 낡은 원목 식탁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것은 아직 아이의 태를 벗지 못한 청년이었다. 아니, 소년이었다. 어중간히 긴 앞머리는 눈썹을 가리고 내려와 눈가를 찌를 정도였지만 옆머리나 뒷머리는 단정히 손질이 된 채였다. 키는 또래보다도 작은 편인데 몸은 자못 단련된 티가 났다. 이제는 열아홉이 된 화이. 혹은 근영이었다.

 

어린 근영은 리학수의 귀국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납치를 당한 것이었다. 실로 절묘한 타이밍이라고 할만 했다. 아무도 몰랐던, 리학수와 당조차도 알지 못했던 임형택의 악연. 윤석태의 짓이었다.

 

납치범들은 총 5명의 사내로 구성된 집단이었는데, 한창 무명으로 활동하던 그들의 이름이 붙은 것은 근영을 납치한 다음에도 네다섯 건의 굵직한 범죄를 더 저지른 후였다. 낮도깨비. 백주대낮에 범죄를 저지르고도 도깨비들 마냥 증거 하나 남기지 않은 채로 증발하는 수법 탓에 붙은 이름이었다. 총잡이 범수, 칼잡이 동범, 운전수 기태, 의뢰를 받고 계획을 세우는 진성. 마지막으로 우두머리 윤석태까지. 길이 아니면 가지도 않을 듯 항시 옳은 행동만 좇는 임형택, 살인과 각종 범죄를 스스럼없이 벌이는 윤석태는 얼핏 보면 수평선마냥 인생의 한 순간의 접점도 없을 것 같았지만 우습게도 둘은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사이이기도 했다.

 

인천 성지 보육원. 당시 윤석태와 윤기태가 자라난 곳의 이름이었고, 보육원을 운영하던 성지 재단의 이사장이 바로 임형택의 아비였던 것이다. 본디 베풀고 어울리길 좋아하던 임형택은 보육원을 자주 방문했고 자연스레 석태와도 연을 쌓을 수밖에 없었는데, 마냥 좋던 그들의 사이가 틀어진 이유는 서류 따위론 알 수 없는 종류의 문제였다. 임형택을 친 형처럼 따르고 별 문제도 일으키지 않던 윤석태가, 단 하루 만에 같은 보육원에 기거하던 소녀를 강간하고 임형택의 다리를 잘라버렸으니.

 

보육원에 큰 소동을 일으킨 윤석태는 후로 몇 년 동안 교도소 신세를 졌고, 임형택은 수번이나 윤석태의 면회를 가 용서와 사랑에 대한 소리를 주절댔으나 그것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형을 다 채운 윤석태는 후로 잠적했고, 몇 십 년 후에 임형택의 아들을 납치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윤석태가 납치한 임형택의 아들이, 실상은 임형택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윤석태는 뒤바뀐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멀찍이서 망원경으로 살피거나 사진으로 본 것이 전부여서 그럴 수도 있었고, 소년 적에 만났던 것이 전부라 리학수를 보고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형택의 얼굴이 바뀌었거니 여긴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윤석태는 리학수를 완벽하게 임형택으로 오인하고선 그의 아이를 훔쳤다. 98년 3월 17일, 근영이 3살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윤석태라는 괴물의 아래서, 근영은 본 이름대신 화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새 아비들의 품에서 길러지게 된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덜 자란 묘목과 화분의 틈바구니에 틀어박혀져 운송된 아이는 얽히고설킨 관계를 돌고 돌아 저의 친 아비인 리학수의 이야기를 그의 제자, 표종성의 앞에 앉아 전해 듣게 되는 것이었다.

 

기나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Posted by 백은수

“성명.”

 

“임형택.”

 

“종교.”

 

“가톨릭.”

 

 

취조하는 투다. 얼핏 들으면 단어연상 퀴즈마냥 두 목소리는 서로 한 박자의 간격도 두지 않은 채 높낮이 없는 질문과 명사로 끝맺는 대답을 이었다. 학력, 본적, 가족에서부터 세세한 가정사까지 이어지는 질문은 쉼이 없었지만 대답은 박자를 놓침이 없었다.

 

순박한 눈매, 부드러운 인상. 목사나 하면 어울릴까 싶은 남자는 고개를 바루 세우고 미동하나 없이 시선을 올곧게 질러보는 중이었다. 옆방에선 임신한 제 아내가 같은 질의응답을 하고 있을 걸 염려하는 중이기도 했다. 사람이 여린 면이 많아 지레 겁을 먹을지도 모르는데. 건물 난방이 시원치 않아 걱정이었다. 아내는 본디 잔병치레가 많았다.

 

이어지는 질문은 반시간을 더 허비하고서야 끝을 맺었는데, 그 중의 대부분은 사상의 재점검을 위한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1995년 겨울, 남자가 두 발을 디딘 국가였다.

Posted by 백은수

[베를린]&[신세계]&[화이]

 

 

표종성 & 화이 ver.

 

 

 

 

 

 

윤석태 & 이자성 ver.

 

Posted by 백은수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4)
2.5D (44)
Short (36)
The New World File : 괴물을 삼킨.. (8)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태그목록

달력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