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내려온 손길은 여기저기 뻗혀있었다. 그것은 마치 큰 줄기 없이 시작된 잔가지들과 같아서, 시작도 끝도 없이 모두의 속에 뒤섞여있었다. 그 모두의 향방을 아는 것은 기껏해야 북에서 관전하는 윗대가리들뿐이었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빌딩이 들어서는 도심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자잘한 조직들 틈에서 잔가지는 자라났다. 아마도, 이 좁은 판에서 살아남는 조직에 기생하던 놈만이 잔가지의 기둥이 될 것이라고, 동명수는 생각했다.

 

이중구는 흉흉한 기색을 내뿜으며 큰 덩치에서 위압감을 내뿜고 있던 차였다. 누가 보면 협상이 아닌 전쟁통보라도 하러 온 줄 알 정도였으니. 동명수는 그런 중구의 옆에서 한가하게 손톱이나 파는 중이었다. 실로 상반된 분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장수기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하고선 이중구를 맞이했다. 능구렁이, 여시. 재범파에서 종종 회자되던 장수기의 별명이 제법 어울리는 미소이기도 했다. 순박하게 웃는 얼굴 뒤에서 칼을 품고 있을 것 같은 인상. 좀 더 나이를 먹어 주름이 얼굴에 패인다면 인자한 아버지나 양반 같은 얼굴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동명수는 장수기에게서 금방 관심을 돌렸다. 이중구가 지금 벌이는 일이 동명수의 앞날에 도움이 되는 일이 맞긴 했지만, 그 때문에 이중구와 굳이 동행을 한 것은 아니었다. 동명수는 제일파 무리 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저의 동지를 찾고 있었다. 북측의 잔가지를.

 

본디 으르렁거리기 바쁜 두개의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협정과 회유, 계약 등이 발생할 때는 뒷공작이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었다. 특히나 그것이 법의 보호아래에 놓일 수 없는 집단이라면 더더욱. 동명수는 제 아버지의 힘을 빌려 제일파의 발을 묶어두고, 재범파가 강남을 틀어먹도록 도울 심산이었다. 그것이 저의 미래에도 좋았다.

 

북에서 내려올 때 개인마다 할당받은 지령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쯤이야 동명수 선에서 해결가능 할 것이었다. 또한 동중호의 아들에게 잘 보여 나쁠 것 없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을 테니. 비록 아비와 자식, 혈연으로 묶인 사이라고는 하나 동명수와 동중호는 서로를 본인에게 득이 되는 카드로 보는 면이 있었다. 동중호는 명수를 저의 후계를 내세워 가문을 견고히 다졌고, 이제는 동명수가 남한에서 세울 실적으로 저의 위신을 높일 궁리를 하는 중이였으니 말이다. 동명수 역시 동중호라는 이름 석 자가 지닌 권력의 힘을 알았고, 그것을 저의 지위상승의 발판으로 삼았다.

 

 

“……그래서 화룡파를 먼저 공공의 적으로 삼고…….”

 

“……돌아오는 이득이…….”

 

 

테이블을 끼고 마주앉은 이중구와 장수기는 이야기가 한창이었는데 이야기는 제일파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뼛속까지 조폭에 가까운 이중구는 입담에 능하지가 못했다. 중구는 제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열이 나는지 신경질 적으로 테이블을 손톱으로 딱딱, 두드렸다. 어딜 봐도 성이난 기색이 역력했지만 장수기는 주눅 들지 않았다. 여유로운 것은 장수기 쪽이었다.

 

이중구의 옆에 앉아 한마디 말도 없던 명수는 장수기의 뒤에 버티고 선 놈들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딱 봐도 열 두엇은 넘어 보이는 무리 사이에서 몇몇이 눈인사로 아는 체를 했다.

 

동명수는 지금의 이 작당은 별 쓸모가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강남을 정리 할 테니까 니들은 보고만 있어라.’라는 재범파의 통보에 ‘우리도 좌시하지만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였으니. 다만 둘은 서로의 다음 수를 읽으려는 것뿐이었다. 아마도 저희가 돌아가고 난 뒤면 앞으로의 행방에 대해 다 같이 모여 머리를 굴리겠지. 동명수는 저에게 매수된 자들이 재범파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길 바라기만 하면 됐다. 혹은, 제일파의 다음 수를 미리 귀띔을 해주는 것도 좋았다.

 

반쯤 열린 제일파의 사무실 창문에서 산들바람이 불었고, 그보다 앞서 햇빛이 바닥을 비췄다. 봄은 여름과 닮아있어서, 한낮의 봄은 여름의 초입처럼 달구어져있었다. 노란 나비가 한 마리 날아다니는 게 퍽 어울릴 것 같은 날씨이기도 했다. 흉흉한 사무실과의 정반대의 기온이 창을 통해 스며드는 와중에 이중구는 선심 쓰듯 몇 개의 구역을 나눠주겠다는 제안을 내보였는데, 장수기는 영 탐탁치가 않은 듯 마땅한 결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이중구의 속셈을 읽을 참일지도 몰랐다. 속셈이라 봤자 제일파와의 약속을 깡그리 무시하고 강남을 먹어치우는 것 밖에 더 있겠냐마는, 장수기는 아마도 그보다는 더 자세하게 재범파의 다음 행방을 알고 싶은 듯 했다.

 

소득 없는 공방을 하는 둘의 틈에서 혼자만의 계획을 한창 세우던 동명수는 저에게 눈짓하는 놈들을 보며 문득, 표종성이란 사내를 떠올렸다. 거꾸로 자라나는 나무처럼, 모두와는 정반대로 행동하던 남자였다. 눈에 띄지 않게 단정하게 친 머리와 고집스러운 눈매, 그리고 단단해 보이는 몸과 그에 걸 맞는 키. 무심하고 건조해 보이는 전체적 인상과 부합하듯 말수도 적은 그를 동명수가 처음 본 것은 군사학교에서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표종성의 몸은 싸움에 최적화된 골격이라 봐도 좋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났다는 표종성은 뒤봐주는 사람 하나 없는 몸으로 군사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표종성이 특이한 경우는 아니었다. 오히려 동명수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있는 경우가 희귀한 경우였다. 학교에서 아등바등 살아남으려는 놈들이 다 그렇듯이 표종성도 사교성이 떨어지는 편에 속했는데, 그럼에도 그가 주변에 관심을 알게 모르게 받았던 것은 범상치 않던 격투 실력 덕분이었다. 그것은 동명수와는 조금 다른 질의 것이었다. 두 사람이 각각 상대를 제압할 때, 표종성은 빠르고 정확했으며 군더더기가 없는 그 행동 자체가 이목을 끌었지만 동명수는 상대에게 실현해내는 내면의 폭력성과 잔호성이 더욱 도드라지곤 했다.

 

‘동명수도 확실히 좋은 재목이기는 하지만 아직 표종성에 비하면야…….’라는 선생끼리의 사담을 엿들은 동명수는 저가 누군가와 비교되고 있다는 사실과 저의 평판이 더 낮다는 것에 이를 갈았다. 아비의 가호 안에서 동명수는 남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제가 가장 잘 나고 최고인 자였던 것이다. 표종성은 동명수에게 처음생긴 벽이었고, 또한 열등감을 처음 느끼게 해준 존재이기도 했다. 비록 종성 스스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중구가 커피 잔을 마저 비우고선 일어섰다. 그를 따라 장수기 역시 일어섰는데, 아마도 시답잖은 간보기는 여기까지인 듯싶었다. 느긋하게 소파에서 일어선 명수는 여즉 저를 주시하고 있던 무리속의 시선을 흘깃 보고선 문 쪽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듯 턱짓했다. 몰래 밖으로 나오라는 신호였다. 깜빡깜빡, 눈동자들이 답했다.

 

 

“아, 그리고. 그 쪽 형님한테도 안부 전해주지.”

 

 

별 미련 없이 자리를 뜨려던 이중구의 뒤에 대고 장수기가 말했다. 겉치레뿐인 안부 인사였다. 이중구가 그 안부를 석동출에게 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이중구와 동명수가 사무실을 걸어 나갈 때, 신발에선 고무가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장수기는 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무실 문은 살짝 잡아당기기만 했음에도 바람에 밀려 쿵,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이중구가 쯧, 하고 혀를 찼다.

 

 

“먼저 들어가쇼, 성님. 나는 볼 일이 좀 있으니까는.”

 

“뭐? 무슨 볼일.”

 

 

한창 말씨름을 한 탓에 날카로워진 중구의 말투는 모나있었지만, 동명수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내려가는 계단, 미끄럼방지용으로 우둘투둘한 부분에 신발 밑창을 긁어 흙을 떨어내며 걷던 동명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조폭보다는 양아치에 가까운 행색이었다. 간첩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양새기도 했다.

 

 

“여기에 아는 놈들이 좀 있는데, 상황 좀 물어보는 것이 좋지 않겠소? 지금 저들끼리 한창 어떻게 할지 쑥덕거릴 텐데.”

 

 

중구가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떼기 전에 동명수가 덧붙였다.

 

 

“형님은 얼굴이 많이 팔려서 저놈들도 형님하고 같이 있는 걸 장수기, 그 양반에게 들키면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니까 들어가라는 거요.”

 

 

명수의 말에 중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동명수는 이중구를 향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마 이중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동명수의 미소가 장수기의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러질 못했지만.

 

건물 밖으로 나서자마자 동명수는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꺼내 물었다. 표종성이 떠오른 탓인지 기분이 영 좋질 못했다. 볼우물이 깊게 패일 정도로 담배를 길게 빨아들이는 명수를 잠깐 본 중구는 연락하라는 불퉁한 말 한마디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고개를 끄덕이는 둥 마는 둥 하며 명수는 계단에서 그러했듯, 신발 바닥을 바닥에 지익지익, 그어댔다.

 

기분이 행동으로 모두 나타나는 거이 이로울 거 없는 버릇이다. 고치라.

 

실제로 들린 목소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명수는 신경질적으로 움직이던 발을 멈췄다. 신발 코에, 건물그림자와 햇빛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햇빛을 먹은 밤색 구두는 금세 후끈후끈한 열기를 뿜어냈다. 평일 오전, 저마다의 직장에 사람들이 틀어박혀있는 탓인지, 봄답지 않은 후덥지근한 날씨 탓인지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주변에 철거구역이 있는지 우르릉 우르릉 소리가 얼핏 메아리쳐 들려왔다.

 

선생들의 수덕거림을 엿들은 후에, 동명수는 의도적으로 표종성에게 접근했다. 거 얼마나 잘난 인사인디 내 얼굴이라도 비춰줘야디 않갔서? 저를 따라다니는 패거리에게 농지거리를 던지며 우쭐댔던 것은, 제 아비를 믿고 있던 탓이기도 했다. 그것은 동명수에게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패였다.

 

내, 동명수요. 여기 중에 아조 싸움에 일가견이 있다 소문이 자자해서 내, 함 보러 들렀지!

 

으시대며 동명수가 말했을 때, 표종성은 흙먼지 탄 신발코를 툭툭, 털고 있었다. 표종성은 눈만 흘깃 들어 올려 동명수를 보았고 그것이 전부였다. 흠, 도 아니고 콧방귀도 아닌 애매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표종성은 대답을 대신했다. 되레 당황한 것은 동명수였다. 처음 닥쳐온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본디 저의 이름이 또래에서도, 선생들 사이에서도 자자하던 터라 그저 이름 석 자만 대면 ‘아이고, 나으리.’하고 천것이 양반을 맞듯이 납작 엎드리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표종성처럼 어미도 아비도 잘날 것 없고, 돈도, 믿을 구석도 없는 놈들은 더 심했다. 미리부터 잘 보여 줄을 잘 잡으려는 것이었다. 동명수는 그것을 노리고 표종성을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실력으로 금이 간 저의 자존심을, 표종성의 비굴함을 파헤치는 것으로 대신하려는 속셈.

 

하지만 표종성은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일렬의 권력과 어릴 적부터 시작돼온 밥그릇 싸움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교과서적인 남자라고 보는 것이 좋을까. 기저귀 갈 적부터 하루에도 수번씩 듣던 인민과 당에 대한 충성. 표종성은 오로지 그것만을 제 업으로 알고 살았다. 그 어린 나이에서 부터 말이다. 고지식한건지, 우직한 건지.

 

그 후로도 동명수는 표종성의 주변에 얼쩡거리곤 했다. 상해버린 자존심을 어떤 방법을 써서든지 회복하고 싶었던 탓이다. 하지만 모든 방법은 매번 요원했고, 도리어 표종성에게 늘 몇 마디씩 충고를 듣곤 했다. 아마도 종성은 명수에게 조언 내지는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이었겠지만, 동명수가 그것을 순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리는 없었다. 실제로 그 배움이 얼마나 쓸모가 있었든지 간에.

 

동명수가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툭, 던졌을 때 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는 구두소리가 들렸다. 동명수는 건물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밝은 만큼 그림자는 더욱 짙어서, 건물 뒤의 어둑한 그늘은 날씨와 달리 서늘하기까지 했다. 건물을 빠져나온 구두 굽 소리는 잠시간 숨을 죽이기라도 하는 듯 조용해졌다. 걸음을 멈췄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저를 찾는 동지인지, 아니면 그저 저 갈 길하나 못 찾고 고민하는 얼간이들인지는 좀 더 기다려야 판가름이 날 터였다. 잦아들었던 소리는 좀 더 은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살금살금 이라는 의성어와 딱 맞아떨어질 만큼.

 

 

“여기다.”

 

 

주위를 살피는 자들을 먼저 본 것은 동명수였다. 명수는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고선 주의를 끌었다. 서너 명이 고개를 꾸벅하고선 건물 뒤로 들어왔다. 어릴 적부터 보고 지낸 얼굴도 섞여있었다.

 

 

“잘 들 들으라. 내래 당에서 명령을 받았, 이야……, 먹고살기 좋은가 보다.”

 

 

말을 하다 끊은 동명수는 오른편에 서 있던 사내의 금시계를 손으로 툭툭 치고선 씩, 웃었다. 호선을 그리는 입매와는 정 반대로 미동하나 없는 눈은 이질적이었다. 칭찬이 아님은 너무나도 확실한지라,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동명수는 근드렁대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다시금 우르릉, 하는 소리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나 울렸다.

 

 

“이케 지 배에 기름칠 할 생각이나 하니까네 일에 진척이, 어이! 하나도 없는 거 아니갔서?”

 

 

호선을 그렸던 입술이 무색하게 다음으로 이어진 말은 강하고 뾰족했다. 남조선에 내려오더니 사람 다 쓸모없어졌다는 말을 동명수는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물론, 들으라고 하는 소리임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사내들은 움츠렸다. 저보다 나이도 적고 경험도 적은 어린놈이지만 실질상 우두머리는 동명수나 다름없었다. 동명수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내려오지도 않은 명령을 운운하며 이들을 다루려 드는 것이었다.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가벼운 징계로 끝나지만은 않을 테지만,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동명수는 재범파를 가장 세력이 견고한 집단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야 저의 위신과 아비의 위신이 살고, 그것은 저의 권력 문제로 이어질 테니까.

 

제 아들 찾기에 여념이 없는 리학수만 믿고 있다가는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 마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동명수의 판단이었다. 일을 제대로 하긴 하지만, 리학수에게는 간절함이나 절박함이 부족했다. 그의 그런 벼랑 끝의 감정들은 모조리 잃어버린 아들에게 향해있었으므로. 동명수는 리학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동명수가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리학수를 제외하고서도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북의 인물이 몇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리학수와 동명수는 당의 가장 중요한 카드라든지, 버릴 수 없는 패 따위는 아니란 의미였다. 때문에 동명수는 더욱 안달이 난 상태였다. 언제든지 내쳐질 입장에 서는 것은 스스로도 용납할 수가 없었고, 누군가 저보다 앞서 나가는 것 또한 방관하기 싫었다. 저가 잡을 수도 없게, 휘적휘적 나아가 버리는 것은 표종성, 그 하나로도 차고 넘쳤다.

 

 

“조만간 움직일 느이 패거리 동향을 하나도 빠딤없이 내게 전달하라. 알갔서? 이번 일 잘 마무리 되며는, 내래 아바지에게 잘 말해 줄 테니까.”

 

 

은밀한 숙덕거림에 사내들은 싫단 말 하나 없이 복종했다. 김정일의 최측근에서 권력을 쥐고 흔드는 동중호의 눈에 보여 나쁠 것은 하나 없었다. 잘만하면 북에서의 계급장이 몇 단계는 껑충 뛸 지도 몰랐다. 명수의 말이 끝나고, 무리지어 숙덕거리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야욕을 마음 한편에 그러안고 흩어졌다. 동명수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일만 제대로 풀려준다면, 표종성 따위야 아무렇지 않게 짓밟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보다 먼저 높은 계급장을 달고, 그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비록 표종성이 동명수의 최후의 목표는 아니었으나, 그런 상상은 동명수의 기분을 추켜올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했다.

 

동명수는 입을 길게 찢으며 웃었다.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리학수와 그만을 맹목적으로 좇는 이중구, 그리고 그 아랫것들까지 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으니, 이제 강남권, 그리고 후에 화룡파와 싸워 강북까지 틀어먹으면 실질적은 우두머리는 제가 될 것이었다. 그것은 퍽이나 그럴싸하고 기분 좋은 계획이었다.

Posted by 백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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