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이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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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이상현
부러져 물이 찬 다리의 상태는 심각했지만, 그것을 잘라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의사의 진단은 너무나도 조곤조곤해서 상현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사시사철 짐승의 아가리마냥 그르렁거리는 공장에서 일했던 상현은 귀가 어두웠다. 상현은 의사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둥 마는 둥 했다. 눈길은 의사의 어깨너머 볕드는 창을 가만 응시하는 중이었다.
울음소리, 비명, 왁자지껄 떠드는 십대의 짐승들. 딸. ……딸. 딸이 죽었다. 이 볕 좋은 날, 따듯한 햇빛 한번, 아직은 찬바람에 비벼지는 나뭇잎이 사각대는 소리 한 번 듣지 못하는 흙구덩이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항시 가슴에 품어도 미안하던 저의 새끼가 십대의 짐승들에게 죽었다.
이어지려던 의사의 말이야 어쨌든 좋은지, 상현은 일어섰다. 관심이야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다리야 잘리든 썩든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상현은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의사 뒤로 비치는 바깥이 너무나 평화롭고 산뜻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몸에는 기운이 없었고 버텨줘야 할 다리는 쓸모없어진 지 오래라, 상현은 똑바로 일어서질 못하고 그대로 오른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옆으로 기우뚱하면서도 상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말라버린 표정은 다시 돌아올 줄을 몰랐다.
“에이, 씨발. 어디를 가려고? 다리 상태도 쥐좆인 양반이.”
넘어지는 상현의 몸이 우뚝, 그 상태로 붙잡혔다. 덩치가 크다는 말보단 골격이 장성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큰 키의 남자는 마치 상현이 넘어질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기우뚱하는 상현의 몸을 놀라는 기색 없이 붙잡았다. 남자는 부드럽게 사람을 대할 줄을 모르는 듯 우악스레 상현을 잡아채고선, ‘앉으쇼.’하며 고갯짓을 까딱했다.
상현은 몇 초간 남자를 똑바로 응시하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상현이 앉지 않으면 묶어서라도 앉혀 둘 위인이었고, 상현은 그것을 알았다. 의사는 둘을 번갈아 보며 안경을 추켜올렸다. 다시 자리에 앉은 상현은 고개를 푹 숙인채로 저의 손을, 그리고 너머에 있는 대리석 바닥을 응시했다. 남자는 상현을 흘깃 보고선 마저 설명하라는 듯 의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목을 두어 번 가다듬은 의사는 다시금 차트를 주욱 훑으며 상현의 영양상태, 기타 타박상과 골절에 대해 읊었다.
상현은 여전히 겨울임에도, 어째서 이토록 날씨가 맑아야 하는지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눈보라가 치고 먹구름이 잔뜩 껴 주기라고 했으면.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은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일 것이었다.
“그럼 온 김에 치료받고 가지. 다리.”
얼추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기미가 보이자 남자는 의사의 말을 끊었다. 상현은 여전히 죄인마냥 고갤 푹 숙이고선 숨만 내 쉬는 중이었다. 그러면 곧바로 준비 시킬 테니까, 진료실 나가셔서 간호사가 안내해주는 방으로……, 의사는 남자의 말에 굽실거렸다. 말투에서 느껴지는 복종의 기색에서 상훈은 공장에서, 과장과 말을 하던 저도 저런 목소리였을까 문득 생각했다. 모두가 뒤에서 핏덩이라고 씨부리던 과장에게 자신은 나름대로 예의를 차려 한 행동들이었지만 누군가 듣기엔 이렇게 비굴한 목소리였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일어나쇼. 치료 받는다니까.”
남자의 말에 상현은 기계적으로 일어섰다. 아니, 서려했다. 상현은 이번에도 중심을 잡지 못했다. 아등바등, 어떻게든 앞으로 가려던 스키장, 펜션, 그리고 강릉역 주변 시내 골목에서의 의지는 없었다. 아무렴 어떻단 말인가. 이대로 넘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이 뭐 어쨌다는 말인가.
상현은 넘어지지 않았다. 다시금 남자가 상현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는데, 남자는 한손으로 상현을 잡아 쥐고선 쯧, 하고 혀를 찼다. 남자는 상현보다 두 살이나 아래였지만 그렇다고 상현을 윗사람취급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집에……, 저, 집에 좀 가야…….”
남자에게 붙잡힌 채로, 상현은 말했다. 갈라진 목소리는 물기 없어 말라비틀어진 물감을 캔버스에 칠하는 것처럼 거칠었고, 또한 건조했다.
상현은 집에 가고 싶었다. 아니, 이제 갈 곳은 집뿐이었다. 그곳에도 이미 경찰이 보란 듯이 깔려있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잠시잠깐의 틈만 있다면 좋았다. 집으로 들어가 수진이의 사진 한 장을 품에 안고 그렇게 죽길 바랐다. 숨을 쉬면, 공기는 수컷 내 풍기는 발정 난 어린 짐승들로 변해서 상현의 폐부를 갈가리 찢어낼 듯 난동을 부렸다.
남자는 상현을 말없이 응시했다. 이렇다 할 대답은 없었다. 상현을 잡아 쥔 채로, 남자는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상현이 아닌 의사를 목적지로 삼고 있었다.
“30분 뒤에 치료지 뭔지, 받으러 갈 테니까 준비해 놔.”
의사는 고개만 크게 끄덕였다. 남자의 시선은 고개를 주억거리는 의사가 아니라 상현에게 박혀있었다. 꿰뚫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시선에도 상현은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을 중얼거렸다. 만약 의사가 당장에라도 수화기를 집어 들고 경찰을 부른다면……, 상현은 아마도 수진의 웃는 사진 한 장 볼 수가 없을 것이었다. 보여지는 사진은 아마도 조두식과 김철용의 것이겠지. ‘내가 훔친 거 아니에요!’ 죽기 전까지 그렇게 발악했던 김철용, 죽어가면서도 수진이에게 사죄한번 하지 않았던 그 놈. 할 수만 있다면 상현은 그 놈을 다시 살려내 속죄를 요구하고 싶었다.
남자는 상현을 끌어내다시피 했다. 힘없이 끌려 진료실 밖으로 나오면서 상현은 어째서 의사가 저를 신고하지 않는지 의문을 품었지만, 이내 거두었다. 신고를 해 봤자 득이 되는 것이 없을 테니까. 가장 간단하고 명백한 이유였다. 저를 이토록 물건 다루듯 막무가내로 끌고 다니는 남자, 이중구가 버티고 있는 한, 상현은 쉽게 경찰에 떠밀리지 않을 것이었다. 정치니 경제니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던 상현도 알음알음 들어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이중구. 골드문의 높으신 이사님. 상현은 아직도 이 남자가 어째서 저를 쥐려 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40대 남자인 저를. 그저 딸을 잃고 살인마가 됐다는 것 말고는 어느 것 하나 특출 날 것 없는 전데. 왜 높은 곳에서 호위호식 하며 사는 남자가 관심을 가지는 건지 말이다.
이중구는 막무가내로 상현을 끌고 화장실에 밀어 넣었다. 공용 화장실임에도 이중구는 망설임 없이 문의 잠금장치를 걸었고, 저를 잡아주던 중구의 손이 없어진 상현은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꼴이 됐다. 바닥에 물기가 없던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넘어진 채로 상현은 생각했다.
문을 걸어 잠근 이중구는 돌아서 상현을 내려다보았는데, 실로 그 덩치 탓인지 눈빛 탓인지 흘러나오는 위압감은 맹수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중구는 말없이 상현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목이 졸려 잔기침을 하며 상현은 저의 집 은색 브라운관 텔레비전 위에 놓여있는 저와 수진의 사진을 떠올렸다. 아내도 같이 찍혀있던, 온전한 가족사진. 다시 찍으려야 찍을 수도 없는 사진 말이다.
“씨발, 사람 꼴리게…….”
작은 기침을 하는 상현을 보며 중구는 으르렁거리듯 말을 짓씹어 뱉었다. 한 손으로 상현의 멱살을 잡은 채, 중구는 상현에게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반사적으로 놀란 상현의 고개가 뒤로 빠졌고, 중구는 그런 상현을 좇듯 몸을 밀어 붙였다. 밀쳐지던 상현의 몸이, 화장실 두 번째 칸으로 밀려들어갔고, 이내 오금이 좌변기에 부딪혀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뚜껑이 덮여있는 변기에 앉혀진 상현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고 중구 역시 그걸 알았지만, 잡은 멱살을 놓아줄 생각은 없어보였다.
중구는 상현의 뒷머리 채마저 잡아 제 쪽으로 잡아당기면서 상현의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아직 터진 입술이 낫지도 않은 참이라, 상현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중구의 다리에 상현의 오른 다리가 맞부딪혔다. 자르르 올라오는 고통에 상현은 헛숨을 들이켰고, 중구는 벌어진 상현의 입에 제 입을 맞물렸다.
중구의 목울대에서는 짐승마냥 으르렁대는 소리가 한창이었다.
중구는 멱살 잡았던 손을 놓고 급하게 제 바지 벨트를 풀어냈다. 철컥철컥 소리가 마냥 이질적이었지만, 상현은 제 혀를 집요하게 자극하는 느낌이 생경해 정신이 흐트러진 참이었다. 다시, 처음 만났을 때의 이중구가 떠올랐다. 눈 덮인 스키장에 여전히 경찰은 두엇씩 짝을 지어 돌아다니고 있었고, 강릉역 주변으로 목적지가 정해진 상현은 그곳까지 갈 힘이 없었다. 샛길로 눈밭을 기듯 빠져나왔지만 상현은 끊어질듯 말 듯 하는 정신 줄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상황이라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경찰이라면 저항한번 해 보지 못한 채로 잡혀갈 상황이었다.
간신히 일어선 몇 번이나 넘어지고 구르다 기어이 한적한 곳에 주차된 고급 세단위에 엎어졌는데, 지팡이마냥 짚고 있던 총이 차체를 주욱 하고 긁으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차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검게 선탠이 된 차창이 천천히 내려가고, 동시에 운전석에서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가 욕을 씨부리며 튀어나왔다. 이 새끼가 돌았나……. 그 목소리에도 상현은 오로지 제 몸뚱이의 중심 잡는 것만을 신경 쓰고 있었다. 어떻게든 조두식을 만나야만 했다. 만나서…….
차에 탄 채로 상현을 보던 남자가 문득 말했다. 야, 이거 뉴스에 나온 그 새끼 아니냐? 상현을 두들겨 팰 기세로 다가오던 운전석의 남자는, 그대로 멈춰 섰다. 상현의 손에 들린 총을 본 것이었다. 이사님, 이 새끼 총을 들고 있는데요. 주춤거리는 목소리. 겨울바람이 찼다. 뒷좌석에 앉아서 상현을 관찰하던 남자는, 이중구는, 재밌다는 듯 상현을 위 아래로 훑었다. 차에 태워. 그 목소리에 상현은 처음으로 제 다리와 총이 아닌 남자를 응시했다.
차에 태워. 자신을 옭아매어버린 시발점은 그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숨을 헐떡대며 상현은 생각했다. 저가 총을 맞기 전에 들이닥친 한 무리의 검은 정장들. 이, 이 새끼들 뭐야! 하고 놀란 경찰이 장전된 총을 상현에게서 돌려 겨누기 전 남자들은 재빨리 모두를 제압했다. 놀라 숨을 헐떡이며 떠는 조두식. 그를 두고, 상현은 저를 태워 강릉역에 내려준 차에 반강제적으로 다시 쑤셔 박히게 되었다. 지금, 화장실 칸에 이렇듯 밀려 넣어진 것처럼.
벨트를 풀고 지퍼를 내린 중구는 상현의 손을 붙잡아 당겼다. 손을 빼내려는 듯 상현이 주춤댔지만, 중구가 맞물린 입을 살짝 떼어내고선 ‘강릉역. 빚 갚는다지 않았수?’하고 숨을 몰아쉬며 말하자 이내 손은 순순히 딸려갔다. 상현은 이 상황에서도, 어째서 중구가 저에게 발정하는지 알 수 없었다. 평생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의문투성이의 남자였다, 이중구는.
상현의 손을 겹쳐 잡은 채로, 이중구는 급하게 제 성기를 꺼냈다. 상현의 손에 닿은 중구의 것은 뜨거웠다.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다시, 급하게 입을 맞물리며 이중구는 상현의 손을 억지로 움직여 저의 것을 잡고 흔들었다. 평생 해 본적 없는 일은 마냥 어색하고 또한 묘한 공포심마저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상현은 손을 빼지 않았다. 이걸 순순히 해준다면, 어쩌면 수진이 사진 몇 장쯤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화장실은 냉기가 가득했다. 볕드는 진료실보다 차라리 견딜 만 했다. 중구의 것을 수동적으로 흔들면서, 상현은 다자란 짐승의 발정 난 냄새를 맡았다. 풋 냄새나는 새끼들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끈적함이었다. 금세라도 제 목덜미를 물어뜯길 것 같은 긴장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중구가 실제로 짐승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구가 상현의 혀를 잘근잘근 씹었다. 아. 작게 탄식하듯 상현이 소리를 냈고, 중구의 주도하에 상현의 손은 좀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전히 상현의 뒷머리 채를 잡아챈 중구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그것이 무슨 신호인지 상현은 잘 알았다. 알면서도 손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대로 두면 욕망의 산출물은 저의 옷 위에 잔뜩 튈 것이 분명했지만 말이다.
씨이발……. 이중구가 맞물렸던 입을 떼고 그르렁 대며 상현의 머리채를 강하게 당겼다. 상현의 목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젖혀졌고, 중구는 무방비하게 드러난 목에 제 이를 박아 넣었다. 여자의 것과는, 하다못해 낭창한 사내의 것도 아닌 상현의 몸뚱아리에선 홀아비 냄새가 났다. 깍지 않은 수염은 까칠했다. 중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어 중구는 파정했고, 그제야 상현의 손을 놓아주었다. 목에 선명한 잇자국.
상현은 멍이 들겠지,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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