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내추럴] 크라울리 X 베니 라피테
크라울리가 지옥에 괴물 하나를 들인 것은 정말이지 의외의 결정이라, 지옥 내에서도 그의 심중을 예측하려는 의견들이 분분했다. 왕이 미쳤다는 극단적인 말부터, 분명히 또 새로운 사업을 구상중이실거라는 긍정적인 말까지. 돌아다니는 말은 많았으나 크라울리 앞에서 이렇다하고 간언하는 자는 없었다. 그는 지옥의 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비 없는 폭군이었다. 특히나 법정에서는 말이다.
크라울리의 명령으로 연옥에 들어간 마녀와 마법사들은 뱀파이어 하나를 억지로 몸에 넣고 들어왔다. 그의 육신은 크라울리가 지상에 들러 손수 찾아왔는데, 지옥의 그 누구도 크라울리가 이토록 정성을 들이는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여전히 소문은 파다했고 억측은 난무했지만 크라울리에게 직접 물어보는 자가 없어 아무도 진상을 파악하지 못했다.
연옥에서 끌고 온 녀석은 지하 감옥의 벽에 붙은 족쇄에 메여있었다. 그를 찾을 수 있는 것도, 말을 붙일 수 있는 것도 오로지 크라울리 뿐이라 그 녀석의 이름을 아는 악마는 아무도 없었다.
“내 말을 좀 들어봐.”
날이 무딘 나이프를 손 안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크라울리는 감옥 안을 서성였다. 벽에 기대 널브러지듯 앉은 사내는 손을 봉쇄한 수갑 때문에 예수처럼 양 팔을 뻗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팔은 살점이 떨어져나간 곳도 있었고 도려내진 곳도 있었다. 다리는 하얀 뼈가 드러나 있었다. 넝마가 된 옷은 검붉은 얼룩이 한 가득이었다. 죽었다고 봐도 좋을 몸을 감흥 없이 바라보며 크라울리는 번들번들하게 닦은 구두코로 사내의 다리를 가볍게 걷어찼다. 그 작은 충격에도 남자는 끙, 하고 작게 신음을 흘렸다.
“……이번에도 딘에게 한방 먹었나보지? 여기 와서 화풀이를 하는 걸 보면”
갈래갈래 찢어놓은 것처럼 새는 목소리였다. 달싹이는 입술은 말라있었고 관리하지 못한 수염은 엉망이었다. 본디 허스키하던 목소리는 고문에 새된 신음을 한참이나 내질렀던 통에 더욱 엉망이 되어있었다. 불문명한 발음은 잘린 혀끝 때문이었다. 본래도 또박또박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크라울리는 고개 숙인 그가 저를 보지 못함을 알면서도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아니야. 나는 이제 네가 인정하길 바라고 있는 거야, 이빨 녀석아.”
“…….”
“딘 윈체스터는 너를 잊어버렸다고. 연옥에서 잠깐 만난 흡혈귀 따위, 그 녀석이 오래 기억할 것 같아?”
베니. 달래듯, 크라울리가 이름을 불렀다. 부드럽게 혀를 굴려 다시 한 번 크라울리가 이름을 불렀다. 베니. 그러니까 네가 날 좀 도와줘.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이란 건 이런 게 아닐까. 가르랑대는 숨을 내쉬며 베니는 생각했다. 방금까지 저를 난도질하고 찢어놓던 것이 무색하게 어르고 달래는 꼴이라니. 연옥에서 험한 꼴 보며 살아오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저라고 해도 홀라당 넘어갈 만큼, 강약 조절이 자연스러웠다. 베니는 웃음을 터트리려 했지만 목에서 들끓는 피 때문에 그저 피가래를 바닥에 퉤, 하고 뱉을 따름이었다.
“……네 속셈이 훤히 보여서 동의해 줄 수가 없단 말이야.”
“속셈?”
“내가 동의하면, 너는 나를 데리고 딘을 괴롭히려 들겠지.”
“…….”
크라울리가 칼끝으로 제 코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면 안 되나? 자문자답을 하듯 중얼거리고선 작은 콧방귀까지. 여태까지 두 형제 녀석이 자신을 괴롭힌 게 얼만데, 이정도 재미도 못 본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딘 윈체스터가 유일하게 곁을 내어준 괴물을 잡았다면 만족스러울 만큼 이용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딘의 정신을 무너트리고, 혼란을 야기하면서.
베니가 혀로 입술을 축였다. 어렴풋이 딘의 얼굴이 떠올랐다. 노이즈가 껴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얼굴. 지옥에 갇혀있는 동안 머릿속에 담아놓은 추억거리들은 온통 휘발해 남은 것이 별로 없었다. 기억은 흐려져서 그나마 가장 선명한 것은 ‘베니!’하고 저를 부르던 목소리뿐이었다. 그런 녀석한테 홀리다니 나도 제정신은 아니야. 속으로만, 그 말을 중얼거렸다. 크라울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속내였으므로.
“아쉽게도 말이야. 나는 아직도 딘의 친구거든.”
딘에게 해가 될 짓을 하자는 제의는 거절한다. 무거운 고개를 굳이 들어 눈을 맞추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베니가 사납게 웃었다. 시선을 맞춘 채로 크라울리는 칼을 고쳐 쥐었다. 오, 지옥의 창녀씨. 내가 허벅지가 가려운데 좀 긁어주지 않을래? 베니가 이죽이었고, 크라울리는 수직으로 세운 검을 그의 허벅지에 곧장 박았다. 갈가리 찢어지는 비명이 지하 감옥에 가득차고도 넘쳐, 온 지옥을 생생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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