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N 기반 자캐 (Vampire Ver.)

라미엘 x 제임스 토드

 

 

 

 

기야, 안녕.

 

그 가벼운 인사말이 얼마나 묵직하고 어두웠는지, 토드를 제외한 누구도 알지 못했다. 주인이 없는 뱀파이어의 둥지 한 가운데서 벌어진 일이었다.

 

제임스 토드는,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의 제임스 토드는 꽤나 평판이 좋은 인물이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경찰의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정신병이 있는 범죄자일 뿐이었지만. 헌팅을 위해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감옥에 들어가고, 신분을 위조하는 것은 그의 일상이었다. 재수가 없으면 그런 사실의 파편이 밝혀지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그는 경찰서에 들어가 차가운 수갑을 차고선 취조를 받아야만 했다. 물론 대개의 경우 다른 동료들이 와서 빼내주곤 했지만.

 

헌터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나빴지만 체감 상으로는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었다. 카드 위조나 신분 위조 덕분에 배를 곯지 않고도 생활 할 수 있었고, 프리랜서마냥 저 내킬 대로 일에 착수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일을 시작하고 나면 커피와 수만 가지 자료, 피와 사체들의 천국이 벌어지긴 했지만.

 

홀로 있는 뱀파이어의 둥지에서 토드는 저의 과거를 상상하던 중이었다. 불청객이 끼어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인간이었을 적의 그는 동족잔상의 비극을 자행하던 인물이었다. 늑대인간, 형태 변환자, 귀신이나 뱀파이어뿐만이 아니라 그는 사람을 죽였다. 죄 있는 자들을 마치 지옥의 수문장이라도 되는 냥 처참히 베곤 했다. 그는 악행을 행한 자는 죽어야 한다고 배웠기에, 그리 행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토드는 감정이 있는 일개 인간에 불과했고 매 살인마다 덧씌워지는 죄책감은 검은 파도처럼 그를 잠식했기에 어느 순간이후부터 그는 자신의 미래가 암담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그 죄의 무게를 견딜 수가 있었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사람과 같은 것들을 죽였으니 나는 죽어서 지옥에 갈 거야. 제임스 토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천사 하나가 그의 일상에 끼어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라미엘. 사랑의 천사. 토드는 저를 보며 빙긋 웃는 사내를 향해 작게 이름을 읊조렸다. 라미엘, 이라고.

 

그가 이 종족과의 연합을 위해 로드하우스로 갔던 것은 수년전의 일이었다. 유황냄새가 진동했고 간간히 탄약 냄새가 있었으며 푸른 눈을 번쩍이는 존재들이 걸어 다니던 곳이었다. 그들은 팀을 짜 조사를 하고 사냥을 했다. 아니, 했었다. 과거의 일이었지만 그것은 보통의 것들보다도 더욱 아득한 먼 일처럼 느껴졌다. 뱀파이어가 되고 난 이후에는, 인간이었을 적 이야기가 모두 꿈같이 느껴져서 더욱 그럴 수도 있었다.

 

그곳에서 천사를 하나 만났다. 다른 천사들보다 기억에 남는 이유는……. 글쎄. 그 녀석이 자신에게 버거울 정도의 관심을 주었기 때문일까. 끌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천사는, 날개달린 신의 전령들은, 그에게 다가오면 좋지 못했다. 제임스 토드는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은 평범한 인간보다도 더 바닥이었다. 바닥이라기 보단 수렁에 가까웠다. 겁이 없는 천사가 멋모르고 다가온다면 쳐내는 것은 자신이어야 옳았다. 그래서 그는 천사를 버렸다.

 

지옥에 간 너를 도로 천국으로 끌고 올라갈 거야. 라미엘이 말했었고 거기엔 티끌만큼의 농담도 없어서 토드는 겁에 질렸다. 정말로 그렇게 될까봐. 살아있는 걸들을 죽음으로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인도한 자신이 양심 없이 천국에 발을 들이게 될까봐 토드는 겁먹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변했다. 송곳니를 가진 구슬프고 비루한 존재로 말이다.

 

자신이 죽인 뱀파이어의 피를 핥아먹으며 제임스 토드는 구역질을 했다. 피는 비리고 역겨웠지만 그보다는 이 행위를 하는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이 더욱 지배적이었다. 그는 피를 핥고 또 핥았다. 두 번은 못할 일이었으니 한 번에 완벽하게 해내야했으니까. 뱀파이어는 자신에게 피를 준 ‘아버지’에게 구속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는 저의 아버지가 될 자를 우선적으로 죽이고 일을 시작했다. 이 역시 용서받지 못할 살생이었다.

 

그는 자신의 오래된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트렁크 한 가득 혈액 팩을 쟁여두고, 그는 거기에서 변했다. 인적이 드문 산길이라 사람이 드나들 일은 없었다. 토드는 자신이 본능에 의한 살생을 하지 않길 바랐다. 어차피 연옥에 떨어질 몸이었지만, 그래도 죄를 늘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너는…….”

 

 

토드가 새액, 소리를 내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천적을 만나 경계를 하는 뱀처럼 말이다. 맞은편의 천사는 그저 빙긋이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 웃음이 불안해서 토드는 안절부절 못했다. 자신을 죽이러 와준 거라면 기꺼이 목을 내어줄텐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뱀파이어가 되어 그의 품에서 멀어진 자신을, 라미엘은 전혀 꺼리고 있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게 아닌데.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은 하나의 자욱한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고 이성을 잡아먹었다.

 

라미엘이 한 걸음, 그에게 다가왔다. 발걸음은 조용하고 다가선 거리는 그저 한 발짝일 뿐이었지만 그게 숨이 막혀 토드는 헐떡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본능이 보내는 빨간 사이렌 소리는 극성맞을 정도로 요란한 경고였다. 라미엘은 손등으로 가볍게 제 입가를 문질렀고, 토드는 그의 옷소매에 낭자한 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코 남의 피를 묻힐 자가 아니었는데. 그제야 토드의 시선은 천천히 사내의 복장으로 흘렀다. 멀쩡한 옷에 잭슨 폴록이 붉은 물감으로 예술을 하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 지옥에 몸을 담그고 온 천사가 저러할까. 토드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이, 자꾸만 목 너머에서부터 기어 올라오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푸른 눈을 빛내는 녀석을 엇갈려 응시했다.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빛나는 것은 광채가 도는 푸른색인데, 머리가 인지하는 빛은 지독한 어둠이라서.

 

너는……. 대체 누구야?

 

토드는 질문을 꾹 눌러 삼켰다.

Posted by 백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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