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내추럴] 딘 윈체스터 X 베니 라피테
베니는 우뚝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바탕의 소란 탓에 알지 못했던 비를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것들은 베니의 머리를 적시고 어깨를 적시고 바닥으로 하강했다. 무인도나 다름없는 섬의 별장, 그리고 그 우측으로 해변을 따라 걷다보면 나오는 배 한 척, 럭키 마이라.
그래, 이곳은 쿠엔틴의 본거지였다. 베니는 현관에 서서 비를 맞고 그대로 돌아갈 것인지 잠시 소나기가 그치길 기다릴지 고민했다. 등 뒤에서 딘이 부스럭대며 곡도(曲刀)에 묻은 피를 시신의 옷에 닦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저런 칼을 시미터라고 하던가. 시답잖은 생각이 베니의 머릿속에서 부유했다. 피가 튄 신발 코에 바닥에서 되튄 빗방울이 안착했다. 베니의 시선은 럭키 마이라에서 아득한 해변으로 멀어지다 해변, 별장 앞의 조명, 그리고 현관의 계단과 발치로 가깝게 다가왔다. 시선은 갈 곳을 몰라 방황했다. 마치 베니 그 자신처럼.
“출발 안 해?”
“비가 오는데.”
오른쪽 뒤에서 불쑥 날아든 저음의 목소리에 베니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이 녀석은 방금 전 제 옛 사랑의 목을 베었다. 화를 내야하는 부분일까. 아니면 감사해야하는 부분일까. 베니는 혼란스러움에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목이 메어서 말이 제대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딘이 끊어준 것은 과거의 족쇄였지만, 베니는 이 족쇄하나에 묶여 지상으로 올라온 자였다. 갈 곳 잃은 영혼은 방황하기 마련이었다. 목적지를 잃은 그는 그저 소나기를 응시했다. 아니, 소나기 너머의 흐릿하고 어둑한 풍광을 눈에 담았다. 어느 쪽을 봤든 머릿속에 남는 것은 없었지만.
“소나기인 것 같은데. 잠시 기다렸다 갈까.”
베니의 옆에 나란히 선 딘이 손을 내밀어 후드득 떨어지는 빗물을 받았다. 차가운 물기가 금세 딘의 손을 적시고 옷소매를 물들였다. 베니는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리고 입 꼬리를 아래로 꺾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될 것 없다는 그 나름의 신호였다.
딘에게서는 비린내가 났다. 비가 오고 있으니, 코끝에 물비린내가 스며서 그러는군. 베니는 생각했지만, 이것이 딘을 위한 어처구니없는 변명임은 스스로도 잘 알았다. 이것은 안드레아의 피비린내였다. 베니의 후각은 인간일 적보다 수십 배는 예민했다. 물비린내와 피비린내를 구별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세뇌하듯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소나기가 퍼부으니, 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군.
베니는 딘을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딘이 마땅한 일을 했다는 사실은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 상황에 딘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안드레아의 손에 의해 연옥에 떨어졌을 게 분명했다. 아마 연옥에서는 저의 아버지 쿠엔틴과 소렌토가 기다리고 있었을 테고. 여러모로 좋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베니는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펴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여러 가지 질문들은 부유했지만 정확한 문장이 아닌 터라 그는 대체 자신의 속을 뒤집어놓는 물음표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딘은 베니의 등을 보고 있었다. 오늘의 베니는 제가 알던 녀석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베니의 어깨가 쳐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딘은 살금살금 목이 떨어진 안드레아의 시체를 끌어 복도로 옮겼다. 소나기가 지나갈 때 까지만 머무를 것이라고 해도, 베니의 눈앞에 동족의 시체를 늘어 놓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특히나 그것이 베니의 전 반려였을 경우에는 말이다. 다리를 잡아끌자 안드레아의 몸뚱이는 만세를 하듯 양 팔을 위로 늘어트리며 질질 끌려왔다. 떨어진 머리는 의자 다리 옆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큼지막한 눈을 부릅뜬 채로.
입이 마르는 기분에 딘은 마른침을 삼켰다. 뱀파이어 둥지를 친 것은 수십 번이었지만, 오늘처럼 기분이 착잡한 적은 없었다. 비가 모든 감정을 땅으로 잡아끌어 내리는 것처럼 자꾸만 마음이 쳐졌다. 혀끝에서는 쓴맛이 돌았고 머리에선 약한 두통이 올라왔다. 딘의 시선은 여전히 베니에게 붙어있었다. 안드레아를 치워내면서도.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 볼까 생각했지만 딘은 이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베니의 심정은 제가 짐작할 수 없는 범위였다. 산전수전을 겪고 주변 사람들을 수 만 번 잃어본 그였지만,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은 없었다. 제가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제 옛사랑을 베어버린 상황 말이다. 딘은 자신이 베니에게 유일하게 남은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베니는 생각보다 오래 살았고, 적이 많았고, 동료가 적었다. 게다가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자들은 지금……. 이 집에서 죽어나지 않았는가. 이제 베니에게 오롯이 남은 것은 저였다.
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딘은 그 소리와 감촉을 애써 무시했다. 보나마나 샘의 연락임이 분명했고, 그는 받고 싶지 않았다. 베니와 단 둘이 보낼 시간은 소나기가 잠시 내리는 지금 뿐이었다. 아마 오늘 이후로 샘의 간섭은 심해질게 분명했고 자신은 동생을 끊어내지 못할 테니. 딘은 어렴풋이 베니와 저의 마지막을 짐작했다. 헌터와 뱀파이어. 어울리지 않는 조합임은 분명했다. 이 조합이 제법 괜찮다고 주장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샘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샘은 이해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아니,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않을 터였다. 마치 과거의 자신이 샘의 괴물 친구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이봐, 베니. 나는…….”
“알아.”
“안다고?”
베니의 바짓단이 젖어가고 있었다. 베니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서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노란 조명이 아슬아슬하게 베니의 머리칼에 스쳐 반짝반짝 부셔졌다. 베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얼굴의 옆선이 간신히 드러날 정도로 고개를 돌린 그는, 뒤편의 딘을 흘깃 응시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딘. ……덕분에 살았다. 목소리는 무거웠다. 소나기가 목소리에까지 스며들어있었다.
베니의 옷소매에는 피가 튀어있었다. 그가 그 자신의 아비를 베면서 튄 피였다. 그는 사랑받는 아들이자 으뜸가는 피조물이었다. 베니는 제 아버지가 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았다. 비뚤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확실한 애정이었다. ‘신과 동침하는 특권’이라는 말은 안드레아에게만 해당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 역시 그 특권을 누렸으니까. 베니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코웃음 쳤다. 결국 추잡하게 얽힌 관계들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제 은인이자 친구인 녀석의 칼 아래에서.
베니는 그럼에도 딘에게 분노하지 않았다. 저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안드레아를 베어버린 녀석이지만, 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분노하지 못했다. 딘은 베니에게 중요했다. 그 중요라는 것이 어떠한 감정을 담고 있는지는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지만. 딘은 중요한 존재였다. 다시 말하면 소중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베니는 딘을 믿었고, 아꼈으며, 소중히 여겼다.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나는…….”
애써 입을 열었지만 뒷말은 서서히 흐려지다 입안으로 말려들어갔다. 베니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바깥을 향해 열린 문을 등지고 돌아보기 싫은 실내로 몸의 전면을 향하자 보이는 것은 의자에 걸터앉아 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딘이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제가 억지로 앉혀져있던 자리였다. 딘이 몸을 뒤척이면 의자 가죽이 삐거덕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이제 나는 너 밖에 안 남았다. 디노. 농담처럼 던지려고 했던 말인데, 베니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이것이 딘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가 어떠한 족쇄가 될지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베니는 딘에게 이 이상의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도 작은 도움을 청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무게는, 저로서도 사양이었다. 마치 제 남은 인생을 책임지라는 소리 같지 않은가. 딘은 친구이기 이전에 헌터였다. 이 순서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베니는 생각했다.
딘에게는 천사가 붙어있었다. 천사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헌터? 그게 과연 얼마나 될까. 딘은 그저 그런 사냥꾼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몰라도 폭풍의 눈에 기거하는 생명체일 게 분명했다. 그런 존재들은 대개 짊어진 것이 어마어마하기 마련이었고, 베니는 그 위에 자신까지 하나의 짐짝으로 얹히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가볍게 인사나 던질 수 있는 친구에서 만족해야했다. 비록 자신에게 남은 것이 딘뿐이라고 해도.
소나기 소리가 한층 거세어졌다. 딘은 베니의 푸른 눈을 보고 있었다. 음영이 져서, 눈동자는 베니의 등 너머로 펼쳐진 어둑한 바다 같았다. 반사되는 빛은 적었고 심연이 얼핏 드러나는 묵직함이었다.
딘은 끈기 있게 베니의 말이 제대로 끝맺어지길 바랐으나 베니는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딘이 들은 것은 ‘이제 나는…….’이라는 불문명한 문장의 초두뿐이었다. 뒤에 이어질 말은 셀 수없이 많아서 딘이 예측할 수가 없었다.
딘은 제 안의 상반된 두 감정 중 어느 것에 치우쳐야 할지 몰라 얕게 인상을 쓰고 표정을 가다듬고 있었다. 상실감에 젖은 베니는 딘에게 마이너스였다. 반대로, 그러니까 플러스적 요소는……. 딘은 어둑한 복도 끝으로 끌어내어진 안드레아의 시체로 시선을 던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했다. 그는, 그러니까 딘 윈체스터의 가장 심연의 본능은 어처구니없게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웃음 말이다. 살생을 했다는 것보다 저의 감정이 이렇게 널뛰고 있다는 사실에 딘은 더욱 큰 죄책감을 느꼈다. 그의 마음 한 조각은 베니의 상실을 기뻐하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저 뿐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에. 베니에게 유일무이한 누군가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딘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무언가 있어서는 안 될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명확히 깨닫고 있었다. 이유를 모르는 들뜸은 찝찝하고 불쾌했다. 떨쳐지지도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베니를 보며 딘은 표정을 다잡았다. 빗발치는 소나기를 따라 두통역시 거세졌다. 상반된 감정과 이성과 본능이 한데 어우러져 저들끼리 엎치락뒤치락 대는 곳이 딘의 머릿속이니, 두통이 일어날만했다.
둘은 서로를 가만 들여다보며 침묵했다. 침묵은 길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각각 정리해내야 할 번잡한 상념들이 많아 서먹한 기류를 느낄 새가 없었다. 여전히 비린내는 진동했고, 베니는 그것이 물비린내라고 되뇌었다. 따듯한 조명이 비추는 바닥은 질질 끌린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딘과 베니의 옷은 모두 핏방울이 군데군데 튀어있었다. 목 단추를 하나도 잠그지 않은 베니의 아이보리색 티셔츠는 다시 입지 못할 정도로 붉은 그림이 가득했다. 붉은 물이 든 소나기를 맞은 것 같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옷을 입은 딘의 상태가 그나마 나았다.
야차 둘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소나기가 그칠 때까지, 거대한 무덤이 되어버린 저택에서. 초록색 눈에서 불꽃이 튀었고, 푸른 눈이 소나기에 젖었다. 결국에 마주하면 불은 꺼지고 물은 증발해버릴 관계라 그들은 다가서지 못했다. 연옥에서부터 지상까지 기어 올라온 둘의 거리는 여전히 멀었다. 위태로운 관계는 들춰내지 못한 감정들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둘은 그저 추적추적 내리는 소나기에 모든 것을 씻어내기로 결심했다. 비가 그친 후 보트를 타고 육지로 나아갈 때면 평소의 자신이 되어있기로 마음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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