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내추럴] 카스티엘 X 베니 라피테
카스티엘의 일 순위는 딘 윈체스터다.
딘 윈체스터의 일 순위는 샘 윈체스터다.
샘 윈체스터의 일 순위는 딘 윈체스터다.
명백하게 보이는 관계는 결국 한 사람만 외롭게 남기곤 했다.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 없는 화살표가 항상 서러웠지만, 카스티엘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천사였고 감정에 무지했다. 아마 외로움과 서운함을 느꼈다 하더라도 본인은 눈치 채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그는 피자 배달부의 육체적 폭력이 일으키는 흥분 상태에 대해서도 파악하지 못하는 존재였으니까.
그것은 그가 천사였을 때의 이야기였다. 은총이 바닥나고 날개가 떨어져 나가기 전의 이야기였다. 지금의 카스티엘은 다리가 부러지면 두 달을 고스란히 병상에서 보내야하는 인간에 불과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육체적인 나약함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수십억 년 동안 모르고 지냈던 폭발적인 감정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종말이 닥쳤을 때 카스티엘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이란 많지 않았다. 모든 것은 삭막하게 말라붙었거나 썩어있었고, 사람들은 대게 겁을 먹거나 화를 냈다.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언제나 과격했으나 한편으론 단조로웠다. 사상자가 생기면 모두가 침울해했고, 식량을 구하면 모두가 기뻐했다. 딘이 무모한 계획을 세우면 다들 짜증을 내거나 답답해했고, 크로츠에게 상처를 입어 감염이 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다 죽었다. 안정적인 상황에서나 배울 수 있는 섬세한 감정들을 배울 기회가 카스티엘에게는 없었다.
카스티엘은 날개가 떨어질 때, 절망을 배웠다. 헤어나는 법을 알려줘야 할 첫 번째 사람은 제 동생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 역시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이었다. 끝없는 감정의 심연에서 기어 올라오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그런 것을 알려주기에는 다들 제 목숨이 급급했다. 카스티엘은 견디지 못했다. 약과 여자, 술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딘은 카스티엘의 비정상적인 타락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지만 그런 그를 타박하지는 않았다. 카스티엘에게 한 마디를 던질 기력으로, 그는 샘과 콜트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몰두했다.
2014년의 종말에서 벗어나, 종말이 없는 차원의 미래로 건너온 카스티엘은 드디어 총소리가 숨 쉬듯 들려오는 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기름진 음식을 먹었으며, 멀쩡하게 수신이 되는 텔레비전을 틀고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기어 올라오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심연에 있었다.
카스티엘은 천사였던 자신이 그러했듯이 텔레비전 앞에 바짝 붙어 화면을 들여다보곤 했다. 물론 이내 뻐근해지는 허리에 등을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카스티엘의 은총은 돌아오지 않았다. 천사들이 모두 지구를 떠났을 때 사라져버린 은총이라면, 천사들이 가득한 이곳에선 도로 회복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딘이 물었지만 샘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여기는 캐스에게 다른 차원이잖아. 영향을 받지 않나보지. 그 말에 카스티엘은 눈으로 형제를 흘깃 보고 이내 시선을 돌렸다. 다른 차원의 형제들에게, 자꾸만 모난 마음이 들던 참이었다.
카스티엘에게 여전히 일 순위는 딘이었다. 물론 아버지의 존재가 첫 번째였던 적이 있었지만, 그건 오래전의 이야기였다. 자신이 이렇게 타락해버리기 전. 루시퍼가 날뛴다면 그것을 막아줄 위대한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의 이야기 말이다. 신은 도망쳤거나 죽었다. 카스티엘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아버지를 믿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강인한 인간 하나에게 마음을 쏟았다. 사실 그것은 꽤나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카스티엘은 이제 인간이었다. 마냥 주기만 하는 것이 얼마나 에너지 소모가 심한 일인지, 그는 깨닫고 있었다. 이전에는 괜찮았다. 딘의 곁에는 샘이 없었고, 딘은 무뚝뚝했으며, 감정 하나하나에 신경 쓰기에는 모든 상황이 경각에 달려있었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샘이 있었다. 딘에게는 돌봐야 할 동생이 있었고 살려내야 할 ‘진짜’ 카스티엘이 있었다. 카스티엘은 여전히 딘에게 모든 걸 내어줄 마음이 있었지만, 딘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차근차근 깨우쳐 갈 때마다 카스티엘은 마음속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원망을 누르기 버거웠다. 그는 속이 상했고, 서러웠으며, 외로웠다.
카스티엘은 종종 심술을 부렸다. 멀쩡히 식사를 하다가도 너희가 정말 싫다며 그릇을 밀쳐두고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의 정신은 온전치 못했다. 약과 술에 찌들어있었던 뇌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먼저 자리를 잡은 마음은 카스티엘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카스티엘은 악몽을 꾸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연약한 인간이었다.
보모 자리를 맡은 것은 베니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카스티엘은 그나마 베니에게 가시를 덜 세웠다. 전혀 모르는 존재에게까지 신경질을 부릴 만큼 카스티엘은 예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둔감한 편이었다. 다만 딘에게 주는 감정이 너무나도 컸었기에, 그 둔감함으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을 뿐이었다.
“나는 딘이 벌려 놓은 일을 수습해주기엔 너무 지쳤어.”
벙커 밖으로 나가 식료품을 사오겠다며 차키를 챙겨나가는 형제를 보며 카스티엘이 말했다. 언제나처럼 그의 몸은 흐느적거리듯 반쯤 기울어있는 상태였다. 의자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오른팔을 테이블에 괸 채로 카스티엘은 샘과 딘이 벙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베니는 카스티엘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긍정이나 부정을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육중한 문이 그저 공기가 짓눌리는 작은 파열음만을 내며 닫혔을 때서야 카스티엘은 비로소 베니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단추가 세 개 달린 아이보리색 카라 없는 티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베니는 샘이 펼쳐둔 서적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사건들이라는 건 줄을 서서 차례차례 오는 것이 아닌지라, 벙커는 늘 분주했다.
“이 차원의 카스티엘이 되살아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죽거나, 돌려보내지거나.”
베니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카스티엘도 알고서 하는 질문일 테니. 카스티엘은 발작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덥수룩한 수염을 손으로 매만지면서. 그의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익숙하지 않은 인간의 무기를 다루면서 얻은 것일 터였다. 베니는 웃는 카스티엘을 예의 그 푸른 눈으로 바라보다 도로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동정하는 기색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동정할 여유도 없지만 말이다.
“한번 쓰고 버리겠다는 거네. 윈체스터다워. 정말이지, 우리의 위대하신 지도자님다운 냉철한 결정이라고.”
카스티엘의 뒷말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베니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형제의 앞에선 그나마 갈무리를 해내던 감정을, 카스티엘은 베니와 단 둘이 남으면 터트리곤 했다. 지금처럼. 좋은 신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 베니는 그저 카스티엘의 성질을 받아줄 뿐이었다.
“시국이 시국이잖아. 천사들은 추락했고, 악마들은 살기등등하지. 이게 무슨 의미인 줄 알아?”
“…….”
“불균형.”
베니가 제 넓적한 손을 수평으로 만들어 보이다 이내 손끝을 바닥으로 내려 손을 기울였다. 카스티엘의 고개가 베니의 손을 따라 기울여졌다. 드물게 보이는 관심이었다.
“추가 지옥에 너무 무겁게 매달려있어. 날개 없이 떨어진 천사들은 악마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다시 위로 가기위해선 천사들의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건…….”
베니가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카스티엘을 가리켰다. 카스티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뒤에 이어질 말은 쉽사리 예상이 갔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에.
“천사들의 지도자를 만들기 위해 나를 되살린다고? 딘과 샘이?”
“그런 셈이지. 네가 죽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 것도 있지만. 천사들은 결집하지 못하고 있어. 샘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말이야. 그들은 지도자를 원해. 비록 지은 죄가 커도, 그들에게는 없는 의지가 가득한 지도자 말이야. 메타트론에게 대항해 천국을 탈환해줄 천사.”
“그게 그렇게 필요한 일인가?”
“물론.”
베니는 제 앞에 있던 책을 반 바퀴 돌리더니 카스티엘 쪽으로 밀어 주었다. 천 쪽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두꺼운 양장본 도서였다. 펼쳐진 책의 왼편에는 선으로만 이뤄진 삽화가 한 페이지에 걸쳐 그려져 있었고, 오른편엔 사진에 대한 주석인 듯 작은 글씨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오늘도 반쯤은 취한 상태라, 들쭉날쭉한 글씨를 읽기위해 카스티엘은 책에 거의 코를 처박다시피 해야만 했다. 책장의 냄새를 맡는 것처럼. 천사와 악마와 괴물이 뒤엉킨 삽화를 베니가 손끝으로 톡톡 쳤다.
“천국과 지옥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벽이 비틀리는 것과 같아. 집의 벽이 비틀리면 닫힌 문에 틈이 생기기 마련이지.”
베니의 검지 끝이 삽화의 가장 밑 부분, 고개를 치켜든 뿔 달린 괴수를 찾아가 그 위를 덧그렸다. 깨알 같은 글씨를 억지로 읽기위해 고군분투하던 카스티엘은 이내 독서를 포기하고 베니의 말을 경청하기로 마음먹은 듯 책에 쑤셔 박은 얼굴을 들어올렸다. 카스티엘의 곱실거리는 앞머리가 이마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단정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틈이 생기면, 연옥 문이 열려. 지상에 지옥과 연옥의 칵테일 쇼가 벌어지는 격이지.”
베니가 슬쩍 미소지어보였다. 나보다도 무시무시한 놈들이 날 것 그대로인 채로 기어 올라온다고, 카스티엘. 송곳니를 꺼내지 않았음에도 그에게는 흉포한 기백이 있었다. 연옥에서 수백 년을 썩어왔던 뱀파이어의 기백이었다. 온 몸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카스티엘은 작게 진저리를 쳤다. 공포보다는, 전율에 가까운 기분이었다. 마치 엑스터시를 씹은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카스티엘은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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