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정승필 x 고병갑

 

 

 

아이, 씨발. 뭔 개소리…….

그리고, 탕. 실상 가까이에서 듣자면 콰앙에 가까운 소음이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던 그 순간. 해를 등지고 앉아 평소보다 어둑했음에도 유독 밝던 눈동자의 동공이 축소되던 그 찰나. 고병갑은 매 번 같은 꿈을 꾸었다. 유언도 뭣도 아닌 짜증이 섞인 말과 왕왕 울리는 총소리. 바다의 비린내와 알싸한 담배 냄새.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잠에서 깰 때, 고병갑은 숨이 막혀 허덕였다. 난 잘못 없어. 그러니까 경찰 새끼가 왜 겁도 없이……. 난 잘못 없어. 아무도 없는 방에서조차 약해지는 본인을 인정하지 못한 그는 허공에 대고 ‘시발!’하고 강하게 소리쳤다. 난 잘못 없어! 시발새끼야! 고병갑의 목소리는 벽에 부딪혀 왕왕 울렸다.

* * *

한재호에게 영근이가 있다면 고병갑에게는 정승필이 있었다. 아니, 영근이보다는 조현수와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정승필의 역할은 애매하게 걸쳐져있었다. 뒤를 봐주는 실장이었지만 격식과 거리가 없었다. 예, 이사님. 하는 소리는 듣기가 어려웠다. 고작 몇 년 본 사이치고는 심하게 가까운 관계였다. 한재호가 감옥에 들어가 있던 그 몇 년간, 고병갑의 곁을 지킨 것은 정승필이었다.

고병갑은 홀로서기가 어려운 자였다. 그런 주제에 자존심은 세고 부리기는 좋아하니 곁에 붙을 사람이 적었다. 고병갑 역시 이를 알고 있었지만 한재호 하나면 충분했던 사람이기에 변화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조현수가 한재호에게 접근했던 것과 비슷한 시기에, 정승필은 ‘취직’을 했다. 차분하게 내렸던 머리를 빠글거리게 볶아 뒤로 넘기고, 화려한 금사가 수놓아져진 셔츠를 걸친 모습이었다. 민철은 정승필의 대변신을 목도하고 큽, 하고 웃음을 삼켰더랬다. 조현수가 있었더라면 숨이 넘어갈듯 낄낄댈 것이 뻔했다.

누구도 정승필을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하기엔 너무나도 동족의 냄새가 난 탓이었다. 본래 조현수가 들어오기 전부터 잠입조에서 구를 대로 구른 짬밥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었다. 사기꾼이나 조폭, 범죄자 연기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승필아. 네가 잘 해야 돼. 천 팀장이 예의 그 나긋나긋하고 강압적인 톤으로 말했다. 현수는 너무 어려. 임기응변도 아직은 부족하고. 뒤가 구릴 대로 구린 놈들이야. 어쭙잖은 범죄자 연기는 안 먹힐 거야. 정승필은 고개를 왼편으로 갸우뚱 하듯 꺾은채로 건성건성 고개를 끄덕였다. 검지와 엄지로 잡은 담배를 종이컵 속에 툭툭 터는 모양새가 꽤나 껄렁했지만 천 팀장은 지적하지 않았다. 정승필은 슬슬 제 역할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는 마치 배우가 연기를 하듯, 잠입이라는 연극에 빠져들고 있었다. 말투도 수 배는 거칠었다. 말끝에 욕이 붙고 목소리는 비아냥조가 붙어있었다. 천 팀장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고병갑 역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강약 조절이 야비할 정도로 절묘한 놈이었다. 굽힐 곳과 펼 곳을 정승필은 본능적으로 짚어냈다. 죽지 않을 자리에서는 굽히지 않았다. 한재호부터 그 직속 수하인 영근까지 빠져 어수선한 오세안을 고병갑이 차분히 누를 수 있도록 도운 일등 공신이기도 했다.

현 우두머리인 고병철의 인정을 받지도, 차기 패권 주자로 여겨지는 한재호에 댈 수도 없는 역량의 고병갑은 썩은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이 바닥에서 라인 잘못 타면 모가지 날아가는 게 비일비재한지라, 누구도 모험을 시도하지 않았다. 고병갑은 순종은 있고 충성이 없는 자들 사이에서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마치 고아원에서 그러했듯. 지켜줄 한재호가 없는 곳에서, 그는 악다구니처럼 버텨내고 있었다.

그 순간 치고 들어온 게 정승필이었다. 고병갑의 곁으로 가는 것은 쉬웠다. 모두가 길을 터주는 형국이었으니. 다들 출소할 한재호 앞으로 번호표만 뽑고 있던 와중이니 정승필은 막힐 것이 없었다. 형님, 상무님 하던 호칭 앞에 ‘우리’가 붙으면서 정승필과 고병갑의 거리는 세 걸음에서 두 걸음으로, 종래에는 반 보로 줄었다.

고병갑은 어딜 가든 정승필을 대동했다.

 

“씨발……. 동료는 무슨 동료야. 원래 남자는 독고다이라고, 우윽, 윽…….”

 

중얼대던 고병갑이 헛구역질을 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 갈색 눈. 빛을 받으면 더욱 옅어지던 그 눈동자. 그게 그렇게나 아른거렸다. 유언도 남기지 못한 비참한 종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고병갑이 비척비척 화장실로 기어들어갔다. 웩웩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고병갑은 정승필이 담배를 피우던 그 손을 좋아했다. 제 무용담인지 허풍인지 모를 소리를 털어놓으며 한참 입을 털다보면 담배가 필터까지 타 들어갔는데, 정승필은 ‘아, 뜨거!’하고 요란법석을 떨며 꼬집듯 잡고 있던 담배를 내동댕이치는 게 부지기수였다. 고병갑은 낄낄대며 야, 너는 만날 그러더라, 하고 핀잔을 주곤 했다.

 

“근데, 우리 상무님은 한재호 이사가 그렇게 좋으셔?”

 

고병철을 잡아넣으려던 시도가 무산되고 한재호의 감옥행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던 천인숙의 사냥이후 한재호의 첫 면회를 가던 고병갑을 보며 정승필이 물었다. 몇 번이고 거울을 보고, 새로 산 바지를 요리조리 둘러보며 태를 살피는 모습이 맞선에라도 나가는 것 같다면서. 병갑은 히죽 웃으며 좋긴 시발, 하고 뻗댔다.

정승필은 병갑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오세안을 관리했다. 단 몇 시간뿐이지만, 그 짧은 시간 중에도 일이 터지는 게 이쪽 업계였다. 회사가 커지고 나서는 더욱 겉멋이 든 건지 어지간히 중요한 자리가 아니면 얼굴도 비추지 않는 고병철과 아직 감옥에 있는 한재호. 한재호와 함께 들어간 영근과, 지시와 의사소통이 어려운 방개. 그 상황에 병갑까지 자리를 비우면 오세안은 텅 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승필은 좋든 싫든 고병갑이 자리를 비울 때 오세안을 관리했다. 그 짧은 시간이 천 팀장과 연락하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정승필은 두 가지 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냈다. 모두의 눈을 피해 접선하는 것과 수뇌부가 휘청이는 오세안을 다잡는 일. 고병갑이 정승필을 신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항상 불퉁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변기를 붙잡고 구역질을 하던 고병갑은 눈을 벅벅 문질렀다. 퍼렇게 든 멍이 눌려 쓰라렸다. 내일 면회 가야 하는데 꼬라지가 이게 뭐야, 애써 힘주어 중얼대는 목소리가 버르르 떨렸다. 오늘따라 멍이 그렇게 시큰거릴 수가 없었다. 재떨이로 사람을 치고 지랄이야, 하고 중얼대려다 다시 올라오는 구역질에 고병갑이 머리를 변기에 박듯이 숙이곤 웩웩댔다. 회장님. 유독 차분하게 가라앉던 정승필의 목소리가 기억난 탓이다.

고 회장에게 얻어맞는 것은 하루이틀일도 아니었지만, 매 번 속이 상하고 분통이 터지는 것은 매한가지라 고병갑은 항상 그렇게 울분을 쌓아놓고 살았다. 시늉으로라도 고병갑을 말려줄 한재호조차 없으니 폭력의 시간은 잦고 길었다. 어느 순간부터 고회장을 막아선 건, 정승필이었다. 한재호나 고병갑만큼 위치가 높지 않았기에 주의를 분산시키는 식으로 고병갑을 빼내는 게 전부였지만, 정승필로써는 그게 최선이라는 걸 고병갑은 알았다.

회장님, 여수 쪽 수산회사에서 고상무를 만나겠다고 지금 연락이 와서 잠시 데려가겠습니다.

회장님. 그렇게 무미건조한 음성은 처음이었다. 정승필의 목소리는 강약과 음폭이 왁 올라갔다 툭 떨어지는 파도와도 같았다. 그토록 사무적이고 딱딱한 목소리가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한 목소리가 귀에 꽂히자 불같이 화를 내며 뺨을 갈기던 고병철은 금세 불길을 추스르곤 고병갑을 보냈다. 아무리 그가 안하무인이라지만 일에 필요하다는 사람을 제 분풀이로 잡아둘 만큼 아둔하지는 않았다.

평소와 달리 승필이 앞장서고 병갑이 뒤따라 걸으며 건물을 빠져나오면, 정승필은 묵묵히 까만 세단의 뒷좌석을 열어 고병갑을 태웠다. 부은 뺨을 손바닥을 앞뒤로 뒤집어 가며 꾹꾹 누르던 고병갑이 억울함에 씨근덕대는 숨을 그칠 때 쯤 정승필을 차를 세웠고, 주변을 살피면 탁 트인 바다였다.

 

“야, 여ㅅ, 여수 애들은 어쩌고 여길 와.”

 

억울함에 갑자기 북받치려던 숨을 꾹 눌러 참으며 말하면 정승필은 어깨를 으쓱하며 차에서 내리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불을 붙일 때 어깨는 앞으로 굽었다. 고병갑은 코를 훌쩍였다.

 

“에이, 씨발. 여수에서 오긴 누가 와요. 그 짝들 요즘 경찰한테 말려서 다 줄줄이 입소중이구만. 아, 그럼 우리 상무님이 좆같은 이유로 당하고 있는데 이빨이라도 털어서 빼 와야지. 나와 봐요.”

 

어느새 차분함은 버리고 요동치듯 흔들리는 어조로 말하며 정승필이 차문을 손바닥으로 텅텅 두드렸다. 고병갑은 ‘니가 뭔데 나오라 마라 하냐.’고 투덜대면서도 순순히 뒷좌석 문을 열고 나왔다. 바닷바람은 향이 짰고 햇살에 부딪히는 물비늘은 눈이 부셨다. 눈을 찌푸리면 쓰라림이 올라서 욕을 뇌까리면 정승필은 작게 혀를 차며 장초를 바닥에 툭 내던지곤 신발로 비벼 껐다.

 

“아유, 참 반지는 좀 빼고 치든지. 우리 상무님 면상에 상처 났네.”

“야, 면상? 너 지금 면상이라고 그랬…….”

“가만있어 봐요, 좀.”

 

지 상사한테 말 하는 꼬락서니가 꽤나 불순해, 민망함 반 고마움 반에 괜히 더 왈칵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 정승필이 양복 주머니에서 연고를 꺼내며 말했다. 고 회장이 새끼손가락에 끼워뒀던 반지가 잘못 스쳤는지 얼굴에 긁힌 자국이 영 볼썽사나웠다.

 

“아, 무슨 이런 걸로 쪽팔리게 약을 발라…….”

“약을 다치면 바르지 쪽팔리면 바르셔? 약도 바르고 그래야 빨리 낫지.”

 

꼼꼼하게 연고를 발라주는 손길이 어색해서 고병갑은 헛기침을 했다. 살면서 누가 이렇게 약을 발라준 적이 있던가. 애초에 한재호는 이렇게 저를 꼼꼼하게 챙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아원에서든 오세안에 취직한 이후든. 맞고 다치고 울고 있는 저에게 다가와 심심찮은 위로를 던지고, 저를 괴롭히던 놈들을 치워줄지언정 이렇게 약을 발라준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게 한재호와 저의 선이었다. 고병갑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선 한재호도 한 걸음이라는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아니,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고병갑은 괜스레 꼼지락거리게 되는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제 광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정승필의 눈을 흘깃댔다. 우측에서 떨어지는 햇빛에, 정승필의 양 눈은 색이 달랐다. 빛을 받은 눈동자는 투명한 구슬이었다. 유독 사내의 눈은 빛을 잘 머금었다.

제대로 연고를 펴 바른 게 맞는지 요리조리 확인하는 정승필의 어깨를 툭 밀치며 ‘야, 됐어.’하고 고병갑이 중얼댔다. 그러면 어깨를 으쓱하며 순순히 뒤로 물러난 그가 뒷좌석 문을 열어주면서 문득 진지하게 말 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또 이런 일 생기면 내가 적당히 카바 쳐 볼게요. 내가 또 우리 상무님이 맞는 꼴은 못 보잖어.”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퍽 아득했다고, 고병갑은 회상했다. 짭새 새끼 주제에 왜 저를 그렇게나 챙겨가지고. 아마 그것도 다 연기였을 거다. 제 마음에 들고자 하는 연기. 고병갑은 수돗물로 입을 헹구며 스스로를 세뇌하듯 되뇌었다. 정승필의 호의는 모두 계산에 의한 악질적인 연기일 뿐이라고. 속지 않은 내가 잘 한 거고, 깔끔하게 죽여서 뒤탈을 없앤 게 옳은 일이었다고.

저를 원망하지도 못하고 생기를 잃은 눈동자, 빛을 받아 더욱 옅어지던 갈색, ‘우리’ 상무님이라고 부르던 목소리, 차분하게 깔리며 고회장의 폭력을 은근하게 방해하던 분위기. 고병갑은 이를 악물었다. 다 연기야. 개 같은 연기. 나는 원래 독고다이고, 하나도 아쉬울 것 없어. 나는 우리 친구 하나만 있으면 되잖아. 정승필 같은 짭새 새끼를 내가 뭐가 아쉽다고…….

다시 토악질이 올라왔다. 코가 시큰거리고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 건, 그래. 너무 속이 울렁거려서. 토를 하다보니까 그런 것뿐이다. 우는 게 아니라, 그냥 생리적으로 눈물이 떨어질 뿐이었다.

유언을 듣지 못한 게 후회돼서가 아니다. 진심이었던 순간이 있냐고 묻지 못한 게 후회돼서 그런 게 아니다. 변기 커버를 붙잡은 고병갑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 * *

“이 옆에 새끼는 내가 밖에서 봤거든? 그러니까 네가, 이 꼬마 애는 안에서 봐. 그게 깔끔해.”

 

한재호는 그 순간 ‘아깝다.’라는 말을 하면 안 됐다. 경찰을 감아보겠다고, 트라이 한다고 말 하면 안됐다. 자신은 시도조차 않았다. 그러는 게 옳은 거니까. 경찰을 감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한재호는 조현수에게 일말의 기회도 주면 안 됐다. 왜냐면 자신이 그랬으니까. 고병갑 자신이, 정승필에게 그랬으니까.

한재호는……. 그러면 안 됐다.

정승필에게는 없었던 마지막 기회라는 걸, 조현수에게만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Posted by 백은수

[불한당] 조현수 x 한재호

 

 

 

간신히 적셔놓은 좁은 내벽을 꾸욱 밀어내며 서서히 밀려들어간다. 팽팽하게 벌어진 입구, 틈 없이 꽉 삼켜 문 내벽, 느릿한 허리동작. 뒷무릎을 접어 벌린 다리사이에 얇은 다리를 가두고 그 위에 서서히 주저앉는다. 꾸욱, 꾹, 밀려들어오는 성기가 순간순간 선명하게 느껴져 뱉어지는 헛숨을 클클대는 웃음으로 간신히 덮었다. 한재호의 머리칼이 젖어 한 두 가닥 뭉쳐 이마로 흘러내렸고 벽을 짚은 팔은 근육이 바짝 섰다.

한재호의 아래에서 뻐근하게 조여 오는 내벽을 느끼며 조현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하는 작은 탄성에도 한재호는 몸을 굳히고 어린 사내의 안색을 살폈다. 아프니? 물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벌어진 도톰한 입술 새로 보이는 혀가 새빨갛다. 뱀의 혀 같았다. 한재호는 제가 뱀에 휘감겨 숨을 쉴 수 없는 것 같다고 느꼈다. 사로잡힌 기분이었다.

 

“형……. 진짜 괜찮, 읏, 괜찮겠어요?”

“나? 흐흐. 흣흣흣….”

 

너는 어쩜 인상 써도 예쁘니. 한재호는 말을 돌렸다. 대놓고 답변을 피하는 기색에 조현수는 작게 혀를 차며 생김새에 비해 굳은살이 박여 투박한 손바닥으로 한재호의 등을 쓸어 올렸다. 이제 겨우 반을 넣고서 낑낑대는 한재호의 모습은 눈에 설었다. 칼에 맞아도 신난다고 웃어재끼던 사내가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라니. 평소와 격차가 큰 행동이었다.

아랫도리가 더욱 뻐근해지는 느낌에 조현수가 몸을 뒤채며 끙, 하고 앓으면 한재호는 다급하게 ‘야, 야! 더 세우지는 마!’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목소리마저 평소와는 톤이 달랐다. 열이 오른 음성이었다. 조현수는 입을 꾹 다물곤 허리를 가볍게 툭 쳐올렸다. 두툼한 입술이 하얗게 질리다 조현수가 입을 얕게 벌리며 날숨 하는 순간 발간 기운이 빠르게 차들었다. 야한 얼굴이다. 한재호가 주먹을 말아 쥐곤 허리를 아래로 더욱 내렸다. 조현수의 것이 한재호의 안으로 기어이 모두 밀려들어갈 때, 둘은 탄성처럼 숨을 터트렸다.

 

“자기는, 후으, 너무 조여서 아프면…. 말 해, 알았지?”

 

제 뒤가 좁고 뻑뻑한 것을 한재호가 모를 리 없었다. 이질적인 감각에 작게 몸서리를 치면서도 한재호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누가 누구 걱정을……. 속으로 중얼대면서도 조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몸 위에 제가 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한재호는 제 몸을 꿇은 다리로 지지했다. 천천히 오르내리며, 허리를 움직이면, 조현수는 고개를 젖혀 벽에 머리를 기대곤 숨을 색색댔다.

한재호의 몸이 움직이면 침대의 쿠션이 꺼졌다 일어나며 조현수의 몸까지 덩달아 흔들렸다. 조현수는 양 손으로 한재호의 등허리며 둔부를 쓸었다. 신음보다는 밭은 숨이 헉헉대는 소리가 더욱 많았다. 조현수는 신음하기에 수줍음이 많았고, 한재호는 쾌락보단 만족에 이르고 있었다. 빠듯하게 제 안을 파고든 것이 조현수라는 사실에 한재호는 전율했다. 맨 살이 스치면 전기가 오른 듯 저릿저릿 거렸고, 온기가 맞닿으면 벅찬 숨이 올랐다.

한재호가 깊게 앉으면 성기는 안으로 꾹 파고들었고, 한재호는 고개를 젖히고 숨을 헐떡였다. 흉부가 급하게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조현수는 장난스럽게 한재호의 가슴팍에 입술을 부볐다. 당황한 한재호가 몸을 뒤채다 내벽을 이리저리 찌르는 성기에 앓는 소리를 냈다. 냉기가 흐를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앉아있는 게 일상이던 눈동자가 뭉근한 열기가 아지랑이 피듯 올라 일렁였다.

조현수는 눈을 반쯤 감은채로 허리를 달싹이고 있었다. 내리깔린 속눈썹이 물기에 젖어있었다. 흥분에 젖은 눈이다. 한재호가 투박한 손으로 조현수의 눈가를 문질러 닦으면 얇은 피부가 밀려 발갛게 달아올랐다. 자기야, 좋니? 물어도 대답은 없었다. 조현수는 대답대신 입술을 혀로 축이며 한재호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면, 한재호는 좀 더 크게 허리를 움직였다.

아. 조현수의 입에서 신음이 툭 터졌다. 목울대 아래서 꾹꾹 눌러 앓던 소리가 틈을 비집고 올라온 것처럼. 한재호는 입 꼬리를 당겨 웃으며 뒤를 꾹 조여 물었다. 조현수는 작은 조임과 추삽질에도 곧장 반응했다. 예민하게 신경이 곤두선 몸을 제 안에 품고 움직이며 한재호는 치솟는 흥분을 느꼈다. 조현수의 사정을 유도하며 한재호는 큭큭, 웃음을 흘렸다. 웃는 소리를 가다듬을 여력이 없어 음성은 거칠고 불안정했다.

 

“아, 읏……!”

 

조현수가 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몸을 굳히면, 한재호는 이를 악물고 허리를 리드미컬하게 흔들었다. 조현수의 손톱이 단단한 한재호의 등을 긁어 기어이 상처를 만들었다. 거친 숨결이 얽히고 뜨거운 시선이 녹아 엉긴다. 벽을 짚었던 팔로 조현수를 당겨 앉으며 허리를 깊게 내리면, 조현수는 한재호의 품에서 부들부들 떨며 그 안에 사정했다. 한재호는 급하게 반쯤 선 제 것을 움켜쥐고 몇 번이고 흔들고 나서야 파정했다.

Posted by 백은수

[불한당] 한재호 x 김성한 / Omega-verse

 

 

 

이름, 나이, 성별, 혈액형, 신장, 체중. 칸칸이 채워지는 개인정보들 틈에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형질 란에 D-Alpha가 유독 눈에 띈다. 이야, 역시 정통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봐요. 숙덕거리는 직원들의 대화가 컴퓨터 화면을 향해 뱉어졌다.

 

“뭔데?”

“여기 보십쇼. D. 크으. 난 처음 봐요.”

“Dominant? 이야, 나는 이번으로 세 번째 본다.”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더니, 정통 조폭에 형질 우수에…….”

“인마, 그래봤자 깡패새끼 아냐.”

“하긴. 그래도 지들 세계에선 와따일 것 아닙니까?”

 

* * *

 

형질은 Alpha, Beta, Omega, 총 세 가지로 구분된다. 형질은 그 발현도와 호르몬에 따라 다시금 Dominant, General, Recessive로 나뉜다. 형질이나 형질 내의 구분이나 모두 다이아몬드 형태의 인구 분포를 지니기 때문에, 알파나 오메가는 그 수가 적었고, 우성(Dominant)이나 열성(Recessive)은 특히나 그 수가 더욱 적었다. 물론 General과의 경계에 걸친 우성이나 열성도 있었지만, 대개는 이런 중립적인 경우는 포함하지 않고 분류하는 게 허다했다.

소 내에서는 마사지로 불리는 이른바 뺨 때리기 게임을 제외하고서도 한 가지 게임이 더 있었다. 눈싸움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실상으론 가까이 붙어 마주보는 두 사람이 페로몬을 뿜어내 압도되는 쪽이 지는 게임이었다. 오메가와 알파를 붙이면 열성인 쪽이 종종 발기를 하는 경우가 있어 민망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은연중에 싸움은 같은 형질끼리 싸움을 하는 게 기본적인 룰이었다. 대게 지는 쪽은 헛구역질을 하거나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종종 개중에 강하다 싶은 녀석들끼리 붙으면 관중석에서도 헛구역질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기 제 2교도소는 김성한의 입소에 교도관, 수감자 할 것 없이 웅성거리기 바빴다. 김성한은 그 이름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름 주변으로 붙는 수식들도 만만치 않았다. 호남 출신 전국구 거물. 어지간한 알파들은 기도 못 핀다는 우성. 김성한은 입소 날부터 늘 그렇듯 모두의 주목을 그러모았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신경이 곤두선 것은 한재호의 수하들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알파라지만 한재호의 형질 란은 R-Alpha라고 기재되어있으니.

김성한은 부러 제 향을 풀풀 흘리는 얕은 수작은 벌이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최측근도 김성한의 페로몬 향을 맡은 일이 드물었다. 다만 사람들은, 아직 제 향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는 쟁쟁한 알파들 사이에서도 김성한이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 우성 정도를 유추할 뿐이었다.

김성한이 오기 직전까지 왕좌에서 모두를 지배하던 한재호는 열성 알파였는데, 그가 썩 좋지 못한 형질 순위를 지니고 있음에도 모두의 위에 군림할 수 있던 건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정통도 아닌데다가 형질도 퍽 좋지 못한 놈이 대가리를 차지하겠다고 하니 반발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한재호는 그들을 모두 자근자근 바닥까지 끌어내려 밟아댔다. 더 이상의 군말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모난 눈을 뜨는 모두를 짓밟고 우그러트렸다. 그는 페로몬의 차이에서 나오는 억압을 이겨냈다. 어지간한 정신이 아니고서야 버틸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음에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무리 한재호가 난다 긴다 하지만 김성한은 어렵지 않을까? 저마다의 유추가 나돌았다. 대선 직전의 공기는 서슬 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한재호는 제 방에 틀어박혀 공을 던지고 받기가 수번이었다. 교도소의 공기는 스산했다. 한재호는 찬합처럼 생긴 제 재떨이에 장초를 비벼 끄며 김성한의 행보에 귀를 기울였다. 김성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먼저 움직인 것은 한재호였다. 소리 소문 없이, 남들의 눈이 닿지 않는 때에. 영근이를 대동하고, 그는 잠든 교도소 내를 제 멋대로 활보했다. 지켜보는 직원들의 눈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교도관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탈옥을 하려는 행위가 아니라면, 계장은 대부분의 행위에 대해 눈을 감아주곤 했다. 한재호에게 얻어먹는 게 있으니 저도 편의를 봐 주는 것이었다.

김성한은 한재호의 방 다음으로 큰 방을 홀로 차지하고 있었다. 한재호가 제 방을 호열이와 같이 쓰던 것을 생각해보면, 김성한이 홀로 쓰는 면적이 더 넓은 셈이었다.

방은 깔끔했다. 김성한은 죽은 듯이 누워있었고, 운동장에서 읽던 책은 얌전하니 책상위에 얹어져있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 도스토예프스키. 병갑이 마냥 책이라면 진저리를 치진 않지만, 그렇다고 독서에 취미를 두는 편도 아니었기에 한재호는 영 구미가 당기지 않게 생긴 책을 보며 오른쪽 눈가를 얕게 찌푸렸다.

 

“방을 착각하셨는가.”

 

천장을 보고 바르게 누워있던 김성한은, 한재호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그의 옆에 설 때까지 침묵하다 느리게 입을 열었다. 진즉에 깨어있다는 어조였다. 한재호는 어깨를 들썩이며 흣흣흣, 하고 웃음을 흘렸다. 도로 잠긴 철창 밖에는 영근이가 대기하는 중이었다. 주변이 꽤나 적막하여 한재호의 웃음소리는 방 안에서 두어 번 더 맴돌았다.

한재호는 창을 타고 쏟아지는 달빛을 등지고 김성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뜬 김성한의 앞에는 배죽하니 웃는 한재호의 이와, 까맣게 음영 진 얼굴, 그 주변으로 환한 달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역시, 산전수전 다 겪어보신 선배님이라 그런지, 잠결에도 사람 인기척은 아주 귀신같이 알아차리십니다. 흐흐흐…….”

 

양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한재호가 꼿꼿하게 편 허리를 가볍게 굽히면 구부정하게 굽는 허리를 따라 그림자는 길게 늘어지고 크게 흩어졌다. 김성한의 몸 위로 어둠이 드리웠다.

몸을 일으켜 앉을 때, 김성한은 제 주변의 공기가 뻑뻑해진 것을 느꼈다. 마치 공기 중의 입자들이 저들끼리 엉겨 붙은 것 같았다. 한재호는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김성한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는 것에 비해 웃음소리는 끊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작았다. 한재호의 주변에서부터 꾸덕하게 공기의 밀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김성한은 어렵지 않게 한재호의 페로몬을 읽었다.

형질이 존재하는, 이른 바 알파나 오메가들은 저마다 동(同)형질의 페로몬에 거부감을 느끼는 방식이 달랐다. 김성한이 공기 밀도가 달라졌다고 느낀다든가, 고병철이 텔레비전 화면 조정 음을 느낀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상대의 페로몬이 크면 느끼는 현상역시 그 강도가 심해졌다.

자리에 앉아 잠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던 김성한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후회할 짓 하지말지.”

“제가, 흐흐, 큭, 큭큭, 뭘 말입니까?”

 

한재호의 태도는 무겁지 않았으나 이글거리는 눈빛에는 화마(火魔)가 당장에라도 밖으로 뛰쳐나올 듯 이글거리는 중이라, 그 사나움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김성한이 흘러내리는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넘겼다. 차분하게 바짝 넘기던 머리칼이 자연스레 풀어서 흘러내리는 모습은 생경했다. 한재호는 웃음을 꾹꾹 눌러 삼키며 더욱 페로몬을 뿌렸다. 밖을 응시하던 김성한의 눈이 한재호에게로 돌아왔다. 눈동자는 차분했다.

 

“이런 장난질이나 치려고 왔는가.”

 

그리고, 화악, 검은 불길 같은 열이 치솟았다. 철창 밖의 영근이 주춤, 하고 뒤로 물러섰다. 촉이 어느 정도 살아있는 베타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페로몬이란 얘기였다. 김성한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바지 속에 찔러 넣은 한재호의 손은 마디마다 힘이 들어가 주먹을 꾹 쥐고 있었다. 당겨 웃는 한재호의 입 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지. 오케이. 흐. 흐. 흐흐. 웃음소리는 분절적으로 떨어져나갔다. 불안정해진 와중에도 뭐가 오케이라는 건지, 한재호의 말뜻을 알 수 없어 김성한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떨리는 한재호의 입가를 바라보았다.

한재호의 페로몬은 약하지 않았다. 성한이 곁에 두는 알파들만큼은 아니라도, 어디서 무시 받을 정도의 열성은 아니었다. 손을 가볍게 움직여 저를 옥죄는 공기를 느끼며 김성한은 한재호가 열성이라는 얘기가 사실 와전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성은 못 되어도 알파들 사이에서 기가 죽을 만큼 약한 페로몬은 아니었다. 한재호는 압도적인 김성한의 향에, 눈에 핏발이 바짝 서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가, ……말입니다. 어째서 열성인지, 아십니까?”

“그런 것 까지 내가 궁금해야 하는,”

 

페로몬에 압도되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재호의 행동은 빨랐다. 한재호는 왼손으로 김성한의 목을 콱 움켜쥐며 그 몸을 밀었다. 휘청하며 넘어지던 김성한이 몸을 틀어 한재호의 명치를 가격했다. 헉, 하는 숨만 들이쉬었을 뿐 한재호는 물러나지 않았다. 맞은 것을 돌려주듯 김성한의 얼굴을 치면, 김성한 역시 제가 맞은 것은 개의치 않고 한재호를 힘으로 밀어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시간은 오래지 않아 종식되었다. 지켜만 보던 영근이 문을 열고 들어온 탓이었다. 열댓 명도 너끈히 상대하던 한재호에게도 김성한은 만만치 않았다. 말로만 올라간 자리가 아니고, 소문으로만 이룩한 왕좌가 아니었다. 김성한은 제 이름만큼의 능력을 지닌 자였다.

한재호의 멱살을 틀어쥐고 주먹을 날리려던 김성한을 붙잡아 영근이 체중을 실어 누르면, 한재호는 씨근덕대는 숨을 몰아쉬다 김성한의 복부를 수차례 가격했다. 일방적인 린치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김성한은 낮게 으르렁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명치를 맞아 숨이 턱턱 막히는지라, 소리 질러 교도관을 부를 여력은 되질 못했다. 불렀다고 해서 올 것 같지도 않았지만.

김성한의 몸을 뒤집어 침대위에 엎드리게 하곤, 양 팔을 뒤로 돌려 잡아당기면 뼈가 부러질 듯 한 고통에 김성한이 기어이 신음을 냈다. 한재호가 찢어진 입가를 매만지며 책상 좌측 벽 수건걸이에 걸린 수건을 가져왔다. 간간히 머리를 쨍, 하게 하는 감각에 영근은 김성한의 몸을 더욱 바짝 눌렀다. 베타인 제가 느낄 수 있는 페로몬이라니. 그 세기가 형질 보유자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물론, 그 와중에 천연덕스러운 한재호는 신기할 정도였다.

 

“후회할 짓 하지 말라고 했…….”

 

읍. 으읍. 김성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에 욱여넣은 수건에 뒷말은 왕왕대는 소음으로 흩어졌다. 시작하자는 말도 없이 한재호는 김성한의 팔을 붙잡았다. 관절을 받치고, 손목을 단단히 붙잡은 손이 우악스러웠다. 불안감을 느낀 김성한이 몸을 비틀었지만 두 사내의 힘을 이겨내긴 무리였다. 게다가 방 안이 페로몬으로 만연한 와중이면 더더욱. 김성한의 몸은 물속에 잠긴 듯 무거웠다.

상대가 한재호였고, 페로몬은 예상외로 강했으며, 거구의 영근이 합세하여 힘으로 누르니 천하의 김성한도 별 수 없었다. 입이 막힌 채로 김성한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으르렁 거렸다. 한재호는 그 짐승의 소리를 헛헛한 웃음으로 넘기며 붙잡은 팔을 고쳐 쥐었다.

으드득.

잔인한 소리였다. 울부짖음이 수건에 먹혀들어 울림 없이 먹먹했다. 반대로 꺾인 김성한의 팔을 보며 한재호는 만족스레 웃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김성한이 애써 머리를 털며 정신을 차리려는 꼴이 우스운 듯 말하며, 발목을 붙잡는 손길이 스산했다. 다른 의미로 붙잡았다고는 볼 수가 없었다. 이미 너덜너덜한 왼 팔 만으로도 고통에 울부짖는데 오른 발목까지 붙잡아 비트는 걸 보면 한재호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방을 꽉꽉 채우고도 모자라 밖으로 흘러넘치는 김성한의 페로몬은 서서히 한재호의 것을 잠식하는 중이었다. 한재호가 퍽 강한 향을 지녔다고는 하나 그래도 우성 페로몬에는 힘이 미치지 못한 까닭이었다. 길게 들숨하며, 한재호는 김성한의 발목을 꺾었다. 으드득. 그 소름끼치는 진동이 저에게까지 닿아, 영근은 몸서리를 쳤다. 핏발 선 김성한의 눈에 달빛이 스쳐 안광이 흘렀다.

왼 팔과 오른 발목을 부러트리고서야 영근을 물린 한재호는,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고통에 퍼들퍼들 떠는 김성한의 옆에 걸터앉았다.

 

“선배님. 제가 열성인 이유는 말입니다. 크, 크크….”

 

한재호가 입술을 김성한의 귓가에 스칠 만큼 바짝 붙이고 속삭였다. 제가, 알파들 향을 그렇게나 좋아합니다. 바람소리가거진인 목소리를 김성한이 알아들었는지는 미지수였다. 알아들었든 못 알아들었든 한재호는 크게 상관없었지만.

애초에 방출하는 페로몬의 정도를 보면 우성은 아니더라도 평균적인 알파는 되던 한재호가 열성 딱지를 붙인 것은 알파인 동시에 오메가의 형질을 지닌 탓이었다. 동류의 형질에는 반발감만 들어야 정상인데 반해, 한재호는 그와 동시에 인력을 느꼈다. 지금처럼 말이다.

한재호는 엎드린 김성한의 몸 위에 걸터앉았다. 오싹한 정복감에 그는 작게 진저리를 쳤다. 어디한 번 볼까 싶은지 그는 김성한의 입을 틀어막은 수건을 입에서 빼내었다. 고통에 정신이 없으니 멀쩡한 반대 팔로도 김성한은 수건을 뽑아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아, 아…! 고통에 억눌린 소리가 들끓었다. 김성한의 웃옷 아래로 밀어 넣은 한재호의 손은 아직도 작게 떨리고 있었다. 흥분한 탓이다. 기를 펴지 못해 숨이 막혀 버들대는 발작이 아니었다. 몸을 비틀려던 김성한은 왈칵 범람하는 통증에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공기는 진득했고 고통은 상당했으며, 여차하면 다시 한재호를 위해 달려올 놈이 있었다. 수세에 몰린 김성한은 이를 악물었다.

 

“자아, 시작하겠습니다.”

 

왼 팔을 하복부로 넣어 감아올리는 동시에 하의를 잡아 내리는 손길이 재빨랐다. 한재호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까지 중에 가장 큰 동요를 보이며 김성한이 몸을 뒤집으려 했지만, 날아드는 건 한재호의 폭력이었다. 그는 부러진 왼팔을 우그러트리듯 붙잡으며 김성한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한계치를 넘어가는 고통에는 비명도 나오지 않는 법이었다. 김성한의 목은 핏대가 섰고, 입은 벌어졌으나 나오는 소리는 끅끅대듯 숨이 넘어가는 소리였다. 그로도 만족하지 못한 듯 한재호는 김성한의 머리를 그대로 내리 눌렀다. 질이 좋지 않아도 쿠션감이 있는 침대인지라 부딪혀 상처가 날 일은 없었지만,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얼굴을 시트에 파묻히자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에 김성한의 몸이 퍼드득 떨렸다.

그렇지. 다시금 한재호가 말했다. 제 식대로 일이 풀리고 있다는 듯. 아까와 똑같은 문장이었지만 김성한에게 그 짤막한 말의 의미는 경중이 다르게 다가왔다. 어느새 제 하의도 벗어 내린 한재호가 김성한의 골반을 잡아들고 제 아랫도리를 밀착시켰다. 반항도 발악도 할 수 없는 탈력감에 허덕이며 끙끙대는 게 김성한이 그 순간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한재호는 오르는 열기에 시야가 벌겋게 변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푸르스름하게 한기가 돌던 방이었다. 지금은 온통 울긋불긋하게 불길이 번진 느낌이라, 한재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씹었다. 우성이니 뭐니 하는 게 허튼소리는 아닌 셈이었다. 숨이 막힐 정도의 페로몬이 방 안에 진동을 했다. 열기가 머리끝까지 타고 올랐다.

동(同) 형질의 페로몬에 대한 한재호의 거부반응은 열기였다. 마치 사우나에 들어간 듯 폐부며 숨통을 콱콱 틀어막는 열기. 이전까지는 아무리 강하다 한 들 사우나다 여기고 넘길 정도는 되었다. 지금은……. 마치 불덩이를 삼켜 몸을 태우는 기분이었다. 반발과 그에 상응하는 흥분은 같이 아우성을 쳤다.

김성한의 문신은 등허리에서 그치지 않고 둔부, 허벅지까지 살 거죽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용과 뱀, 검과 꽃이 똬리를 튼 화폭에선 먹 냄새가 날 것 같은 묵직함이 있었다. 강제로 들어 오른 하체 때문에, 김성한의 웃옷은 미끄러지듯 위로 밀려났다. 단단한 허리가 드러나면 한재호는 눈으로 그림을 좇으며 흥분을 못 이겨 발기한 것을 김성한의 엉덩이 골을 따라 미끄러트렸다. 맞비벼지는 살들은 열기만 홧홧할 따름이지 은근하게 젖은 기색이 전혀 없었다. 하지 말라는 듯 김성한이 입을 버끔거렸으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음성이 나왔다고 한들 그 요구가 들어졌을 리는 없었지만.

좁은 입구를 힘으로 벌리고 욱여넣는다. 준비도 되지 않은 곳을 찢듯이 밀고 들어가며 한재호가 짐승처럼 그르렁 거리면, 김성한은 야차처럼 울부짖었다. 둘의 목소리가 철창과 시멘트벽에 부딪혀 나가면 왕왕거리는 아우성이 되었다. 달을 향해 울부짖는 짐승들의 몸이 뱀처럼 엉겨있었다.

김성한의 몸이 움직임에 따라 칼을 든 사내와 뱀이 힘을 얻어 살아날 듯 일렁였다. 허리를 뒤로 빼고, 도로 밀어 넣을 때 기어이 눈의 실핏줄이 터졌는지 김성한의 흰자가 붉게 물들었다. 한재호가 삼킨 불덩이가 전염이 되는 듯, 푸르게 흉흉하던 김성한이 그렇게 잠식되었다.

그나마 멀쩡한 손을 허우적대고, 허리를 비틀어도 개의치 않은 움직임은 매 순간 격정적인 폭력과 압박감으로 김성한을 몰아붙였다. 헉 소리가 날 정도로 뱃속을 우그러트리는 감각. 뒤를 찢어내고도 멈추지 않는 삽입의 반복. 거슬린다 싶으면 부러진 팔을 잡아 누르는 폭력과 어지러운 와중에도 강렬하게 각인될 것 같은 웃음소리. 김성한은 헛구역질을 하며 몇 번이고 통성을 내질렀다.

콱콱 쑤셔 박을 때마다 한재호는 성기를 압박하는 마른 내벽에 인상을 찌푸렸다. 찡그린 표정으로 웃는 입은 꽤나 기괴했다. 우열을 점했음을 확신하면서, 폐를 태워나가듯 숨을 옥죄는 열기와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한 인력을 느끼며 한재호는 허리를 움직였다. 열기에 녹아내리는 가면들이 뚝뚝 떨어지면 그 뒤에 숨었던 아귀가 즐거워 날뛰었다. 결국에는 두 괴물이었다. 인간도 짐승도 아닌 야차들은 서로의 숨통을 죄고 몸을 찢으며 우짖었다.

한재호는 몇 번이고 김성한의 안에 사정했다. 쥐어짜듯이 그렇게 토정했다. 손바닥으로 그 아랫배를 꾹꾹 누르다 발기도 하지 않은 김성한의 것을 아플 정도로 콱 움켜쥐며 그 몸을 제 것인 양 농락했다. 큭큭큭…….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이글대는 김성한의 눈을 본 한재호가 웃음을 삼켰다. 마침내 천천히 성기를 뽑아내면, 피와 정액이 엉겨 붙어 길게 틀어지다 툭, 떨어졌다. 붙잡는 손이 떨어지자 김성한의 몸이 무너졌다.

 

“녹화, 다 됐습니다. 형님.”

 

영근이 말했다. 손에는 한재호의 까만 폴더 폰을 쥐고 있는 채였다. 한재호는 고개를 가볍게 주억이며 하의를 추슬렀다. 선배님. 허튼 수작 하시면 오늘 일이 어디로 새어 나갈지 저는 모릅니다? 흣흣, 흐흐흐…….

밖으로 나가던 한재호는 영근에게 마무리를 지시했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창을 타고 들어오는 달빛은 희미했고 어둠이 잔잔하게 깔리고 있었다. 달은 지고 해는 뜨기 전, 그 칠흑 같은 시간이 김성한이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었다. 그는 어둠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지옥에 살던 야차를, 그 나락의 나락으로 끌어당긴 아귀는 길게 웃음을 끌며 복도를 빠져나갔다. 단단한 벽을 울리는 것은 그 웃음의 꼬리뿐이었다.

Posted by 백은수

[불한당] 한재호 x 김성한 / AU, 만약 이러했다면.

 

 

 

청회색 하늘이 잔잔했다. 간밤에 쏟아진 폭우는 자취를 감췄다. 김성한은 철창이 끼워진 작은 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좁은 문 같은 곳에서, 하늘이 그렇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이고, 무슨 넋을 그렇게 놓으십니까아.

교도소 전체가 제 안방인양, 철창의 기능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내가 불현듯 안으로 들어오며 인기척을 냈다. 진즉에 발걸음부터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양 무시하고 있던 김성한은, 그제야 고개를 흘깃 돌려 사내를 . 한재호는 익숙하게 김성한의 옆에 걸터앉았다. 낡은 감옥의 침대는 끼이익 대며 스프링이 요란스레 울었다.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낮추듯 가볍게 앉은 한재호가 제 손바닥을 비비다 고개를 비켜 들어 김성한을 응시했다. 맞은편, 한재호가 쓰는 침대는 퍽 깔끔했다. 애초에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침대 두 개가 놓인 방에서 한 침대만 유독 닳아있는 것은 조금 이상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다만 그 사실을 관찰할 수 있는 3자가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선배님.”

“음.”

 

김성한은 대답인지조차도 애매한 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고 다시 창밖을 응시했다. 시선이 허공으로 넘어가면, 김성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흐흐…….”

 

제가 불러 놓고 이어지는 문장 없이 웃음만 잠깐이었다. 한재호는 이렇게 종종 부르고 제가 먼저 입을 다물었다. 대화를 이어가기엔 김성한도, 한재호도 좋은 상대는 아니었고 서로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딱히 서로를 답답해하지 않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한재호가 손을 뻗어 김성한의 머리칼을 건드려 넘겼다.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을 하면, 김성한은 그저 고개를 슬쩍 옆으로 기울이며 손길에서 벗어났다. 한재호가 손끝으로 귀, 턱을 스치듯 흘러내리다 1623이 새겨진 두툼한 대님 재킷의 어깨선과 팔 주름을 따라 손을 내렸다. 손끝은 소매 단에 닿았다. 손가락을 구부려 소매를 당겨 올리면, 그 아래 숨겨진 문신이 화려하게 요동치는 모습이 드러났다. 먹에 담갔다 뺀 무지개 같은 무거운 색조의 화려함이었다.

한재호는 드러난 손목을 감싸 들어 제 입가로 가져갔다. 김성한의 오른손은 서랍 위에 놓인 제 책으로 뻗어졌다. 이를 세워 손목을 물면, 김성한이 인상을 찌푸렸다. 여전히 고요만 가득한 곳에서, 한재호가 이로 문 자욱을 혀로 핥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젖은 소리였다. 김성한이 손을 움찔 떨었다. 한재호가 큭큭, 웃음을 삼켰다.

고개를 슬쩍 든 한재호가 손을 뻗어 김성한의 손에서 책을 빼앗았다. 선배님. 책보다 더 재밌는 거나 하시죠. 한재호가 몸을 밀면, 김성한은 마지못해 침대 위에 누웠다. 김성한의 침대는 스프링이 끼익 거릴 정도로 낡아있었다. 한재호의 침상과는 정 반대였다. 마치 사내 둘이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누워있던 것처럼.

한재호가 다시금 손목을 끌어당겨 김성한의 문신위로 이를 대었다. 끄응, 앓는 소리가 김성한의 목에서 억눌리듯 새어나왔다. 한재호가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김성한이 경기 제 2교도소에 들어온 것은 한재호의 복역 생활이 1여년 남짓하던 때의 일이다.

고병철을 노린 천인숙의 끈질긴 수사는 마지막에 한재호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움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꼬리를 자르는 방법으로 고병철은 몇 번이고 살아남았다. 졸지에 꼬리 신세가 된 한재호는 그저 눈썹을 슬쩍 들었다 놓으며 제 현실을 받아들였다. 고병갑은 한재호의 재소에 제 삼촌을 ‘그 씹새끼’니 ‘씨발놈’이니 하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그나마도 재호의 앞에서만 그러했다. 고병갑은 당당하게 고병철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사내가 아니었다. 한재호는 그저 기다리라 말했다. 바닥을 찍고 가야 도약이 편할 터라고.

감옥에 들어온 한재호는 우선 담배 유통 건을 제 아귀에 쥐었다. 그는 거칠고 사나웠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광기가 있었다. 정통이니 짝퉁이니 하며 계보를 운운하던 놈들 여럿이 한재호에게 깨지고 나서는, 더 이상 한재호를 향해 이를 드러내는 머저리는 없었다. 그는 군주가 되어 감옥을 지배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나고 김성한이 교도소에 들어왔다.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눈을 내리까는 자들과 허리를 숙이는 자들, 외면하는 자들이 뒤엉킨 길목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김성한은 늘 고요를 몰고 다녔다. 왁자지껄한 것을 즐기지 않는지 그 본인도 과묵하기 그지없어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한재호의 아랫것들이 나서서 웅성거렸다. 담배 사업건과 패권에 대해 여론이 불안정하게 기울고 흔들리며 쑥덕대었다. 한재호는 늘 그렇듯 공을 집어던지고 받으며 자리를 묵묵히 지켰다. 그는 지금 이곳으로 어슬렁거리며 기어들어온 짐승이 얼마나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니고 있는지 가늠하고 있었다. 두 패거리 사이에는 긴장감이 팽팽했다.

조용히 넘어가자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접근한 것은 한재호였다. 볕이 좋았고, 떠들썩한 와중에, 김성한이 걸터앉은 자리는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보고사항마저 김성한의 귓가에 속삭이며 은밀히 전달할 정도로, 그의 무리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더러는 그것을 보고 개폼을 잡는다고 뒷말을 했지만, 한재호의 생각은 그들과 달랐다. 스쳐 지나가듯 두어 번 본 김성한에게서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느낀 탓이었다.

사업을 반으로 나누자고 한 한재호의 말을, 김성한은 뚝 잘라냈다. 사실 김성한이 저의 제안에 그러마, 하는 반응을 보이진 않을 거라고 예상했던지라 한재호는 딱히 놀라지도 않고 김성한의 다음 반응을 어떻게 눌러줄까 고심하고 있었다. 의외의 말이 돌아왔다. 자네, 나 좀 보지. 은밀한 대화를 제안하는 말이었다. 어리둥절한 주변 놈들의 시선에도 김성한은 아랑곳없이 한재호만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불필요한 곳에 머물지 않았다. 한재호는 주름진 얼굴과 책을 쥔 손, 그저 앉아만 있는 그 늙은 몸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길을 받아내며 뼈저리게 깨달았다. 야수가 도사리고 있구나. 맹수를 잡아 가둘 정도로 노련한 야수로구나.

둘은 배식대 안측 주방에서 마주보고 앉았다. 둘 중 누구의 공간도 아닌 곳이라 그랬다. 김성한이 입소한 이래, 한재호는 만찬을 금하고 있었다. 경계해야 할 기간인 탓이었다. 김성한은 팔짱을 끼고 등을 눕히듯 앉았고, 반대로 한재호는 앞으로 몸을 기울이듯 허리를 숙여 앉았다. 김성한이 물러나고 한재호가 다가가는 형상이었다.

 

“짧게 말 허자. 고병철이, 아우님네 회장 아닌가.”

“모르고 물으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하하하학학학학…….”

 

김성한의 말은 군더더기 없기 곧게 지르고 들어왔다. 속이려야 속일 건더기조차 없는 사실들의 일률적인 나열이었다. 고병철이 너를 담그려고 한다, 나에게 연락이 들어왔다, 하는 얘기들. 김성한은 아끼는 동생 하나를 고병철이 협박거리로 삼고 있다고 했다. 불쾌하단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그 ‘동생’이 김성한의 유일한 혈육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이었다. 김성한은 고병철을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한재호를 믿지 않았다. 정보는 부분적으로 공개되었다. 거짓은 아니되 완벽한 진실도 아니었다.

한재호는 당시 김성한의 손목을 보고 있었다. 늘 사람의 눈을 보아오던 습관이 그 날은 적용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마주치는 게 에너지를 너무 소모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김성한과의 시선교환은 유달리 힘이 들었다. 기가 눌리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제압할 수 있는 자도 아니었다. 팽팽하게 이어지는 긴장의 끈은, 장기적으로 유지하긴 귀찮고 끈덕졌다. 김성한의 시선은 천천히 흘렀다. 머리카락, 콧등, 입술, 턱, 목, 어깨. 한재호의 몸체를 따라 김성한의 시선이 관찰을 위해 움직였다. 한재호의 눈은 김성한의 손목에 고정되어있었다. 움직임이 있을 때에서야 얼핏얼핏 보이는 문신. 운동 시간에 웃통을 모조리 벗고 문신을 자랑하던 놈들이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감추면 보고 싶어지는 건지, 한재호는 그 소매를 걷어내 문신을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한재호가 혀로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래서, 선배님. 제가 선배님이 아낀다는 동생을 빼 내면 뭘 해주시렵니까? 흐, 흐흐, 흐.”

“말 하지. 원하는 거.”

 

충동적이었다. 조금 더 긴 대화를, 길게 이어지는 목소리를 끄잡아 내고 싶어 그랬는지도 몰랐다. 한재호는 손을 뻗어 김성한의 소매와 손목을 움켜쥐었다. 느린 동작이라 피할 법 한데도 김성한은 피하지 않았다. 가만 손목을 잡은 손을 내려다보고, 다시 눈을 치 떠올려 한재호를 보는 게 전부였다. 설명하라는 눈빛이었다. 당황한 게 맞긴 할까 싶을 정도로 김성한의 표정은 고요했다.

 

“저는.”

 

한재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선배님과 같은 방을 쓰고 싶습니다.”

Posted by 백은수

[불한당] 한재호 x 김성한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눅 3;16)

 

사람 밑바닥이라는 게 말입니다. 어지간히 추한 면이 없잖아 있거든. 어떤 새끼든 바닥을 보이면 그게 참…. 보기 안 좋고 그렇습니다. 흐흐, 흐……. 근데 말입니다.

버클이 풀어진 양복바지와 맨 발, 상의를 걸치지 않은 채 한재호는 제 바짓단을 적시며 짙은 색으로 좀먹어 들어오는 침식을 응시했다. 까만 바지가 더욱 짙고 음습해지면, 발끝에서 찰랑대던 습함이 다리를 타고 기어올랐다. 얕게 고인 물은 뜨거웠다. 한재호는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제 손으로 몇 번 가로채듯 붙잡았다. 기껏해야 잡히는 건 몇 방울이 고작이었지만, 쏘아지듯 흐르는 물은 두터운 피부를 단숨에 벌겋게 달아오르게 하기 충분했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벙긋대는 입술을 그는 응시했다. 발악, 분노, 하다못해 비명이라도 내뱉어지던 입에서는 목이 졸린 짐승이 내지르듯 꺽꺽대는 숨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근데 말입니다. 했던 말을 다시 되짚어 제 문장의 흐름을 다잡으며 한재호는 수압을 높였다.

억지로 욕조에 뉘인 몸을 깔고 앉은 채라, 욕조 바닥을 스치는 물은 발끝과 바짓단뿐만 아니라 무릎을 적시며 자욱을 남겼다. 김성한은 고개를 우측으로 바짝 기울이고 있었다. 머리 바로 옆에서 사납게 쏟아지는 물이, 꽤나 가깝고도 자극적인 과거의 일을 상기시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보기 참 안 좋은 밑바닥 중에서, 선배님 밑바닥은 참 재밌더란 말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만면에 미소를 띤 한재호가 물에 젖은 왼손으로 김성한의 턱을 움켜쥐고 고개를 바로 돌렸다. 아. 무너진다. 무너지고 있다. 추위라도 떨 듯 벌벌대는 몸을 맞닿은 피부로 느끼며 한재호는 김성한의 눈에서 공포를 읽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라도 보는 듯, 김성한을 응시하는 한재호의 눈은 흥미로움을 담고 까맣게 번득였다.

겁에 질린 맹수라는 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이런 희귀한 구경을 혼자만 한다는 게 어쩐지 아까운 한편으론 저 혼자 독식할 수 있는 순간이 만족스러운 듯 한재호의 미소는 평소와는 다른 이질감이 있었다. 비틀린 웃음이었다. 어느 것 하나 아귀가 맞는 게 없는 관계니, 감정의 인지와 표출 역시 바르게 잡혀있을 리 없었다.

쏴아, 하고 쏟아지는 소리가 공격적이었다. 방울방울 잘게 튀는 물방울은 개개의 것이 모두 뜨겁고 자극적이었다. 욕조에 부딪히는 물줄기 소리에서 김성한은 돼지고기를 단숨에 익히던 지글대던 소리를 기억했다. 기름을 뜬 바가지를 들고 한재호가 걸어올 때 나던 고기 익은 내 역시. 묻어둘 수 있을 만큼 가볍지도, 오래되지도 않은 악몽을 한재호는 구태여 그렇게 재현했다. 순전히 김성한을 놀리고 으스러트리고, 무릎 꿇리기 위해서. 고약함을 넘어서 잔인한 취미였다.

이미 끝난 싸움인데 김성한은 왜 나를 묻으려고 할까, 한재호는 스스로에게 물었었다. 그의 말마따나 ‘개 털린’ 싸움에서 패자를 구태여 확인 사살해야 했던 이유가 한재호는 그렇게나 궁금했다. 제가 다가가 인사를 할 때까지 눈길한번 주지 않던 인사가 그렇게 끈질기게 제 뒤를 쫓는다는 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이상스러웠던 터다.

김성한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김성한의 목적은 대통령이 아닌 한재호였다. 고병철과 무슨 일이 있어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사는 양반이 직접 경기 제 2교도소까지 찾아와서 판을 벌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김성한에게는 확고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한재호의 죽음을 확인해야 했던 사람이다.

반대로, 지금은?

한재호는 큭큭대며 웃음을 삼키곤, 끄트머리가 젖은 김성한의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 넘겨주었다. 젖은 머리칼은 손가락에 엉기고 때때로 끊어졌지만 김성한은 그런 얕은 통증에 반응할 여력이 없었다. 악몽과 현실의 경계에서 그는 변함없이 저를 향해 미소 짓는 사내를 보았다. 인간의 탈을 쓴 마귀인가, 인간의 탈조차 쓰지 않은 마귀인가. 예수의 이름을 받고 그의 대척점에 선 자는 일말의 연민도 없이 김성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적그리스도가 이런 모습일까. 김성한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한재호에겐 이유가 없었다. 이미 끝난 싸움에서 김성한을 굳이 살려서 곁에 둬야하는 이유 말이다. 이는 한재호의 충동과도 같은 결정이었다.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자욱한 곳에서 한재호는 잠시간 결정을 유보했다. 아직도 결단은 서지 않았다. 김성한은 그렇게 왕의 재판을 받지 못한 채 이때껏 살아남았다.

 

“나는 선배님이 그렇게 재미있습니다. 아하하학학학학…….”

“……그만, 씨ㅂ, 그만 좀…….”

 

어느 순간보다도 애처로운 소리였다. 말라버린 목을, 마른침을 삼켜 적시곤 아득바득 끌어낸 음성은 본래와는 전혀 다른 음색을 띄고 있었다. 한재호의 신경은 바짝 곤두섰다. 젖은 몸과 맞닿은 살갗들, 손을 스치는 머리칼, 새된 목소리.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겨듣지 못할 만큼 감각들은 김성한에게 집중되어있었다.

한재호가 샤워기를 좀 더 김성한의 몸 가까이에 붙였다. 목에서 어깨로 투박하게 떨어지는 선을 덮어나가면, 얇은 거죽이 붉어지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김성한은 발작처럼 몸을 뒤틀었지만 그를 누르고 있는 한재호의 몸은 단단하고 틈이 없었다. 가만히 계십쇼. 안, 흐흐, 큭, 큭큭, 안 죽잖습, 니까, 흐흐, 큭, 흐흐흐! 한재호의 발끝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흥분에 겨운 긴장 탓이었다.

나는 그 어느 순간보다도 당신에게 강렬히 남았구나. 한재호는 어렵지 않게 유추해냈다. 애초에 눈치가 기민한 사람이니 김성한의 온 몸이 그렇게 보내는 신호를 읽지 못할 리 없었다. 죽음이 닥쳐오는 와중에도 ‘내가 잘못했응게, 그만하자.’하고 권위적으로 말하던 자가 수개월 몸을 섞고 장난감처럼 다뤄지며 그 기세를 잃긴 잃은 모양이었다. 제발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도 하고. 그 한 단어가 뭐라고, 한재호는 뻐근해지는 아랫도리를 느꼈다.

샤워기를 더욱 당겨 쇄골과 흉부에 물을 흘리면 김성한은 숨이 막힌 듯 헉, 하고 급하게 숨을 멈추며 한재호의 손목을 붙잡았다. 매달리는 것에 가까웠다. 구원을 바라는 자들이 예수의 앞에 무릎 꿇고 그 옷깃을 잡듯이, 김성한은 한재호의 아래에서 매달렸다. 남과의 접촉을 달가워 않던 한재호는 어쩐 일인지 순순하게 김성한의 손길을 방치했다.

초점이 흐려지는 김성한의 눈은 색마저 안개 빛으로 질려 죽음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 같았다. 이토록 완벽하게 죽이지 않고서도 죽음을 구경할 수 있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상체를 숙여 김성한의 위로 몸을 겹치며 한재호가 이를 세워 목덜미를 물었다. 이로 뜯어낸 것이 수번이라, 수습되지 않은 상처와 멋대로 새살이 돋아 아문 흉이 얼룩덜룩한 목에 다시금 자욱이 남을 터였다.

깊게 살 내음을 들이쉬면 젖은 체취가 흐릿하게 코끝을 스쳤다. 딱히 향기랄 것이 나지 않는 몸에서 애써 고유의 향을 찾아내듯 느리고 길게 호흡하다 한가득 깨문 살결을 혀로 핥으면, 왈칵 쏟아질 신음을 주워 담는 소리가 김성한의 목울대에서 꿀꺽 넘어갔다. 쉬이. 다정이 아닌 지배를 위해 한재호가 어르는 소리를 냈다. 악몽과 환각에 의해 분절된 김성한의 판단력은 사고를 마비시켰고 본디 나와야했을 반응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으르렁거리는 대신, 김성한은 입을 다물어 숨을 죽이려 애썼다. 한재호의 손목을 붙잡은 김성한의 손은 장식이나 다름없었다. 붙잡았다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손아귀 힘은 약했다.

 

“자아. 숨 천천히 쉬시고오. 얌전히 있어야 금방 끝납니다, 다리 벌리세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재호의 손은 김성한의 양 다리를 밀어 벌리고 있었다. 내려놓은 샤워기가 욕조를 나뒹굴며 물을 뿌렸다. 문신과 화상으로 이미 충분히 얼룩덜룩한 피부는 한 겹 더 울긋불긋함을 뒤집어 쓴 채였다. 엉망이라고 할까,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까. 한재호는 후자를 선택했다. 제가 망치고 덧씌운 색이니 그리 부르고 싶었다. 김성한은 저를 만나고 이렇게 하나하나 재정립되는 중이었다. 그의 시작도, 끝도, 에필로그까지도 한재호는 자신이 있어야 만족할 것 같았다. 숨 하나에서도 저를 찾게 되어서 종래에는 한재호가 있어 죽고, 없어서 죽게 되는 비참한 존재를 원했다.

젖은 바지는 살에 붙어 쉽사리 벗겨지지 않았고, 급할 것이 없음에도 조급증이 일어 한재호는 하의를 무릎 한 뼘 위까지만 끌어내렸다. 김성한은 애초에 나신인 채였다. 한재호의 아래서 울부짖고 뒹굴고 신음한 게 수십 분 전이니 당연했다. 씻자고 욕실로 들어가는 김성한을 보고 변덕이 일어 바지를 입던 채로 따라 들어온 한재호는 그를 밀어트려 눕혔다.

한 폭의 그림처럼 허벅지를 잠식한 흉터를 보며 눈을 느리게 깜박인 한재호가 김성한의 양 다리를 제 어깨에 걸쳤다. 반 뼘 쯤 차오른 물이 찰박찰박 거렸다.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물은 누운 김성한의 몸을 차츰 제 품에 가두고 있었다. 마치 수장이라도 당하는 양 김성한은 공포에 짓눌려있었다.

격렬하게 교접했던 것을 증명하듯 김성한의 뒤는 아직도 꾹 아물리지 않고 부드럽게 늘어났다. 한재호가 조금 힘이 들어간 성기로 입구를 꾹 밀어 눌러보면, 찢어진 자리에 물이 닿아 쓰라린지 김성한이 다리를 움찔대었다. 투박하고 큼직한 손이 흉 진 허벅지부터 역으로 몸을 쓸어 올렸다. 뭉툭한 손끝이 역동적으로 흐르는 문신의 동세를 따라 움직였다. 손가락은 춤추듯 미끄러졌다.

선단도 제대로 밀어 넣지 않았음에도 김성한은 마치 한재호가 제 안에 깊게 들어온 것처럼 흡흡 대는 숨과 함께 신음을 터트렸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벽들을 무너트리면 김성한은 항상 인내심이 떨어진 것처럼 모든 반응에 시시각각 반응하곤 했다.

한재호가 무릎을 세워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 반대로 김성한의 하체는 등허리가 바닥에서 떨어지며 둥글게 허리가 말렸다. 장기가 밀려 눌리는 감각에 앓는 소리를 내어도 한재호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체중을 실어서 묵중한 힘으로 누르듯 삽입하면 꾸욱 눌리다 서서히 벌어진 입구가 차츰 선단부터 물건을 삼켜냈다. 제 것이 그렇게 사내의 안에 밀려들어가는 것을 보며 한재호는 짧은 손톱을 세워 성한의 몸을 긁었다. 간신히 정신을 추스른 김성한은 양 팔을 교차해 제 눈가를 덮었다. 밀어내거나 버둥대기는커녕 숨만 몰아쉬기도 힘들 정도로 체력까지 떨어졌을 때 보이는 버릇이었다.

한재호가 크게 허리를 놀리면 김성한의 몸이 덩달아 흔들렸고, 욕조를 채운 물이 요란스레 철퍽거렸다. 어떻게든 이성을 수습하는 와중에도 김성한의 상체는 샤워기에서 떨어지고 싶은 듯 옆으로 기울어있었다. 부드럽게 감싸 조이는 내벽을 느끼며 허리를 잘게 쳐올리다 깊게 밀고 뭉근하게 돌리는 와중에도 한재호는 김성한의 작은 움직임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찬찬히 뺀 허리를 단숨에 콱 박아 넣어 김성한이 고개를 뒤로 바짝 젖히고 컥컥대는 것을 보며, 한재호는 다시 샤워기를 집어 들었다.

온도는 더욱 뜨겁게 조정되었다.

 

“숨 참으십쇼, 선배님. 아니면 폐에 물 들어가서 죽습니다.”

 

웃음을 흘리긴 했으되 낄낄대는 것은 낮고 차분했다. 경고보다 행동이 빨라서, 한재호는 그대로 김성한의 얼굴에 샤워기를 바짝 붙였다. 콜록대지도 못하고 허덕이는 몸짓은 물에 잠겨 숨 막혀 죽기 직전의 짐승 같았다. 뒤가 바짝 조여들어 한재호의 성기를 감싸 압박했다. 허리 짓이 더욱 격해지고 찰박대는 소리 역시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불로써 김성한에게 세례를 내렸던 철창 안의 예수는, 이제 철창 밖에서 물로 그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었다. 수장(水葬)인지 침례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의식은 한재호에게 다를 것이 없었다. 괴로움에 짓눌려 버둥대는 꼴을 보면서도 한재호는 성교를 이어 나갔다. 김성한은 매 순간 잔혹하게 징벌을 받는 야차가 된 듯 부서진 음성으로 생을 갈구했다. 한재호의 어깨위에 걸쳐진 두 다리는 깊게 삽입되는 성기가 선연하게 느껴질 때 마다 전율하듯 떨렸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만연한 수증기 사이로 둘의 인영이 아롱졌고, 한재호의 거친 숨과 김성한의 마른 울음이 물기에 눌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공포로써 얻어낸 굴종에 길게 파정하며, 한재호는 고개를 젖히고 잔 숨결을 길게 내뱉었다. 기운 빠진 김성한의 몸뚱이는 주검과도 같았다. 숨결이 붙어 흉곽이 얕게 오르내리는 것을 확인한 뒤, 허리를 꾹꾹 밀어 제가 싼 정액을 더욱 밀어 넣으며 한재호가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방금 제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흐, 흐흐. 흐.

Posted by 백은수

[불한당] 한재호 x 김성한

 

 

 

한재호의 자세에 김성한은 기시감을 느꼈다. 느긋하게 낀 팔짱과 떡 벌어진 다리. 네 까짓 게 어떻게 할 거냔 듯 생동감 넘치는 눈동자. 까만 눈이 낡은 형광등 빛을 반사시키면 내면에 도사린 광기가 얼핏얼핏 스치던 순간.

꿇은 다리가 아파서 김성한은 얕게 인상을 찌푸렸다. 몸은 점점 낡아갔고, 기름칠을 하지 않은 기계라도 되는 양 삐걱거렸다. 관절 하나하나가 부러졌다 붙었고, 뼈가 어긋났다 제자리를 찾기도 수번이었다. 상처가 나고, 흉터가 남고, 어긋나게 붙은 뼈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아직 부서지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김성한은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는 매일 밤 찢겼고, 으스러졌고, 부러졌다. 위용을 자랑하던 문신은 무너져가는 몸을 따라 엉망이 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의 순환에 김성한은 지쳐가고 있었다. 다만 그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어느 날 날아든 칼날이 제 목을 덩그러니 잘라버리길 바랐다.

김성한은 어째서 한재호가 자신에게 발정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때때로 예기치 못한 순간에 욕을 긁듯이 뱉었고, 아랫도리를 세웠다. 한재호는 제 흥분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고 김성한은 묻지 않았다.

 

“뭐 하십니까. 아학학학학……. 구경만 하지 마시고오, 입 벌리시죠.”

 

선이 굵은 손이 앞으로 느릿하게 뻗어지나 싶더니 단숨에 김성한의 머리칼을 잡아챘다. 성글게 자란 것을 뿌리 가까이 힘주어 잡으면 김성한의 목에선 끄응, 하고 앓는 소리가 바람 소리처럼 났다. 한재호는 가볍게 눈썹을 들어 올리며 김성한을 앞으로 잡아당겼다. 김성한의 상체는 결박당해 있었다. 김성한이 손목을 결박한 수갑을 몇 번 풀어낸 후 한재호는 노끈, 가죽 끈을 거쳐 말미에는 어디서 구해왔는지도 모를 구속복을 가져와 김성한에게 입혔다.

엎어지는 몸을 지지할 양 팔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상체가 앞으로 기울자 김성한의 몸이 휘청했다. 한재호는 넘어지려는 김성한의 몸을 움켜쥔 머리칼을 당겨 막았다. 두피가 뜯겨나가는 고통에 김성한이 몸서리를 치며 절룩이는 다리를 당겨 앉아 중심을 잡았다. 양 다리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감옥보다 더욱 열악한 조건에서 한재호는 김성한을 사육했다. 방치와 폭력으로 이어지는 나날에서 김성한은 죽기를 소망하는 동시에 한재호를 지옥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갈등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해 김성한은 살아서 지옥을 맞았다.

움켜쥔 머리칼을 서서히 놓아준 한재호의 손이 아래로 흘렀다. 얇은 귀, 단단한 턱 선을 따라 내려오던 손이 하악(下顎)을 둘러싸듯 움켜쥐었다. 엄지로 입술을 꾹 밀어 누르면 작게 틈이 벌어졌다. 김성한은 몸을 비틀었지만 별 볼 일 없는 움직이었다. 성치 않은 다리와 결박당한 상체로 반항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한재호의 웃음은 여직 끊이지 않고 있었다. 흐느끼듯 작고, 쇳소리처럼 허스키한 소리는 아슬아슬하게 청력 내에 존재하며 메아리처럼 울렸다. 어깨를 들썩이는 것 치고는 작은 음성이었다.

 

“내가 말 했잖습니까. 흐흐, 큭, 큭큭……. 빨기 싫으면 우리 회사에서 키우는 똥개새끼랑 교배하라고. 데려 옵니다?”

 

한재호의 하의는 의자 옆에 곱게 개어져 있었다. 조끼까지 갖춰 입은 상체와 양말만 신고 있는 하반신. 코끝에 바짝 다가선 짐승의 냄새에 김성한은 으르렁거렸다. 성난 분위기를 감지하면 그는 본능적으로 눈을 사납게 뜨곤 살기를 흘리곤 했다. 오랜 조폭 생활에 벤 것일 수도 있었고, 본래 성정이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한재호는 김성한의 그런 면을 좋아했다. 애도 증도 없는 상대의 일면에서 호불호를 찾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지만.

한재호의 손이 당겨지면, 얼굴을 붙잡힌 김성한 역시 끌려올 수밖에 없었다. 김성한의 머리칼이 한재호의 안쪽 허벅지를 스쳤다. 오싹오싹한 간지러움에 한재호는 다리에 바짝 힘을 주었다. 김성한의 눈길은 으스스했다. 불같이 열이 올라 이글대던 순간이 지난 지는 몇 달이 됐다. 이제는 도리어 정반대의 극점에서 사느랗게 퍼런 안광이 튀었다. 그 다음으로 건너올 분노는 어떤 형태일지, 한재호는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놈에게서는 찾을 수도 없는 기백이었다. 종이 다르다는 게 이런 것을 두고 하는 얘기일 것이다. 어영부영 이름만 정통을 달고 이레즈미를 새긴 놈들과는 뿌리가 다른 사내였다. 턱을 쥔 손에 강하게 악력을 가해 억지로 김성한의 입을 벌려내며 한재호는 짐승의 아가리가 벌어지는 것 같은 착시를 느꼈다. 조현수가 흉내 낼 수 없는 지옥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입 다무시면 우리 선배님도 똑같은 꼴을 당할 테니까 주의 하시고. 자꾸 반항하면 개새끼랑 접 붙일 테니까 제 인내심 테스트도 그만 하십쇼. 흐흐, 크. 크크크크….”

 

반쯤 선 제 것을 김성한의 입가에 부비기 시작하며 한재호가 말했다. 김성한이 저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는 것을 한재호는 잘 알고 있었다. 제 앞에서만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과, 모두의 앞에서 무너지는 것. 김성한이 고를 선택지는 두 개 뿐이었다. 저를 따르던 놈들 앞에 끌려가서 여태까지 뽕이나 팔던 새끼랑 몸을 섞었다는 게 드러나느니, 김성한은 한재호의 강압적인 권위에 끌려올 것이 빤했다.

알몸으로 끌려 나가 대로변에서 몸을 내어줄 뻔 한 뒤 김성한은 한재호의 광기를 의심하지 않았다. 여전히 반항은 거칠고 세운 날은 첨예했지만, 그와 별개로 한재호의 마지막 인내심 한 톨을 치워버리려는 짓은 삼가게 된 것이다.

머뭇머뭇 대는 혀가 육안으로 보일 지경이라, 한재호는 더욱 낮고 거칠게 웃었다.

입술이 닿고, 앞니를 아슬아슬 스치고 기어이 김성한의 입에 제 것을 밀어 넣으면, 한재호는 그 덥고 끈적한 자극에 이를 악물었다. 눈가는 잔뜩 찌푸리고 뿌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물고선 웃는 얼굴은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김성한은 위를 보고 눈을 맞추지도, 아래로 순종적으로 눈을 내리 깔지도 않았다. 마치 독배를 마시는 듯 눈을 내리감고, 미간을 깊게 찌푸릴 뿐이었다. 한재호의 탐욕스러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턱을 그러쥐었던 손으로 이번에는 뒤통수를 꾹 누르면, 깊게 밀려오는 성기에 김성한은 얕게 헛구역질을 했다. 생리적으로 뱉어지는 마른기침에 입이 벌어지면 김성한의 혀와 한재호의 성기에 엉킨 타액이 적나라했다. 뜨겁고 뭉근하게 젖어 들어가는 광경이었다.

한재호는 김성한이 숨을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기다려 줄 필요가 없었다. 한재호와 김성한 사이에서 한재호는 완벽한 갑이었고, 을의 입장을 배려해 줄 필요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기침을 제대로 뱉기도 전에 다시 콱 박히며 숨통을 턱턱 막아대는 성기에 김성한이 무의식적으로 이를 세우면, 한재호는 김성한의 머리채를 잡고선 편하게 늘어트렸던 발로 그의 중심부를 꾹 눌러 밟았다. 짐승을 조련하듯 한재호는 체벌과 명령으로 태도를 고수했다.

 

“ㅇ, 큽…….”

 

신음을 질러도 입에 가득 찬 것 때문에 제대로 소리조차 내지 못한 김성한은 어깨며 등을 바짝 구부리곤 고통에 몸을 떨었다. 순간순간이 역겨워서, 구역질을 참아내기가 버거웠다. 한재호의 것은 여린 볼 점막을 쿡쿡 쑤셨고, 혓바닥에 밀착해 부벼졌으며 김성한의 입 안을 헤집었다. 성기의 표면이 얇은 입술에 스치면, 김성한은 여덟 개도 채 안 되는 손톱을 세워 손을 결박한 구속복의 소매를 긁었다. 한재호가 뽑아놓은 손톱 두엇이 빠진 자리는 덜 아문 상처가 자꾸만 벌어져 피를 비쳤다.

혀로 잘 감으시고. 명령하면, 마지못해 김성한은 따랐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반항하는 그 끓는 분노가 욕정을 들끓게 해서 거뒀던 자가, 이제는 차갑게 가라앉아 냉기를 뿜고, 때로는 학습된 공포에 의해 순종을 하기도 하는데,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성욕은 주체될 기미가 없었다. 한재호는 반항을 하는 사내에게, 이를 악문 남자에게, 강압에 못 이겨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짐승에게 발정했다. 아마 그 존재 자체가 식욕을, 혹은 갈증을 자극하는 모양이라고 한재호는 생각했다. 조현수에게 느끼는 것과는 상반된 기갈이었다. 마치 조현수의 앞에서 한 발짝 선(善)으로 나아간 것이 억울하기라도 한 듯, 김성한의 앞에서 한재호는 족히 열 발자국을 악의 심연으로 걸어 들어갔다.

김성한의 혀가 서툴게 기둥을 감았다. 왼 손으로 제 무릎을 세게 그러쥐며 한재호가 가볍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을 감은 김성한은 한재호가 전율을 억누르는 광경을 잡아내지 못했다. 움푹 파인 볼이나 일그러진 눈매, 마른 입술에 발라진 타액이나 순순히 벌어진 입 따위가 얼마나 한재호를 자극하고 있는지 김성한은 알지 못했다. 안다한들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흥분일 터였다.

반 강제로 김성한의 얼굴이 앞뒤로 흔들리며 한재호의 것을 빨면, ‘씨발…….’하고 뱉어내는 한재호의 욕 끄트머리가 퍼르르 떨렸다. 하고자하면 더 잘 감고 훑을 수 있음에도 시늉만 하듯 움직이는 김성한의 혀 놀림조차 만족스러웠다. 당장은 그랬다. 일부러 애를 태우자고 해도 이보다는 더 잘하지 못할게 분명했다. 유난히 진폭이 강했던 욕설의 말미, 그 흔들리던 숨결을 이상히 여긴 건지 김성한이 눈살을 찌푸리듯 얇게 눈을 치켜떴다.

기다렸다는 듯 뒤통수를 콱 잡아당기면, 김성한의 타액으로 젖어 빳빳하게 선 것은 더욱 깊게 사내의 입으로 밀려들어갔고, 기침 탓에 목이 바짝 조여 오면 한재호는 목이며 어깨에 바짝 힘을 주다 파정했다. 삼키고 뱉음을 제가 결정하지 못 할 정도로 깊숙한 곳에 흘려낸 정액을, 김성한은 선택의 여지없이 삼킬 수밖에 없었다.

씨발…. 파정하며, 한재호는 다시금 욕을 뇌까렸다.

Posted by 백은수

[불한당] 한재호 x 김성한

 

 

 

너희가 아버지께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에게 주시리라(요16:23)

 

왜, 그 영화 있잖니. 글을 쓰던 작가가 글이 너무 안 풀려서 야마가 돈 거야. 근데 어떡하겠니? 혼자 글을 쓰고 있었으니까 화 낼 대상이 자기밖에 없는데. 결국 그 작가가 어떻게 하냐, 화분을 사요. 잘 깨지는 걸로. 그리고 화가 나면 그걸 집어던져.

그 얘기를 왜 갑자기 하는데요?

여기서는 마사지가 일종의 분풀이기도 하다는 거다.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거지.

 

* * *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폭력이라. 문득 스치고 지나가던 볕 좋은 날의 교도소 운동장 대화를 떠올리며 한재호는 목을 가다듬었다. 합법? 들키지 않으면 합법이다. 걸리기 전까지는 불법인 것이 없었다. 한재호가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고민에 빠진 모양새였다. 그의 발치에는 목덜미를 밟힌 김성한이 숨이 막혀 컥컥거리고 있었다.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자신만이 깨트릴 수 있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한재호는 양복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선배님과 제 사이가 요즘 드라이해도 너무 드라이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제가 질척이는 거 싫어한다지만 선배님이 요즘 들어 너무 건조하게 구셨던 건 사실이잖습니까. 오늘만 하더라도 말입니다, 성치도 않은 다리로 저를 걷어차려고 하시고. 없는 꼬리라도 만들어서 흔드셔야 할 분이. 흐흐, 흐, 큭, 큭큭큭…….”

 

어깨까지 흔들며 웃음을 꾹꾹 눌러 흘리는 음성에 김성한이 몸을 바르작거렸다. 단추가 뜯어진 셔츠는 양 옆으로 벌어져 가슴팍을 훤히 드러냈고 벗기던 중인 바지와 속옷은 왼 발목에 간당간당 걸려있었다. 한재호는 마악 제 벨트를 푸르던 중이었다. 총을 쏘아 잡은 사냥감의 마지막 발작을 구경하듯 한재호는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김성한의 발악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힘줄이 끊긴 김성한의 손은 무의미했다. 묶어둘 필요조차 없었다. 다리 한 쪽과 양 손목의 힘줄을 끊긴 김성한은 한재호의 수중에서 놀아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악다구니를 쓰듯 김성한은 한재호의 발목을 잡아채 제 목을 누르는 중압감을 떨쳐내려 했지만, 밀어내기는커녕 발목을 그러잡는 것조차 그에게는 버거웠다. 잡은 건지 그저 감싼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힘 빠진 손의 움직임에 한재호는 크게 웃었다. 아학학학학! 꼬라지 보기 좋으십니다. 정통, 건달, 김, 성한, 선배님. 한 마디씩 끊어 뱉는 말에는 멸시와 조롱이 가득했다. 김성한이 욕이라도 한 두 마디 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벌어진 입에서 나온 소리는 끅끅, 하고 기도가 막힌 처연한 소리뿐이었다.

한재호가 목덜미를 누르던 발을 거두자, 김성한이 몸을 뒤집으며 거친 기침을 쏟아냈다. 한재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작은 지퍼 백을 꺼내들었다. 안에 담긴 흰 가루약은 스산했다. 산소가 부족해 눈앞이 까맣게 점멸했다 흐리게 돌아오길 반복하는 와중이라, 김성한은 한재호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한재호의 발이 김성한의 명치를 걷어찼다. 달리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토록 성치 못한 몸으로도 틈만 나면 제 모가지를 물어뜯으려고 드는 짐승인지라 확실하게 제압할 필요가 있던 것뿐이었다. 컥, 하는 소리와 함께 김성한이 몸을 둥글게 말았다. 흰 셔츠가 김성한의 움직임을 따라 구겨지면 옷 아래 감춰둔 흉터와 문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재호가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내가 뽕팔이는 해도 뽕을 안 맞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게 사람 몸을 어지간히 망치는 물건이라 그렇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이가 빠지고 장기가 망가지고 우울증이다 뭐다, 아주 끔찍하더란 말입니다. 근데 또 이게 한 번 시작한 인간들은 발을 못 빼.”

 

한재호는 숨을 쉬려 입을 벌려 헉헉대는 김성한의 위에 걸터앉았다. 지난주에 갈비뼈 한 대를 부러트렸으니 체중을 그대로 받아내는 게 꽤나 고통스러울 터였다. 김성한은 인상을 구기곤 한재호가 체중을 실어 짓누르는 제 상체를 빼내려는 듯 다리를 버르적거렸다. 소용없는 반항이었다.

지퍼 백을 열고 가볍게 흔들어 내용물을 한 곳으로 모으면서도 한재호의 시선은 집요하게 김성한에게 향해있었다.

 

“근데, 말입니다. 우리 선배님은 이가 빠지든 뼈가 부러지든 눈알이 빠지든……. 아니면 온 몸이 기름에 튀겨져 죽든. 내 알 바 아니지 않습니까. 흐, 크큭, 흐흐, 흐.”

 

김성한이 몇 마디 욕을 뇌까린 것 같았지만 쉬어버린 목에서 제대로 된 발성이 날 리가 없었다. 한재호의 음성은 가볍게 김성한의 쇳소리를 누르고 말을 이었다. 공간을 채운 것은 한재호의 낮은 음색이었다. 김성한이 미처 어찌하기도 전에 한재호는 우격다짐으로 김성한의 코를 틀어잡고 숨을 몰아쉬는 입에 가루약을 털어 넣었다. 힘 빠진 몸이 방비할 수 없는 속도였다. 김성한이 뱉지 못하게 입조차 아물려 닫게 만들면, 호흡할 통로가 막힌 김성한은 핏발 선 눈으로 몸을 비틀었다. 힘줄 끊어진 손이 간신히 할 수 있는 것은 한재호의 손목을 긁는 것뿐이었다. 모두의 위에서 군림하던 자가 이렇게 무기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한 쾌감으로 다가섰다.

 

“선배님, 삼키세요. 안 삼키면 안 끝납, 크큭, 흐흐, 흐. 안 끝납니다?”

 

웃음을 삼키며 간신히 말을 끝맺은 한재호의 시선은 김성한의 너덜해진 문신에 향해있었다. 저 문신을 망치고 살을 태우던 날 했던 말이었다. 한재호는 끓는 기름에 본능적으로 위축되던 김성한이 끝끝내 목숨을 구걸하지 않던 날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차라리 살려달라고 빌면 오늘 같은 꼴은 안 당했을 것을. 있지도 않은 연민을 가진 척 위장하며 한재호는 김성한의 목울대로 눈길을 옮겼다. 꿀꺽. 그 한 번이면 됐다. 남는 가루야 뱉든 말든, 지금 입에 쑤셔 넣은 양도 정량을 넘으니 약효는 충분할 터였다.

 

“이 약이 말입니다. 우리 전국구 정통 선배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필로폰이라는 약인데 이걸 어떤 용도로 자주 쓰는지 아십니까?”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도 목소리의 말미는 의문형으로 음색이 위로 올라갔다. 숨을 갈구하듯 읍읍대는 김성한의 소리는 흥미로운 효과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한재호의 손은 우악스러웠다. 안 삼키면 이 사내는 죽는다. 한재호의 진리는 간단하고 잔인했다. 깨트리고 버리면 될 물건이니 가지고 놀다가 망가져도 어쩔 수 없는 법이다. 다시금 김성한이 한재호의 손목을 긁었다. 생채기도 내지 못하는 힘이었다. 핏발 선 눈은 광기에 물든 짐승 같기도 했다. 한재호가 그 기백에 눌리지 않은 것은, 그저 그가 한재호기 때문이었다. 그는 분위기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중압감의 짜릿함을 즐겼다. 오싹오싹한 기분에 다시금 아랫입술을 핥으며 한재호가 말을 이었다.

 

“이 약을 먹고 떡들을 그렇게 친다고 합니다아. 하, 하하하학학학학! 응? 섹스를 그렇게, 크크큭, 큭.”

 

기괴할 정도로 들뜬 웃음소리가 일순 뚝, 끊겼다. 마악 김성한이 본능적으로 목울대를 움직여 가루를 삼킨 순간이었다. 틀어막았던 숨통을 틔워주며 한재호가 고개를 숙여 김성한의 귓가에 나직하게 읊조렸다.

 

“필로폰을 빨고 떡을 치면 애미애비도 못 알아보게 좋다지 뭡니까.”

“컥, 허억, 흐……. 이, 씨벌, 놈, ㅇ. 콜록, 헉, 흐으…….”

“아, 그리고 그거 아십니까.”

 

선배님. 꼬박꼬박 호칭을 다는 것에는 조롱과 멸시 외의 의미는 없었다. 김성한은 헛구역질을 하듯 마른기침을 뱉었지만, 삼킨 약을 쉽사리 뱉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재호는 양복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검은빛에 가까운 자주색 넥타이를 끌어내리는 한재호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면했다. 생일을 앞둔 어린이보다도 더욱 활짝 찢어지는 입이 개구졌다.

 

“마약에 절은 놈들 중에 마약을 끊는 새끼들은 10프로도 안 된다지 뭡니까? 뽕팔이가 이래서 안 망하는 겁니다. 뽕쟁이의 세계에 입문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한재호의 행동은 느렸다. 행동의 간격은 의도되었고 쉼표가 어절마다 붙은 문장은 시간을 끄려는 의도가 선명했다. 김성한이 몸을 추슬러 일으키려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분노에 찬 목소리가 ‘씨발!!!’하고 찢어지듯 울었다. 방금 전에 제가 먹은 게 마약임을 알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은 이제까지 한재호가 알던 모습과 퍽 일관된 패턴이라 놀라울 것도 없었다. 기백에 달하는 값을 치르고 산 시계를 가만 내려 보며 한재호는 시간을 가늠했다. 버텨봐야 몇 분이다. 그는 목 끝까지 잠갔던 셔츠의 단추를 두어 개 푸르고, 바지 버클을 천천히 풀었다. 자기가 혐오하던 수단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진 제왕을 구경할 시간이었다.

 

* * *

 

“아, 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였다. 쉬어서 목을 긁어내며 간신히 나온 소음에 가까운 소리. 땀에 절어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한재호는 김성한을 더욱 깊게 끌어당겼다. 교접하는 아랫도리가 거칠었다.

성급하고 메마른 교접과 기껏해야 윽윽대는 북받친 악을 누른 소리와 살이 부딪히는 투박한 소리만 나던 익숙한 성교는 아니었다. 김성한은 한재호의 움직임에 따라 울음을 참지 못하고 내질렀다. 울부짖음에 가까운 비명이었다. 약기운이 돌면 돌수록 김성한은 활력이 돌아오는 몸과는 반대로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머리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 감각은 널뛰었다. 한재호가 무엇을 하든 이미 정점을 찍은 쾌락은 최상의 기준선에서 요동치니 그로써는 미칠 노릇이었다.

열이 오른 두 몸이 바짝 붙었다 떨어졌고, 그 찰나가 지나기 무섭게 맞닿았다. 제대로 쥐어지지도 않는 주먹을 말아 쥔 김성한의 신음은 기름에 살이 타들어가던 날 내지르던 소리와 닮아있었다. 흰 천을 욱여넣어 막혔던 소리가 단숨에 트여나가듯이, 제 혀를 씹으면서까지 참아내던 소리를 김성한은 갈무리하지 못했다. 눈앞이 일그러지면 어지럼증이 도졌고, 몸을 가누지 못하면 한재호는 김성한의 양 팔을 잡아 제 쪽으로 당겼다. 끌려가던 몸은 한재호가 급하게 쑤셔 넣는 성기를 느끼곤 불에 덴 듯 몸서리를 쳤다.

한재호, 한재호, 몇 번이고 악에 받쳐 이름을 찢어발길 듯 불렀지만, 입 밖에 나온 소리는 기껏해야 신음에 말리지 않은 음절 하나가 전부였다.

핏대가 설 정도로 바짝 발기한 한재호의 것이 김성한의 젖은 뒤로 파고들면, 늙은 야수는 그 압박감에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입구를 조이며 빠듯하게 안을 채운 성기를 받아냈다. 흉부가 급하게 오르내리면 가슴팍에 수 놓인, 봉황의 뒤틀린 몸이 요동쳤다. 날개 한 쪽이 기름에 타 찢어진 영물이 화마에 찢어진 이래로 처음, 다시 생동하는 순간이었다. 고통만이 익숙한 몸은 몰아치는 쾌감을 감당하지 못했다. 얼핏 보면 고통에 몸부림치듯 김성한은 벌벌 떨었고, 한재호는 그를 고문하기라도 하듯 깊게 밀어 넣고 허리를 쳐 올렸다. 골반을 잡았다가, 팔을 잡았다가, 이어 가슴을 움켜쥐면 손끝에 심장이 만져질 듯 그 맥이 크고 요란했다.

고병철과 비슷한 연배라는 게 믿기지 않는 몸을 손으로 몇 번이고 훑어내던 한재호가 배꼽 아래, 하복부를 손바닥으로 꾹 눌러 압박하면, 속을 헤집는 한재호의 성기가 무서우리만치 생생해서 김성한은 아, 아, 하고 끊어지듯 흐느꼈다. 무너져 내리는 그의 자존심이, 이름 석 자에 박혀있던 위용이 풍화되듯 흐트러지는 게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재호는 발작하듯 웃었다. 숨이 넘어갈 듯 웃다가 욕을 했고, 욕을 하다가 웃었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김성한이 사냥감이라도 되는 냥 목덜미를 씹었고, 김성한은 과거의 영광만이 남은 패배자가 되어 울부짖었다.

몇 번이고 사정한 뒤에서 찌걱이며 정액이 흘렀고, 체력도, 체력대신 이를 악 물고 버틸 정신력도 남아있지 않은 김성한의 허벅지는 후들대듯 떨렸다. 한재호의 팔이 휘감지 않았으면 진즉 널브러졌을 몸이었다.

네 번의 사정이 그친 후, 반쯤 정신이 나간 김성한의 머리채를 잡고 제 위에 주저앉히자 무게에 눌려 깊게 삽입되는 성기에 김성한이 허리를 비틀었다. 한, 재호……! 씨, ㅂ…! 뒷말은 한재호의 거친 허리 놀림에 끊어졌다. 아래서 몸을 쳐 올리면 약기운을 빌어 발기한 김성한의 것이 한재호의 복부에 스쳤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한재호의 눈은 정확하게 표적을 응시하고 있었다. 순간순간이 희열이자 쾌락의 절정이라 몇 번이고 젖은 내벽에 제 것을 박아 넣는 와중에도 한재호는 갈증을 이기지 못했다. 더, 더. 바닥의 바닥까지 짓밟고 싶었다. 마침표 너머로 끌고 가 끝장을 보고 싶었다. 동시에 이 쾌락이 끊이지 않길 바랐다. 마주한 한재호의 몸을 밀어내려는 듯 내밀어졌던 김성한의 팔은, 그저 한재호의 양 어깨에 힘없이 걸쳐지는 게 전부였다.

허리를 흔들 힘조차 없는 김성한을 붙잡아 억지로 그 몸을 움직이게 하면서, 한재호는 으르렁거렸다. 왕좌를 탈환한 지는 오래전이었으나, 진정으로 이 사내를 꺾은 순간은 지금이라는 것을 깨달은 탓이었다. 머리채를 놓아주면 김성한의 고개는 힘없이 아래로 꺾였다. 바짝 조이던 뒤는 몸의 힘이 풀어지자 더욱 나긋하게 성기를 감쌌다. 씨발, 쫀득하네. 크, 흐흐. 흐. 거칠어진 음색으로 들으란 듯이 희롱을 하면, 김성한은 약기운에 흐려진 눈을 굳이 매섭게 뜨려 애쓰며 시선을 맞춰왔다. 온통 금이 가서도, 아직 깨지지 않은 화분이었다.

그만……. 성대가 울리지 않아 날숨에 가까운 소리를 김성한이 뱉어낼 때, 한재호는 보란 듯이 김성한의 안에 사정했다.

 

“흐흐, 흐. 선배님. 마약을 끊는 10프로도 안 되는 인간들이, 흐흐, 큭, 큭큭……. 누군지 아십니까? 후으. 흐. 신앙심을 가진 새끼들이랍니다. 선배님은…. 종교 믿으십니까?”

“…….”

“안 믿으시면,”

 

아직 김성한의 눈이 감기지 않은 것을 알았다. 깜빡깜빡 정신이 흐려지는 김성한의 귓가에, 한재호가 으르렁대듯 속삭였다.

나라도 믿으시든가. 내가 철창 안의 지저스 아닙니까.

Posted by 백은수

[불한당] 한재호 x 김성한

[불한당] 조현수 x 한재호

 

 

덜컹거리는 철창의 소리, 어쩌지 못할 감각에 몸서리치며 흘리는 신음소리. 작은 창을 따라 쏟아지는 사각의 달빛과 어슴푸레하게 빛나는 철제 서랍. 푸른빛을 머금은 방 안은 붉은 숨결로 냉기가 흐려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법 차가웠던 철창이 이제는 체온에 비벼져 미적지근해진 참이었다. 한재호는 왼손으로 철장을 잡고 오른팔로 제 상체를 기대며 이마를 팔에 기대었다.

 

“아, 형……. 형, 하아, 읏, 으응…….”

 

작고 거친 손이 제 골반을 붙잡아 당긴다는 사실이 어쩐지 우스워, 한재호는 그르렁대는 와중에 흐, 흐흐, 흐, 하고 낮은 웃음을 긁듯이 흘렸다. 한재호의 몸이 흔들릴 때 마다 철컹, 철컹하고 낡은 철창이 흔들리며 요란했다. 침묵의 밤을 뒤흔드는 소음에도 간수들은 한재호의 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발목까지 내려간 황토색 바지와 무릎에 걸린 까만 속옷에 한재호의 다리는 땅에 매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찌걱대는 소리가 민망해 귓가가 붉어진 것은 조현수였다. 붙잡던 골반을 놓아주고 양 손으로 한재호의 허리를 끌어안은 조현수는 꾸욱 꾹, 제 것을 밀어 넣고 흔들며 거친 호흡을 뱉었다. 깊게 박아 넣을 때, 한재호는 조현수의 이름을 불렀다. 괜찮아요? 아파? 질문을 뱉어도 한재호는 그저 낮은 웃음과 함께 기분 좋니? 하고 되물었다. 허리를 바짝 뒤로 밀어 붙여주며 조현수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치대는 것은 오로지 조현수의 쾌락만을 계산해서 이어지는 행동이었다. 한재호는 조현수의 신음소리를 들을 때 몸을 잘게 떨었다. 신음까지 예쁜 새끼.

숨을 길게 내쉬며 하복부와 둔부에 힘을 주면, 조현수는 작게 몸서리치며 한재호의 등에 이마를 부볐다. 열 오른 살끼리 마찰하면 닿은 자리가 그렇게나 화끈거렸다.

 

“하아. 현수야, 흐, 크흐, 흐흐……. 정력도 좋아라. 너 세 번짼, 후으, 건, 아니? 흐, 흐흐, 으, ㅇ…….”

 

한재호의 뒤는 질척거렸다. 조현수가 싸놓은 정액은 계속 이어지는 추삽질에 의해 애널에서 밀려나와 허벅지까지 흐르는 참이었다. 절정에 이르러 성기를 빼내려던 조현수를 말린 것은 한재호였다. 괜찮아. 그냥 해. 무조건적인 허락은 퍽 순정적이었다. 한재호는 유독 그렇게 조현수에게만 물렀다.

헐떡이는 한재호의 숨소리에, 그만 할까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조현수가 헉헉대면 한재호는 고개만 털레털레 저었다. 더 해. 더. 나도 좋아. 그게 진심인지 거짓인지 흥분에 정신이 흐려진 조현수는 구분하기 힘들었다. 젖은 뒤를 조현수의 것이 다시금 쑤시고 들어갔다. 한재호의 등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처음부터 한재호는 조현수에게 다리를 벌렸다. 우리 자기를 아프게, 어떻게 쑤시니. 검지와 중지를 혀로 적셔 스스로 뒤를 풀어내며 한재호는 말했다. 처음이니까 살살 해? 제 손가락을 넣는 것조차 아파서 눈살을 찌푸린 중에도 입 꼬리를 당겨 웃으며 한재호는 목소리에 웃음을 덧씌웠다.

흥분이 짙어진 조현수가 아, 아, 하고 주체 못할 감각이 선연해 단말마 같은 신음을 툭툭 터트리면 한재호는 눈을 희번덕이곤 앞을 응시하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야한 소리였다. 꿈틀대는 내면의 욕망을 짓누르려 힘이 들어간 한재호의 손은 마디에 핏기가 가신 채로 철창을 강하게 그러쥐고 있었다. 조현수를 망가트리고 싶지는 않았다. 제가 먼저 다리를 벌린 이유기도 했다.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몰고 가게 될 것만 같아서. 조현수의 손은 유영하듯 한재호의 등과 날갯죽지, 옆구리와 복부를 쓰는 중이었다.

정사는 조현수가 만족할 만큼 이어졌다. 한 번이든 세 번, 네 번이든 한재호에게는 다를 게 없었다. 그는 조현수가 사정할 때면, 그저 그 야살스런 목소리 때문에 선 제 것을 손으로 흔들어 같이 사정했다. 딱히 몸을 내어주는 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조현수가 아니었더라면 기분이 더러웠을 지도 몰랐다. 조현수기 때문에 한재호는 괜찮았다.

육체적 쾌락은 없어도 정신적인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어, 한재호는 조현수와 몸을 섞었다. 신음, 흥분에 못 이겨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 짓씹어대는 도톰한 입술. 시각을 지배하는 흥분어린 조현수의 표정에 한재호는 몸을 떨었다. 욱신거리는 아래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였다.

쉬어, 자기야. 나는 씻고 올 테니까. 우리 자기 정력이 좋아서 뜨끈한 물로 몸 좀 지지고 올게?

침대에 쓰러지듯 누운 조현수의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한재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오밤중에 샤워실을 다녀오겠다는 말에도 조현수는 놀라지 않았다. 말이 감옥이지 한재호에게는 철창이 의미가 없었다. 탈옥만 아니라면 소장은 한재호의 행보를 막지 않았다.

소장에게서 반 협박으로 받아낸 방 키로 문을 열고 나가며 한재호는 조현수가 피로에 눈을 감는 것을 응시했다. 귀여운 새끼.

샤워실에 가겠다는 얘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재호는 타액과 정액으로 젖은 몸을 가볍게 씻어내기만 했을 뿐, 샤워실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번을 서는 보초들은 한재호를 보고도 반응하지 않았다. 하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저적저적 걸으며 한재호는 욱신대는 등허리를 손으로 꾸욱 눌러 지압했다. 하여간 작고 약해보이는 놈이 힘은 좋아선. 달아오른 조현수의 눈가를 생각하며 헛헛한 웃음을 흘리던 한재호는 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나쳐 으슥한 독방으로 향했다. 마주친 보초는 도리어 복도에서 자리를 비켜줬다. 소장의 명령이었다. 한재호가 이 구역에 들어서는 순간 자리를 비켜주라는. 자기의 안위가 누구보다 중요한 소장은 한재호에게 좋은 꼭두각시였다.

진이 빠진 사자가 독방 안에 웅크린 채 한재호를 맞았다. 아. 흥분에 부들부들 떨리는 한숨을 뱉으며 한재호는 길게 그림자를 끌며 방 안에 다다랐다. 창문이 없는 방은 한재호의 그림자를 잡아먹었다. 아니, 그림자가 방을 장악했다. 그저 어둠이던 공간이 한재호의 아가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아학학학학……. 그렇게 보신다고 저 안 뚫립니다아. 뭘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십니까, 선배님.”

 

마지막 세 음절을 꼭꼭 힘주어 발음했다. 으르렁대는 목울대의 울림을 내며 김성한은 이를 악물었다. 혹시라도 비명을 질러 저의 생존을 알릴까 싶어, 한재호는 김성한의 입을 막아두고 감금했다. 김성한의 입에 쑤셔 박힌 천과 그 위를 덮은 테이프는 한재호가 있을 때만 제거됐다. 식사조차도 한재호의 감시 하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소리를 내지르려 입을 벌리는 순간을 한재호는 매 번 정확하게 잡아냈다. 명치를 가격하며 악쓰는 김성한의 욕설을 미연에 방지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김성한은 독종이었지만, 한재호는 그보다 끈질긴 미친놈이었다.

목을 좌우로 가볍게 꺾어 굳은 어깨를 풀며 한재호는 김성한에게 다가섰다. 뒤돌려 묶인 팔, 막힌 입. 상처가 낫지 않아 거동이 불가할 정도의 다리. 진물이 나는 탓에 붕대를 감고 소독약만 가끔 발라주다 뿐이지 김성한의 화상은 방치되고 있었다. 그나마 발라주는 약들도 김성한이 아닌 김성한의 몸을 만지는 한재호의 편의를 봐 줄 정도의 처치였다. 목과 왼쪽 어깨, 가슴과 등, 그리고 다리. 한 눈에 봐도 멀쩡한 몸이 아니었으나, 김성한은 기죽지 않았다.

처음 끓는 기름을 허벅지에 부었고, 이어 얼굴에 부으려던 것을 빗겨 쏟아 목덜미와 상체에 흘러내리게 하며 한재호는 야차처럼 웃었다. 즐거움에 마지않는 소리였다.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 속에서도 한재호는 꽃밭에라도 있는 양 길게 들숨 했다. 이겨낼 수 없는 고통에 혼절한 김성한을 독방으로 옮긴 그는 전설 같던 늙은 사자를 독차지했다. 김성한의 생존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았고, 그 사람 모두 한재호의 손아귀에 있으니 김성한의 생존이 외부로 새어나갈 일은 없었다.

다짜고짜 운동화를 신은 발로 김성한의 붕대감긴 허벅지를 꾹 밟아 누르며 한재호는 조현수를 생각했다. 김성한이 죽었을 거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던 얼굴. 순진한 녀석이었다. 으읍! 읍……! 입이 틀어 막힌 채로 김성한은 비명을 질렀다. 오싹한 기대감에 한재호는 몸서리를 쳤다. 풀지 못하고 응어리지게 둔 제 성욕을 풀어 놓을 시간이었다.

밟힌 상처의 고통이 거대해서 고개를 젖히고 꺽꺽대는 김성한의 입에서 테이프를 떼고 천을 뽑아주면, ‘아아, 아……!’하는 비명이 방을 가득 울리다 이내 악다구니에 씹혀 말려들어갔다. 비명소리에 찾아오는 간수는 없었다. 한재호는 김성한의 머리채를 잡아 고개를 더욱 뒤로 꺾게 당기며 즐거움을 참을 수 없어 웃음을 발작적으로 흘렸다.

 

“아이고, 오늘도 꼴이 말이 아니십니다. 선배님. 그럼 시작할까요?”

“이, 씨벌……. 흐으, 씨벌로마…!”

 

김성한이 포효하듯 외쳐도 한재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아 저보다 한 뼘이 큰 거구의 몸을 방 중앙으로 끌어다 놓은 그는, 김성한의 뒷목을 누르며 하의를 벗겨냈다. 허리와 발목이 고무줄로 된 옷은 잡아당기는 순간 미끄러지듯 손쉽게 벗겨졌다. 차가운 공기에 노출된 맨 살, 그리고 옷이 벗겨지며 붕대 위를 긁고 지나가는 쓰라림에 김성한이 몸을 퍼득, 떨었다. 한재호가 입맛을 다셨다. 독방 앞에서 뻐근하던 앞은 이미 바짝 선 상태였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조롱이 담긴 목소리로 경쾌하게 말하면 김성한은 욕을 뇌까리려 입을 벌렸고, 순간을 놓치지 않은 한재호는 단숨에 김성한의 뒤를 꿰뚫었다.

콱 치고 들어오는 성기는 배려도 온정도 없었다. 김성한의 벌어진 입에서는 숨이 넘어갈 듯 아슬아슬한 소리가 났다. 고통을 동반한 압박감에 늙은 야수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것으로도 부족한 듯 허리를 바짝 앞으로 밀어 부비며 뿌리 끝까지 밀어 넣은 한재호는 아, 하고 낮은 탄식을 뱉었다. 육신을 타고 오르는 자르르한 만족감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충혈 된 눈으로 김성한의 핏대 선 목을 내려다보며 한재호는 양 손으로 붕대 감긴 허벅지를 우악스레 잡았다. 손아귀에 힘을 주면 줄수록 김성한의 몸은 경직하며 한재호의 것을 조였고, 김성한은 발작하듯 상체를 퍼덕였다. 아. 아.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헐떡대는 날숨 틈에 섞인 단말마에 한재호는 웃었다. 비웃음도 거짓웃음도 아니었다. 내면의 야차가 만족해서 지어내는 미소였다.

힘 푸세요, 아니면 더 아픕니다? 한재호의 골반이 뒤로 천천히 빠졌다 급하게 밀어닥쳤다. 김성한의 몸이 앞으로 밀려났고, 어깨와 머리가 바닥에 지익 끌리면 김성한은 상체를 웅크렸다. 등에 선연한 화려한 문신이 약동했다. 붕대가 미처 덮지 못한 화상의 경계가 타 버린 종이의 끄트머리처럼 문신을 침범하고 있었다. 등을 차지한 무사의 얼굴은 까맣게 반 이상 타 버린 지 오래였다. 기름에 타버리던 살 냄새를 회상하기라도 하듯, 한재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허리를 흔들었다. 아플 정도로 조여 오는 김성한의 뒤에 한재호의 것은 도리어 더욱 뻣뻣하게 발기했다. 씨발…. 한재호가 흥분을 못 이겨 욕을 짓씹었다.

밭은 숨을 내쉬며 웃음을 흘리던 한재호는 없었다. 풀어진 그 순간은 조현수에게만 유일한 모습이었다. 한재호는 으르렁대며 웃었고, 웃음보다 더 자주 욕을 뱉었다. 이는 김성한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한재호는 조현수의 앞에서 가면을 몇 겹씩 더 덮어썼고, 김성한의 앞에서 그것을 모조리 집어 던지곤 했다.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이 사라진 한재호는 짐승처럼 김성한을 잡아먹었다.

김성한은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았다. 원하는 대로 해 준다면야 죽음이 됐든 휴식이 됐든 제가 바라는 순간이 조금 더 이르게 닥쳐오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자존심은 김성한의 굴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매 순간 무너지는 몸을 세우려 발악했고,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권위를 지키려 발광했다. 한재호는 그런 김성한에게 발정했다.

한재호는 김성한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엎어놓고 몇 번을 박아대며 사정하곤, 이어 숨 돌릴 틈도 없이 몸을 뒤집어 오금을 잡아 밀었다. 김성한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제 치부를 가릴 수도 없었다. 한재호는 보란 듯이 제 정액으로 엉망이 된 김성한의 아래를 집요하게 응시했고, 김성한은 그 수치심에 으르렁거렸다.

둘의 관계에서 매번 김성한은 피를 봤다. 배려 없이 파고드는데 도리가 없었다. 제 안에 깊게 사정하면, 김성한은 역겨움에 몸서리쳤다. 한재호는 김성한의 목덜미를, 단단한 가슴을 이 세워 피멍이 들 정도로 씹곤 했다. 이가 닿을 때 문신이 뒤덮은 몸은 그 긴장이 보일 정도로 팽팽하게 근육이 뭉쳤다.

한재호는 절정에 이를 때면 입을 꾹 다물고선 입 안에서 조현수의 이름을 몇 번이고 굴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폭력 같은 교미가 버거워 헐떡대는 김성한을 내려다보며 한재호는 파정했다. 김성한은 단 한 번도 사정하지 않았다. 그는 마른기침을 토해냈고 몸이 흔들리면 제 안의 한재호가 선연해서 진저리를 쳤다.

창문 하나 나지 않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짐승의 것 마냥 빛나는 김성한의 눈을 보며 한재호는 제가 김성한을 찾는 이유가 조현수인지, 조현수가 핑계에 불과한 것인지 모호해지는 경계를 느끼곤 흐느끼듯 웃었다.

시발, 그러길래 진작 좀 발밑에서 기시지, 사람 헷갈리게 개기고 그러십니까…….

 

Posted by 백은수

[불한당] 한재호 x 김성한

 

 

 

쫀득하게 조이시는 게 역시, 우리 정통 건달 선배님! 흐하하하학학학!

웃음소리가 경쾌했다. 김성한은 이를 악물었다. 감각이 없는 상처에서 다시금 올라오는 고통이 첨예하고 거대했다. 목소리에 실린 힘이 불러들인 과거가 밧줄처럼 목을 옥죄었다. 시트를 강하게 구겨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힘 빠진 팔이 자꾸만 꺾여 상체가 무너져 내렸다. 악문 입 때문에 숨을 쉬기는 배로 힘들었다. 몸체가 강하게 흔들릴 정도로 허리를 흔드는 한재호의 행동은 교미가 아닌 폭력에 가까웠다. 무자비한 폭력을 견디며 김성한은 짧은 손톱으로 몇 번이고 시트를 긁듯이 고쳐 잡았다.

허벅지를 기름으로 지지고도 부족했는지 한재호는 기름을 다시 한 바가지를 떴다. 조현수가 나간 배식대 안측 주방의 분위기는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김성한은 지고 싶지 않았다. 한재호가 비웃는 자신의 삶은 실제로 우습지 않았다. 이런 미친 야수를 만난 적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어떤 때보다 상황이 좋지 않을 뿐이었다.

주도권을 잃은 싸움에서 김성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한재호를 응시했다. 제 이름 석자에 박힌 무게를 잃을 수는 없었다. 사자는 죽어서도 사자여야만 했다. 승냥이로 격하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울부짖었다. 저의 마지막을 직감한 순간이었다.

한재호는 김성한의 눈길에 발정했다. 그 찰나의 마지막에,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소름을 느꼈다. 갈증이 목, 식도 그리고 그 심장과 복부 언저리의 낮은 곳에서부터 길게 올라왔다. 기름은 바가지 안에서 찰랑거렸다. 한재호는 조현수가 사라진 자리를 응시했다. 듣고 있을 게 빤했다.

기름은, 얼굴에서 조금 빗겨난 김성한의 목덜미에서부터 아래로 흘러내렸다. 봉황의 몸이, 휘황찬란하던 무사의 옷이 까맣게 타 들어가던 순간이었다. 천을 입에 문 김성한은 눈에 실핏줄이 설 정도로 비명을 질렀다. 악문 이에, 잇몸에서 피가 흘러 물고 있던 천을 적셨다. 실신하며 늘어지는 김성한의 몸을 보며, 한재호는 씨발, 하고 낮게 욕을 뇌까렸다. 웃음기가 없었다.

한재호는 김성한을 빼돌렸다. 그 부하의 몸에 끓는 기름을 내리 부어 형체를 알 수도 없게 만들고선, 그를 김성한으로 둔갑시켰다. 김성한은 허벅지와 왼쪽 상체가 까맣게 탄 채로 끌려갔다. 계장은 실종된 김성한을 찾지 않았다. 바퀴벌레 같은 깡패 새끼의 죽음보다는 담배 건으로 고발될 제 문제가 더욱 급했던 탓이다.

 

“선배님, 소리 좀 내고 그래야 빨리 끝나지 않겠습니까. 내가 이런 식이면 끝내고 싶질 않습니다, 예?”

 

젤도 바르지 않은 채 무작정 우겨넣은 성기로 안을 헤집으며 한다는 소리가 그랬다. 김성한은 허리를 수그리고 소리를 삼켜냈다. 죽어도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 빳빳한 자존심이 저를 이렇게 진창에 뒹굴게 한 원인임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김성한은 고개를 꺾지 않았다. 김성한이 ‘아가리, 찢어 분다…….’하고 되도 않는 협박을 하면 한재호는 세상 떠나가란 듯이 웃었다.

흉하게 진 화상자국을 양 손으로 감싸 쥐며 다리를 벌릴 때, 김성한은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다. 그럼에도 벌벌 떨리는 제 몸을 스스로 증오해서, 그는 이를 악물고 본능적 공포를 다스리려고 아등바등 이었다. 이 얼마나 우습고 구미 당기는 모양새란 말인가. 한재호는 김성한이 본능적 공포와 마지막 자존심을 두고 악을 쓰는 표정을 즐겼다. 늙은 사자의 마지막 발악. 왕좌를 박탈당한 자의 처절함이 한재호를 카타르시스로 몰아가곤 했다.

한재호는 김성한을 사육했다. 원하는 만큼 가지고 놀고, 죽지 않을 만큼만 먹였으며 종종 관절을 부러트렸고, 자주 손찌검을 했다. 김성한은 매 순간 한재호에게 달려들었지만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고작해야 몇 센티 큰 키만으로 이기기에 한재호는 더 없이 강건했다.

한재호는 김성한의 머리채를 잡고 대리석 테이블에 그 머리를 몇 번이고 찍어 내렸다. 기어이 피를 보고서야 폭력을 멈춘 한재호는 당연하다는 듯 김성한의 하의를 벗겼다. 제 멋대로 입혀놓은 양복을 찢듯이 벗겨내고 좁은 입구를 풀지도 않고 벌려내며 한재호는 흥분을 못 이겨 숨을 씨근덕거렸다. 유일하게 웃음이 멎는 순간이기도 했다. 김성한의 눈에 핏발이 설 때, 압박감에 헉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경직된 몸을 퍼들퍼들 떨 때, 한재호는 전율했다.

조현수를 곁에 둔 이후로 한재호의 폭력은 늘었다. 조현수 앞에서 다소곳하니 감춰둔 발톱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숨겨둔 발톱을 꺼내든 한재호는 이전보다 더욱 잔인하고 거칠었다. 엎드린 김성한의 등에는 얼굴 반쪽이 타 버린 무사가 초점 없이 사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재호는 그 눈길을 따라 손을 더듬어 김성한의 몸을 훑기를 즐겼다. 늙은 몸은 단단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리로 옮긴 손을 더 아래 둔부로, 제가 지져놓은 허벅지로 흘리듯 쓸면 거친 굳은살이 스치는 감각에 무섬증이 이는지 김성한은 몸을 비틀곤 했다. 납작한 배에 바짝 힘을 주며 다리를 바르작대면 좁은 내벽이 더욱 꾹 오므라들며 재호의 것을 조이곤 했다. 한재호는 앓듯이 신음하며 허리를 쳐 올렸다.

몇 번을 꺾고 짓밟아도 김성한은 죽지 않았다. 어미가 죽어 울던 조현수와는 반대쪽에 선 사람 같았다. 아니, 사람이 맞나 의심스럽기도 했다. 매일 새로운 존재가 그 안에 들어차듯 김성한은 울부짖고 이를 세웠다. 그게 한재호에게는 퍽 재미있단 사실을, 김성한은 여직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물론, 깨달았다고 해서 태도를 바꿀 위인도 아니었다. 깡패새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고고한 자존심.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와서도 끓어오르던 눈을 버리지 못하던 야수.

한재호는 제가 김성한에게 가진 감정을 정의내리지 못했다. 조현수와는 달랐다. 소중하다거나 믿고 싶다거나 하는 간질대는 감정은 전무했다. 그저 끓어오르는 흥분과 격동하는 본능이 전부였다. 한재호는 짐승처럼 교미했고, 김성한은 그것이 짐승 같은 폭력이라고 여겼다.

엎드린 채 성기를 받아내던 몸을 돌려 눕힌 한재호가 김성한의 다리를 억지로 벌렸다. 뒤 돌려 묶인 손에 김성한은 반항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욱신대는 다리 몇 번 뒤채다 한재호에게 목을 졸리는 게 전부였다. 숨이 넘어갈 듯 몸을 퍼덕대면 그제야 조르던 목을 놓아주곤, 한재호는 여유롭게 김성한의 안으로 침입했다. 피에 젖은 뒤는 이전보다 수월하게 한재호를 받아들였다. 나른한 숨을 뱉으며 엉망이 된 몸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음험했다.

진이 빠져 다리를 가누지 못하는 김성한을 향해 코웃음을 치며 거친 양 손으로 이레즈미가 뒤덮은 가슴을 콱 쥐어 주무른다. 수치심에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며, 손 안의 살집을 한재호는 유린했다. 주무르고 깨물고 박아대며 한재호는 제 안의 야수를 잠재웠다. 끓어오르는 광기를 그렇게 쏟아내며 그는 이성을 차리고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몇 시간동안 쉬지 않고 이어지는 교미에 김성한이 녹초가 되어 허덕이면 한재호는 제 정액이 묻은 손을 김성한의 얼굴에 마구잡이로 문질렀다. 정통 건달은 구멍도 남다릅니다. 그리고 호탕한 웃음. 이렇게 박아줬는데도 안 서시는 거 보면 발기부전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학학학학! 조롱 섞인 말에도 반응하지 못 할 정도로 김성한이 지쳐 널브러지면, 한재호는 그제야 행위를 멈췄다. 대개 그 시점은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 한재호는 씻은 직후 출근을 했고, 김성한은 그 자리에서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하루는 그렇게 흘렀고, 김성한이 간신히 숨을 돌리고 몸을 추스른 후 밤이 도래하면 한재호는 조현수의 앞에서 종일 웅크리고 있던 제 광기를 흘리며 귀가하곤 했다. 지옥은 변함없이 김성한에게로 찾아들었다.

Posted by 백은수

 

[슈퍼내추럴] 카스티엘 X 베니 라피테

 

 

 

카스티엘의 일 순위는 딘 윈체스터다.

딘 윈체스터의 일 순위는 샘 윈체스터다.

샘 윈체스터의 일 순위는 딘 윈체스터다.

명백하게 보이는 관계는 결국 한 사람만 외롭게 남기곤 했다.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 없는 화살표가 항상 서러웠지만, 카스티엘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천사였고 감정에 무지했다. 아마 외로움과 서운함을 느꼈다 하더라도 본인은 눈치 채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그는 피자 배달부의 육체적 폭력이 일으키는 흥분 상태에 대해서도 파악하지 못하는 존재였으니까.

그것은 그가 천사였을 때의 이야기였다. 은총이 바닥나고 날개가 떨어져 나가기 전의 이야기였다. 지금의 카스티엘은 다리가 부러지면 두 달을 고스란히 병상에서 보내야하는 인간에 불과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육체적인 나약함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수십억 년 동안 모르고 지냈던 폭발적인 감정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종말이 닥쳤을 때 카스티엘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이란 많지 않았다. 모든 것은 삭막하게 말라붙었거나 썩어있었고, 사람들은 대게 겁을 먹거나 화를 냈다.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언제나 과격했으나 한편으론 단조로웠다. 사상자가 생기면 모두가 침울해했고, 식량을 구하면 모두가 기뻐했다. 딘이 무모한 계획을 세우면 다들 짜증을 내거나 답답해했고, 크로츠에게 상처를 입어 감염이 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다 죽었다. 안정적인 상황에서나 배울 수 있는 섬세한 감정들을 배울 기회가 카스티엘에게는 없었다.

카스티엘은 날개가 떨어질 때, 절망을 배웠다. 헤어나는 법을 알려줘야 할 첫 번째 사람은 제 동생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 역시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이었다. 끝없는 감정의 심연에서 기어 올라오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그런 것을 알려주기에는 다들 제 목숨이 급급했다. 카스티엘은 견디지 못했다. 약과 여자, 술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딘은 카스티엘의 비정상적인 타락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지만 그런 그를 타박하지는 않았다. 카스티엘에게 한 마디를 던질 기력으로, 그는 샘과 콜트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몰두했다.

2014년의 종말에서 벗어나, 종말이 없는 차원의 미래로 건너온 카스티엘은 드디어 총소리가 숨 쉬듯 들려오는 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기름진 음식을 먹었으며, 멀쩡하게 수신이 되는 텔레비전을 틀고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기어 올라오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심연에 있었다.

카스티엘은 천사였던 자신이 그러했듯이 텔레비전 앞에 바짝 붙어 화면을 들여다보곤 했다. 물론 이내 뻐근해지는 허리에 등을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카스티엘의 은총은 돌아오지 않았다. 천사들이 모두 지구를 떠났을 때 사라져버린 은총이라면, 천사들이 가득한 이곳에선 도로 회복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딘이 물었지만 샘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여기는 캐스에게 다른 차원이잖아. 영향을 받지 않나보지. 그 말에 카스티엘은 눈으로 형제를 흘깃 보고 이내 시선을 돌렸다. 다른 차원의 형제들에게, 자꾸만 모난 마음이 들던 참이었다.

카스티엘에게 여전히 일 순위는 딘이었다. 물론 아버지의 존재가 첫 번째였던 적이 있었지만, 그건 오래전의 이야기였다. 자신이 이렇게 타락해버리기 전. 루시퍼가 날뛴다면 그것을 막아줄 위대한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의 이야기 말이다. 신은 도망쳤거나 죽었다. 카스티엘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아버지를 믿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강인한 인간 하나에게 마음을 쏟았다. 사실 그것은 꽤나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카스티엘은 이제 인간이었다. 마냥 주기만 하는 것이 얼마나 에너지 소모가 심한 일인지, 그는 깨닫고 있었다. 이전에는 괜찮았다. 딘의 곁에는 샘이 없었고, 딘은 무뚝뚝했으며, 감정 하나하나에 신경 쓰기에는 모든 상황이 경각에 달려있었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샘이 있었다. 딘에게는 돌봐야 할 동생이 있었고 살려내야 할 ‘진짜’ 카스티엘이 있었다. 카스티엘은 여전히 딘에게 모든 걸 내어줄 마음이 있었지만, 딘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차근차근 깨우쳐 갈 때마다 카스티엘은 마음속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원망을 누르기 버거웠다. 그는 속이 상했고, 서러웠으며, 외로웠다.

카스티엘은 종종 심술을 부렸다. 멀쩡히 식사를 하다가도 너희가 정말 싫다며 그릇을 밀쳐두고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의 정신은 온전치 못했다. 약과 술에 찌들어있었던 뇌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먼저 자리를 잡은 마음은 카스티엘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카스티엘은 악몽을 꾸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연약한 인간이었다.

보모 자리를 맡은 것은 베니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카스티엘은 그나마 베니에게 가시를 덜 세웠다. 전혀 모르는 존재에게까지 신경질을 부릴 만큼 카스티엘은 예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둔감한 편이었다. 다만 딘에게 주는 감정이 너무나도 컸었기에, 그 둔감함으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을 뿐이었다.

 

“나는 딘이 벌려 놓은 일을 수습해주기엔 너무 지쳤어.”

 

벙커 밖으로 나가 식료품을 사오겠다며 차키를 챙겨나가는 형제를 보며 카스티엘이 말했다. 언제나처럼 그의 몸은 흐느적거리듯 반쯤 기울어있는 상태였다. 의자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오른팔을 테이블에 괸 채로 카스티엘은 샘과 딘이 벙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베니는 카스티엘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긍정이나 부정을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육중한 문이 그저 공기가 짓눌리는 작은 파열음만을 내며 닫혔을 때서야 카스티엘은 비로소 베니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단추가 세 개 달린 아이보리색 카라 없는 티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베니는 샘이 펼쳐둔 서적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사건들이라는 건 줄을 서서 차례차례 오는 것이 아닌지라, 벙커는 늘 분주했다.

 

“이 차원의 카스티엘이 되살아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죽거나, 돌려보내지거나.”

 

베니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카스티엘도 알고서 하는 질문일 테니. 카스티엘은 발작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덥수룩한 수염을 손으로 매만지면서. 그의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익숙하지 않은 인간의 무기를 다루면서 얻은 것일 터였다. 베니는 웃는 카스티엘을 예의 그 푸른 눈으로 바라보다 도로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동정하는 기색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동정할 여유도 없지만 말이다.

 

“한번 쓰고 버리겠다는 거네. 윈체스터다워. 정말이지, 우리의 위대하신 지도자님다운 냉철한 결정이라고.”

 

카스티엘의 뒷말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베니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형제의 앞에선 그나마 갈무리를 해내던 감정을, 카스티엘은 베니와 단 둘이 남으면 터트리곤 했다. 지금처럼. 좋은 신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 베니는 그저 카스티엘의 성질을 받아줄 뿐이었다.

 

“시국이 시국이잖아. 천사들은 추락했고, 악마들은 살기등등하지. 이게 무슨 의미인 줄 알아?”

 

“…….”

 

“불균형.”

 

베니가 제 넓적한 손을 수평으로 만들어 보이다 이내 손끝을 바닥으로 내려 손을 기울였다. 카스티엘의 고개가 베니의 손을 따라 기울여졌다. 드물게 보이는 관심이었다.

 

“추가 지옥에 너무 무겁게 매달려있어. 날개 없이 떨어진 천사들은 악마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다시 위로 가기위해선 천사들의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건…….”

 

베니가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카스티엘을 가리켰다. 카스티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뒤에 이어질 말은 쉽사리 예상이 갔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에.

 

“천사들의 지도자를 만들기 위해 나를 되살린다고? 딘과 샘이?”

 

“그런 셈이지. 네가 죽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 것도 있지만. 천사들은 결집하지 못하고 있어. 샘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말이야. 그들은 지도자를 원해. 비록 지은 죄가 커도, 그들에게는 없는 의지가 가득한 지도자 말이야. 메타트론에게 대항해 천국을 탈환해줄 천사.”

 

“그게 그렇게 필요한 일인가?”

 

“물론.”

 

베니는 제 앞에 있던 책을 반 바퀴 돌리더니 카스티엘 쪽으로 밀어 주었다. 천 쪽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두꺼운 양장본 도서였다. 펼쳐진 책의 왼편에는 선으로만 이뤄진 삽화가 한 페이지에 걸쳐 그려져 있었고, 오른편엔 사진에 대한 주석인 듯 작은 글씨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오늘도 반쯤은 취한 상태라, 들쭉날쭉한 글씨를 읽기위해 카스티엘은 책에 거의 코를 처박다시피 해야만 했다. 책장의 냄새를 맡는 것처럼. 천사와 악마와 괴물이 뒤엉킨 삽화를 베니가 손끝으로 톡톡 쳤다.

 

“천국과 지옥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벽이 비틀리는 것과 같아. 집의 벽이 비틀리면 닫힌 문에 틈이 생기기 마련이지.”

 

베니의 검지 끝이 삽화의 가장 밑 부분, 고개를 치켜든 뿔 달린 괴수를 찾아가 그 위를 덧그렸다. 깨알 같은 글씨를 억지로 읽기위해 고군분투하던 카스티엘은 이내 독서를 포기하고 베니의 말을 경청하기로 마음먹은 듯 책에 쑤셔 박은 얼굴을 들어올렸다. 카스티엘의 곱실거리는 앞머리가 이마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단정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틈이 생기면, 연옥 문이 열려. 지상에 지옥과 연옥의 칵테일 쇼가 벌어지는 격이지.”

 

베니가 슬쩍 미소지어보였다. 나보다도 무시무시한 놈들이 날 것 그대로인 채로 기어 올라온다고, 카스티엘. 송곳니를 꺼내지 않았음에도 그에게는 흉포한 기백이 있었다. 연옥에서 수백 년을 썩어왔던 뱀파이어의 기백이었다. 온 몸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카스티엘은 작게 진저리를 쳤다. 공포보다는, 전율에 가까운 기분이었다. 마치 엑스터시를 씹은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카스티엘은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Posted by 백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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