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정승필 x 고병갑
아이, 씨발. 뭔 개소리…….
그리고, 탕. 실상 가까이에서 듣자면 콰앙에 가까운 소음이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던 그 순간. 해를 등지고 앉아 평소보다 어둑했음에도 유독 밝던 눈동자의 동공이 축소되던 그 찰나. 고병갑은 매 번 같은 꿈을 꾸었다. 유언도 뭣도 아닌 짜증이 섞인 말과 왕왕 울리는 총소리. 바다의 비린내와 알싸한 담배 냄새.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잠에서 깰 때, 고병갑은 숨이 막혀 허덕였다. 난 잘못 없어. 그러니까 경찰 새끼가 왜 겁도 없이……. 난 잘못 없어. 아무도 없는 방에서조차 약해지는 본인을 인정하지 못한 그는 허공에 대고 ‘시발!’하고 강하게 소리쳤다. 난 잘못 없어! 시발새끼야! 고병갑의 목소리는 벽에 부딪혀 왕왕 울렸다.
* * *
한재호에게 영근이가 있다면 고병갑에게는 정승필이 있었다. 아니, 영근이보다는 조현수와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정승필의 역할은 애매하게 걸쳐져있었다. 뒤를 봐주는 실장이었지만 격식과 거리가 없었다. 예, 이사님. 하는 소리는 듣기가 어려웠다. 고작 몇 년 본 사이치고는 심하게 가까운 관계였다. 한재호가 감옥에 들어가 있던 그 몇 년간, 고병갑의 곁을 지킨 것은 정승필이었다.
고병갑은 홀로서기가 어려운 자였다. 그런 주제에 자존심은 세고 부리기는 좋아하니 곁에 붙을 사람이 적었다. 고병갑 역시 이를 알고 있었지만 한재호 하나면 충분했던 사람이기에 변화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조현수가 한재호에게 접근했던 것과 비슷한 시기에, 정승필은 ‘취직’을 했다. 차분하게 내렸던 머리를 빠글거리게 볶아 뒤로 넘기고, 화려한 금사가 수놓아져진 셔츠를 걸친 모습이었다. 민철은 정승필의 대변신을 목도하고 큽, 하고 웃음을 삼켰더랬다. 조현수가 있었더라면 숨이 넘어갈듯 낄낄댈 것이 뻔했다.
누구도 정승필을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하기엔 너무나도 동족의 냄새가 난 탓이었다. 본래 조현수가 들어오기 전부터 잠입조에서 구를 대로 구른 짬밥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었다. 사기꾼이나 조폭, 범죄자 연기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승필아. 네가 잘 해야 돼. 천 팀장이 예의 그 나긋나긋하고 강압적인 톤으로 말했다. 현수는 너무 어려. 임기응변도 아직은 부족하고. 뒤가 구릴 대로 구린 놈들이야. 어쭙잖은 범죄자 연기는 안 먹힐 거야. 정승필은 고개를 왼편으로 갸우뚱 하듯 꺾은채로 건성건성 고개를 끄덕였다. 검지와 엄지로 잡은 담배를 종이컵 속에 툭툭 터는 모양새가 꽤나 껄렁했지만 천 팀장은 지적하지 않았다. 정승필은 슬슬 제 역할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는 마치 배우가 연기를 하듯, 잠입이라는 연극에 빠져들고 있었다. 말투도 수 배는 거칠었다. 말끝에 욕이 붙고 목소리는 비아냥조가 붙어있었다. 천 팀장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고병갑 역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강약 조절이 야비할 정도로 절묘한 놈이었다. 굽힐 곳과 펼 곳을 정승필은 본능적으로 짚어냈다. 죽지 않을 자리에서는 굽히지 않았다. 한재호부터 그 직속 수하인 영근까지 빠져 어수선한 오세안을 고병갑이 차분히 누를 수 있도록 도운 일등 공신이기도 했다.
현 우두머리인 고병철의 인정을 받지도, 차기 패권 주자로 여겨지는 한재호에 댈 수도 없는 역량의 고병갑은 썩은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이 바닥에서 라인 잘못 타면 모가지 날아가는 게 비일비재한지라, 누구도 모험을 시도하지 않았다. 고병갑은 순종은 있고 충성이 없는 자들 사이에서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마치 고아원에서 그러했듯. 지켜줄 한재호가 없는 곳에서, 그는 악다구니처럼 버텨내고 있었다.
그 순간 치고 들어온 게 정승필이었다. 고병갑의 곁으로 가는 것은 쉬웠다. 모두가 길을 터주는 형국이었으니. 다들 출소할 한재호 앞으로 번호표만 뽑고 있던 와중이니 정승필은 막힐 것이 없었다. 형님, 상무님 하던 호칭 앞에 ‘우리’가 붙으면서 정승필과 고병갑의 거리는 세 걸음에서 두 걸음으로, 종래에는 반 보로 줄었다.
고병갑은 어딜 가든 정승필을 대동했다.
“씨발……. 동료는 무슨 동료야. 원래 남자는 독고다이라고, 우윽, 윽…….”
중얼대던 고병갑이 헛구역질을 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 갈색 눈. 빛을 받으면 더욱 옅어지던 그 눈동자. 그게 그렇게나 아른거렸다. 유언도 남기지 못한 비참한 종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고병갑이 비척비척 화장실로 기어들어갔다. 웩웩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고병갑은 정승필이 담배를 피우던 그 손을 좋아했다. 제 무용담인지 허풍인지 모를 소리를 털어놓으며 한참 입을 털다보면 담배가 필터까지 타 들어갔는데, 정승필은 ‘아, 뜨거!’하고 요란법석을 떨며 꼬집듯 잡고 있던 담배를 내동댕이치는 게 부지기수였다. 고병갑은 낄낄대며 야, 너는 만날 그러더라, 하고 핀잔을 주곤 했다.
“근데, 우리 상무님은 한재호 이사가 그렇게 좋으셔?”
고병철을 잡아넣으려던 시도가 무산되고 한재호의 감옥행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던 천인숙의 사냥이후 한재호의 첫 면회를 가던 고병갑을 보며 정승필이 물었다. 몇 번이고 거울을 보고, 새로 산 바지를 요리조리 둘러보며 태를 살피는 모습이 맞선에라도 나가는 것 같다면서. 병갑은 히죽 웃으며 좋긴 시발, 하고 뻗댔다.
정승필은 병갑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오세안을 관리했다. 단 몇 시간뿐이지만, 그 짧은 시간 중에도 일이 터지는 게 이쪽 업계였다. 회사가 커지고 나서는 더욱 겉멋이 든 건지 어지간히 중요한 자리가 아니면 얼굴도 비추지 않는 고병철과 아직 감옥에 있는 한재호. 한재호와 함께 들어간 영근과, 지시와 의사소통이 어려운 방개. 그 상황에 병갑까지 자리를 비우면 오세안은 텅 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승필은 좋든 싫든 고병갑이 자리를 비울 때 오세안을 관리했다. 그 짧은 시간이 천 팀장과 연락하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정승필은 두 가지 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냈다. 모두의 눈을 피해 접선하는 것과 수뇌부가 휘청이는 오세안을 다잡는 일. 고병갑이 정승필을 신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항상 불퉁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변기를 붙잡고 구역질을 하던 고병갑은 눈을 벅벅 문질렀다. 퍼렇게 든 멍이 눌려 쓰라렸다. 내일 면회 가야 하는데 꼬라지가 이게 뭐야, 애써 힘주어 중얼대는 목소리가 버르르 떨렸다. 오늘따라 멍이 그렇게 시큰거릴 수가 없었다. 재떨이로 사람을 치고 지랄이야, 하고 중얼대려다 다시 올라오는 구역질에 고병갑이 머리를 변기에 박듯이 숙이곤 웩웩댔다. 회장님. 유독 차분하게 가라앉던 정승필의 목소리가 기억난 탓이다.
고 회장에게 얻어맞는 것은 하루이틀일도 아니었지만, 매 번 속이 상하고 분통이 터지는 것은 매한가지라 고병갑은 항상 그렇게 울분을 쌓아놓고 살았다. 시늉으로라도 고병갑을 말려줄 한재호조차 없으니 폭력의 시간은 잦고 길었다. 어느 순간부터 고회장을 막아선 건, 정승필이었다. 한재호나 고병갑만큼 위치가 높지 않았기에 주의를 분산시키는 식으로 고병갑을 빼내는 게 전부였지만, 정승필로써는 그게 최선이라는 걸 고병갑은 알았다.
회장님, 여수 쪽 수산회사에서 고상무를 만나겠다고 지금 연락이 와서 잠시 데려가겠습니다.
회장님. 그렇게 무미건조한 음성은 처음이었다. 정승필의 목소리는 강약과 음폭이 왁 올라갔다 툭 떨어지는 파도와도 같았다. 그토록 사무적이고 딱딱한 목소리가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한 목소리가 귀에 꽂히자 불같이 화를 내며 뺨을 갈기던 고병철은 금세 불길을 추스르곤 고병갑을 보냈다. 아무리 그가 안하무인이라지만 일에 필요하다는 사람을 제 분풀이로 잡아둘 만큼 아둔하지는 않았다.
평소와 달리 승필이 앞장서고 병갑이 뒤따라 걸으며 건물을 빠져나오면, 정승필은 묵묵히 까만 세단의 뒷좌석을 열어 고병갑을 태웠다. 부은 뺨을 손바닥을 앞뒤로 뒤집어 가며 꾹꾹 누르던 고병갑이 억울함에 씨근덕대는 숨을 그칠 때 쯤 정승필을 차를 세웠고, 주변을 살피면 탁 트인 바다였다.
“야, 여ㅅ, 여수 애들은 어쩌고 여길 와.”
억울함에 갑자기 북받치려던 숨을 꾹 눌러 참으며 말하면 정승필은 어깨를 으쓱하며 차에서 내리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불을 붙일 때 어깨는 앞으로 굽었다. 고병갑은 코를 훌쩍였다.
“에이, 씨발. 여수에서 오긴 누가 와요. 그 짝들 요즘 경찰한테 말려서 다 줄줄이 입소중이구만. 아, 그럼 우리 상무님이 좆같은 이유로 당하고 있는데 이빨이라도 털어서 빼 와야지. 나와 봐요.”
어느새 차분함은 버리고 요동치듯 흔들리는 어조로 말하며 정승필이 차문을 손바닥으로 텅텅 두드렸다. 고병갑은 ‘니가 뭔데 나오라 마라 하냐.’고 투덜대면서도 순순히 뒷좌석 문을 열고 나왔다. 바닷바람은 향이 짰고 햇살에 부딪히는 물비늘은 눈이 부셨다. 눈을 찌푸리면 쓰라림이 올라서 욕을 뇌까리면 정승필은 작게 혀를 차며 장초를 바닥에 툭 내던지곤 신발로 비벼 껐다.
“아유, 참 반지는 좀 빼고 치든지. 우리 상무님 면상에 상처 났네.”
“야, 면상? 너 지금 면상이라고 그랬…….”
“가만있어 봐요, 좀.”
지 상사한테 말 하는 꼬락서니가 꽤나 불순해, 민망함 반 고마움 반에 괜히 더 왈칵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 정승필이 양복 주머니에서 연고를 꺼내며 말했다. 고 회장이 새끼손가락에 끼워뒀던 반지가 잘못 스쳤는지 얼굴에 긁힌 자국이 영 볼썽사나웠다.
“아, 무슨 이런 걸로 쪽팔리게 약을 발라…….”
“약을 다치면 바르지 쪽팔리면 바르셔? 약도 바르고 그래야 빨리 낫지.”
꼼꼼하게 연고를 발라주는 손길이 어색해서 고병갑은 헛기침을 했다. 살면서 누가 이렇게 약을 발라준 적이 있던가. 애초에 한재호는 이렇게 저를 꼼꼼하게 챙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아원에서든 오세안에 취직한 이후든. 맞고 다치고 울고 있는 저에게 다가와 심심찮은 위로를 던지고, 저를 괴롭히던 놈들을 치워줄지언정 이렇게 약을 발라준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게 한재호와 저의 선이었다. 고병갑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선 한재호도 한 걸음이라는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아니,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고병갑은 괜스레 꼼지락거리게 되는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제 광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정승필의 눈을 흘깃댔다. 우측에서 떨어지는 햇빛에, 정승필의 양 눈은 색이 달랐다. 빛을 받은 눈동자는 투명한 구슬이었다. 유독 사내의 눈은 빛을 잘 머금었다.
제대로 연고를 펴 바른 게 맞는지 요리조리 확인하는 정승필의 어깨를 툭 밀치며 ‘야, 됐어.’하고 고병갑이 중얼댔다. 그러면 어깨를 으쓱하며 순순히 뒤로 물러난 그가 뒷좌석 문을 열어주면서 문득 진지하게 말 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또 이런 일 생기면 내가 적당히 카바 쳐 볼게요. 내가 또 우리 상무님이 맞는 꼴은 못 보잖어.”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퍽 아득했다고, 고병갑은 회상했다. 짭새 새끼 주제에 왜 저를 그렇게나 챙겨가지고. 아마 그것도 다 연기였을 거다. 제 마음에 들고자 하는 연기. 고병갑은 수돗물로 입을 헹구며 스스로를 세뇌하듯 되뇌었다. 정승필의 호의는 모두 계산에 의한 악질적인 연기일 뿐이라고. 속지 않은 내가 잘 한 거고, 깔끔하게 죽여서 뒤탈을 없앤 게 옳은 일이었다고.
저를 원망하지도 못하고 생기를 잃은 눈동자, 빛을 받아 더욱 옅어지던 갈색, ‘우리’ 상무님이라고 부르던 목소리, 차분하게 깔리며 고회장의 폭력을 은근하게 방해하던 분위기. 고병갑은 이를 악물었다. 다 연기야. 개 같은 연기. 나는 원래 독고다이고, 하나도 아쉬울 것 없어. 나는 우리 친구 하나만 있으면 되잖아. 정승필 같은 짭새 새끼를 내가 뭐가 아쉽다고…….
다시 토악질이 올라왔다. 코가 시큰거리고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 건, 그래. 너무 속이 울렁거려서. 토를 하다보니까 그런 것뿐이다. 우는 게 아니라, 그냥 생리적으로 눈물이 떨어질 뿐이었다.
유언을 듣지 못한 게 후회돼서가 아니다. 진심이었던 순간이 있냐고 묻지 못한 게 후회돼서 그런 게 아니다. 변기 커버를 붙잡은 고병갑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 * *
“이 옆에 새끼는 내가 밖에서 봤거든? 그러니까 네가, 이 꼬마 애는 안에서 봐. 그게 깔끔해.”
한재호는 그 순간 ‘아깝다.’라는 말을 하면 안 됐다. 경찰을 감아보겠다고, 트라이 한다고 말 하면 안됐다. 자신은 시도조차 않았다. 그러는 게 옳은 거니까. 경찰을 감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한재호는 조현수에게 일말의 기회도 주면 안 됐다. 왜냐면 자신이 그랬으니까. 고병갑 자신이, 정승필에게 그랬으니까.
한재호는……. 그러면 안 됐다.
정승필에게는 없었던 마지막 기회라는 걸, 조현수에게만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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