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한재호 x 김성한
너희가 아버지께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에게 주시리라(요16:23)
왜, 그 영화 있잖니. 글을 쓰던 작가가 글이 너무 안 풀려서 야마가 돈 거야. 근데 어떡하겠니? 혼자 글을 쓰고 있었으니까 화 낼 대상이 자기밖에 없는데. 결국 그 작가가 어떻게 하냐, 화분을 사요. 잘 깨지는 걸로. 그리고 화가 나면 그걸 집어던져.
그 얘기를 왜 갑자기 하는데요?
여기서는 마사지가 일종의 분풀이기도 하다는 거다.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거지.
* * *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폭력이라. 문득 스치고 지나가던 볕 좋은 날의 교도소 운동장 대화를 떠올리며 한재호는 목을 가다듬었다. 합법? 들키지 않으면 합법이다. 걸리기 전까지는 불법인 것이 없었다. 한재호가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고민에 빠진 모양새였다. 그의 발치에는 목덜미를 밟힌 김성한이 숨이 막혀 컥컥거리고 있었다.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자신만이 깨트릴 수 있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한재호는 양복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선배님과 제 사이가 요즘 드라이해도 너무 드라이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제가 질척이는 거 싫어한다지만 선배님이 요즘 들어 너무 건조하게 구셨던 건 사실이잖습니까. 오늘만 하더라도 말입니다, 성치도 않은 다리로 저를 걷어차려고 하시고. 없는 꼬리라도 만들어서 흔드셔야 할 분이. 흐흐, 흐, 큭, 큭큭큭…….”
어깨까지 흔들며 웃음을 꾹꾹 눌러 흘리는 음성에 김성한이 몸을 바르작거렸다. 단추가 뜯어진 셔츠는 양 옆으로 벌어져 가슴팍을 훤히 드러냈고 벗기던 중인 바지와 속옷은 왼 발목에 간당간당 걸려있었다. 한재호는 마악 제 벨트를 푸르던 중이었다. 총을 쏘아 잡은 사냥감의 마지막 발작을 구경하듯 한재호는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김성한의 발악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힘줄이 끊긴 김성한의 손은 무의미했다. 묶어둘 필요조차 없었다. 다리 한 쪽과 양 손목의 힘줄을 끊긴 김성한은 한재호의 수중에서 놀아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악다구니를 쓰듯 김성한은 한재호의 발목을 잡아채 제 목을 누르는 중압감을 떨쳐내려 했지만, 밀어내기는커녕 발목을 그러잡는 것조차 그에게는 버거웠다. 잡은 건지 그저 감싼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힘 빠진 손의 움직임에 한재호는 크게 웃었다. 아학학학학! 꼬라지 보기 좋으십니다. 정통, 건달, 김, 성한, 선배님. 한 마디씩 끊어 뱉는 말에는 멸시와 조롱이 가득했다. 김성한이 욕이라도 한 두 마디 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벌어진 입에서 나온 소리는 끅끅, 하고 기도가 막힌 처연한 소리뿐이었다.
한재호가 목덜미를 누르던 발을 거두자, 김성한이 몸을 뒤집으며 거친 기침을 쏟아냈다. 한재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작은 지퍼 백을 꺼내들었다. 안에 담긴 흰 가루약은 스산했다. 산소가 부족해 눈앞이 까맣게 점멸했다 흐리게 돌아오길 반복하는 와중이라, 김성한은 한재호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한재호의 발이 김성한의 명치를 걷어찼다. 달리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토록 성치 못한 몸으로도 틈만 나면 제 모가지를 물어뜯으려고 드는 짐승인지라 확실하게 제압할 필요가 있던 것뿐이었다. 컥, 하는 소리와 함께 김성한이 몸을 둥글게 말았다. 흰 셔츠가 김성한의 움직임을 따라 구겨지면 옷 아래 감춰둔 흉터와 문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재호가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내가 뽕팔이는 해도 뽕을 안 맞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게 사람 몸을 어지간히 망치는 물건이라 그렇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이가 빠지고 장기가 망가지고 우울증이다 뭐다, 아주 끔찍하더란 말입니다. 근데 또 이게 한 번 시작한 인간들은 발을 못 빼.”
한재호는 숨을 쉬려 입을 벌려 헉헉대는 김성한의 위에 걸터앉았다. 지난주에 갈비뼈 한 대를 부러트렸으니 체중을 그대로 받아내는 게 꽤나 고통스러울 터였다. 김성한은 인상을 구기곤 한재호가 체중을 실어 짓누르는 제 상체를 빼내려는 듯 다리를 버르적거렸다. 소용없는 반항이었다.
지퍼 백을 열고 가볍게 흔들어 내용물을 한 곳으로 모으면서도 한재호의 시선은 집요하게 김성한에게 향해있었다.
“근데, 말입니다. 우리 선배님은 이가 빠지든 뼈가 부러지든 눈알이 빠지든……. 아니면 온 몸이 기름에 튀겨져 죽든. 내 알 바 아니지 않습니까. 흐, 크큭, 흐흐, 흐.”
김성한이 몇 마디 욕을 뇌까린 것 같았지만 쉬어버린 목에서 제대로 된 발성이 날 리가 없었다. 한재호의 음성은 가볍게 김성한의 쇳소리를 누르고 말을 이었다. 공간을 채운 것은 한재호의 낮은 음색이었다. 김성한이 미처 어찌하기도 전에 한재호는 우격다짐으로 김성한의 코를 틀어잡고 숨을 몰아쉬는 입에 가루약을 털어 넣었다. 힘 빠진 몸이 방비할 수 없는 속도였다. 김성한이 뱉지 못하게 입조차 아물려 닫게 만들면, 호흡할 통로가 막힌 김성한은 핏발 선 눈으로 몸을 비틀었다. 힘줄 끊어진 손이 간신히 할 수 있는 것은 한재호의 손목을 긁는 것뿐이었다. 모두의 위에서 군림하던 자가 이렇게 무기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한 쾌감으로 다가섰다.
“선배님, 삼키세요. 안 삼키면 안 끝납, 크큭, 흐흐, 흐. 안 끝납니다?”
웃음을 삼키며 간신히 말을 끝맺은 한재호의 시선은 김성한의 너덜해진 문신에 향해있었다. 저 문신을 망치고 살을 태우던 날 했던 말이었다. 한재호는 끓는 기름에 본능적으로 위축되던 김성한이 끝끝내 목숨을 구걸하지 않던 날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차라리 살려달라고 빌면 오늘 같은 꼴은 안 당했을 것을. 있지도 않은 연민을 가진 척 위장하며 한재호는 김성한의 목울대로 눈길을 옮겼다. 꿀꺽. 그 한 번이면 됐다. 남는 가루야 뱉든 말든, 지금 입에 쑤셔 넣은 양도 정량을 넘으니 약효는 충분할 터였다.
“이 약이 말입니다. 우리 전국구 정통 선배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필로폰이라는 약인데 이걸 어떤 용도로 자주 쓰는지 아십니까?”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도 목소리의 말미는 의문형으로 음색이 위로 올라갔다. 숨을 갈구하듯 읍읍대는 김성한의 소리는 흥미로운 효과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한재호의 손은 우악스러웠다. 안 삼키면 이 사내는 죽는다. 한재호의 진리는 간단하고 잔인했다. 깨트리고 버리면 될 물건이니 가지고 놀다가 망가져도 어쩔 수 없는 법이다. 다시금 김성한이 한재호의 손목을 긁었다. 생채기도 내지 못하는 힘이었다. 핏발 선 눈은 광기에 물든 짐승 같기도 했다. 한재호가 그 기백에 눌리지 않은 것은, 그저 그가 한재호기 때문이었다. 그는 분위기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중압감의 짜릿함을 즐겼다. 오싹오싹한 기분에 다시금 아랫입술을 핥으며 한재호가 말을 이었다.
“이 약을 먹고 떡들을 그렇게 친다고 합니다아. 하, 하하하학학학학! 응? 섹스를 그렇게, 크크큭, 큭.”
기괴할 정도로 들뜬 웃음소리가 일순 뚝, 끊겼다. 마악 김성한이 본능적으로 목울대를 움직여 가루를 삼킨 순간이었다. 틀어막았던 숨통을 틔워주며 한재호가 고개를 숙여 김성한의 귓가에 나직하게 읊조렸다.
“필로폰을 빨고 떡을 치면 애미애비도 못 알아보게 좋다지 뭡니까.”
“컥, 허억, 흐……. 이, 씨벌, 놈, ㅇ. 콜록, 헉, 흐으…….”
“아, 그리고 그거 아십니까.”
선배님. 꼬박꼬박 호칭을 다는 것에는 조롱과 멸시 외의 의미는 없었다. 김성한은 헛구역질을 하듯 마른기침을 뱉었지만, 삼킨 약을 쉽사리 뱉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재호는 양복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검은빛에 가까운 자주색 넥타이를 끌어내리는 한재호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면했다. 생일을 앞둔 어린이보다도 더욱 활짝 찢어지는 입이 개구졌다.
“마약에 절은 놈들 중에 마약을 끊는 새끼들은 10프로도 안 된다지 뭡니까? 뽕팔이가 이래서 안 망하는 겁니다. 뽕쟁이의 세계에 입문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한재호의 행동은 느렸다. 행동의 간격은 의도되었고 쉼표가 어절마다 붙은 문장은 시간을 끄려는 의도가 선명했다. 김성한이 몸을 추슬러 일으키려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분노에 찬 목소리가 ‘씨발!!!’하고 찢어지듯 울었다. 방금 전에 제가 먹은 게 마약임을 알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은 이제까지 한재호가 알던 모습과 퍽 일관된 패턴이라 놀라울 것도 없었다. 기백에 달하는 값을 치르고 산 시계를 가만 내려 보며 한재호는 시간을 가늠했다. 버텨봐야 몇 분이다. 그는 목 끝까지 잠갔던 셔츠의 단추를 두어 개 푸르고, 바지 버클을 천천히 풀었다. 자기가 혐오하던 수단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진 제왕을 구경할 시간이었다.
* * *
“아, 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였다. 쉬어서 목을 긁어내며 간신히 나온 소음에 가까운 소리. 땀에 절어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한재호는 김성한을 더욱 깊게 끌어당겼다. 교접하는 아랫도리가 거칠었다.
성급하고 메마른 교접과 기껏해야 윽윽대는 북받친 악을 누른 소리와 살이 부딪히는 투박한 소리만 나던 익숙한 성교는 아니었다. 김성한은 한재호의 움직임에 따라 울음을 참지 못하고 내질렀다. 울부짖음에 가까운 비명이었다. 약기운이 돌면 돌수록 김성한은 활력이 돌아오는 몸과는 반대로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머리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 감각은 널뛰었다. 한재호가 무엇을 하든 이미 정점을 찍은 쾌락은 최상의 기준선에서 요동치니 그로써는 미칠 노릇이었다.
열이 오른 두 몸이 바짝 붙었다 떨어졌고, 그 찰나가 지나기 무섭게 맞닿았다. 제대로 쥐어지지도 않는 주먹을 말아 쥔 김성한의 신음은 기름에 살이 타들어가던 날 내지르던 소리와 닮아있었다. 흰 천을 욱여넣어 막혔던 소리가 단숨에 트여나가듯이, 제 혀를 씹으면서까지 참아내던 소리를 김성한은 갈무리하지 못했다. 눈앞이 일그러지면 어지럼증이 도졌고, 몸을 가누지 못하면 한재호는 김성한의 양 팔을 잡아 제 쪽으로 당겼다. 끌려가던 몸은 한재호가 급하게 쑤셔 넣는 성기를 느끼곤 불에 덴 듯 몸서리를 쳤다.
한재호, 한재호, 몇 번이고 악에 받쳐 이름을 찢어발길 듯 불렀지만, 입 밖에 나온 소리는 기껏해야 신음에 말리지 않은 음절 하나가 전부였다.
핏대가 설 정도로 바짝 발기한 한재호의 것이 김성한의 젖은 뒤로 파고들면, 늙은 야수는 그 압박감에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입구를 조이며 빠듯하게 안을 채운 성기를 받아냈다. 흉부가 급하게 오르내리면 가슴팍에 수 놓인, 봉황의 뒤틀린 몸이 요동쳤다. 날개 한 쪽이 기름에 타 찢어진 영물이 화마에 찢어진 이래로 처음, 다시 생동하는 순간이었다. 고통만이 익숙한 몸은 몰아치는 쾌감을 감당하지 못했다. 얼핏 보면 고통에 몸부림치듯 김성한은 벌벌 떨었고, 한재호는 그를 고문하기라도 하듯 깊게 밀어 넣고 허리를 쳐 올렸다. 골반을 잡았다가, 팔을 잡았다가, 이어 가슴을 움켜쥐면 손끝에 심장이 만져질 듯 그 맥이 크고 요란했다.
고병철과 비슷한 연배라는 게 믿기지 않는 몸을 손으로 몇 번이고 훑어내던 한재호가 배꼽 아래, 하복부를 손바닥으로 꾹 눌러 압박하면, 속을 헤집는 한재호의 성기가 무서우리만치 생생해서 김성한은 아, 아, 하고 끊어지듯 흐느꼈다. 무너져 내리는 그의 자존심이, 이름 석 자에 박혀있던 위용이 풍화되듯 흐트러지는 게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재호는 발작하듯 웃었다. 숨이 넘어갈 듯 웃다가 욕을 했고, 욕을 하다가 웃었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김성한이 사냥감이라도 되는 냥 목덜미를 씹었고, 김성한은 과거의 영광만이 남은 패배자가 되어 울부짖었다.
몇 번이고 사정한 뒤에서 찌걱이며 정액이 흘렀고, 체력도, 체력대신 이를 악 물고 버틸 정신력도 남아있지 않은 김성한의 허벅지는 후들대듯 떨렸다. 한재호의 팔이 휘감지 않았으면 진즉 널브러졌을 몸이었다.
네 번의 사정이 그친 후, 반쯤 정신이 나간 김성한의 머리채를 잡고 제 위에 주저앉히자 무게에 눌려 깊게 삽입되는 성기에 김성한이 허리를 비틀었다. 한, 재호……! 씨, ㅂ…! 뒷말은 한재호의 거친 허리 놀림에 끊어졌다. 아래서 몸을 쳐 올리면 약기운을 빌어 발기한 김성한의 것이 한재호의 복부에 스쳤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한재호의 눈은 정확하게 표적을 응시하고 있었다. 순간순간이 희열이자 쾌락의 절정이라 몇 번이고 젖은 내벽에 제 것을 박아 넣는 와중에도 한재호는 갈증을 이기지 못했다. 더, 더. 바닥의 바닥까지 짓밟고 싶었다. 마침표 너머로 끌고 가 끝장을 보고 싶었다. 동시에 이 쾌락이 끊이지 않길 바랐다. 마주한 한재호의 몸을 밀어내려는 듯 내밀어졌던 김성한의 팔은, 그저 한재호의 양 어깨에 힘없이 걸쳐지는 게 전부였다.
허리를 흔들 힘조차 없는 김성한을 붙잡아 억지로 그 몸을 움직이게 하면서, 한재호는 으르렁거렸다. 왕좌를 탈환한 지는 오래전이었으나, 진정으로 이 사내를 꺾은 순간은 지금이라는 것을 깨달은 탓이었다. 머리채를 놓아주면 김성한의 고개는 힘없이 아래로 꺾였다. 바짝 조이던 뒤는 몸의 힘이 풀어지자 더욱 나긋하게 성기를 감쌌다. 씨발, 쫀득하네. 크, 흐흐. 흐. 거칠어진 음색으로 들으란 듯이 희롱을 하면, 김성한은 약기운에 흐려진 눈을 굳이 매섭게 뜨려 애쓰며 시선을 맞춰왔다. 온통 금이 가서도, 아직 깨지지 않은 화분이었다.
그만……. 성대가 울리지 않아 날숨에 가까운 소리를 김성한이 뱉어낼 때, 한재호는 보란 듯이 김성한의 안에 사정했다.
“흐흐, 흐. 선배님. 마약을 끊는 10프로도 안 되는 인간들이, 흐흐, 큭, 큭큭……. 누군지 아십니까? 후으. 흐. 신앙심을 가진 새끼들이랍니다. 선배님은…. 종교 믿으십니까?”
“…….”
“안 믿으시면,”
아직 김성한의 눈이 감기지 않은 것을 알았다. 깜빡깜빡 정신이 흐려지는 김성한의 귓가에, 한재호가 으르렁대듯 속삭였다.
나라도 믿으시든가. 내가 철창 안의 지저스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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