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C: The Bunker] Markus x Ahab

 

 

 

지수야, 나는……. 지수야.

기도를 틀어 막힌 사람마냥 목이 멨다. 오빠, 있잖아. 그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말문이 막혀 그랬다. 수화기 너머의 표정이 예상되어 그럴 수도 있었다. 그는 당황하고, 그녀는 참담했다. 항상 같은 주제와 같은 표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았다. 다른 이들에게 하듯이 권위로 누르지도, 말 빨로 대충 흘려 넘기지도 못하는 게 지수였다. 에이헵은 거짓도 진실도 말하지 못하고 덫에 걸린 놈처럼 낑낑대는 게 전부였다.

제발, 이번까지만 하고 그만두자, 응? 차라리 그래, 보수는 적어도 경비원 같은 일은…….

목소리가 아득했다. 통화 음질이 좋지 못해 섞여드는 노이즈가 귓바퀴를 긁었다. 끝이 뭉그러지는 말을 에이헵은 가만 듣고 있었다. 예, 아니오, 둘 중 어느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이 드물게 아래로 깔렸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이. 마른 침을 삼키며 에이헵은 그저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했던 대답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집에 가서 얘기하자. 지수야.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

지수의 대답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침묵, 한숨, 그리고 ‘그래.’하는 단출한 문장. 입맛이 썼다. 혀뿌리에서 비린 맛이 올라왔다. 기분은 싱숭생숭했고 손에 들린 전화기는 유독 무거웠다. 술이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주머니에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쑤셔 넣고 에이헵은 목을 가다듬었다.

나 임신했어.

쉽사리 기뻐할 수 없는 무게의 문장이 여전히 귓가를 맴돌았다. 애가 태어나면 돈은 더 필요할 텐데. 마트 경비 월급으론 턱도 없을 정도로. 들끓는 속내는 통 진정이 되지 않았다. 종일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에 드물게 끼어드는 한국말은 유독 다른 문장들보다 가시가 많아서, 마음속에 쿡 쑤셔 박히면 꺼내기가 영 힘이 들었다.

에이헵이 지수와 통화를 한 후 독한 술을 한두 잔 홀짝대는 것은 습관에 가까웠다. 가시를 빼낼 때 기름칠을 하듯, 에이헵은 알코올의 힘을 빌리곤 했다. 주로 술은 마쿠스의 것이었지만, 주인이 있다한들 에이헵이 신경 쓸 리가 없었다. 마쿠스는 매 번 자신이 억울하게 술을 갈취당한다고 주장했고 에이헵은 술 마신 다음 날이면 그럴싸한 보드카 한 병을 쥐어 줬다. 오늘도 에이헵의 손에 들린 술은 마쿠스의 소유였다. 다만, 오늘은 한두 잔이 아니었다. 에이헵은 저의 목구멍에 병을 통째로 쑤셔 넣다시피 했다. 임신이라는 말은 기름칠이 많이 필요한 단어였다. 입씨름에 불과하던 은퇴를 목전으로 끌어당길 만큼 강력했으니까.

빈속이었지만 에이헵은 개의치 않았다. 술이라면 한국에서부터 지겹도록 마셔보지 않았던가. 강제로 받은 잔이 몇이며, 흥에 취해 부어넣은 잔이 얼마인가. 술에 죽고 못 사는 놈은 아니었지만, 진탕 마셔본 적이 없던 것도 아니라 에이헵은 주량을 가늠하지 않고 목구멍을 적셨다. 취한다한들, 침대에 쑤셔 박혀 잠이나 자지 않겠느냔 말이다.

 

“아.”

 

낮은 감탄사가 툭 튀어나왔다.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은 탓이었다. 바닥에 얼핏 굴러다니는 술병이 보인 것도 같았다. 손에 들려있어야 할 병이 어째서 텅텅 비어 바닥을 구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시야가 영 어지러워 에이헵이 고개를 숙이면, 이마에 툭, 단단한 온기가 닿았다. 이마에 닿는 감촉을 느끼고도 수 초간은 멀뚱히 눈을 깜빡인 게 전부였다. 머리가 버틸 수 없을 정도를 쏟아 부었으니 사고가 정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혈액대신 돌아다니는 알코올의 농간이었다.

쉬이. 부드럽게 달래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오빠. 지수의 목소리가 흐렸다. 취기가 돌면 씹힌 테이프를 억지로 재생한 것처럼 기억들이 늘어지고 둔탁해졌다. 오오, ㅃ, 아. 마냥 쳐지는 기억 위에, 쉬이, 하는 잔잔한 숨소리가 들렸다. 아. 그래. 저를 붙드는 몸이 있었다. 이마에 닿는 체온과 야트막한 목소리로 간신히 추론해낸 사실에, 에이헵이 고개를 털었다. 정신을 차리려는 행동이었으나, 뇌가 따로 굴러다니는 느낌만 받았을 뿐 정신은 영 추슬러지질 않았다. 독한 술을 무식하게 부어넣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시금 등을 따라 돋는 소름. 등허리를 쓸어내리는 감촉. 아. 손이다. 제법 거칠긴 해도, 등을 쓸어내리는 것은 손이었다. 맨 살이 닿는 촉감에 에이헵이 어깨를 움츠렸다. 벗고 있던가. 뒤늦게 드는 생각을 곱씹어보기도 전에, 뱃속이 꾸욱 눌렸다. 아. 에이헵이 다시금 낮게 목소리를 터트렸다. 늘어지는 몸은 간신히 상대에게 걸쳐져있는 수준이었다. 단단한 몸이 영 불안정하게 늘어지는 것을 팔을 감아 붙들지 않았더라면 진작 굴러 떨어지고도 남았을 만큼 에이헵의 몸에는 영 맥아리가 없었다. 180cm가 넘는 거구를, 상대는 용케 놓치지 않았다. 혹은, 그 정도의 덩치는 충분히 다루고도 남을 놈이라 그럴 수도 있었다.

 

"Do you like it?"

 

질문하는 목소리가 제법 선명했다. 귓바퀴에 입술을 대고, 조곤조곤 속삭인 덕이었다. 에이헵이 저에게 닿은 몸을 뒤로 밀어내며 음성의 주인공을 식별하려 했으나, 헛짚은 팔 때문에 그는 도로 놈의 목덜미에 이마를 쑤셔 박을 수밖에 없었다. 취했구나. 그제야 에이헵의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랐다. 느린 사고는 제가 닥친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도 판단하질 못해서, 에이헵은 고개를 내저었다. 좋냐고 물었던 것은 같은데, 무엇에 대해 묻는지도 영 알 수 없었다. 웃음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삼켜내는 특유의….

 

"Ma, …us."

 

끊어진 발음이 알파벳을 삼켰다. 반쯤 트인 시야엔 놈의 맨 살이, 시야의 모서리에는 바닥, 굴러다니는 술병, 이불. 에이헵이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다시금 뱃속이 꾹, 꾹, 눌리는 감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감촉을 인식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반응이었다. ……아. 신음은 두어 박자가 늦었다.

이어 야트막하게 이어지는 자극은 영 오싹하고 간지러워서, 에이헵은 몸을 비틀었다. 단전에 열이 모이는 기분. 술기운에 늘어지던 숨이 제법 밭게 끊어졌다. 끙끙대는 소리가 목 안쪽에서 맴돌았다. 닿은 체온은 마음에 들었다. 몸을 휘감는 손길이 제법 능청스러워 뱀 같긴 해도,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날갯죽지를 누르고, 등줄기를 따라 흐르던 손이 둔부를 가볍게 쓸었다. 아. 다 벗고 있던가. 뒤늦게 자각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귓가에서 진득하니 떨어지지 않던 지수의 음성이 마악 옅어진 참이었다.

에이헵은 얌전했다.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을 어렴풋이 깨닫는 중에도 인상을 구기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도피처가 절실했으니, 마쿠스도 그에겐 감지덕지였다. 술에 취한 정신으로 판단하기엔 그랬다.

키에 걸맞게 큼지막한 손은 에이헵의 몸을 쓸었고, 둔부 사이 엉덩이 골을 파고들어 움찔대는 구멍을 꾹 눌러 벌려냈다. 중지를 한마디쯤 밀어 넣으면 둥그렇게 굽은 에이헵의 등이 반사적으로 꼿꼿하게 서며 근육들이 바짝 긴장했다. 에이헵의 몸은 단단했다. 낭창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육체. 진한 수컷 향을 뿌리고, 울부짖고 으르렁대며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에 적합한 몸이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다리일까. 물론, 마쿠스는 그 다리를 퍽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었다. 에이헵의 불완전에 파고드는 것은 마쿠스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의족을 벗겨내도 반항이 없던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마주 안은 채로 손가락이 애널을 지분거려도 욕한 번 없던 것 역시, 오늘이 처음이었다. 어지간히 취해도 제 앞가림은 하던 에이헵이 오늘만큼은 그럴 여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없던 기회도 억지로 만들어 굳이 짐승을 제 아래 억누르던 마쿠스가 오늘 같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에이헵은 마쿠스의 손가락이 깊게 들어와 내벽을 휘저으면 흠칫대며 울컥대는 소리를 삼켰다. 앓는 소리를 삼키는 것은, 에이헵의 오랜 습관이었다.

벌어진 입에서 더운 숨이 드나들었다. 날숨에는 독한 알코올 냄새가 뒤섞여있었지만 마쿠스는 맡지 못했다. 그에게서 일상적으로 나던 향이 아닌가. 손가락으로 넓히고 적셔놓은 애널 입구는 이제 단단한 귀두 끝이 느릿하게 비벼지는 중이었다. 마쿠스가 느른하게 숨을 내뱉었다. Hey, captain. 부르면, 저의 이름을 간신히 부르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귀두가 입구를 밀어 벌리며 삽입되면, 에이헵의 몸이 작게 움질댔다. 짤막한 오른 다리가 위 아래로 작게 흔들렸다. 허벅지 안쪽은 바짝 힘이 들어간 채였다.

차차 깊게 쑤시고 들어오는 페니스가 취한 와중에도 제법 선명하게 느껴지는지, 문신이 뒤덮인 에이헵의 팔이 마쿠스의 양 팔을 그러쥐었다. 악력은 무시할게 못 돼서, 마쿠스는 얕게 인상을 찌푸렸다. 다만 그저 붙잡고 매달릴 뿐 마쿠스를 밀어내지 않으니, 마쿠스 역시 에이헵을 떨쳐내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얌전하게 구는 저의 대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느긋하게 포식하고 싶었다.

서서히 기둥이 밀고 들어가면, 아, 에이헵의 입에서 다시금 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신음의 말미는 거친 숨에 섞여들어 마침표가 없었다. Do you like it? 마쿠스가 재차 물으면, 에이헵은 입을 어물거리며 밭은 숨을 헐떡거렸다.

 

"I, I don't……. know…."

 

질문을 이해하는 것도, 영어로 대답을 내어놓는 것도 느린 박자로 움직였다. 그 사이 반 이상 파고든 마쿠스의 페니스에 에이헵이 허리를 비틀었다.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대며 불러일으키던 야릇한 감각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뱃속이 가득차서 뭉개지는 기분. 술에 녹아내린 와중에도 눈앞이 아찔할 정도의 자극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에이헵이 양 다리를 바짝 움츠렸고, 닿아있는 마쿠스의 허리춤에 왼 다리가 감겼다. 오른 다리는 그저 작게 허우적댄 것이 전부였다.

숨은 더위 먹은 개 마냥 끊어지고, 능글한 마쿠스의 목소리가 청각을 지배했다. 술기운과 더불어 맞닿은 체온에 열이 더욱 홧홧하게 오르면 기억은 아이스크림마냥 녹아내렸다. 오빠. 오……. 목소리가 늘어지다 못해 끊어지면, 더 이상 통화 내용은 기억나지도 않았다. 그저 알고 싶지 않은 고민들이 수두룩하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껴질 따름이었다. 에이헵은 굳이 꺼려지는 기억에 집중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허리가 위아래로 작게 흔들렸다. 마쿠스가 만족에 겨워 피 끓는 신음을 그르렁거렸다.

에이헵의 머리카락은 땀에 절어 흐트러진 채였다. 마쿠스의 페니스가 뿌리까지 들어가기 시작하면 흘러내린 앞머리가 에이헵의 눈가를 찔렀다. 쯔걱. 질척하게 젖은 소리가 접합부에서 적나라했다. 압박감이 심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해, 폐를 채우는 산소는 턱없이 부족했다. 마쿠스의 페니스가 쿡, 하고 깊은 곳을 장난처럼 쳐 올리면 에이헵은 허리를 바짝 세우고 고개를 젖혔다. 머릿속을 끈적끈적하게 녹여내는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반쯤 혀를 내밀고 허덕대는 중에도, 에이헵은 여전히 단단해보였다. 마쿠스의 손에 닿는 몸이 그랬고, 중간 중간 뱉어지는 목을 긁어내는 신음소리가 그랬다. 기운 빠진 놈은 여전히 피식자는 되지 못 할 짐승이었다. 잠시간 왕좌를 탈환당한 우두머리라면 몰라도, 에이헵은 쫓기는 초식동물은 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게 가능했더라면, 지수의 말마따나 마트 경비로도 살 수 있었을 터였다. 에이헵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족속이었다. 날개 부러진 매가 닭과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빨이 뽑힌 사자가 토끼가 될 수 없듯이. 타고나길 포식자로 태어난 놈은, 또 다른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순간에도 뿌리를 버리지 못하고 으르렁거렸다.

아. 우윽, 윽. 아…….

기어이 마쿠스가 뿌리 끝까지 페니스를 밀어 넣으면, 한계까지 벌어진 에이헵의 애널 입구가 움찔거렸고 틈 없이 압박당해 짓이겨지는 쾌락점에 에이헵의 앞은 축축하게 젖었다. 묽은 선액을 뚝뚝 흘려내며 성기를 꺼덕대는 광경이, 마쿠스는 만족스러워 웃음을 삼켰다. 되새김질하듯 삼킨 웃음에 어깨가 잘게 흔들리면, 같이 흔들리는 몸체에 에이헵은 뱃속을 휘젓는 페니스가 버거워 숨을 껄떡댔다.

느릿하게 끝난 삽입과 반대로, 교접은 꽤나 성급하고 거칠었다. 조이는 내벽을 견디기 힘들었고, 소름끼칠 정도로 쾌락을 몰아다주는 압박을 버티기 버거워 그랬다. 마쿠스가 에이헵을 눕히며 허리를 크게 밀어붙이면, 콱 하고 쑤셔 박히는 페니스에 에이헵이 헉, 하고 헛숨을 삼켰다. 몸이 눕혀지자 아래로 흘러내린 에이헵의 손은 침대 시트를 우그러트릴 듯 강하게 그러쥐었다. 마쿠스가 크게 허리를 움직이면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 빛이 돌아오길 반복했다. 아찔한 자극이었다.

 

"Do, ya…. Fucking, like…. it?"

 

마쿠스의 물음은 끈질겼다.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말을, 그는 종용했다. 살이 강하게 부딪히며 퍽, 퍽, 소리가 공격적으로 울려 퍼졌다. 둔부에 강하게 닿아오는 마쿠스의 허벅지와, 벌어진 입구를 단숨에 쑤시고 들어가는 페니스에 에이헵의 벌어진 입에선 더운 숨과 신음이 섞여들었다. 허리가 절로 들썩였고 바짝 선 페니스의 선단에서 쿠퍼액이 후드득 떨어졌다. 에이헵의 몸을 훑던 마쿠스의 손이 이제는 체중을 실어 에이헵의 하복부를 강하게 짓눌렀다. 손바닥에, 에이헵의 단단한 복부 너머 제 페니스가 느껴질 정도로 힘껏.

 

“아, 아……!”

 

압박을 견디지 못해 에이헵이 탄성을 내질렀다. 장기가 온통 짜부라진 느낌이었으며, 요의가 느껴질 정도로 아찔한 감각이었다. 마쿠스의 몸이 가쁘게 움직였다.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에 따라 삼키지 못한 에이헵의 음성이 아. 아아. 아. 끊어져 튀어나왔다. 젖은 음색이었다. 술에 절고 쾌감에 녹아내린 목소리가 꼭 흐느낌 같았다. 울음일리가 없음에도, 처음 듣는 젖은 음성은 그렇게 느껴졌다. 마쿠스는 거칠게 으르렁거렸고, 에이헵은 울부짖듯 송곳니를 드러냈다.

Answer the question. Ahab. Do you like it?

끊어지고, 먹혀들고, 흘려나가는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은 헐떡헐떡 뱉어졌다. 마쿠스는 숨이 가빴고, 에이헵은 사정이 임박했다. 아직 마쿠스의 허리에 감겨있던 왼다리가 바짝 힘이 들어가 마쿠스를 당겼다. 한 손이 복부를 누를 때, 마쿠스의 나머지 한 손은 에이헵의 잘린 다리를 우악스레 붙잡아 벌렸다. 벌겋게 부은 입구가 움찔대며 젖은 소리를 냈고, 에이헵은 양 팔로 마른세수를 하며 쾌감에 허우적거렸다. 이제는 어떤 기억도,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좋냐는 물음. 추궁하는 목소리. 짐승의 울부짖음. 혼재된 소음이 고막을 때릴 뿐이었다.

좋아, 씨발. 좋, ㅇ, 아, 아. 반쯤 놓친 정신이다. 에이헵의 입이 버끔거리며 말을 뱉어낼 듯 말듯 애를 태웠다. 술 냄새와 체향이 뒤섞인 공간에서 마쿠스가 몸을 깊게 수그렸다. 사정과 동시에 뿌리 끝까지 페니스를 쑤셔 박으면, 에이헵은 앞으로 움츠러든 마쿠스와는 달리 뒤로 고개를 바짝 젖히며 꺽꺽,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좋아. 씨발……. 짓이겨진 발음이라 알아듣기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마쿠스는 에이헵이 뱉어낸 단어의 의미를 알았다. 애초에 이 질문에는 답이 하나뿐이었다. 대답을 하지 않거나, 단 하나의 대답을 하거나. 에이헵의 몸이 쾌감을 주체하지 못해 버들버들 떨리면, 마쿠스는 다시 한 번 깊게 사정했다.

Posted by 백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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